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전 울산광역시장 ⓒphoto 뉴시스
김기현 전 울산광역시장 ⓒphoto 뉴시스

2018년 지방선거 때 청와대 선거개입 사건으로 명예회복 수순을 밟고 있는 김기현 전 울산광역시장의 고심이 길어지고 있다. 김기현 전 시장은 2018년 지방선거 때 송철호 현 울산시장과 본선에서 맞붙었는데, 자유한국당 시장후보 공천 당일 울산 경찰이 친동생 비리와 관련 울산시청을 압수수색하는 등의 풍파 끝에 결국 낙선했다.

하지만 당시 청와대가 대통령의 지기인 송철호 현 울산시장 당선을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인 사실이 하나둘씩 드러나면서 4월 총선을 통한 명예회복을 벼르고 있다. 한데 4월 총선을 앞두고 한국당 내 울산 지역 교통정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출마 선거구 확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제 김기현 전 시장은 지난해 12월 17일부터 시작된 예비후보 등록에 아직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현역 의원의 경우 상시적으로 이름과 직책이 들어간 명함을 돌릴 수 있고 각종 행사에 얼굴을 들이밀고 축사 등을 할 수 있다. 반면 원외 인사들은 예비후보에 등록하지 않고 이 같은 활동을 하면 선거법에 걸릴 확률이 높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원외 인사인 김기현 전 울산시장은 1월 2일 현재까지 예비후보에 등록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울산 중구 출마를 선언한 정연국 전 청와대 대변인, 울산 동구 출마를 선언한 안효대 전 의원(재선), 울산 북구에 나올 예정인 박대동 전 의원(초선), 울산 울주군 출마를 선언한 서범수 전 울산지방경찰청장, 신장열 전 울산 울주군수 등 원외 인사들이 일찌감치 예비후보에 이름을 등록하고 본격 선거전에 착수한 것과 다른 행보다.

특히 김기현 전 시장은 자신이 3선 의원을 지낸 울산 남구을 지역구에서도 아직 예비후보로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울산 남구을에서 예비후보에 등록을 한 자유한국당 인사는 한 명도 없다. 지난해 9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 와중에 조 전 장관의 파면과 문재인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면서 울산 최대 번화가인 남구 롯데백화점 앞에서 삭발까지 감행한 김기현 전 시장의 행보치고는 너무 늦은 움직임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옛 지역구는 한국당 박맹우 의원이 현역

김기현 전 시장의 고심이 길어지는 까닭은 울산의 복잡한 정치 지형과 연관돼 있다. 김 전 시장의 옛 지역구인 울산 남구을의 경우 박맹우 의원(재선)이 현역으로 있다. 3선의 울산시장을 지낸 박맹우 의원은 2014년 7·30 재보궐선거 때 김기현 전 시장의 지역구인 남구을 지역구를 넘겨받아 당선됐다. 당시 박맹우 의원이 지자체장 3선 연임 제한 규정에 걸려 더 이상 울산시장 출마가 불가능해지자 현역 의원이었던 김기현 전 시장이 울산시장에 도전하는 식으로 자리바꿈이 이뤄진 것이다. 박맹우 의원은 2016년 20대 총선 때도 울산 남구을에서 당선돼 현재 재선으로 있다.

김기현 전 시장이 옛 지역구인 남구을로 복귀하려면, 남구을 현역인 박맹우 의원으로부터 지역구를 다시 되돌려받거나, 당내 공천 경쟁이 불가피한 판국이다. 반면 황교안 대표 아래서 사무총장을 지내 ‘친황(親黃)계’로 꼽히는 박맹우 의원이 과거 자신에게 지역구를 넘겨준 김기현 전 시장에게 지역구를 순순히 되돌려줄지는 의문이다.

이에 김기현 전 시장의 출마가 거론되는 지역은 같은 남구에 속하는 남구갑 선거구다. 남구갑은 자유한국당 이채익 의원이 현역 의원으로 있다. 울산 남구청장과 울산항만공사 사장을 지낸 이채익 의원은 박맹우 의원과 같은 재선이라고는 하지만, 3선 울산시장을 지낸 박맹우 의원보다는 인지도나 무게감이 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지역에는 남구갑에서만 3선 의원을 지낸 최병국 전 의원의 아들 최건 변호사도 예비후보로 등록하고 활동하고 있다. 재선 이채익 의원의 벽을 넘어도 3선 최병국 전 의원의 아들(최건)과 대리전을 치러야 할 판이다.

인구하한선에 미달하는 남구을이 바로 옆 남구갑과 합쳐질 가능성도 여전히 상존해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선거구 통폐합이 불가피한 26개 선거구를 발표했는데, 이 중에는 울산 남구을이 포함됐다. 이렇게 되면 울산 남구을의 경우 같은 남구에 속한 남구갑과 일부 선거구 조정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김기현 전 시장이 남구갑과 남구을 어디를 택하든지 기존의 자유한국당 현역 의원 두 명(박맹우·이채익)과 충돌을 피하기가 어렵다.

태화강 북쪽의 울산 중구로 지역구를 옮기기도 쉽지 않다. 울산 중구의 현역 의원은 울산 지역 최다선 의원인 정갑윤 의원(5선)이다. 정갑윤 의원은 선수로만 치면 한국당 내 ‘영남 중진(3선 이상) 용퇴’ 대상에 해당할 가능성이 누구보다 크다. 하지만 국회부의장을 지낸 정갑윤 의원은 21대 총선에 출마해 국회의장에 도전한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어, 김기현 전 시장이 파고들더라도 상당한 충돌이 불가피하다.

울산의 다른 지역구의 경우 타당 소속 의원들이 현역 의원으로 있어 출마에 큰 걸림돌은 없다. 일단 울산 동구의 경우 민중당 김종훈 의원(초선)이 현역 의원이고, 울산 북구는 민주당 이상헌 의원(초선), 울산 울주군의 경우 무소속 강길부 의원(4선)이 현역 의원으로 있다.

하지만 울산 동구는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북구는 현대자동차 사업장이 있어 민주노총 세력이 강해 자유한국당 간판을 걸고 당선되기가 쉽지 않다. 현재 동구와 북구의 현역 의원도 각각 민중당과 민주당 소속이다. 이에 한국당 내에서는 “3선 의원에 울산시장까지 지낸 김기현 전 시장은 동구나 북구 같은 험지에 출마해서 명예회복도 하고 한 석이라도 더 가져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당선을 통한 명예회복을 노리는 김 전 시장이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카드다.

울산 울주군의 경우 열린우리당과 자유한국당을 번갈아 탈당해 현재 무소속으로 있는 강길부 의원(4선)이 현역으로 있어 거리낄 것은 없다. 다만 울산지방경찰청장을 지낸 서범수 전 청장(전 경찰대학장)이 한국당 당협위원장으로 기반을 다지고 있는 것이 걸림돌이다. 서범수 전 청장은 부산시장을 지낸 서병수 전 시장의 동생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서병수 전 시장은 동생(서범수)이 자유한국당 공천을 받는 데 부담이 없도록 4월 총선 불출마를 결심한 것으로 안다”며 “김기현 전 시장이 울주군에 나오려면, 서병수·서범수 형제를 맞상대해야 한다”고 했다. 김기현 전 울산시장은 “여러 가지 정국 이슈와 맞물려 있어 불쑥 예비후보로 등록하는 것이 당을 위해 바람직한 것인지 의문이 있다”며 “선거구를 포함해 앞으로 어떻게 할지는 전체 흐름을 보고 입장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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