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을(乙) 지역구는 수도권에서 진보정당 지지세가 가장 강한 지역으로 꼽힌다. 구로공단이 들어서 있는 데다 호남 출신 유권자들이 많은 것이 이 지역구 특징으로 알려져 있다. 2001년 재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이승철 후보가 한 차례 승리한 뒤로, 현재 미래통합당 전신 정당이 이 지역에서 승리한 기록이 없다. 18·19·20대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선 박영선 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당선됐는데, 박 장관은 19·20대 선거에서 모두 절반(50%)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번 총선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 지역구에 박 장관 대신 윤건영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등판시킨다. 윤 전 실장은 ‘문재인의 복심’이라는 별명을 지닌,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다. 현재 윤 전 실장은 서울지하철 2호선 신도림역 근처 한 건물에 선거사무소를 차리고 선거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 건물 외벽에는 ‘믿는다 윤건영’이라는 글씨와 사진이 프린트된 대형 현수막을 걸어놓았다.
윤 전 실장에 맞서는 미래통합당의 대항마는 김용태 의원이다. 통합당은 김 의원을 지난 2월 23일 이 지역에 단수 공천했다. 김 의원은 다음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당으로부터 구로을에서 문재인 정권을 심판하라는 명을 받았다”면서 “문재인 대통령 복심이자 청와대 386 운동권 대장이며 문재인 정권 국정 실무 총책이었던 윤 전 실장과 맞서 깨끗하고 멋진 승부를 보겠다”며 출마 선언을 했다. 김 의원은 3선 의원으로 자유한국당 시절 당 사무총장을 지낸 중량급 인사다. 하지만 3번의 승리를 모두 서울 양천을에서 했고, 구로구와는 별다른 인연이 없다. 통합당은 민주당이 먼저 윤 전 실장을 이 지역에 투입하자 이른바 ‘자객공천’의 일환으로 김 의원을 구로을 후보로 투입했다. 김 의원은 아직까지 예비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고, 지역에 선거사무소도 차리지 않았다.
한 사람은 대통령의 최측근, 다른 한 사람은 3선 중진급이란 점에서 구로을 선거 결과에 정치권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전통적 여당우세 지역이던 이곳에서 윤 전 실장이 낙선한다면 현 정권과 여당에는 단순히 한 석 이상을 빼앗기는 충격이 있다. 옆의 구로갑 지역구를 뛰는 한 예비후보 측 관계자는 “구로을은 한때 황교안 대표의 등판설까지 나왔던 곳”이라며 “윤건영 전 실장도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더 센 사람 나와도 좋다’고 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듯 구로을은 보수정당 후보들에게는 어려운 지역”이라고 말했다.
“정치는 신물이 난다”
이 지역 선거전의 화두는 ‘전략공천’이다. 두 후보의 공통점은 이 지역구에 이렇다 할 지역기반이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당이 후보를 내리꽂은 것에 대해 지역민들의 눈초리는 곱지 않다. 지난 2월 25일 서울 구로구에서 만난 60대 남성 박모씨는 “주민 일은 주민이 제일 잘 아는데 왜 ‘낙하산’을 내리꽂는지 모르겠다”며 “여기가 철새 도래지냐”고 말했다. 자신을 구로에 30년 넘게 산 토박이라고 밝힌 그는 “민주당이든 통합당이든 지역 출신으로 열심히 뛰는 후보들을 무시하고 하루아침에 ‘낙하산’을 내리꽂는 건 주민들을 무시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같은 날 구로구 구로4동에 있는 남구로시장에서 꽃과 열대어 등을 판매하는 한 가게에서 만난 40대 남성 상인은 오는 21대 총선 구로을 지역에 나서는 후보들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정치는 아우, 신물이 난다”며 “뽑기는 뽑아야 하는데 뽑고 싶은 사람이 없다”고 했다.
윤 전 실장이 본선에 가기 위해선 당내 경쟁자를 넘어서야 한다. 경쟁자는 윤 전 실장이 지역기반이 없는 낙하산 후보라는 점을 부각시키며 각을 세우고 있다. 윤 전 실장의 전략공천 방침에 가장 반발하고 있는 것은 이 지역 출마를 준비하던 더불어민주당 소속 조규영 전 서울시의회 부의장이다. 구로을을 기반으로 서울시의원 3선을 지낸 조 예비후보는 지난 2월 25일 선거사무소에서 주간조선과 만나 “윤 전 실장은 나와 경선을 해야 한다”며 “지역과 아무런 연고가 없는 윤 전 실장이 구로을을 대표할 수 있냐”고 했다. 그는 “윤 전 실장이 김용태와 맞붙어 ‘낙하산 논란’이 나오는 게 민주당에 결코 유리하지 않다”고도 했다. 자신이 나서면 지역 연고가 없는 통합당의 김 의원을 ‘전략공천’으로 공격할 수 있는데, 윤 전 실장은 자신부터가 청와대발(發) 낙하산이기 때문에 김 의원을 그렇게 공격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공교롭게도 윤 전 실장 역시 ‘지역 주민’들을 거론하면서 통합당의 김 의원을 공격하고 있다. 윤 전 실장은 지난 2월 26일 KBS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김 의원의 출마 선언을 가리켜 “누구를 반대하고 누구를 떨어뜨리기 위해서 선거에 나왔다는 게 과연 맞냐”며 “만일 그렇게 이야기하면 구로구민은 뭐가 되는 겁니까”라고 했다. 윤 전 실장은 부산 출신으로 최근까지는 경기도 부천시에 살았다고 한다.
통합당 역시 민주당처럼 이 지역에서 먼저 예비후보로 등록하고 뛰던 이들이 반발하고 있다. 강요식 전 자유한국당 구로을 당협위원장과 문헌일 전 새누리당 구로을 당협위원장이 그들이다. 강요식 예비후보도 현재 통합당 공관위의 단수공천 결정에 불복해 항의하고 있다. 지난 2월 25일 강 예비후보는 기자회견에서 “(김 의원 공천은) 윤 전 실장을 도와주는 꼴이 된다”며 “무소속으로라도 출마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구로구에서만 10년 이상 거주하며 총선과 지방선거에 출마해왔다. 지난 19·20대 총선에서는 박영선 장관과 맞붙어 패배했고, 2018년 지방선거에서도 민주당 소속의 이성 현 구로구청장에게 밀렸다. 김용태 의원실 관계자는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지역에 등록한 미래통합당 계열의 전직 당협위원장 두 명을 설득하는 작업을 하는 중”이라며 “아직 교통정리가 완료되지 않은 상황이라 두 전직 위원장을 예우하는 차원에서 거리 인사는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지역민들은 구로을 선거의 변수로 크게 두 가지를 꼽는다. 하나는 이 지역 터줏대감이었던 박영선 장관이 닦아놓은 밑바닥 표심이다. 박 장관은 국회의원 시절 특히 지역구 조직 관리를 잘하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구로구 한 전직 공무원은 “박 장관은 지역구의 작은 행사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건 기본이었다”며 “사소한 도움에도 직접 찾아와 감사 인사를 표하는 부분이 인상깊었다”고 했다. 지난 1월 15일 박영선 장관은 윤 전 실장과 함께 한국당에 의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하기도 했다. 박 장관이 구로을 공천설이 돌던 윤 전 실장과 연말연시에 지역구 행사를 같이 다녔기 때문이라는 게 당시 한국당의 고발 사유다. 해당 고발 건은 서울남부지검이 수사 중인데, 최근 고발인 조사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박 장관의 일거수일투족이 선거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방증이다.
또 다른 변수는 바로 중국 동포(조선족) 유권자들이다. 구로을 선거구에 속하는 7개 행정동 중 특히 구로제2동과 가리봉동에는 중국 동포들이 많이 살고 있다. 실제로 구로4동에 있는 남구로시장을 둘러보면 중국 식료품을 파는 중국어 간판의 가게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매일 새벽이면 서울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 근처에는 건설 현장 일용직 인력을 찾는 이들이 모이는데, 이곳에 모이는 수백 명의 인파도 대부분 중국 동포들이다. 남구로역 역시 구로을 지역구에 속한다. 이들도 대부분 국회의원을 선출할 수 있는 유권자로 총선이나 대선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