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2월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코로나19 관련 법안 전체회의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photo 뉴시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2월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코로나19 관련 법안 전체회의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photo 뉴시스

선거 과정에서 정치인의 잘못된 말 한마디는 전체 판도를 뒤흔드는 큰 폭발력을 갖고 있다. 대표적 사례로 2004년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의 노인폄하 발언이 꼽힌다. 정 의장은 당시 “60~70대는 투표를 안 해도 괜찮다. 집에서 쉬시라”는 취지의 발언을 해 논란을 일으켰다. 정 의장 측에서는 “20~30대의 투표를 독려하기 위해 한 발언”이라고 해명했지만 역풍은 거셌다. 이 발언은 노인층의 분노를 촉발시켰고 곧바로 적대적 표심으로 연결됐다. 당시 열린우리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을 등에 업고 과반을 훨씬 넘는 의석을 얻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152석으로 과반을 간신히 넘겼다.

2012년 18대 총선에서는 노원갑에 출마한 김용민 후보의 막말 파동이 민주당에 악재가 됐다. 김 후보는 방송에서 지나친 성적 발언과 욕설을 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여권과 시민사회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았다. 선거전 초반 상대 후보보다 앞선 지지율을 보였던 김 후보였지만 막말 파동을 이겨내지 못했다. 김 후보는 눈물을 흘리며 과거 발언을 사죄했지만 결국 선거 패배를 막을 순 없었다.

“어느 나라 장관인지 귀를 의심할 지경”

다가오는 4·15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말 한마디 한마디에 유권자들의 표심이 오갈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이번 선거는 코로나19 사태라는 전례 없는 위기를 겪고 있는 가운데 치러지는 것이어서 정치인들의 입조심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정부 여당은 이번 선거를 앞두고 연이은 망언으로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붓고 있다. 최근 여권에서 이어진 망언이 단순 말실수라기보다는 여론과 동떨어진 현실인식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선거판에 큰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표적인 발언이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2월 26일 국회에서 한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은 중국에서 들어온 우리 한국인” 발언이다. 박 장관은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 “복지부 장관이 복지부 입장을 주장하고 관철시켰으면 이런 사태가 왔겠냐”는 미래통합당 정갑윤 의원의 질타가 이어지자 이같이 반박했다.

이에 정 의원은 “애초부터 (중국 방문객을) 막았으면 발생지가 우리나라였겠냐”고 지적했지만, 박 장관은 재차 “애초부터 들어온 건 우리 한국인이라는 뜻, 중국에서 들어온 우리 한국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열도 기침도 없는 한국인이 (중국에서) 감염원을 가져온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뉴스를 통해 이 장면을 지켜본 서울 양천구 목동의 30대 여성은 “도대체 우리 국회에 나와서 한국말을 하는 저 장관이 어느 나라 장관인지 귀를 의심할 지경이었다”고 비판했다.

박광온 민주당 최고위원의 자화자찬도 여론과는 한참 떨어진 현실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지난 2월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미국 타임지(誌) 분석이다. 굉장히 유의미한 분석이라고 본다. 한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격히 증가한 이유를 몇 가지 들었다. ‘한국의 뛰어난 진단 능력, 자유로운 언론 환경과 투명한 정보 공개, 그리고 민주적 책임 시스템’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타임지에선) ‘이렇게 한국처럼 여러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나라는 없다. 확진자 수가 증가한 것은 역설적으로 한국의 국가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는 것을 뜻한다’라고 이야기했다”면서 “굉장히 유의미한 분석이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아무리 외국 기사를 인용한 말이지만, 하루 확진자가 100명 넘게 나온 상황에서 이런 박 최고위원의 발언은 부적절했다는 것이 당 내부의 대체적인 분위기다. 민주당 한 의원실 보좌관조차 주간조선에 “좋은 말도 때와 장소를 가려서 해야 하는데, 저 양반들은 답이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여론과 한참 떨어진 현실인식

정치인들의 삶이 서민들의 삶과 한참 괴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 발언은 민주당 선대위 대변인의 입에서 나왔다. 지난 2월 25일 현근택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은 한 방송에 나와 “(마스크 품귀 불안이) 과도하다. 마스크 충분히 산다. 우리 동네에서 못 산 적 없다”고 했다.

그런데 다음날 공영홈쇼핑에서만 수분 만에 마스크 1만5000장이 다 팔려나갔다. 이 홈쇼핑이 마스크를 팔겠다고 사전에 공지하지 않았고, 가정당 5매로 제한했음에도 마스크가 팔려나간 것은 국민들이 얼마나 마스크 구입에 애를 먹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문재인 대통령이 “2월 27일부터 모든 약국 등을 통해 국민들이 마스크를 구매할 수 있게 하겠다”고 했지만, 2월 27일 아침에 약국을 찾는 시민들은 “3월이 돼야 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약사들의 설명에 발길을 돌렸다. 이에 대해 미래통합당 한 인사는 “한 번의 말실수인 것처럼 얘기하지만, 결국 그 말이 그 사람들의 현실인식을 보여주는 발언”이라며 “말이 아니라 생각이 문제”라고 비꼬았다.

선거를 앞둔 이런 발언들은 결국 표와 직결될 가능성이 크다. 여권 내부에서도 이미 경고음이 울린 지 오래다. 대구·경북 지역 공동선대위원장인 김부겸 의원은 지난 2월 27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메시지 관리라는 측면에서 여권이라는 것은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그런 점에서 여권 전체가 조금 더 늠름하고 안심을 줄 수 있는 메시지 관리에 실패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안타까움이 있다”고 밝혔다. 대구 북을이 지역구인 민주당 홍의락 의원은 페이스북에 ‘“대구 봉쇄”로 혼쭐나고도 자화자찬… 민심 못 읽는 민주당’이라는 제목의 기사 링크를 걸고 “답답하다. 잠도 오지 않는다. 고민이 없어 보인다. 국민과 호흡을 맞추지 못한다. 따로 논다. 걱정이다”라고 적었다.

말실수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건 야당도 마찬가지다.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는 최근 서울 종로 출마 선언 이후 첫 지역구 방문 일정 중 “1980년도에 하여튼 무슨 사태가 있었죠. 그래서 학교가 휴교됐었다”며 역사인식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비난이 거세지자 황 대표는 “1980년도에 대학 4학년이었을 때의 시점을 생각한 것”이라며 “광주하고는 전혀 관계없는 말”이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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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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