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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치
[2594호] 2020.02.10

다시 중도에 꽂힌 안철수, 정치실험 성공할 수 있을까

▲ 안철수 전 의원이 지난 2월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안철수신당(가칭) 창당추진기획단 1차 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안철수 전 의원과 함께 일했던 인사들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안 전 의원의 현재 행보는 대부분 그가 정치판에서 겪은 경험들에 의해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 사고나 행동의 바탕이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은 모든 인간의 공통점이지만, 안 전 의원의 경우 자신의 경험을 판단의 근거로 해석하는 성향이 상당히 강하다는 평가다. 또한 그 해석이 상당히 자의적일 때가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안 전 의원은 지난 1월 귀국 후 탈이념, 탈진영, 탈지역주의를 내세운 실용적 중도정당을 표방한 신당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그가 보수통합을 거부하고 중도라는 가치에 꽂힌 이유 역시 과거 경험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안 전 의원은 2016년 대선에서 국민의당을 창당해 성공을 거뒀다. 호남을 지역적 기반으로 한 의원들과 손잡고 중도층을 공략했던 그는 38석을 얻어 신당이었던 국민의당을 단숨에 제3당으로 만들었다. 국민의당 성공 경험은 그에게 한국에서 중도정당이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하는 경험이 됐다.
   
   대통령 후보로 출마해 3위를 기록했던 경험 역시 그에게는 실패가 아닌 가능성을 본 선거로 기억되고 있다. 2017년 5월 7일 치러진 19대 대선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21.41%의 득표율을 기록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41.08%),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24.03%)에 이어 3위에 올랐다. 당시 안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는 없었다. 다만 전문가들은 안 후보가 홍 후보를 제치고 2위를 할 수 있을지가 그의 정치인생에서 더 중요하다고 봤다. 당시 안 후보는 홍 후보에 2.62%포인트 뒤져 결국 3위에 머물렀다. 모두들 당시 안 후보가 결과에 대해 상당히 실망했을 것이라고 짐작했겠지만 ‘반전’이 있었다. 당시 안 후보를 가장 가까이서 도왔던 한 현역 의원은 주간조선에 “안 후보가 지역별 득표율이 고루 20% 이상 나왔다는 사실에 상당히 고무됐었다”고 말했다.
   
   
   안철수 저서에 등장하는 ‘상처’
   
   19대 대선은 안 전 의원 자신에게 전국적 지지를 확인한 선거로 기억되고 있지만, 호남과 갈라서게 된 결정적 계기도 됐다. 앞서 언급한 의원은 “대선을 치르고, 나중에 당이 갈라서는 과정에서 호남 출신 의원들에게 많은 피해의식이 남아 있어서 이때부터 호남과 함께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안 전 의원이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갈라선 이유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결국 호남 기반 정당과의 연대 여부에서 뜻이 갈렸다는 분석이다. 손 대표는 바른미래당과 호남 기반 정당과 연대해 선거를 치르겠다는 계획이었지만, 안 전 의원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특히 안 전 의원은 바른미래당 안철수계 의원들에게 “호남 정당과의 연대 여부에 대한 개인적 생각”을 물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그가 내세운 가치들이 바로 탈이념, 탈지역 등인 것으로 보인다. 탈진영 역시 현재 대통령의 지지자들로부터 받은 피해의식에서 왔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그가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그 주변 정치인들에게 날카롭게 각을 세우고 있는 데에는 정권의 실정(失政)도 있지만 민주당 대표 시절 열혈 친문지지자들에게 받았던 비난들이 여전히 가슴 한쪽에 자리 잡고 있다는 의미다.
   
   정치를 하면서 겪은 이런 경험들이 어떻게 안 전 의원에게 내재화됐는지는 그가 지난 1월 1년간의 외유를 마치고 돌아오기 전 출간한 ‘안철수, 내가 달리기를 하며 배운 것들’이란 책에서 엿볼 수 있다. 책에는 유독 ‘상처’란 말이 많이 등장한다.
   
   “독일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고, 정치 과정에서의 상처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상황에서 출전한 대회였다.”(21쪽)
   
   “달리기를 하면서 내가 배운 것은 건강을 통한 삶의 균형이었다. 살이 빠지고 피부가 좋아지고 근력이 느는 등의 단순한 신체적 건강만이 아니라 마음의 상처도 치유되는, 말 그대로의 균형 잡힌 건강 말이다.”(212쪽)
   
   “상처와 제대로 마주하기가 쉽진 않겠지만, 나의 상처는 내가 소중하게 생각했던 가치가 산산이 부서지는 것에서 비롯된 것 같다. 물론 사실 왜곡이나 드루킹의 댓글 공격으로 인한 여론조작도 가슴 아픈 일이었지만, 내가 공동체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실천했던 희생·헌신·책임 등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를 다하는 것이 인정받지 못하고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상황에 큰 상처를 받았다.”(254~255쪽)
   
   
▲ 안철수 전 의원이 지난 2월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정치혁신 언론인 간담회에서 신당 추진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함께 선거 치른 의원들의 실망감
   
   책의 내용만 놓고 본다면 그가 민주당에서 탈당할 수밖에 없던 이유, 지난 대선에서 패배한 이유 등을 자신이 아닌 외부에서 찾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에 대해 한 정치평론가는 이런 말을 했다. “정치인이 성장하려면 실패의 원인을 정치구도와 시대상황, 나의 콘텐츠, 전략의 부재 등 안팎에서 종합해 이를 뛰어넘어야 하는데 ‘나는 괜찮고 문제가 없는데, 나를 공격하고 나쁜 사람으로 만든 너희들 책임이야’란 식으로 받아들이면 주변에 사람이 없게 된다.” 물론 책에는 이 모든 것들의 책임이 바로 나 자신에게 있다는 언급도 있다.
   
   “지난 6년의 시간 동안 내가 해온 정치의 결과, 그 모든 것은 바로 내 책임이다. (중략) 나는 그 모든 상처에 대한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다. 잘못된 일에 대해서는 남을 탓하기보다 내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성격이어서 마음이 더 괴로웠다.”(21쪽)
   
   하지만 안철수 전 의원이 1년 만에 국내로 복귀해 신당 창당에 나서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과거 측근들은 그가 책에 쓴 이런 내용들의 진의를 의심한다.
   
   일례로 안 전 의원은 자신이 대선후보와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던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 과정에서 자신을 도왔던 바른미래당 의원들과 귀국 후에도 개인적으로 얼굴을 마주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도 그를 돕고 있는 이태규 의원만이 안 전 의원의 손과 발이 되어 이들과 연락할 뿐이다. 특히 안 전 의원이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면담 후 탈당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이들은 적지 않은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지난 대선에서 안 전 의원을 가까이서 도왔던 바른미래당 한 의원은 이에 대해 “탈당 기자회견이 11시였는데, 10분 전인 10시50분에 ‘바이버’(모바일 메신저)로 연락이 와서 양해를 구했다”며 “이 메시지마저도 안 전 의원이 작성한 것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바른미래당 의원은 “실패의 원인이 나에게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를 도왔던 의원들을 직접 만나 양해를 구하고 비전을 이야기해야 하는데, 측근 의원을 통해 면접 보듯 합류 여부를 묻는 것에 할 말을 잃었다”고 말했다.
   
   그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까지도 함께했던 의원들 사이에서 이런 평가가 나오는 것은 안 전 대표가 정치를 하는 데 있어서 상당히 어려운 요소가 될 수 있다. 안 전 의원이 정치에 처음 입문했을 때 그를 도왔던 인물은 금태섭 변호사(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였다. 국민의당을 창당하는 과정에서는 박선숙 바른미래당 의원이 최측근으로 분류됐다. 그런데 현재 이들은 안 전 의원 주변에 남아 있지 않다. 이유야 다르지만 오랜 시간 자신과 가치를 공유했던 동료가 등을 돌리는 것은 정치인에게는 뼈아픈 일이다. 안 전 의원의 측근이었던 한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자신의 가치와 경험도 중요하지만 정작 주변 사람들의 경험과 생각을 듣는 소통이 부족하다.”
   
   현재 안 전 의원의 최측근으로는 이태규 의원이 꼽힌다. 이 때문에 바른미래당 내부에서는 불출마를 선언한 안 전 의원의 신당 창당을 ‘이태규 재선 만들기 프로젝트’라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 의원을 제외하고 안철수 전 의원이 만드는 신당에 합류할 의원 규모는 비례대표 출신 초선 의원 몇 명 정도라고 한다. 정치적 무게감이나 전략이 부족한 사람들이 합류할 신당은 결국 안 전 의원의 개인기에 의존할 가능성이 크다. 안철수신당이 처음 거론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이를 두고 한 정치권 인사는 “‘안철수 연구소’를 만들었던 기억으로 ‘안철수 신당’이란 이름을 짓는 것 같다”며 “기업과 정치는 다르다는 것을 아직 모르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보수통합 참여 가능성 낮아
   
   주변인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안철수 전 의원이 현재로서는 자유한국당과 새로운보수당이 추진하는 보수통합 열차에 올라탈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그는 당분간 탈이념, 탈진영, 탈지역주의를 내세운 중도정당을 만드는 데 전력투구할 전망이다. 문제는 그가 경험을 통해 이런 가치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여부다.
   
   군사정권 이후 한국 정치는 대체적으로 지역과 지역이 연대해 선거에서 승리를 거두는 공식이 반복됐다. 호남 기반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충청 출신의 김종필 전 총리와 손을 잡았다. 부산 출신 노무현 대통령은 호남의 지지를 등에 업고 당선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는 대구·경북의 압도적 지지가 있었다. 지난 두 대선에서는 이념대결이 강화되기도 했다. 이것이 안 전 의원 입장에서는 구태로 비칠지 몰라도, 엄연한 현실이기도 하다. 안 전 의원은 귀국 다음 날인 1월 20일 첫 공식 지방 일정으로 국립 5·18민주묘지를 참배하는 등 나름 호남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하지만 호남 여론을 좌지우지하는 호남계 의원들과는 선을 긋고 있다. 호남 측 의원들도 굳이 안 전 의원의 합류를 반기지 않는 상황이다. 안 전 의원이 바른미래당을 탈당하자 바른미래당과의 연대를 염두에 뒀던 호남 기반 정당 의원들이 오히려 환영했다고 한다.
   
   게다가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대안신당, 민주평화당 등과 3지대 중도통합을 추진하겠다고 하면서 안 전 의원의 싸움상대는 거대 양당이 아닌 이들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는 바른미래당과 호남 현역 의원들이 이끄는 정당들이 힘을 합할 경우 나름 호남 지역에서는 영향력이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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