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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6호] 2020.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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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호의 正眼世論]‘다름과 틀림’ 구별 못 하는 ‘문(文)주주의’

신지호  평론가·전 국회의원 jayho63@gmail.com

▲ ‘민주당만 빼고’ 칼럼을 쓴 대학교수를 검찰에 고발한 민주당 이해찬 대표. photo 뉴시스
한 진보학자의 비판적 신문칼럼에 대한 집권여당의 오만한 대응이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민주당이 민주주의를 욕되게 하고 있다는 비판이 진보진영 내에서 봇물 터지듯 나온다.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가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과 그 측근들만 주인인 ‘문(文)주주의’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였다. 논란의 당사자인 임미리 교수는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 데 대해 국민들에게 사과하기 바란다”고 민주당을 압박하였다.
   
   표현의 자유는 흔히 민주주의와 동일시된다. 1791년에 비준된 미국의 수정헌법 제1조는 “연방의회는 표현의 자유나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고 못 박고 있다. 독립선언문의 기초자이자 제3대 대통령이었던 토머스 제퍼슨은 1787년에 “누가 나에게 신문이 없는 정부와 정부가 없는 신문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정부가 없는 신문을 택할 것이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보장되어야 하는가. 미국에서도 수정헌법 제1조가 보호하는 자유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를 두고 오랜 논쟁이 이어졌다. 일반적으로 합의가 이루어진 것은 정치적인 표현은 최대한 보호되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집권세력의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고 정부 정책을 비판할 수 있는 자유야말로 민주국가임을 증명하는 보증서라는 것이다.
   
   1984년 텍사스주 댈러스에서는 당시 대통령이던 로널드 레이건을 대통령 후보로 재신임하는 공화당 전당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공산주의자 그레고리 존슨은 반대 가두시위를 이끌었는데 “미국에 침을 뱉는다”고 외친 후 성조기를 소각하였다. 텍사스주 형법은 국기를 포함한 국가 상징물에 대한 모독행위를 금지하고 있었고, 존슨은 1심 판결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항소심에서는 무죄가 선고되었다. ‘텍사스주 대 존슨 사건’으로 알려진 이 재판은 1989년 연방대법원의 5 대 4 무죄 판결로 막을 내렸다. 성조기 소각은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비난할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상징적인 정치 표현’이며 따라서 수정헌법 제1조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판결의 요지였다.
   
   이 판결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보수 성향으로 알려진 앤서니 케네디 판사의 의견이었다. 그는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받아들여야 할 사실은 우리가 때로는 좋아하지 않는 판결을 내려야 한다는 점입니다.… 성조기는 미국인들이 공유하고 있는 믿음, 즉 법과 평화에 대한 믿음과 인간의 정신을 유지하는 자유의 상징입니다. 이번 사례는 이러한 믿음 때문에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를 인식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국기가 그 국기를 경멸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있다는 점은, 괴롭지만 기본적인 사실입니다”라고 했다.
   
   이 판결은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베트남전 전쟁포로였던 제임스 H. 워너가 1989년 7월 11일 워싱턴포스트 편집국에 보낸 편지였다.
   
   ‘저는 (베트남에서 전쟁포로로 잡혀 있다 석방된 후)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성조기를 보았습니다. 눈물이 앞을 가리고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국기에 대한 경례를 했습니다. 저는 그 순간보다 미국을 더 사랑한 적이 없었습니다.… 자유는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저는 미국 국기가 태워지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프지만, 그렇다고 성조기를 태우는 사람들을 처벌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의견에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베트콩에게 받은 심문이 기억납니다. 그들은 내게 성조기를 태우며 전쟁에 반대하는 미국인들의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당신 나라 사람들은 당신이 지금 싸우고 있는 전쟁에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소. 이는 당신이 틀렸음을 증명하는 일이오.”
   
   “아닙니다”라고 제가 말했습니다. “이는 내가 옳았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자유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설령 그것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의견을 지니고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고 해도 말입니다.” 그 관리는 화가 나 얼굴을 붉히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는 주먹으로 책상을 치며 제게 입을 닥치라고 소리쳤습니다. 그가 소리칠 때 저는 그의 눈에 담긴 두려움과 고통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 표정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또한 성조기를 태우는 사진으로 그에게 반박할 때 느꼈던 만족감을 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성조기를 태우는 사람들을 처벌하기 위해 헌법을 수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미국을 증오하고 자유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성조기를 태우는 것입니다. 자유의 개념을 역이용하는 것보다 그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자유를 퍼뜨립시다.… 자유를 두려워하지 맙시다. 이는 우리가 가진 최고의 무기입니다.’

   
   이제 한국 사회는 좌우를 떠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전향적 사고를 확립해야 한다. 물론 자유의 허용 범위는 사회적 환경에 따라 변화한다. 미국도 1940년대에는 공산주의자를 처벌하였다. 그러나 명백하고 실재하는 위험이 존재하지 않는 한, 자유의 범위는 확장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시간이 지나면서 자리를 잡았다. 앞의 성조기 소각 사건의 경우 특정인에 대한 직접적 인신공격이나 폭력사태를 유발하기 위한 시도가 아니었고 공중질서에 대한 심대한 훼손이 없었다는 점이 무죄 판결의 근거가 되었다. 그렇다면 임미리 교수의 칼럼 역시 특정 후보의 낙선을 부추기지 않았고, 폭력사태 등 공중질서를 훼손하지 않았기에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보호되어야 마땅하다.
   
   다수가 자신들의 의견에 반대하는 소수에게 침묵을 강요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미국의 수정헌법 제1조는 만들어졌다. 연방 대법원의 판사였던 윌리엄 웬델 홈즈는 “자유로운 사고의 원칙은 우리에게 동의하는 사람들에게 생각의 자유를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증오하는 생각에 자유를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원주의 사회의 핵심 덕목인 톨레랑스 역시 마찬가지다. 관용은 무엇이든 괜찮다는 식의 믿음이 아니라, 나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타인의 권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진보적 자유주의자로 알려진 존 스튜어트 밀도 대중은 구성원의 일부를 억압하려는 욕망을 가질 수 있다며, 다수의 횡포는 권력의 남용 못지않게 사회가 경계해야 할 악덕 중의 하나라고 했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은 자신들과 다른 의견을 피력한 사람들을 탄압하면서 문자폭탄과 신상털기 등 극렬 지지층의 행동을 ‘양념’이라 미화하고 있다. 생각의 자유에 있어서도 내로남불인 것이다. 그들은 다름과 틀림도 구별하지 못한다. 민주주의가 아니라 문주주의라는 비판은 문재인 정권의 흑역사를 나타내는 상징어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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