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지난 1월 1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자유한국당 중앙당사에서 열린 ‘여의도에 90년대생이 온다’에서 격려사를 하고 있다. ⓒphoto 연합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지난 1월 1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자유한국당 중앙당사에서 열린 ‘여의도에 90년대생이 온다’에서 격려사를 하고 있다. ⓒphoto 연합

지난 1월 21일 국회 정론관에서는 자유한국당 대학생위원회 집당 탈당 기자회견이 열렸다. 김태일(27) 자유한국당 대학생위원장은 이 기자회견에서 “한국당은 지금껏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의 위헌 행위를 단 한 번도 막지 못했다”며 “한국당은 앞에서 투쟁 피켓만 들었을 뿐 뒤에서는 대통령 문재인과 민주당의 반민주 독재 행위를 묵시적으로 모두 승인했다. 한국당은 문 대통령과 공동 정범”이라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또 “문재인 OUT을 외쳐야 할 때 한국당은 ‘문재인 STOP’이라고 순화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6월 1일 당내 직선제 선거를 통해 대학생위원장직에 선발됐다. 한국당이 대학생위원회를 중앙당 내 상설기구로 만들고 위원장 직선제를 시행한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황교안 대표 출범 이후 청년의 마음을 사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결과였지만, 결말은 대학생위원회 소속 청년들의 집단 탈당으로 끝났다. 이들은 탈당 이유로 당의 전투력을 지적했지만 더 깊숙하게 그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결국 자신들이 들러리로만 이용됐다는 아쉬움이 더 커 보였다.

말로만 ‘젊은 정당’ 표방

황 대표는 이들이 탈당하기 사흘 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제3기 청년정치 캠퍼스Q 졸업식에 참석해 “청년들이 우리 당에 오면 이용만 당하고 버려진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텐데 한국당이 바뀌겠다”라며 “청년은 배움의 대상도, 필요할 때 쓰는 대상도 아니고 우리와 함께하는 동반자”라고 했다. 그런데 황 대표는 자신이 임명장을 수여한 김 위원장에게 전화 한 통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황 대표뿐만 아니라 당에서는 이들과 접촉해 탈당 이유를 들어보려 하거나 만류하는 인사들이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한국당 내에서는 김 위원장을 비롯해 집단 탈당을 선언한 대학생위원회의 청년들을 윤리위원회에 회부하고 출당 조치를 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흘러나왔다.

황 대표를 필두로 한 자유한국당이 겉으로는 젊은 정당으로의 변신을 표방하며 젊은 유권자들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지만, 정작 당내에 있던 젊은 당원들 사이에서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 위원장은 탈당 결정에 대해 “한국당에서는 진정한 청년 정치를 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젊은이들과 사진 찍고 ‘청년’ ‘20대’ 등의 키워드가 들어간 홍보를 해야 할 때 아니면 존재감을 인정해주지 않는 당내 분위기에 한계를 느꼈다는 것이다. 청년들은 당의 홍보에 소비되기만 했다는 회의감이 들었다고 한다. 청년들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황 대표의 의지는 진심일지라도, 넘기 어려운 ‘벽’을 느낀 웃지 못할 순간들도 있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황 대표와 있었던 일화 하나를 전했다. “황 대표가 있는 자리에서 ‘요즘 20대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이념 갈등보다 젠더 갈등이 훨씬 민감한 이슈라는 걸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당이 정말 청년들의 마음을 사고 싶다면 불러다 모아놓고 사진만 찍을 게 아니라, 보편적인 청년들이 어떤 것에 가장 관심이 많고 분노하는지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랬더니 돌아온 답은 ‘나도 집에서 설거지는 가끔 하는데’였다.”

정치외교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이윤규(23)씨는 지난해 9월 17일 광화문에서 열린 한국당의 ‘조국 반대’ 집회에 참여해 연단에 오른 적이 있다. 이씨는 이 자리에서 “눈앞에서 부정과 불의가 저질러져도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 뒤집어야 하지 않나 생각했다”며 “과거 정의로운 척했던 조국 교수를 떠올리며 열심히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당시 집회에 참여했던 나경원 의원이 이씨를 안아줬고, 이 장면이 담긴 영상이 유튜브와 커뮤니티 등에서 화제가 됐다. 그러면서 즉각 이씨를 향한 네티즌들의 ‘신상털기’가 진행됐다.

이씨는 “조국 반대 집회에서 나경원이랑 포옹했던 대학생의 실체라며 신상정보가 커뮤니티에 떠돌아다녔다. 얼마 지나서는 다니는 대학교 커뮤니티에 내 동선까지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한국당 집회에 참여한 대학생이라는 이유로 비난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예상하긴 했지만, 한국당이 보호해주려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던 점이 아쉬웠다”고 당시를 전했다. 김 위원장과 이씨는 한국당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정민당 입당을 결정했다. 정민당은 20~30대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창당을 준비하고 있는 신생 정당이다. 지난 1월 8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 여성 가수의 음원 사재기 의혹을 제기하며 화제가 된 바 있다.

여전히 싸늘한 20대 민심

지난해부터 ‘외교왕·경제왕 문재인’이라는 풍자 패러디 대자보를 대학가에 붙이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보수단체 ‘전대협’ 역시 주로 20대 청년들의 주도로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최근 전대협 회원 김모씨가 단국대학교 천안캠퍼스에 무단으로 들어가 대자보를 붙였다는 이유로 건조물 침입 혐의를 받아 100만원의 벌금형에 약식 기소돼 ‘탄압’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 전대협 또한 한국당이 아닌 정민당과 호흡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듯 청년 보수의 마음마저 잡지 못하고 있는 한국당이 총선에서 무당층 젊은이들의 표심을 끌어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해 8월부터 시작된 ‘조국 사태’로 인해 상당수 청년들이 진보 정치인들의 위선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지만, 청년들의 마음이 곧장 한국당을 향하지는 않았다. 도리어 제자리걸음하는 한국당의 지지율을 보며 ‘아무리 민주당이 엉망이어도 한국당은 더 싫다’는 청년층의 여론을 재확인할 뿐이었다. 자유한국당 공천위원회는 최근 ‘20~40대 공천 30%’ 계획을 발표했다. 황 대표는 이 계획이 “젊은 정당을 만들겠다”는 목표에서 나왔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포부를 갖고 자유한국당을 찾아온 젊은이들마저 제 발로 당을 떠나는 상황에서, 대표의 이런 발언은 ‘립서비스’ 정도로밖에 들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당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곽승한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