지난 12월 23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회동한 아베 일본 총리(왼쪽)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photo 뉴시스
지난 12월 23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회동한 아베 일본 총리(왼쪽)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photo 뉴시스

중국과 일본의 관계가 완전한 정상궤도에 오르고 있다. 한·중·일 3국 정상회의를 계기로 중국을 방문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지난 12월 23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 ‘일본산 쇠고기 수입 재개’ 선물을 받았다. 중국은 2001년 일본에서 발생한 광우병을 이유로 18년간 일본산 쇠고기 수입을 금지해왔다. 이 회담에선 “중국과 일본이 양국 관계 발전의 중요한 기회를 맞았다”(시진핑 주석), “일·중 관계 발전 추세는 매우 양호하다”(아베 총리)는 덕담이 오고 갔다. 시 주석의 오는 4월 국빈(國賓) 방일도 다시 확인했다.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는 지난 12월 25일 아베 총리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쓰촨성의 수리관개시설 ‘두장옌(都江堰)’으로 안내했다. 2018년 5월 아베 총리가 홋카이도의 도요타자동차 공장 시찰에 동행한 데 대한 보답이었다. 두 총리는 이날 2020년 도쿄 하계올림픽과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때 문화·스포츠 교류를 대폭 확대한다는 데 합의했다. 아베 총리는 일본의 유명 아이돌 그룹 ‘아라시’를 ‘일·중 관계 친선대사’로 임명해 활동시키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2012년 일본의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국유화를 계기로 단교(斷交) 직전까지 갔던 중국과 일본 사이에 새로운 역사가 쓰이고 있다. 리커창 총리가 2018년 5월 중국 총리로는 8년 만에 방일한 데 이어 아베 총리가 같은 해 10월 일본 총리로서는 7년 만에 중국을 공식 방문했다. 시 주석은 지난 6월 오사카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중국 최고 지도자로서는 11년 만에 일본을 찾았다.

무역갈등 돌파구와 ‘트럼프 헤징’

이 같은 ‘중·일 밀착’ 배경에는 역설적으로 미국이 자리 잡고 있다. 2017년 취임한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를 움직이는 G2(미국과 중국)’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중국의 힘이 커지자 미·중 무역전쟁을 일으키며 강력한 견제에 나섰다. 중국산 IT 관련 제품은 위험성이 있다며 미 행정부 차원에서 사용 금지를 결정하고, 중국산 제품에 대해 고율의 관세를 부과했다.

외교·안보 면에서도 태평양사령부를 인도·태평양사령부로 개칭, 활동범위를 넓히면서 시진핑 주석의 대표정책인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에 제동을 걸고 있다.

트럼프가 중국을 겨냥해 경제·국방·외교 측면에서 포위망을 만들자, 이를 약화시키기 위해 중국이 일본을 끌어당긴 것이 중·일 관계 정상화의 가장 큰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중·일 화해는 깊어지는 미·중 갈등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중국이 일본에 접근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분석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일본으로서도 중국과의 관계정상화는 13억의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무역 확대 외에도 ‘트럼프 헤징(트럼프 위험 회피)’ 성격이 강하다. 아베 총리는 한·중·일 3국 정상회의 참석에 앞서 지난 12월 21일 트럼프 미 대통령과 1시간 30분간 전화 회담을 할 정도로 친밀한 관계다. 지난 5월엔 나루히토(德仁) 일왕 즉위 후 첫 국빈(國賓)으로 도쿄를 방문한 트럼프는 “미·일 관계는 보물 같은 동맹”이라고 찬사를 늘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아베 정권 내에는 “언제든 트럼프에게 뒤통수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에 마냥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는 중국을 이용해서 헤징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 대중 정책의 밑바닥에 자리 잡고 있다.

관계정상화의 문은 2018년 10월 중·일 평화우호조약 40주년을 계기로 아베 총리가 베이징을 방문하면서부터 열리기 시작했다. 당시 시 주석은 “아베 총리가 근년 수차례에 걸쳐 중·일 관계 개선과 발전에 대한 적극적인 희망을 표명한 것을 높이 평가한다”며 관계정상화를 시사했다. 아베 총리는 “일본은 중국과 함께 국제사회 및 지역 평화, 자유무역에 공헌하기를 바란다”고 화답했다. 양국은 1972년 중·일 수교 당시 기본전제였던 ‘구동존이(求同存異·서로 다른 점을 인정하고 공통의 이익을 추구한다)’ 원칙을 다시 살리는 지혜를 발휘, 센카쿠를 포함한 껄끄러운 문제는 논의에서 제외했다.

이후 중·일 양국 간 크고 작은 분야에서 각종 합의와 교류가 끊이지 않고 있다. 센카쿠 갈등으로 종료된 일·중 통화스와프 협정은 300억달러로 부활했다. 2013년 종료 시에 비해 10배 이상 커진 것이다.

양국은 지난 4월 베이징에서 양국의 각료들이 모여 고위급 경제대화를 개최했다. 이어 일본은 중국이 주최한 일대일로 포럼에도 참석했다. 양국이 5년간 3만명 규모의 청소년 교류를 활성화하기로 한 것도 눈여겨봐야 할 분야다.

역사적인 제5의 중·일 합의문 기초작업

민간 분야의 협력도 활발하다. 도요타자동차는 중국 베이징자동차그룹에 연료전지차(FCV)용 부품을 공급하기로 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경제협력, 제3국에서의 인프라 공동 지원도 논의되고 있다. 도요타·닛산자동차는 중국에서의 생산량을 2017년보다 각각 20%·30% 이상 늘리기로 했다.

정치·경제 전방위에서 새로운 시대가 열림에 따라 일본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은 2018년보다 10% 이상 증가했다. 지난 9월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한·일 관계 악화에 따른 한국인 관광객 감소 관련 질문에 “중국은 전년 동기 대비 16% 늘어났다”고 받아친 것은 중·일 관계에 대한 자신감에 바탕한 것이었다.

일본 내에 중·일 관계 개선에 대해 찬성 의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민당의 일부 보수층에서는 홍콩 문제와 신장위구르의 인권 문제로 시 주석의 국빈 방문에 반대하는 기류도 있다. 주석 취임 후 ‘중화민족주의’를 강조하며 전체주의적인 모습을 보이는 시 주석을 국빈으로 초대하는 것이 타당하냐는 것이다. 중국에 다가가기보다는 중국을 더 봉쇄하는 전략으로 맞서야 한다는 주장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아베 총리의 입장은 확고하다.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동북아시아의 안보 지형을 개선하고 경제적 협력을 더욱 심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1972년 수교, 1978년 평화조약 체결을 포함 4차례의 중요한 합의문을 만들었던 중·일은 시 주석의 국빈 방일을 계기로 ‘제5의 합의문’을 발표하기 위한 기초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에 따라 중·일 관계는 오는 4월 시 주석의 방일을 계기로 한 단계 더 도약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한·중, 한·일 관계가 개선의 조짐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중·일 관계의 발전은 왜소해진 한국 외교에 또 다른 숙제를 던져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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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원 조선일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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