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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0호] 2020.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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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선거법 개정 ‘꼼수’냐 ‘묘수’냐, 유권자에 달렸다

이상일  입소스코리아 본부장 sangil4@daum.net

▲ 지난해 12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73회 국회 본회의에서 공직선거법 일부 개정법률안이 가결되고 있다. photo 뉴시스
프랑스의 시인이자 비평가 폴 발레리(1871~1945)는 “정치는 당연히 이해관계가 있는 일들에 대해 사람들이 관여하지 못하게끔 방해하는 기술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기나긴 산통(産痛) 끝에 국회를 통과한 선거법 개정 과정을 보면 발레리의 통찰력이 한국 정치에 그대로 투영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30석 캡(cap)을 적용한 준연동형비례대표제’가 지난 연말 국회를 통과했다. 2020년 4월 총선(總選)부터는 선거연령도 만 18세로 하향된다. 개정된 선거법이 적용되면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지 예측해 보기 위한 시뮬레이션 결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선거법 때문에 여론조사 결과를 갖고 선거 결과를 예상이라도 해보려면 몇 단계의 복잡한 계산을 거쳐야 한다. 시험공부 하듯 못 할 바도 아니겠지만 국회의원을 뽑는 규칙을 정한 법이 일반인의 상식과 이해의 범위를 넘어서는 수학의 세계로 들어간 것이 정상적인 모습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지역구 의석을 줄이고 비례대표를 늘려 연동형으로 가겠다던 개정안은, 결국 지역구 253석은 그대로 두고 비례 47석 중 30석에만 50% 연동형 비례율을 적용한다는 기상천외한 수정안으로 귀결됐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선거법 개정이었을까.
   
   
   ‘손실은 적에게 이익은 나에게’
   
   연동형비례대표제라는 선거제도의 기본은 정당의 득표 비율에 따라 의석수가 정해지는 데 있다. A당이 정당투표에서 20%를 득표했으면 전체 의석의 20%를 가져간다는 것이다. 이는 다당제를 기본으로 하고 내각제 성격의 정치구조를 전제로 한다. 거대정당이 정치를 양분하는 정치구조가 아니라 여러 정당이 존재하고 협치와 연대를 통해 정치가 기능하는 구조에 적합한 제도다. 우리 정치에서 영호남 지역정서에 기대 성장한 두 정당의 극심한 갈등과 대립이 빚은 양당(兩黨) 구도의 문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소수의견이 반영되고 다양한 정치의제가 가능할 수 있는 연동형비례제 개정은 나름 ‘의의’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불가능해진 현실을 깨고 손해를 보더라도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는 방향으로 입법이 추진됐다면 찬반 입장을 떠나 선거제 개혁은 나름의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선거법 개정은 개혁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이익 극대화’ 논리에 함몰됐고 ‘손실은 적에게 이익은 나에게’ 구호 아래 밀실 논의를 거듭했다.
   
   4+1 협의체라 불리는 민주당과 야당들은 먼저 의원정수 확대 방안을 모색했다. 연동형비례제의 특성상 의원정수가 300명을 초과하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고, 지역구 의석을 줄이는 것이 간단치 않은 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적 공분을 극대화시킬 의원 수 확대는 불가능한 길이었다. 그러자 여당과 군소야당들은 다른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고 그런 논의를 거쳐 등장한 것이 이른바 지난해 4월 패스트트랙에 상정된 ‘심상정 법안’이다. 지역구 225석, 비례 75석에 50% 연동형비례제 및 석패율제 도입을 담고 있었다. 자유한국당은 강력 반발했고 패스트트랙 지정은 난장판이 된 ‘동물국회’까지 연출했다.
   
   그렇게 합의된 여당과 군소야당들의 개정안은 이후 계속 바뀌어 간다. 처음부터 국민 앞에 왜 법 개정이 필요하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데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이후 논의 과정은 그야말로 ‘깜깜이’ 선거제 개정 논의였다. 75석까지 확대키로 한 비례대표 의석은 60석, 50석으로 줄어들다 결국 47석까지 후퇴했다. 민주당과 군소야당의 지역기반이 탄탄한 의원들의 지역구 지키기 욕심이 초래한 결과다. 개혁은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해야 했지만 그 누군가가 ‘우리 편’이어서는 곤란했을 것이다. 여기에서 이미 개혁은 빛바랬고 국회 마비까지 초래하며 선거법을 개정해야 할 당위는 실종됐다.
   
   석패율제 도입도 제외되었다. 군소정당의 중진들이 지역구와 비례후보에 양다리를 걸쳐놓고 종신제를 꾀한다는 민주당의 의심이 초래한 결과다. 50% 연동률마저 비례 47석 중 30석에만 적용키로 했다. 정의당 같은 군소정당이 ‘과도한 이익’을 얻는 것에 반발한 민주당의 몽니 덕이다. 이런 누더기 같은 법 개정 결과를 두고 법안 발의 주체였던 심상정 의원은 “국민께 송구하다”고 했다.
   
   
   좌파연대 이익 극대화, 영남우파 이익 봉쇄
   
   그럼 도대체 무엇이 남았을까. 민주당은 최소의 손실 계산법으로 선거법 개정안을 누더기로 만들면서도 야당들의 협조로 숙원사업이던 공수처법 처리에 성공했다. 정의당은 30석에 50%이긴 하지만 연동제를 도입해 정당득표율이 강세인 정의당의 의석 수 확대 발판을 마련했다. 민평당과 대안신당은 호남 지역구 축소 위험을 회피했고, 바른미래당 역시 연동형비례제로 비례대표 의석 확보 가능성을 높였다. 군소정당 입장에선 3% 득표만 하면 비례의석 확보의 길이 열리는 연동형 물꼬를 트는 것만으로도 기존 선거법보다는 유리한 환경이 조성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너덜너덜해진 선거제 개정을 ‘목적’ 중심으로 읽어보면 민주당의 입장은 ‘내 손실은 최소가 되고 한국당의 손실은 최대가 되며 좌파연대의 이익이 일정 수준 보장되도록’ 하는 데 맞춰졌다. 당초 다양한 정책과 이념에 기반한 정당의 의회 진출을 촉진한다던 선거법 개정 취지는 사라진 지 오래다. 비례민주주의 연대가 계산한 의석 수 변화 시뮬레이션을 보면 왜 이런 해석이 가능한지 한눈에 들어온다.
   
   지난 총선 결과에 새 법을 적용하면 새누리(한국당) -11석, 민주당은 -8석이 되고 정의당은 +5석의 이익을 얻는 구조로 되어 있다.<표 참조> 단순계산으로는 새누리당과 민주당 모두 손해를 보는 구조로 거대정당의 이익을 포기한 개혁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장 큰 혜택을 받았을 국민의당(+14석)이 호남 중심의 민주당 분당파였던 점과 민주당과 정의당의 반복된 선거연대를 감안하면 해석은 달라진다. 결국 좌파연대의 이익은 극대화되고 영남우파의 이익은 봉쇄되는 지점의 최저 혹은 최대치에서 타협한 결과물이 개정 선거법인 것이다.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 개정 선거법을 대입한 시뮬레이션 결과들을 보면 법 개정의 의도가 더 명확히 읽힌다. 현재 여론조사 결과가 총선 득표율과 그대로 연동될 것으로 보긴 어렵지만 대략적인 흐름은 가늠해볼 수 있다는 가정하에 여러 시뮬레이션이 시도되었다. 활용한 여론조사 결과와 가정들이 모두 달라 일률적이진 않지만 공통점들이 있다. 현재 정당구도를 그대로 두고 개정법이 적용되면 최대 수혜자는 민주당과 정의당이 된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공직선거법 개정과 공수처 설치법을 막겠다고 황교안 대표의 단식과 장외투쟁, 필리버스터까지 동원했지만 4+1 협의체의 독주를 막지 못했다. 1차적인 책임은 한국당의 전략 부재와 지지력 약화, 실패한 대중정치에 있다. 민주당이 공수처 설치를 위해 군소정당을 끌어들인 연대를 구성해 놓고 실리를 챙기면서 선거법과 공수처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동안 한국당은 왜 이런 법안에 반대하는지, 무엇이 문제인지를 제대로 설득해내지 못했다. 전략으로 대응해 바람직한 대안을 찾지도 못했고 물리적으로 저지하는 것도 실패했다. 그나마 선거법 개정안이 강행처리되자 내놓은 대안이 ‘비례정당’ 창당 계획이다.
   
   

   비례한국당 창당이 최대 변수
   
   한국당은 지난 총선에서 120석이 넘는 의석을 확보했지만 스스로 ‘TK 영남당’으로 위상을 주저앉힌 지 오래다. 총선이 100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전국적으로 집권여당에 우위를 점할 자신도 없다. 부동산과 일자리로 대표되는 문재인 정부의 초라한 정책성적표에도 불구하고 정책대안으로 정면승부를 벌인 적도 없고 앞으로도 무엇을 하겠다는 비전도 명확지 않다. 오로지 ‘보수의 가치’를 인정하는 유권자의 표심이 문재인 정부 심판으로 이어지길 기대하고 그 표의 가치를 하나라도 더 살리기 위해 내놓은 대책이 ‘비례정당 창당’인 것이다.
   
   한국당이 비례정당 창당에 성공할 것인지 확실치 않지만 현재 흐름으로 보아 어떻게든 창당을 하는 방향으로 나갈 것 같다. 앉아서 상대가 건넨 손실수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면 비례정당을 창당하고 선거 후 보수통합의 고리로 활용하는 전략을 구사할 것이다. 앞서 인용한 총선 시뮬레이션 결과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비례한국당’ 창당 시 연동형 덕분에 한국당이 큰 수혜자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비례민주당까지 창당되면 선거제 개정의 의도와 달리 거대 양당이 지역구+비례를 독식하는 현상도 가능하다고 한다. 민주당이나 정의당에서 한국당의 비례당 창당을 극구 비난하는 이유다. 민주당 내에서도 비례정당 창당 주장이 있다고 하나, 집권 후반기를 남겨둔 민주당 입장에서 선거법 개정의 취지를 정면으로 뒤엎는 비례정당 창당에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한국당이 현재대로 선거를 치르느냐, 비례정당을 창당해 대응하느냐의 변수만 남는다.
   
   미국의 시인 월트 휘트먼(1819~1892)은 “우리나라를 위한 가장 훌륭한 정치는 정치제도를 철폐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1800년대 미국의 시인이 일갈한 정치현실이 2020년 한국의 유권자에게 가장 와 닿는 말로 들린다. 몰락한 우파는 몰락의 원인조차 제대로 찾지 못한 채 수년째 표류 중이다. 보수의 몰락을 틈타 회생한 좌파는 알량했던 도덕이라는 가면까지 벗어던진 채 우파의 전유물이던 ‘이익 탐닉 정치’에 몰입하고 있다. 철폐는커녕 정치제도는 더 복잡한 선거공학 함수를 등에 업고 유권자들을 압박한다. 선거라는 제도의 본질은 ‘위임된 권력에 대한 평가’다. 보수는 이미 막장공천으로 20대 총선에서 심판을 받았고 비선 권력남용으로 대통령 탄핵을 당해 정권을 빼앗겼다. 진보정권을 자처한 문재인 정부의 국정 성과와 도덕성, 권력의 정당성을 평가하는 것이 2020 총선이고 2022 대선이다. 그러나 몰락한 보수의 현실은 ‘야당 심판론’을 여전히 작동시킬 정도로 심각하다. 중도적 또는 합리적 보수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기댈 곳이 없다. 진보성향 유권자 일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도덕적 우위가 소멸된 민주당과 진보진영에 여전히 응원을 보내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는 유권자도 상당할 것이다.
   
   선거는 매우 복잡해 보이지만 민심의 향배를 드러내는 중심 지표는 단순명료한 결과로 나타난다. 지난 2016 총선의 민심은 막장 보수와 분열된 진보에 대한 동시평가였다. 그 결과가 창당 두 달짜리 국민의당의 정당득표율 26.7%와 38석 의석으로 나타났다. 2020 총선은 자유한국당이 창당을 공언한 ‘비례정당’에 대한 평가가 유권자의 표심을 드러내 줄 것이다. 정권심판론과 야당심판론이 맞서게 될 총선, 30석 캡 준연동형비례대표제와 비례한국당 어느 쪽이 묘수가 되고 어느 쪽이 꼼수로 판명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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