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선수들이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남북한 선수들이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올림픽은 흔히들 지구촌 최대 스포츠 축제라고 한다. 올림픽은 각국에서 모인 선수들이 인종, 국적, 성별, 종교 등에 차별 없이 선의의 경쟁을 통해 승부를 겨루면서 서로 화합하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제정한 올림픽 헌장 제6조에도 이런 내용이 규정돼 있다. 하지만 올림픽은 단순히 스포츠 행사만은 아니다. 올림픽에는 스포츠보다 더욱 중요한 국내외적 정치·경제학이 있다. 그 이유는 각국이 지금까지 올림픽을 국력 대결의 장이나 민족의 우수성을 과시하려는 기회 또는 경제 발전의 발판 등으로 활용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각국은 올림픽을 국내 정치적으론 반대세력을 탄압하는 등 집권세력의 통치수단 및 선거 등으로 종종 악용해왔다. 실제로 나치 독일과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는 1936년 베를린올림픽을 나치즘에 반대하는 세력을 억압하고 자국 국력과 아리아인의 우월성을 과시하는 정치 선전장으로 만들어버렸다. 나치 독일은 베를린올림픽을 개최하고 3년 후인 1939년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중국공산당 정권도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국력을 과시하는 무대로 철저하게 이용했다. 중국은 베이징올림픽을 ‘중화민족 부흥의 새로운 출발점’이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당시 중국공산당 정권은 베이징올림픽 성공을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반체제 인사들의 민주화운동 및 티베트와 신장위구르자치구의 분리독립 운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주창한 ‘강한 러시아’의 선전 무대였다. 푸틴 대통령은 또 소치 동계올림픽을 국민들의 애국심 결집과 자신의 철권통치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각국은 이런 정치적 목적뿐만 아니라 경제적 효과를 노려 올림픽 유치에 적극 나서왔다. 올림픽 개최국은 경기장, 도로, 공항 등의 인프라 투자로 생산·고용에서 효과를 볼 수 있다. 또 국가 이미지가 좋아지는 덕분에 관광산업 활성화를 비롯해 수출 등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각종 투자 등에 따른 재정부담이 크게 늘어나면서 심각한 올림픽 후유증에 시달릴 수도 있다. 실제로 올림픽을 개최한 대다수 국가들은 대회가 끝난 이후 급격한 경제성장률 둔화와 재정적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사이드 경영대학원의 연구진은 30개의 하계 및 동계 올림픽을 분석한 결과, 실제 개최비용을 당초 예상한 범위 내로 맞춘 대회는 단 한 곳도 없었으며, 절반이 목표치를 100% 이상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앤드루 짐발리스트 미국 스미스대 경제학과 교수는 하계올림픽을 개최하면 최대 150억달러의 적자를 낼 수 있다고 추산했다. 이 때문에 2000년대 들어 올림픽을 개최하려는 국가와 도시들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그러다 보니 IOC는 2014년 12월 총회에서 ‘1국가 1도시’라는 올림픽 개최 원칙을 수정해 ‘다(多)국가 다(多)도시’ 분산개최 방안을 승인했다.

북한의 ‘셀프 노쇼’

문재인 정부가 올림픽을 고리로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총력전에 나서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1월 21일 국무회의에서 ‘2032년 하계올림픽 서울·평양 공동 유치·개최 추진계획(안)’을 의결·확정했다. 이번 조치는 문 대통령이 올해 신년사에서 독자적인 남북협력 추진을 위해 내놓은 5대 협력사업 가운데 서울·평양 올림픽 공동 유치를 공식화한 것이다. 이에 따라 서울시와 관계 부처인 통일부, 문화체육관광부 등은 본격적인 실무 작업에 착수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2월 2032년 하계올림픽 유치에 나설 국내 도시로 선정됐다. 2032년 서울·평양 하계올림픽 공동 유치는 문 대통령과 김정은이 2018년 9월 19일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사안이다. 9·19평양공동선언(제4조 2항)은 “남과 북은 2020년 하계올림픽 경기대회를 비롯한 국제경기들에 공동으로 적극 진출한다”며 “2032년 하계올림픽의 남북 공동 개최를 유치하는 데 협력하기로 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후 남북은 2018년 11월과 12월 올림픽 공동 유치 논의를 위해 두 차례 회담을 갖기도 했다. 남북은 지난해 2월 스위스 로잔에서 도종환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북한의 김일국 체육상이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을 만나 서울·평양 올림픽 공동 유치 의향을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 정권은 하노이 제2차 미·북 정상회담이 결별된 이후 문재인 정부와의 대화를 단절하는 것은 물론 스포츠 교류에도 별다른 관심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심지어 지난해 10월 1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치른 2022년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한국 대 북한의 축구경기는 무관중, 무중계, 무취재 등 이른바 ‘3무(三無)’로 진행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당시 평양 경기는 세계 축구 역사상 ‘가장 이상한 경기’라는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았다. 게다가 북한 정권은 한국이 개최하는 스포츠 대회에 연달아 불참을 결정하고 있다. 이른바 ‘셀프 노쇼(No Show)’다. 북한은 지난해 12월 부산에서 열린 동아시안컵 대회에 여자축구 대표팀을 파견하지 않았다. 또한 북한은 2월 제주에서 열리는 2020년 도쿄올림픽 아시아 여자축구 최종예선도 출전을 포기했다. 북한은 또 2월 27일부터 3월 3일까지 서울에서 열리는 동아시아역도선수권대회에 불참을 통보했다. 북한은 3월 22~29일 부산에서 열리는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엔트리 마감일(1월 18일)까지 국제탁구연맹(ITTF)에 참가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남북은 지난해 2월 이후 스포츠와 관련된 회동이나 회담을 전혀 가진 적이 없다. 이에 따라 서울·평양 올림픽 공동 유치를 위한 남북 간 공식·비공식 논의조차 없다.

올림픽 공동 유치에 목매는 이유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가 서울·평양 올림픽 공동 유치 계획을 추진하겠다는 것은 ‘고장난명(孤掌難鳴)’이나 다름없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북한 정권이 호응하지 않으면 한발도 나가기 어렵다는 것은 이미 남북 교류 사례들에서 입증된 바 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문재인 정부는 국무회의 의결에 앞서 서울·평양 올림픽 공동 유치·개최 추진안의 타당성 조사를 생략했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 훈령인 ‘국제행사 유치·개최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국제행사 총사업비가 50억원 이상인 경우 행사 주관 기관은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타당성 조사를 받아야 한다. 다만 ‘국무회의 등 대통령 주관 회의에서 국가 정책적으로 사업 추진이 확정된 행사는 조사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다’는 예외 규정을 두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이 규정에 따라 타당성 조사를 생략하기 위해 북한 정권의 호응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국무회의의 의결을 밀어붙인 것이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가 서울·평양 올림픽 공동 유치 계획에 목을 매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남북 화해 분위기를 다시 한 번 연출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북한 정권이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 의사를 밝히면서 평창 동계올림픽은 ‘최대의 평화쇼’가 됐다. 남북은 한반도기를 앞세워 공동 입장은 물론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까지 구성해 경기에 참여했다. 게다가 북한 정권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등 대표단을 한국에 보냈다. 김여정은 문 대통령에게 북한 초청 의사를 전달해 제1차 남북 정상회담(2018년 4월 27일)의 단초가 된 바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문 대통령으로서는 ‘어게인(again) 2018’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특히 4·15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문 대통령은 김정은과의 ‘평화쇼’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입장이다. 문 정부는 북한 정권과의 서울·평양 올림픽 공동 유치 계획 준비 회담 등을 통해 2020년 도쿄 하계올림픽 공동 입장과 단일팀 구성을 다시 한번 추진하려는 속셈이라고 볼 수 있다.

지난해 10월 15일 평양에서 무관중으로 치러진 한국 대 북한의 월드컵 축구예선전. ⓒphoto 대한축구협회
지난해 10월 15일 평양에서 무관중으로 치러진 한국 대 북한의 월드컵 축구예선전. ⓒphoto 대한축구협회

北 정권에 합법적 퍼주기?

또 다른 이유는 문 정부가 서울·평양 올림픽 공동 유치를 통해 핵을 보유한 북한 정권에 ‘합법적인 퍼주기’를 하려는 의도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서울·평양 올림픽을 공동 유치·개최하려면 서울은 차치하더라도 평양은 준비를 위해 엄청난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 올림픽을 치르려면 경기장은 물론 숙소와 각종 편의시설, 전기와 통신 및 방송 등 각종 인프라를 건설해야만 한다. 북한 정권은 이를 감당할 자금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금이 있다고 하더라도 국제사회의 제재로 필요한 물자와 장비 등을 반입할 수 없다. IOC는 지난해 하계올림픽 개최 9년 전 희망 도시를 접수한 뒤 투표로 개최지를 선정하던 기존 방식에서 개최지 선정 이전에 희망 도시에 대한 사전평가를 받는 방식으로 규정을 바꾸었다. IOC의 사전평가에서 개최 후보지로 선정되려면 북한 정권은 경기장과 숙박시설 등에 대한 대대적인 신축 및 개선이 필요하지만 이를 위해선 대북 제재 일시면제나 완화가 필요하다.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는 문 정부는 서울·평양 올림픽 공동 개최를 명분으로 내세워 제재 해제와 완화를 통해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려는 속셈이라고 볼 수 있다.

서울시는 2018년 말 시 의회에 제출한 ‘2032년 서울·평양 하계올림픽 공동 개최 유치 동의안’을 통해 서울과 평양에서 보름간 33개의 올림픽 종목을 치르기 위해서는 34억달러가 필요하다고 내다봤다. 이런 예산 규모는 도로와 철도 등 인프라 투자비용을 제외하고 개회식과 폐회식, 경기장 보수, 경기 운영 등 순수 운영비용만을 추산한 것이다. 2020년 도쿄올림픽이 260억달러의 비용 지출이 예상되는 만큼 서울시의 34억달러는 매우 낮게 잡은 비용이다. 특히 북한의 열악한 인프라 상황을 감안하면 천문학적 비용이 예상된다. 예를 들어 각국 선수단과 응원단이 오고 갈 서울~평양 간 왕복 4차선 고속도로 220㎞와 같은 거리의 고속철을 건설하는 등의 도로·철도 사업은 30조원 이상이 들 것으로 추정된다. 또 서울~평양 간 첨단 통신망을 구축하는 데도 엄청난 자금이 투입돼야 한다. 북한 정권은 이런 인프라를 건설할 능력도 자금도 없다. 때문에 한국 정부가 고스란히 모두 재정을 투입할 수밖에 없다.

2032년 하계올림픽 유치전은 문 대통령이 물러나는 2022년 이후에나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벌써 4년 차에 접어든 문 대통령 임기 중에는 가시적인 추진 성과를 얻어내기 힘든 셈이다. 문 대통령은 신년사(1월 7일)와 신년회견(1월 14일)에서 “2032년 서울·평양 올림픽 공동 유치·개최는 이미 김정은과 합의한 사항”이라고 강력하게 추진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문 대통령이 천문학적 자금이 소요될 서울·평양 공동 올림픽을 충분한 예산 검토와 타당성 조사도 없이, 국민적인 합의도 없이, 미국 등과 논의도 없이 독자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것은 말 그대로 ‘대못 박기’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문 대통령의 심모원려(深謀遠慮)는 자신이 추진해온 한반도 신경제 구상의 일환인 서울~평양~신의주~단둥 고속철도 연결 청사진을 서울·평양 공동 올림픽을 통해 실현시키겠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의 속셈은 자신이 입만 열면 강조하는 ‘평화경제’를 서울·평양 공동 올림픽을 통해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올림픽 이전에 완전한 비핵화를

문 대통령의 서울·평양 올림픽 공동 유치·개최 추진에 대해 미국 조야와 언론들은 ‘그림의 떡(pie in the sky)’이라고 비판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트워치(HRW)의 필 로버트슨 아시아담당 부국장은 “문 대통령의 북한에 대한 인식은 라라랜드(LaLa Land·몽상의 세계)와 같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 같다”면서 “문 대통령의 구상은 현실정치와는 동떨어진, 햇볕정책의 낙관적 결과를 무제한에 가까울 정도로 엄청나게 부풀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문 대통령은 남북협력의 모멘텀을 다시 얻어야 한다는 절박감에 서울·평양 올림픽 공동 유치·개최에 나선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전 숄티 북한자유연합대표는 “서울·평양 올림픽 공동 개최는 웃기는 아이디어이며, 부도덕하다”면서 “문 대통령은 북한 주민들의 고통에 등을 돌리고 있다”고 혹평했다. 숄티 대표는 “남북이 공동으로 올림픽을 연다는 생각은 매일 주민들을 잔혹하게 다루는 북한 정권의 행동을 외면하는 것임은 물론 두 나라를 같은 선상에 놓게 돼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흔들고 낮추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공화당)은 “문 대통령의 구상은 다가오는 선거와 국내 정치 목적을 위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올림픽처럼 국제적 대규모 행사를 남북이 공동 개최하려면 수년 동안 정상적 협력관계에 기반을 둔 남북 간 논의가 이뤄져야 가능한 일”이라면서 “세계 언론과 수백만 관중이 자유롭게 경기를 관람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 상황은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WP는 “북한에선 대규모 건설현장에서 강제노동이 이뤄지고 있고 정치범수용소에 8만~12만명이 감금돼 있다”면서 “북한이 강제노동을 동원해 올림픽 경기장을 건설한다면 2022년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이주노동자를 혹사해 경기장을 건설했던 카타르보다 훨씬 큰 비난에 직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평양 올림픽의 공동 유치·개최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다. 때문에 문 대통령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전념해야 한다. 아무튼 북한 정권과 김정은은 비핵화 없이는 ‘평화의 제전’이라는 올림픽을 유치·개최할 자격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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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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