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동포 출신으로 처음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을 맡은 한우성 이사장.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재외동포 출신으로 처음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을 맡은 한우성 이사장.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은 설날이면 양배추 넣은 만두를 빚어 먹는다. 회관, 식당 등에 모여 춤추고 노래 부르며 설날 대잔치를 벌인다. 부채춤 추고 사물놀이도 한다. 4월 5일 한식날은 회사에 휴가까지 내고 온 가족이 조상의 산소를 찾는다. 낯선 땅에 사는 고려인들이 우리보다 오히려 전통풍습을 더 잘 지키고 있다. 코리아 디아스포라, 즉 한반도 밖에 살고 있는 재외동포는 750만명에 이른다.

설을 앞두고 지난 1월 12일 만난 한우성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은 재외동포가 저출산·인구절벽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말했다. “인구감소 문제를 이민으로 해결하려고 하는데 미국 이외에는 어느 나라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재외동포를 활용하는 것이 세계적인 트렌드입니다.” 재외동포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재외동포들이 민족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돕는 것이 국가 경쟁력을 높인다는 이야기이다. 이들의 가장 큰 주권 행사는 참정권이다. 재외동포 중에서 투표권은 한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는 재외국민에게 주어진다. 재외국민은 270만명에 달한다. 재외동포재단에서도 올해의 가장 큰 현안 중 하나가 오는 4월 15일 총선 투표 참여다. 문제는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선거제도가 현실화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한 이사장이 단적인 예를 들었다.

투표하고 싶어도 투표하기가 어렵다

“재외동포가 가장 많이 사는 곳은 LA로 유권자가 20만명에 이릅니다. 그곳 총영사관 관할지역이 116만㎢입니다. 남한의 11.7배가 넘습니다. 그런데 현행법상 투표소는 최대 3개까지밖에 설치를 못 합니다. LA 지역 재외국민이 투표를 하러 가기 위해서는 몇 시간씩 차를 타고 가야 하는 거죠.”

2016년 총선 당시 재외 선거인은 247만2746명이었다. 이 중 선거를 하겠다고 등록한 사람은 15만4217명, 그중 실제 투표자는 6만3335명이었다. 유권자 대비 투표율이 2.56%에 불과했다.

“투표권을 줬는데도 행사를 안 한다고 하는데 재외국민 입장에서 보면 너무 불편합니다. 현실적으로 하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한인회 차원에서 버스를 대절해서 가고 싶어도 불법입니다. 공관에서 버스 대절은 가능한데 예산 문제가 따릅니다. 우편 투표가 대안이 될 수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법을 바꿔야 합니다.”

재외국민이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먼저 유권자 등록을 해야 한다. 현재는 유권자 등록을 중앙선관위 홈페이지에서 할 수 있지만 그전까지는 각국 공관에 직접 방문해 등록을 해야 했다. 때문에 투표를 하려면 등록할 때와 투표할 때, 두 번을 가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했다. 오는 4월 15일 총선을 앞두고 지난해 11월 17일부터 각국 재외공간에서 등록을 받고 있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서도 오는 2월 15일까지 등록을 받는다.

한 이사장은 투표 참여를 쉽게 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우편 투표든 온라인 투표든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법을 바꾸려면 투표로 우리 목소리를 내야죠. 정치적 오해를 받는다고 옆에서 말리는데 재외동포에게 전하는 신년사에서도 투표 독려를 했습니다.”

한 이사장은 ‘재외동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재외동포 정책을 판단하는 잣대는 법, 제도, 예산 3가지입니다. 50여개국을 조사해보니 북한을 비롯해 24개국이 헌법에 재외동포를 적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헌법 2조에는 재외동포가 포함돼 있지 않습니다. 헌법학자, 시민단체, 국회개헌특위 등 많은 분들과 의견을 나눴는데 단 한 명도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단지 지금까지 생각을 못한 것뿐입니다.”

그동안 재외동포에 대한 국민의식은 ‘무관심’이 대부분이었다. “자녀들에게 세계무대로 나가라고 하잖아요. 그 말이 곧 재외국민, 재외동포가 되라는 이야기인데 그러면서 재외동포 문제와 연결하지는 않습니다.” 한 이사장의 말이다.

재외동포재단은 숙원사업의 하나로 교육문화센터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재외동포 2·3세들의 민족 정체성을 키우고 그들의 역량 강화와 네트워크 형성이 목적이긴 하지만 재외동포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서도 필요한 시설이다. 외교부, 기재부 등 정부 부처와 서울시의 협조를 얻어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에 2023년 건립을 목표로 올해 예비타당성조사가 진행된다. 한 이사장은 “해외 동포 청소년들이 1주일이라도 연수를 왔다 가면 한국에 대한 생각이 확 바뀐다”고 말했다.

재외동포 지원은 미래에 대한 투자

이들을 키우는 것은 대한민국 미래에 대한 투자이다. 재외동포재단은 꾸준히 동포 청소년 초청 연수를 늘리고 있다. 2018년 640명, 2019년 1040명을 초청했고 올해는 1500명을 계획하고 있다. 한 이사장은 “연 5000명이 목표”라고 했다. “대상 청소년이 100만명에 달하는데 그들을 전부 초청하려면 턱없이 부족합니다. 이스라엘의 경우 매년 비행기값, 체제비를 전부 지원해 5만명을 불러들이고 있고, 7만명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체제비 지원, 비행기값 평균 50% 지원인데 한류 영향으로 지원자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재외동포 사회의 문제는 다문화 취약가정까지 더해져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재외동포재단의 할 일도 그만큼 많아졌다. 한국인과 결혼했다가 돌아간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문제는 한국 사회의 문제로 돌아올 수 있다. 재외동포재단은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베트남에 주재원을 새로 파견했다. 나라가 지키지 못한 해외입양아들이 20만명이다. 그들의 자녀까지 합하면 40만~50만명이다.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권리가 박탈된 것이다. 그들을 지원하기 위해 재단 내에 인권사업부가 신설됐다. 3·4세로 내려갈수록 민족 정체성은 약해지고 있다. 이들의 교육을 위해서는 연수시설, 디지털 아카이브가 들어설 교육문화센터 건립이 시급하다.

재외동포 문제까지 왜 우리가 신경 써야 하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이사장의 질문을 되새겨봐야 한다. “1970~1990년대 우리나라 산업화는 재외동포의 도움이 없었으면 힘들었습니다. 일본에 있는 재외공관 10개 중 9개는 재일동포들이 기부했습니다. 시가로 5조원에 달합니다. 88올림픽 때도, 외환위기 때에도 재일동포들이 송금한 돈이 결정적으로 도움이 됐습니다. 금모으기로 15억달러를 모았는데 재일동포가 보낸 돈이 20억달러입니다. 그런데 왜 재외동포 문제에 무관심할까요?” 한 이사장은 가장 큰 원인으로 “재외동포에 대해 배울 기회가 없어서”라고 했다. 원인이 어떻든 그들을 우리의 미래로 껴안기 위해서는 그 시작이 ‘관심’인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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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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