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제1차 회의에서 이해찬 공동상임선대위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2월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제1차 회의에서 이해찬 공동상임선대위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더불어민주당은 지금 ‘독이 든 성배’를 손에 들고 있다. 민주당 안팎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비례민주당 창당 이야기다.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이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을 만들자 이를 비난하던 민주당이 자신들도 비례민주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크게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 지도부는 이를 선뜻 받아들이기도, 그렇다고 외면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이런 민주당의 현실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비례민주당 창당은 그간 민주당이 보여왔던 논리의 완결성을 떨어뜨리고 명분도 없애는 조치다. 지지층은 이런 점들을 보고 결집하는데, 만약 민주당이 말 바꾸기를 하면 중도층은 떠나가고 기존에 있던 지지층도 와해될 우려가 있다.”

유일한 진보 야당인 정의당과의 공조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도 민주당으로선 난감한 요인이다. 정의당은 그간 민주당이 추진하는 선거법 개정안, 검경수사권 조정안 등을 입법하는 데 함께 발맞춰왔다. 민주당이 총선 이후 검찰개혁법안 등 처리해야 할 법안이 적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비례민주당 창당 고민은 커질 수밖에 없다. 현재 정의당은 미래한국당의 정당 등록을 무효화해 달라는 취지의 헌법소원을 청구한 상황이다.

민주당이 이런 상황에 빠진 이유는 결국 선거가 불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전문업체 리얼미터가 발표한 2월 3주 차 정당지지도 결과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40.5%, 미래통합당은 33.7%를 기록했다. 1월 1주 차만 해도 민주당과 제1야당의 격차는 10% 가까이 났었는데 자유한국당이 2월 17일 새로운보수당, 미래를향한전진4.0(전진당)과 합쳐 미래통합당으로 새로 출범하면서 지지율을 바짝 추격해오고 있다.

역풍 고려해 외부세력으로 창당?

과거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나머지 정당이 만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한마디로 지역구 의석을 많이 차지할수록, 확보할 수 있는 비례대표 의석 수는 줄어드는 제도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통합당의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이 힘을 발휘하면 민주당은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다. 한국갤럽이 2월 3주 차 연령별 투표율과 부동층의 투표 배분 등을 반영해 산출한 ‘4월 총선 비례대표 정당 예상 득표율’ 결과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 40%, 미래한국당이 38%, 정의당이 13%를 기록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를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방식대로 계산하면 민주당의 비례의석은 7석, 미래한국당은 25석가량 얻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이 원내 1당이 되기 힘들다는 위기감은 이런 예측에서 나오는데, 지난 2월 24일 바른미래당과 대안신당, 민주평화당까지 민생당으로 합당, 출범하면서 민주당은 마냥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 됐다. 게다가 지역구에서도 민주당에 대한 여론이 나빠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자칫하면 지역구와 비례대표 모두 통합당 계열에 싹쓸이당할 가능성까지 점점 커지고 있다.

한 민주당 의원은 “당초 당 지도부가 비례정당 설립은 불가하다고 일찍이 선을 그어 비례정당 창당에 대한 갑론을박이 없었다. 근데 최근 들어 갑자기 창당 필요성이 거론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의원은 “총선이 다가올수록 민주당이 불리해지는 게 느껴지니 그 불안감 때문에 비례정당 창당이 불가피하다는 현실론이 커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민주당 지도부다. 하지만 그간 자신들이 미래한국당을 향해 “꼼수정치” “페이퍼정당” “후안무치”라며 비난을 쏟아냈던 것을 돌아보면, 지도부가 대놓고 이를 추진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정치권에선 이런 이유 등으로 만약 비례민주당이 창당된다면 당 내부가 아닌 외부 지지세력 등에 의해 만들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당내에선 이미 이인영 원내대표 등을 중심으로 “당 밖에서 추진하는 것을 우리가 어쩔 수 있겠냐”면서 외부 위성정당 창당에 대해선 방관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친문지지자들의 여론에 절대적 영향력을 갖고 있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도 당 외곽에서 위성정당 창당의 필요성을 거론하고 있다.

선관위에 등록된 ‘미래민주당’의 정체

하지만 이런 계산을 끝마쳐도 현실적 여건은 녹록지 않다. 선거에 참여하는 당의 후보자 등록 기간이 오는 3월 26~27일까지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당 창당 준비를 마치고 비례대표 후보까지 내야 한다. 더군다나 공직선거법은 ‘2020년 4월 15일 실시하는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후보자등록신청개시일 전 10일까지 후보자 추천 절차의 구체적 사항을 정한 당헌·당규 및 그 밖의 내부 규약 등을 제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3월 16일까지는 비례대표 후보 추천 절차와 관련한 서류를 제출하라는 말이다. 창당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냐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그 사이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예비후보들을 어떻게 정리할지도 고민해야 한다. 민주당은 이미 비례대표 후보자를 다수 공모한 상황이다. 이들을 민주당에 그대로 남길지 위성정당으로 당적을 옮길지 결정해야 한다. 미래통합당의 경우 자당은 지역구 후보만, 미래한국당은 비례대표 후보만 내기로 일찌감치 결정했다. 비례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길 민주당 의원도 선출해야 하는데 의원들 개인 입장에선 이와 관련한 명분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보니, 이 작업도 순탄치 않을 거란 관측이 나온다. 미래통합당도 당내에서 미래한국당 소속 희망 의원을 뽑는 데 애를 먹은 바 있다. 결국 미래통합당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의원과 비례대표 의원들로 미래한국당을 겨우 구성했다.

창당 이후엔 비례민주당에 대한 유권자 홍보도 이뤄져야 한다. 현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엔 ‘미래민주당’ 창당준비위원회가 등록되는 등 상황이 녹록지 않다. 이 위원회의 경우 지금의 더불어민주당과는 무관한 당이다. 민주당 측은 유권자들이 미래민주당을 자당과 연관이 있는 당으로 오인할 수 있다는 이유로 선거관리위원회에 명칭사용 불허를 요청한 바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측은 “하지만 준비위원회 명칭으론 허가가 났다”며 “향후 정당을 설립할 때 재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고도의 정치적 학습이 된 유권자만이 더불어민주당과 앞으로 만들 비례민주당 간의 관계를 파악하고 정당 투표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며 “미래통합당은 일찍부터 미래한국당을 제시하며 이를 준비해왔기에 꼼수라는 비판은 받지만 성공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실제 창당 여부를 떠나 민주당 안팎에서 지도부와는 다른 의견이 나오고 있는 것 자체가 좋지 않은 모습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야당 한 당직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 자체가 좋지 않다. 뭔가 잘 안 돌아간다는 뉘앙스를 주지 않나. 일관되고 통일되지 못한 모습이다”라고 지적했다.

한 민주당 의원은 무리하면서까지 비례민주당 창당을 논의하는 당의 모습을 보며 다음과 같은 자성의 말을 남겼다. “이런 걸 만드는 게 온당한 일인가 싶다. 정치가 ‘실리를 챙겨야 한다’는 이유로 모든 걸 정당화하기 시작하면 국회와 사회는 진보할 수 없다. 더군다나 이 사회는 4년짜리 사회가 아니지 않나. 이제 우리 정치도 격을 갖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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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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