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 10일 청와대 본관에서 ‘2019 문재인 대통령 신년기자회견’에 앞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 10일 청와대 본관에서 ‘2019 문재인 대통령 신년기자회견’에 앞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북풍(北風)’은 한국의 대선·총선 등 중요한 정치 행사를 앞두고 갑자기 또는 의도적으로 발생하는 북한 변수가 유권자들의 표심에 영향을 끼치는 현상을 말한다. 1987년 대선 전에 발생한 대한항공 888기 폭파 사건의 범인 김현희가 선거 전날 압송돼 입국했고, 1992년 대선 전 국가안전기획부가 간첩 사건인 ‘남조선노동당’ 사건을 발표했다. 두 사건은 당시 여당 후보였던 노태우·김영삼 후보의 당선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이처럼 과거 보수 정당은 북풍을 이용해 선거에서 이득을 봤다. 1996년 15대 총선 직전에는 북한의 판문점 무력시위로 여당인 신한국당이 야당인 국민회의에 압승했다.

반면 진보 정당도 북한과의 평화를 강조하며 이를 선거에 이용해왔다. 김대중 정부는 2000년 16대 총선 사흘을 앞두고 남북 정상회담 개최 소식을 발표했다.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이 유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지만 야당인 한나라당이 승리했다. 보수층이 북풍을 우려해 결집했기 때문이다.

역대 총선 북풍의 역사

2002년 16대 대선 전에는 제2 연평해전과 2차 북핵 위기가 터졌지만 노무현 후보가 당선됐다. 2010년 5대 지방선거에선 천안함 격침사건으로 보수층이 결집해 한나라당이 승리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지만 민주당이 승리했다. 당시 민주당이 ‘1번은 전쟁, 2번은 평화’라는 구호를 내걸었던 것이 민심을 움직였다. 2018년 7대 지방선거에서도 바로 전날 싱가포르에서 제1차 미·북 정상회담이 개최되는 바람에 민주당이 자유한국당에 압승했다.

오는 4·15 총선(21대)에서도 북풍이 불 것인가. 북풍이 분다면 어느 당에 유리할 것인가. 정치권은 총선을 앞두고 문재인 정부가 김정은 답방을 비롯해 대북 정책에 올인하자 북풍이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만약 김정은의 답방이 이뤄질 경우, 총선 정국을 뒤덮는 메가톤급 이슈로 부상할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는 김정은 방문에 적극 나서고 있다. 문 대통령은 신년사(1월 7일)를 통해 김정은의 답방을 거듭 제안했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의 답방을 위한 여건이 하루빨리 갖춰질 수 있도록 남과 북이 함께 노력해 나가길 바란다”면서 “전쟁불용, 상호안전보장, 공동번영이라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세 가지 원칙을 지켜나가기 위해 남과 북이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함께 논의하자”고 강조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비무장지대(DMZ)의 국제평화지대와 유네스코 세계유산 공동 등재 △재해·병충해 대응 등 접경지역 협력 △남북 철도 및 도로 연결 △2월 동아시아 국제역도대회와 3월 부산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참가, 7월 도쿄올림픽 남북 공동입장과 단일팀 구성 및 2032년 남북 올림픽 공동개최 등 5대 남북 협력사업을 제의했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 답방에 목을 매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자신이 주장해온 ‘한반도 평화’라는 구상을 실현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종전선언→평화협정 체결→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등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주장해왔다. 문 대통령의 이런 구상은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 두 차례의 미·북 정상회담 등으로 속도를 내는 듯했지만 김정은이 지난해 2월 하노이 제2차 미·북 정상회담에서 비핵화를 거부함으로써 무산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난해 6월 판문점 남·북·미 회동으로 반전을 꾀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반면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북한은 그동안 미국 정부와 대화를 중재해온 문재인 정부와 일체의 접촉을 중단했으며 문 대통령에 험담까지 퍼부었다.

김정은은 지난해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문 대통령에게 “오지랖 넓은 중재자·촉진자”라고 비난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은 지난해 8월 15일의 문 대통령 경축사를 언급하며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 정말 보기 드물게 뻔뻔스러운 사람”이라고 조롱까지 했다. 새해 들어서도 북한은 문 대통령에 대한 비난을 그치지 않고 있다. 북한 대외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는 지난 1월 6일 문 대통령의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 기고한 글(지난해 12월 26일자)에 대해 “말 그대로 가소로운 넋두리, 푼수 없는 추태”라며 “남조선 당국은 아전인수 격의 궤변을 늘어놓을 것이 아니라 현실을 똑바로 보고 창피스러운 입방아를 그만 찧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원색적으로 폄하했다.

북한 김계관 외무성 고문. 그는 지난 1월 11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보낸 생일축하 메시지를 직접 친서로 받았다고 밝히면서 한국 정부를 향해 ‘설레발’ 등의 험담을 퍼부었다. ⓒphoto 뉴시스
북한 김계관 외무성 고문. 그는 지난 1월 11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보낸 생일축하 메시지를 직접 친서로 받았다고 밝히면서 한국 정부를 향해 ‘설레발’ 등의 험담을 퍼부었다. ⓒphoto 뉴시스

가짜 평화쇼 연출?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이 김정은 답방에 올인하고 있는 것은 ‘가짜 평화쇼’를 연출해 비핵화에 전혀 진전조차 없는 자신의 대북 정책이 마치 성과가 있는 것처럼 국민들을 호도(糊塗)하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지난해 11월 부산에서 한-아세안 특별정상회담에 참석해줄 것을 요청하는 친서까지 보냈지만, 김정은은 퇴짜를 놓았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지난해 11월 21일 “우리와 크게 인연이 없는 복잡한 국제 회의마당에서 만나 악수나 하고 사진이나 찍는 것을 어찌 민족의 성산 백두산에서 북남 수뇌 분들이 두 손을 높이 맞잡은 역사적 순간에 비길 수 있겠느냐”면서 “판문점과 평양, 백두산에서 한 약속이 하나도 실현된 것이 없는 지금, 형식뿐인 북남 수뇌 상봉은 차라리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하다”며 매몰차게 답방을 거절했다. 김정은조차도 문 대통령이 자신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속셈을 꿰뚫어본 셈이다.

특히 가장 중요한 점은 문 대통령이 아예 북한 비핵화를 전혀 언급조차 하지 않으면서 ‘가짜 평화 만들기’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무려 8800자의 신년사에서 비핵화의 ‘비(非)’자도 거론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의 의도는 북한과의 평화체제를 구축하기만 한다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겠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을 대변해온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별보좌관은 지난 1월 6일 미국 싱크탱크 국익연구소가 워싱턴에서 개최한 2020년 대북 전망 세미나에 참석해 강연과 문답 및 한국 특파원들과의 간담회 등에서 “북한의 비핵화를 기본 목표로 두되 실제적 접근 과정에서는 군비통제협상 방식을 활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군축협상은 사실상 북한의 핵 보유를 전제로 한 것이다.

게다가 냉전시대 미국과 옛 소련과의 협상에서 보듯이 군축회담은 상호주의를 기반으로 할 뿐만 아니라 타결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북한이 군축을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북한의 비핵화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결국 북한의 주장처럼 핵보유국으로 용인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경우 한국은 북한의 핵 인질이 될 수밖에 없다. 북한의 핵무기에 한국이 재래식 무기로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지지는 않을 수도 있지만 이런 상황은 ‘가짜 평화’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또 다른 이유는 문 대통령이 4·15 총선에서 승리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문 대통령으로선 경제 실책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의 비리와 유재수 감찰무마,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등 ‘탄핵’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각종 권력형 의혹 사건들을 덮으려면 총선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때문에 문 대통령은 김정은 답방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새해를 맞아 세계정세를 전망하는 기사(1월 3일자)에서 “김정은이 4월 한국 총선 전 서울을 방문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문재인 정부로선 김정은이 답방해 남북화합 무드에서 4월 총선을 치를 경우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김정은은 그 대가로 금강산 관광사업 재개를 비롯한 실리를 손에 넣으려는 의도가 있다”면서 “트럼프 정부의 양보로 북한의 외화 벌이로 연결되는 금강산 관광 사업이 재개되면 북한이 평화 공세로 돌아설 것”으로 내다봤다. 이 신문의 이런 보도 내용은 문 대통령의 신년사 내용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남북 협력사업 인정 촉구 등을 미리 간파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남북 철도 현지공동조사 열차가 2018년 11월 30일 경기 파주 도라산역을 출발하고 있다. ⓒphoto 사진공동취재단
남북 철도 현지공동조사 열차가 2018년 11월 30일 경기 파주 도라산역을 출발하고 있다. ⓒphoto 사진공동취재단

실현 불가능한 5대 남북 협력사업

실제로 문 대통령이 제시한 5대 남북 협력사업은 미국과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해제 없이는 실현 불가능하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남북 철도·도로 연결은 2018년 9월 문 대통령과 김정은이 ‘평양 공동선언’에서 합의한 사안이지만 대북 합작 사업을 금지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 2375호와 대량 현금 유입을 금지한 2087호를 위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북 철도·도로 연결 사업은 또 기계 운송 및 전자기기 등 장비를 반입하지 못하도록 한 유엔 안보리 결의 2397호에 위반된다. DMZ 국제평화지대화 사업과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구상은 경협보다는 상대적으로 현실성이 높지만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의 면제 승인을 받아야 한다. 게다가 북한의 단거리미사일과 초대형 방사포 시험발사 등으로 남북군사합의서가 사실상 휴지조각이 된 마당에 DMZ를 국제평화지대로 만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공동 등재도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이후에나 추진할 사안이다. 접경지역 협력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DMZ에서 발견된 야생멧돼지 폐사체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바이러스가 검출됐는데도 이에 대한 정보조차 제공하지 않고 있다.

남북 스포츠 교류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입증됐듯이 일종의 ‘정치쇼’라고 볼 수 있다. 동서독은 단일팀을 ‘정치적 안배 없이 오직 실력으로 선발한다는 원칙’에 따라 구성했다. 동서독은 또 단일팀을 각종 선발전을 거치는 등 상당한 시간과 교류를 통해 만들었다. 남북은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을 구성했지만,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급조’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남북 스포츠 교류도 동서독처럼 시간적 여유를 갖고 진행해야 의미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또 도쿄올림픽 공동입장은 결국 실체도 없는 한반도기를 들고 가는 것일 뿐 국제사회에 더 이상 감동도 줄 수 없다. 한국을 상징하는 태극기만 실종될 뿐이다. 2032년 올림픽 남북 공동개최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때까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실현될지 의문일 뿐만 아니라 북한이 올림픽을 치를 만한 경기장은 물론 각종 인프라 시설이 없는 만큼 한국이 천문학적인 자금을 지원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문 대통령의 이런 대북 정책 추진에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국무부 대변인실은 “모든 유엔 회원국들은 안보리 제재 결의를 이행해야 하며, 우리는 모든 국가들이 그렇게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도 안보리의 대북 제재에 계속 동참해야 한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국무부 대변인실은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가 비핵화를 촉진시킬 수 있다는 일각의 주장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미국과 한국은 북한과 관련한 노력에 긴밀히 협력하고, 유엔 제재들이 완전히 이행되도록 공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도 “우리는 남북 관계의 성공이나 진전과 더불어 비핵화를 향한 진전을 보기 원한다”면서 “그것이 중요한 조건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해리스 대사는 또 문 대통령이 언급한 남북개선 조치들에 대해 “미국과 협의하에 이뤄져야 한다고 보고, 우리는 동맹으로 긴밀하게 함께 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동의 없이 문재인 정부가 일방적으로 남북관계 개선에 속도를 높여서는 안 된다는 뜻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브래들리 뱁슨 전 세계은행 고문도 “문재인 정부의 남북경제 협력사업에 미국이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북한은 ‘설레발’이라고 면박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1월 14일)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찾아서 남북 관계를 최대한 발전시켜 나가겠다”면서 금강산 개별 관광 추진 등 5대 남북 협력사업 제의를 재차 강조했다. 문정인 특보도 “문 대통령의 지지자들 사이에서 미국이 북한과의 협상 재개에 실패할 경우 한국이 독자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면서 “중·러가 추진하는 유엔 대북제재 완화안에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포함시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도 “지난해 미국이 남북 관계 개선을 견제했는데 문 대통령도 이를 참고 참았다”며 “올해는 우리가 새로운 길을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도 “대북제재 상황에서도 실현 가능한 방안을 찾아내 남북 협력사업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런가 하면 문 대통령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워싱턴에 파견해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정부 고위관리들을 설득하는 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정 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을 통해 김정은의 생일축하 메시지를 전달했다면서 미·북 대화 재개와 남북 관계 진전을 트럼프 대통령이 인정한 것처럼 생색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김계관 북한 외무성 고문은 지난 1월 11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 “새해 벽두부터 남조선 당국이 우리 국무위원장에게 보내는 미국 대통령의 생일축하 인사를 전달한다고 설레발을 치고 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생일축하 친서를 직접 받았다”고 밝혔다. 김계관은 “남조선 당국은 우리가 대화에 복귀할 것이라는 허망한 꿈을 꾸지 말라”며 “끼어들었다가 본전도 못 챙기는 바보 신세가 되지 않으려거든 자중하고 있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계관의 이런 발언은 문 대통령의 신년사를 거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국내외적으로 개망신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은 오매불망(寤寐不忘) 김정은 답방만 학수고대하고 있다. 아무튼 문재인 정부는 김정은 답방이라는 북풍을 통해 4·15 총선 승리라는 화려한 봄을 꿈꾸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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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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