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0대 총선 당시 서울의 한 유세장에 몰려든 시민들. ⓒphoto 뉴시스
2016년 20대 총선 당시 서울의 한 유세장에 몰려든 시민들. ⓒphoto 뉴시스

선거가 끝나면 ‘이변’이란 단어가 신문 1면 머리기사 제목으로 자주 등장하곤 한다. 다른 말로 하면 “여론조사로 선거 판세를 미리 읽는 데 실패했다”는 고백이었다. 선거를 앞두고 지지율이 높으면 반드시 승리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고, 워낙 지지율 차이가 많이 나서 한쪽이 압승할 것 같았지만 박빙(薄氷) 승부가 펼쳐진 경우도 많았다. 특히 역대 총선은 ‘여론조사의 무덤’이었다. 대선에선 실패하지 않던 방송사 출구조사가 총선에선 15대(1996년) 이후 19대(2012년)까지 승리한 쪽의 의석을 과대 예측하는 등 5전5패를 기록했다. 20대 총선(2016년)의 경우엔 출구조사는 맞혔지만 개표 결과가 사전(事前) 여론조사와 완전히 달라서 여론조사 무용론(無用論)이 쏟아졌다.

당시엔 총선 직전 한국갤럽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 새누리당(39%)이 더불어민주당(21%)과 국민의당(14%)을 압도했다. 갤럽뿐만 아니라 모든 조사가 비슷해서, 야권(野圈)이 문재인 당(민주당)과 안철수 당(국민의당)으로 나뉜 게 여당이던 새누리당의 압승으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선거 결과는 민주당(123석)이 새누리당(122석)에 간발의 차이로 승리를 거뒀고, 국민의당(38석)도 예상을 넘는 성적을 거뒀다. 요약하면 새누리당 참패, 민주당 역전, 국민의당 약진이었다. 새누리당은 텃밭이던 영남에서 비박(非朴) 탈당파에 흔들리고, 민주당은 텃밭이던 호남의 대다수 지역구에서 국민의당에 패하는 등 각자 지지층 분열 양상을 사전 여론조사는 포착하지 못했다.

15대 이후 출구조사 5전5패

19대 총선(2012년)에선 정반대 현상이 벌어졌다. 20대 총선이 야권이 왜 이겼는지 몰라서 혼란스러웠다면, 19대 총선은 야권이 왜 패했는지 설명하기 곤혹스러운 선거였다. 총선을 한 달 앞두고 ‘지지할 후보의 정당’을 묻는 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서 민주당과 통합진보당 등 야권이 49%, 새누리당은 37%였다. 안풍(安風),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 디도스 사건 등으로 어수선한 여당을 상대로 야당이 ‘지려야 질 수 없는 선거’란 말이 나왔다. 선거 일주일 전 갤럽 조사에서도 야권(38%)과 새누리당(35%) 차이가 많이 좁혀졌지만, 여전히 야권 연대가 우세했다. 특히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부정 평가(54%)가 긍정 평가(29%)를 압도해서 야권의 승리 전망에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총선 개표함을 열어본 결과는 사전 예측과 크게 달랐다. 민주당(127석)과 통진당(13석) 등 야권은 140석에 그치면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새누리당(152석)에 패했다.

18대 총선(2008년)도 여론조사의 실패가 도마 위에 올랐다. 당시엔 불과 4개월 전이던 2007년 대선에서 압승한 MB 바람으로 총선 직전 갤럽 조사에서도 여당이던 한나라당(42%) 지지율이 통합민주당(15%)을 압도했다. 친박연대(4%)와 자유선진당(3%) 등 범여권 정당과 민노당(6%)도 위협적이지 않았다. 한나라당이 개헌선인 200석 획득도 가능하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하지만 총선 결과는 한나라당이 절반을 겨우 넘는 153석에 머물렀다. 자유선진당(18석)과 친박연대(14석) 등이 돌풍을 일으키며 보수표를 분산시킨 결과였다. 야당이던 통합민주당은 81석을 획득했다.

17대 총선(2004년)은 18대 총선과 정반대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후폭풍으로 한나라당이 위기에 몰리며 열린우리당의 예상 의석수가 200석에 달했지만 역시 152석에 그쳤다. 탄핵 이슈가 터지기 전인 2003년 말 갤럽 조사에선 한나라당(32%)이 열린우리당(16%)과 새천년민주당(14%)을 크게 앞섰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한나라당 주도로 국회에서 가결된 직후인 3월 17일 갤럽 조사에선 탄핵안 가결에 ‘공감하지 않는다’(71%)가 ‘공감한다’(25%)를 압도했고, 정당 지지율도 열린우리당(47%)이 한나라당(16%)을 3배가량 앞섰다. 총선이 다가오면서 열린우리당(37%)과 한나라당(24%) 지지율이 좁혀지긴 했지만 여전히 열린우리당이 여유 있게 앞섰다. 하지만 총선 결과는 열린우리당(152석)과 한나라당(121석)의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았다.

16대 총선(2000년)은 임기 절반을 마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새천년민주당과 이회창 총재의 한나라당이 승부를 펼친 선거였다. 당시엔 보수 야당의 현역들을 타깃으로 한 낙선운동이 이슈 몰이를 하면서, 선거 한 달 전 갤럽 조사에서 새천년민주당(22%)이 한나라당(18%)에 앞섰고 자민련(4%)이 뒤를 이었다. 그러나 선거 결과는 야당이던 한나라당(133석)이 제1당을 차지했다. 새천년민주당(115석)과 JP(김종필) 자민련(17석)은 선거 직전 공동여당 공조가 무너지면서 기대 이하의 성적에 그쳤다. 16대 총선은 국회의원 정수가 273명이었기 때문에 한나라당은 절반에 육박하는 선전을 펼친 셈이다.

판세 오독하게 한 ‘샤이 야권층’ 현상

이처럼 2000년 이후 다섯 차례 총선에서 여론조사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우선 응답률이 너무 낮아서 대표성 있는 표본 확보가 어렵다는 점이 이유로 지적된다. 전화면접원 조사의 응답률은 10% 안팎, ARS(자동응답시스템) 조사는 5%를 넘기 어렵다. 100명에게 전화를 걸면 10명에게 응답을 받기도 힘들다는 얘기다. 더 큰 문제는 응답률이 낮은 데다 여러 조사에서 특정 정파에 호의적인 성향의 응답자들이 지나치게 많이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역대 총선에선 대부분 여권 쪽으로 여론조사가 치우쳐서 판세를 잘못 읽었다. 야권 성향 유권자의 여론조사 참여가 적극적이지 않은 이른바 ‘샤이 야권층’ 현상이었다.

최근에도 비슷한 지적이 나온다. 지난 연말 KBS 여론조사에선 ‘2016년 총선 지역구에서 어느 당 후보에게 투표를 했는가’란 질문에 민주당(49%), 새누리당(22%), 정의당(4%), 국민의당(3%) 순이었고 ‘투표하지 않았다’와 ‘모름·무응답’은 19%였다. 중앙선관위 자료에 따르면 당시 각 당의 지역구 후보 전체 득표율은 새누리당(22%), 민주당(21%), 국민의당(9%), 정의당(1%) 순이었고 투표 불참자가 42%였다. 여론조사 표본에 민주당과 정의당 등 여권을 찍은 응답자가 22%만 포함돼야 하는데, KBS 조사에서는 30%포인트나 많은 52%를 차지했다.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했거나 총선에서 여권을 찍었던 사람들이 요즘 여론조사에 실제보다 20~30%포인트 더 많이 포함된 ‘응답자 정치 성향의 비대칭’이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여기엔 “야권 지지층이 자신들이 소수란 위축감으로 여론조사 참여에 부담을 느끼는 것도 영향이 있다”고 했다.

두 번째는 집전화 감소와 휴대전화 확산 등 통신 환경의 변화에 따라 여론조사에서 정확한 표본 추출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대선부터 제도를 바꿔서 여론조사를 할 때 ‘휴대전화 안심번호’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요즘 쏟아지고 있는 전국 단위 대통령·정당 지지율 조사에선 여전히 비용 등의 문제로 대다수 조사회사들이 안심번호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그 대신 RDD(Random Digit Dialing·무작위 번호 걸기), 즉 휴대전화 번호를 컴퓨터로 생성해서 사용하고 있다. 전체 유권자를 대표할 수 있는 표본으로 제대로 조사하고 있는지 검토가 필요하다는 얘기이다. 다만 이번 총선에서 지역구 단위 조사의 경우엔 휴대전화 안심번호를 조사회사들이 사용할 예정이기 때문에 예전보다 정확성이 얼마나 향상될지 주목된다.

밴드왜건보다 언더도그 효과가 컸다

세 번째는 역대 총선에선 승리 가능성이 높은 쪽으로 지지가 쏠리는 밴드왜건(bandwagon) 효과보다 약세인 쪽이 동정표를 받아 막판에 지지가 오르는 언더도그(underdog) 효과가 더 컸다는 분석이 있다. 투표율이 50~60%에 그치는 총선은 투표자 중에 여론에 편승하는 정치 무관심층이 적은 반면, 지지 정당이 약세를 보여도 힘을 보태주기 위해 투표장에 가는 소신파 유권자가 많다는 것이다. 이런 분석이 맞는다면 전체 유권자가 100% 투표하는 것을 전제로 지지율 수치를 내는 여론조사는 빗나갈 가능성이 크다. 이와 관련해선 투표 의향층을 정확하게 추출해서 최종 득표율을 예측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현행 선거법에서 선거 7일 전까지 실시된 여론조사만 발표할 수 있는 규제를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지금은 최종 득표율과 일주일 전까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동일한 것으로 여기고 있지만, 현재로선 막판에 급변하는 표심(票心)을 포착하기 힘들어서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그렇지만 과거 총선과 달리 이번 21대 총선은 현재 여론조사대로 여당의 승리를 점치는 전문가들이 많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지난 총선에선 여당(새누리당) 지지율이 야당(민주당)에 비해 훨씬 높았지만, 이와는 달리 ‘정부 견제론’에 동의하는 여론도 높았다”며 “지지하는 정당을 묻는 질문엔 ‘없다’는 부동층 중에 ‘선거에서 정부를 심판해야 한다’는 반여(反與) 유권자가 많았다는 의미”라고 했다. 실제로 갤럽 조사에 따르면 4년 전 총선을 앞두고 ‘정부 견제를 위해 야당이 많이 당선돼야 한다’(42%)가 ‘정부 지원을 위해 여당이 많이 당선돼야 한다’(36%)에 비해 높았다. 선거 결과도 야당의 승리였다. 하지만 최근 조사에선 ‘정부 지원론’(49%)이 ‘정부 견제론’(37%)보다 높기 때문에 지지 정당을 찾지 못한 부동층 중에는 친여(親與) 성향 유권자가 많은 것으로 분석된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이번 총선은 보수 정치권이 여러 갈래로 흩어져 있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 룰이 바뀌면서 승부 예측이 훨씬 힘들어졌다”며 “총선에선 특정 정당이 과반을 훨씬 뛰어넘는 압승을 거둔 적이 없었던 전례를 보면 이번에도 접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홍영림 조선일보 여론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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