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전주병 지역에서는 고교-대학 선후배 간의 ‘리턴매치’가 성사됐다. ⓒphoto 각 후보 선거캠프
전북 전주병 지역에서는 고교-대학 선후배 간의 ‘리턴매치’가 성사됐다. ⓒphoto 각 후보 선거캠프

이번 21대 총선에서 전북 전주병 지역구는 민생당 정동영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김성주 전 의원의 ‘리턴매치’가 펼쳐지는 곳이다. 이 지역에서 19대 의원을 지낸 김성주 후보(당시 선거구는 ‘전주 덕진구’)는 20대 총선에서 정 후보에게 0.7%, 989표 차이로 밀려 낙선했다. 두 후보는 전주고-서울대 국사학과 선후배로, 과거에는 막역한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의원은 2006년 전북 도의원에 당선해 정치권에 입문했고, 2017년 7월 정권교체 이후 첫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지냈다. 정 의원은 15대 총선에서 전북 전주 덕진구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정치인생을 시작해 전주에서만 총 4선에 성공했다. 정 의원은 노무현 정부의 통일부 장관을 지내고 17대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서 대중적 인지도를 쌓았다.

고교ㆍ대학 선후배 사이의 리턴매치

지난 19대 대선 당시 전북은 문재인 대통령의 득표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았던 지역이다. 최근 YTN이 의뢰해 리얼미터가 조사한 3월 2주차 여론조사에 따르면, 광주·전라 지역에서의 문 대통령 지지율은 73.2%로 단연 전국에서 가장 높다. 정당 지지율 역시 민주당 64.2%, 민생당은 2.8%로 압도적인 차이다. 또 정세균 국무총리가 전북 지역 출신이라는 것도 전주의 현 여권에 대한 지지율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주의 이러한 여권 지지도는 총선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는 두 후보 간의 지지율로도 증명된다. 전주MBC, JTV 전주방송, 전북도민일보, 전라일보가 코리아리서치인터내셔널에 의뢰해 지난 3월 13일부터 14일까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김성주 후보는 51.5%, 정동영 후보는 30.3%로 20%포인트 이상 차이가 났다.

여론조사상으로는 두 후보의 격차가 꽤 큰 것으로 나타났지만, 김성주 캠프에서는 섣불리 승부를 낙관하지 못하고 있다. 지역구 내에서 ‘정동영’이라는 이름이 갖는 위력 때문이다. 민주당 김성주 후보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여론조사는 말 그대로 조사일 뿐, 실제 투표까지 이어질지는 두고 봐야 한다”며 “지난 20대 총선 때도 여론조사에서는 내가 앞섰었다. 그런데 투표일 일주일 전부터 국민의당 안철수 바람이 불어 결국 크지 않은 차이로 패했다”고 말했다.

정동영 선거캠프의 홍보 문구 역시 ‘전주의 해결사 정동영’으로 관록의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앞세우고 있다.

김성주 선거캠프 관계자는 “정동영 후보의 인지도는 전주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압도적이긴 하다. 김성주 후보는 이름을 들어봤어도 얼굴은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정 후보는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했다. 실제로 전주 도심에서 만난 젊은 유권자들은 ‘김성주’라는 정치인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가 생애 첫 투표라는 대학생 양모(21)씨는 “정동영이라는 이름은 어렸을 때부터 뉴스에서 많이 들어본 것 같지만, 김성주 후보에 대해선 아는 게 거의 없다”고 했다. 다만 양씨는 “그래도 투표한다면 민주당에 표를 줄 것 같다”고 했다.

정동영 선거캠프 관계자는 “지역 내 민주당 지지가 워낙 강해 녹록한 상황은 아니지만, 결국 투표장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은 정동영으로 향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정동영이라는 거물급 정치인의 ‘인물론’이 먹혀들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하지만 지역 민심이 정 후보에게 녹록지만은 않은 현실이다. 정 후보는 대선을 포함해 지금까지 총 8번의 선거에 출마했는데, 그중 당선된 4번이 모두 전주에서의 국회의원 선거였다. 전주를 떠나 서울 동작을(18대 총선), 강남을(19대 총선), 관악을(2015년 4·29 재보궐선거)에 도전한 것은 모두 실패했다. 정 후보는 이번 총선 출마선언문에서 “전북 10명의 국회의원이 전부 초선 아니면 재선으로 구성된다면, 전북 정치는 얼마나 힘이 빠지겠나”라며 “전주를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 전력투구할 것”이라고 했다. 재선에 도전하는 김성주 후보를 간접적으로 지칭하며 자신의 관록을 내세운 것이다.

정 후보는 지난 총선에서 호남 지역의 국민의당 바람과 ‘호남 홀대론’을 등에 업고 신승을 거뒀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민생당’이라는 정당에 의문부호를 갖는 시민들이 있다. 또 국민의당이 호남 지역에서 선전했던 배경에는 ‘안철수’라는 정치인이 있었기 때문인데, 이번 선거에서는 그런 후광 효과를 기대하기도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주에서 평생 살았다는 70대 유권자는 “그를 좋아했고 대통령 선거 나왔을 때도 응원했지만, 좀 더 젊고 힘 있는 여당 사람이 하는 게 낫지 않겠나”라고 했다.

현재 김성주 선거캠프 현수막에는 ‘700조 국민연금을 전북 발전의 힘으로’라고 적혀 있다. 19대 국회의원 이력과 함께 ‘문재인 정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전)’을 후보 사진 옆에 큼지막하게 적어놨다. 2015년 국민연금공단은 전북 전주 만성동으로 본부를 이전했다. 김 후보가 뛰는 지역구에 이곳이 포함되지는 않지만, 전주 시민들에게는 ‘국민연금 이사장’이라는 직책이 남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김 후보 측 역시 이를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후보는 “지난 총선에서는 호남 지역에서 반문재인 반민주당 정서가 강했지만, 지금은 문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기대와 지지가 높다”고 했다.

국민연금공단 시절 비리 의혹으로 난타전

하지만 동시에 김 후보는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시절 불거진 비리 의혹 때문에 곤욕을 치르는 중이기도 하다. 정동영 선거캠프 측에서는 김성주 후보의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재직 시절에 관련된 몇 가지 비리 의혹을 집중 공격하고 있다. 김 후보가 이사장으로 있던 지난해 말 국민연금공단 직원들이 지역 내 노인정에서 온누리상품권 100만원을 전달한 것을 두고 선거법 위반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당시 한 시민단체는 “김성주 이사장이 총선 출마를 염두에 둔 불법 선거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김 후보를 고발했다. 또 최근에는 국민연금 전산시스템 구축사업과 관련한 비리 의혹으로 추가 고발당했다.

김성주 후보 측은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김성주 선거캠프 관계자는 “국민연금공단이 전주에 있어서 지역 어르신들에게 사회공헌활동 차원에서 한 일일 뿐 선거와는 무관하다”고 했다. 전산시스템 관련 비리 의혹에 대해서도 “기초적인 사실관계조차 틀린 의혹 제기”라고 일축했다.

이러한 의혹들이 지역 내에서도 논란이 되자 김 후보 측은 유권자들에게 문자를 발송해 ‘근거 없는 허위사실 유포에 강력한 법적 조치 취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자 민생당은 대변인 논평으로 “김성주 후보는 각종 국민연금공단 관련 비리 의혹으로부터 떳떳하다면 당장 시민단체를 무고로 고발하면 될 일”이라면서 “현행법상 무고는 아주 엄하게 처벌하는 법이다. 법적 조치하겠다고 으름장만 놓지 말고 당장 무고죄로 고발하길 바란다”고 맞불을 놨다. 고교·대학 선후배이자 전주 지역 국회의원과 도의원 사이였던 두 정치인의 선거 경쟁은 의혹을 제기하고 이에 반발하는 네거티브 선거전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곽승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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