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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치
[2594호] 2020.02.10

이번에도 쏟아지는 ‘묻지마 공약’ 내용 보니…

▲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가 지난 1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총선 공약 ‘청년·신혼 맞춤형 도시 조성 등을 통한 주택 10만호 공급’을 신혼부부에게 전달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공수표(空手票)인가, 비전인가?
   
   4월 총선을 앞두고 후보들의 공약 경쟁이 시작됐다. 지역구의 ‘숙원사업’들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총선 예비후보들의 공약 목록에 오르고 있다. 여야 후보를 막론하고 “지역 숙원사업을 해결하겠다” “지역 숙원을 꼭 이루겠다”고 장담하지만 구체적인 방법이 제시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것도 익숙한 풍경이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는 일단 스케일이 큰 공약들이 눈에 띈다. 예컨대 전북에서는 대법원 이전을 공약으로 내건 후보가 있다. “전북은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 김병로를 비롯한 ‘법조 3성’을 배출한 지역이다”란 것이 명분이지만 국가 사법시스템의 효율 등 경제적·정치적 이유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법원 조직법 제12조는 ‘대법원은 서울특별시에 둔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해당 후보는 “해당 법 조항을 개정하고, 현 대법원 부지를 매각하면 이전비용 충당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대법원뿐만 아니다. ‘헌법재판소 광주 이전’ 공약까지 나오고 있다.
   
   서울에서 제주까지 KTX로 연결하겠다는 후보도 있다. 제주도까지 어떻게 연결할지 ‘나름대로’ 구체적인 계획도 제시하고 있는데 전남 보길도와 제주 추자도 구간인 73㎞를 해저터널로 연결하자는 것이다. 공사기간 15년 이상에 비용은 16조원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들지만 이 공약을 내건 후보는 오히려 “동남권 제2공항 건설과 비교해 경제적이다”란 주장까지 하고 있다.
   
   과거 국토부 고위 관계자가 “개발계획은 된장이라면, 투기 등의 부작용은 구더기이다”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개발의 필요성을 우선해서 생각해야지, 그 과정에서 생기는 투기 등의 부작용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못 한다는 이야기였다. 효용을 중시하면 다소의 부작용이 있더라도 개발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선거철이면 쏟아져나오는 온갖 개발 공약들에서 효용과 공익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직 주민들의 표심만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표만 되면 뭐가 됐든 일단 개발계획부터 꺼내 놓고 보자는 심산이다.
   
   
   서울공항 이전하고 무상주택 3만호 건설?
   
   이번 총선에도 ‘무상’ 퍼주기 공약은 어김없이 등장하고 있다. 서울공항을 이전하고 그 부지 396만여㎡(약 120만평)에 무상주택 3만가구를 짓자는 공약이 대표적이다. 지난 1월 21일 민중당 김미희 성남 중원구 예비후보(전 국회의원), 김미라 성남 분당을 예비후보(전 성남시의원)는 국회 정론관에서 “서울공항을 이전하고 무상주택 3만호 건설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서 ‘무상’이라는 표현은 임대료를 낮춰 거의 무료로 살게 해주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보통 무상 복지를 이야기하는 정치인들은 무상 혜택으로 오히려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김미희 후보 역시 “무상주택이 도입되면 나라의 부는 보다 공평하게 분배될 것이고, 일자리도 자연스럽게 사는 지역으로 퍼져나갈 것이다”라며 “주택 문제 해결에 들어가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예산도 다른 곳에 쓸 수 있고, 수도권 주민들이 주거비에 소비하고 있는 어마어마한 돈은 소비 진작과 세수 증대의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다만 이들 후보는 공약에 필요한 구체적 재원 마련 계획은 밝히지 않았다.
   
   과거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GTX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워 2010년 민선 5기 선거에서 연임에 성공했다. 그는 GTX 착공을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착공을 하지 못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3개 노선 건설이 확정되고, 대도시광역교통위원회가 2019년 10월 말 발표한 ‘광역교통 비전 2030’에 포함됐다.
   
   이렇듯 선거철에 나온 개발 공약은 구체화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선거 공약 실현이 어렵다는 것은 유권자들도 잘 안다. 정치인들의 공약에 과장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인들은 왜 선거철만 되면 실현 불가능한 공약을 남발하는 걸까.
   
   무언가 힘이 있다는 것을 과시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 우선적인 이유로 꼽힌다. 전통적으로 정권에 줄을 댈 수 있는 능력을 은근히 자랑하는 경우가 여기에 속한다. 이에 대해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여러 선거를 치러왔던 B씨는 “아버지(정권 실세)가 있는 자식인가를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비유했다. 단지 공약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단한 공약을 내놓음으로써 무언가 힘이 있는 후보인지를 각인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선거 때만 되면 대통령 혹은 정권 실세와 함께 찍은 사진이 여기저기 흘러 다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와중에 ‘대한민국 최고 도시 전문가’ 등 온갖 포장용 수식어들도 공약을 그럴듯하게 포장한다. 공약을 그럴듯하게 포장하기 위해서는 청와대 근무 등 경력도 중요하다. 민원 해결에 힘이 있는 것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이런 경력을 은근히 과시하며 공약을 발표하는 경우도 많다.
   
   
▲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1월 21일 서울 마포구의 한 반려견 카페에서 2020 희망공약개발단 반려동물 공약 발표를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서울시장에게 3호선 연장을 건의했다?
   
   현재 수도권 유권자들의 경우 실현 가능성을 떠나 가장 관심 있게 귀를 기울이는 공약이 지하철 노선 신설 등 교통 관련 공약들이다. 지하철 노선 연장 등 교통 관련 공약은 지역 부동산 가격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김병관 현 의원과 김용 예비후보가 공천을 놓고 경쟁 중인 성남시 분당갑 지역구의 경우를 보자. 이곳은 3호선 연장이 최대 이슈다. 지난 1월 21일 김병관 의원은 보도자료를 내고 “박원순 서울시장 면담을 통해 분당·판교의 만성적 교통문제 해결을 위해 지하철 3호선 연장 등을 건의했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지하철 3호선 연장은 이미 경기도, 성남시, 용인시, 수원시에서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고, 용인시의 경우 지하철 3호선을 연장할 경우 차량기지를 제공할 의사까지 표명한 만큼, 서울시와 경기도, 성남시, 용인시, 수원시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해결하면 수도권 동남부 지역주민에게 대중교통 편의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에 대해 박원순 시장은 ‘수서차량기지 이전 및 3호선 연장을 위한 사전 타당성조사 용역 과정을 통해 3호선 연장에 대해 적극 검토하겠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김 의원의 보도자료 내용을 보면, 일단 서울시장으로부터 ‘검토해 보겠다’는 말까지 들었으니 이를 자신을 홍보하는 데 적극적으로 이용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박원순 시장 입장에서 김 의원을 밀어준 측면도 크다고 봐야 한다. 김 의원 입장에서는 자신이 언제라도 시장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당선되면 힘을 쓰겠다는 암시를 주고 있다.
   
   총선 후보들의 공약은 완전히 새로운 것을 주장하기보다 기존 계획을 조금 발전시키는 경우도 많다. 기존에 이미 제시됐던 개발계획들을 잘 모르는 지역민들이 많아 기존 계획을 다시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관심을 끌 수가 있다. 다만 이 경우 확실한 계획이 아닌 청사진을 계속해서 우려먹는 것이 문제다. 서울시의 경우 2019년 2월 발표된 ‘제2차 서울시 도시철도망구축계획(안)’ 용역 결과가 이렇게 ‘재활용’되는 대표적인 사례다. 당초 이 용역안에는 서울 목동과 청량리를 횡단하는 지하경전철 건설을 추진하고, 지하철 4호선 당고개〜남태령 구간에는 급행열차를 추가하는 내용이 포함됐었다. 또 공사 중인 경전철 신림선은 여의도까지 연장한다는 계획이었다. 이와 함께 기존 기본계획 노선 중 추진이 지연됐던 면목·목동·난곡·우이 신설연장선 4개 노선과 서부선 완·급행계획, 새롭게 계획한 강북횡단선 등 경전철 6개 노선을 신설한다는 것도 포함돼 있었다. 이런 발표 내용만 보면 어디까지가 검토 수준의 단순 계획이고 어디까지가 실제 추진되는 것인지를 알기 힘들다. 이 애매모호한 점을 파고들면서 후보들은 ‘제2차 서울시 도시철도망구축계획(안)’을 이리저리 우려먹으면서 공약을 만들기 일쑤다.
   
   
   단골 등장 경부고속도로 지하화
   
   일반적으로 교통 관련 선거 공약은 국토부의 다양한 계획을 참고하고 지역주민들의 민원을 종합해서 만들어진다. 사실 애초부터 가능한 일이라면 민원이 생기기 전에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선거 공약들은 인구 등 사업타당성이 부족한데도 불구하고 우격다짐으로 제시되는 경우가 더 많다. 이 경우 공약이 실현되느냐 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일단 당선되면 국회 속기록에 꾸준히 뭔가를 남기며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러다가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대상에라도 사업을 올려놓으면 나중에 떨어지더라도 조사가 잘못되었다고 여론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실제 예타조사 대상에만 사업을 올려놓아도 지역에서는 업적으로 평가받는 경우가 많다.
   
   선거철 후보들이 마구잡이로 내놓는 교통 관련 공약에는 현실적인 검토와 희망사항이 마구 뒤섞여 있는 경우가 많다. 서울 강남권에 출마하는 후보들이 선거철마다 너도나도 공약하는 ‘경부고속도로 지하화’ 사업을 보자. 이 사업은 경부고속도로 서울 진입 구간(양재IC~한남IC 6.4㎞)을 지하화하자는 것으로 서초구가 구체적인 연구용역까지 마친 프로젝트다. 이미 2017년 1월 공사비 3조3000억원, 재원조달 가능액 5조2000억원이라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구체적으로 지하 복층터널 공사비는 1조 9070억원, 상부 밑 도로(지하터널)인 강남권 완행 8차로(상·하행)의 로컬웨이(Local Way) 공사비가 7687억원으로 책정되었다. 당시 서초구는 지하화사업의 경제적 효과는 4조8490억원에 달하며, 경부고속도로가 지하화하면서 생기는 부지 개발 이익을 통해 사업에 소요되는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런 구체적인 조사 발표에도 불구하고 이 사업은 지지부진을 면치 못하며 선거철마다 계속 단골 공약에 오르고 있다. 사실 이 사업이 추진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비용 등 현실적인 걸림돌 외에 다른 데 있다. 수도권에서 재개발 사업을 오랜 기간 추진해왔던 한 개발업자는 “강남 아파트 가격이 올라 사회적 위화감이 높아지고 있는데, 결국 강남 지역 주민만 혜택을 보는 공사가 추진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지적대로 이 사업 추진이 어렵다는 것은 총선에 나온 후보들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계속 공약으로 내거는 것은 경부고속도로 소음에 시달리는 주민들에게 이것만큼 관심을 끄는 공약이 없다는 점을 잘 알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될 것이다”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심어주면서 선거를 치르자는 속셈이다.
   
   수도권 개발 현장에서 두루 활동했던 한 개발업자는 선거판에서 말도 안되는 공약을 내거는 최악의 후보를 걸러내는 방법에 대해 “개념도 잡히지 않았을 때 개발 방향을 만들어 내면서 개념을 잡고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어 내는 것이 정치”라며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는 사업에 ‘편승’만 하는 정치인보다는 될 만한 사업에 꾸준히 노력하는 정치인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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