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정론관에서 ‘대리게임’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류호정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 ⓒphoto 뉴시스
지난 3월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정론관에서 ‘대리게임’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류호정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 ⓒphoto 뉴시스

이것은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s·이하 롤)’에서 시작된 이야기다. 그러나 게임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4·15 총선을 앞두고 정의당 비례대표 1번으로 나선 류호정 후보를 둘러싼 논란이다.

1992년생인 류호정 후보는 지난 3월 6일 정의당이 발표한 4·15 총선 비례대표 경선 결과에서 비례대표 1번을 배정받았다. 청년·여성·IT 해고 노동자라는 류 후보의 이력은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곧 논란에 휩싸였다. 그가 6년 전인 2014년 ‘롤’ 대리게임 논란에 휩싸여 맡고 있던 게임동아리 회장직에서 물러났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대리게임은, 말 그대로 다른 사람이 게임 이용자의 게임을 대신해준 것을 말한다. 게임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좀 가볍게 생각할 수도 있을 법한 문제다. 정의당 내부에서도 류 후보가 비례대표 1번을 배정받기 전 대리게임 문제에 대해 인지하고는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3월 10일 자 중앙일보 기사를 보면 당내에서는 류호정 후보의 ‘대리게임’을 “일종의 해프닝으로 인식하는 분위기”로 “젊은 나이에 소신 있는 목소리를 내고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온 것을 높이 샀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논란은 커졌다. 먼저 프로게이머 출신인 황희두 더불어민주당 공천관리위원은 페이스북에 “롤 대리 문제는 상상을 초월하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게임계에서도 일제히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3월 15일 정의당은 전국위원회를 열어 류 후보의 처분을 논의했는데, 결과는 재신임으로 드러났다. “한 차례 과오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 사이 정의당에 대한 지지율은 하락했다. YTN이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3월 18일부터 5일간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2507명을 대상으로 벌인 여론조사에서 정의당의 지지율은 전주에 비해 0.6% 하락한 3.7%에 그쳤다. 넷째 주 와서 회복하기는 했으나 좀처럼 반등의 기회를 얻고 있지 못하다는 게 정의당 안팎의 분위기다.

류호정 후보를 따라다니는 대리게임 딱지는 좀처럼 가라앉을 줄 모른다. 이런 가운데 ‘이미 반성의 뜻을 표한 대리게임이 이렇게까지 문제가 될 일이냐’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도대체 대리게임의 무엇이 문제인 것일까.

스펙으로 경쟁하는 롤(LoL) 세대

류호정 후보의 대리게임 논란에 대해 자세히 알기 위해서는 우선 롤 게임을 알아야 한다. 종종 게임은 ‘그깟 게임’이라는 표현으로 일부 청년들의 또래집단 문화처럼 간주되곤 한다. 그러나 조금만 더 살펴보면 게임으로 불거진 문제들이 사회의 핵심을 짚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는 롤이 지금 청년 세대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잘 분석한 전문가이다. 그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두 가지 게임으로 세대가 나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스타크래프트(이하 스타)’와 ‘롤’이다. 스타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게임산업을 대표하던 게임이었다. 롤은 2010년대 가장 잘나가는 게임이다. 한국에서 출시된 지 10년이 가까워 가지만 여전히 PC방에서 압도적으로 가장 많이 실행된다. 청년 세대, 특히 게임을 주로 즐기는 남성 청년 중에는 직·간접적으로 롤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타와 롤 사이에는 시간의 흐름만큼이나 분명한 차이가 있는데 이경혁 칼럼니스트는 그 핵심으로 ‘랭킹(등급) 시스템’을 꼽았다.

“예를 들어 4명이서 게임을 한다고 해봅시다. 스타는 2명, 2명이 대결할 수도 있고 4명이서 한 팀이 되어 다른 팀과 맞붙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롤은 반드시 5명이어야 합니다. 4명으로는 팀을 만들기 부족하니 게임 시스템에서 1명을 더 매칭(연결)시켜 줍니다. 그 매칭 기준이 ‘랭킹’입니다.”

롤은 정교한 랭킹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초보 등급부터 대강 나열해보면 아이언, 브론즈, 실버, 골드, 플래티넘, 다이아몬드, 마스터, 그랜드마스터, 챌린저 순이다. 각 등급 내에서도 1~4단계로 등급이 또 나뉘는데 숫자가 클수록 높은 등급이다. 등급이 중요한 이유는 게임 내에서 이용자들은 등급에 맞는 사람들끼리 팀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골드4등급의 이용자가 있다면 그가 함께 싸울 팀원들은 다 골드4등급으로만 구성된다. 팀원을 이어주는 건 게임 시스템이 알아서 한다. 비슷한 실력의 사람들끼리 팀을 이루어 게임을 하기 때문에 골고루 제 역할을 해내며 게임을 이끌어갈 수 있다.

이 시스템은 게임문화를 바꿔놓을 만한 것이었다. 기존의 사회적 관계와는 상관없이 게임 실력만으로 팀을 이루게 되는 시스템은 변한 사회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스타(크래프트)에서도 랭킹 시스템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일부 이용자들이 활용하던 것이었지, 스타를 하는 데에는 숫자와 등급으로 표시되는 랭킹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롤에서는 숫자와 등급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건 마치 청년들이 겪고 있는 현실과 같습니다. 끝이 없는 경쟁과, 경쟁을 가능하게 하는 스펙(서류상의 기록)을 쌓는 일에 익숙한 청년 세대에 롤의 랭킹 시스템은 낯선 방식이 아닙니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의 말처럼 롤은 현실을 은유하는 게임이다. 롤에서 실력대로 연결된 팀원은 현실에서는 마주칠 일 없는 낯선 인물이다. 사회적 연결고리가 없는 사람과 힘을 합쳐 게임을 해나가는 일회성 네트워크에 익숙하지 않으면 롤 게임에서 재미를 느끼기 어렵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롤을 즐기는 청년 세대는 경쟁과 스펙 쌓기를 위한 일회성 네트워크에 익숙하다고 할 수 있다. 대학 수업에서, 기업 채용 면접에서 팀을 이뤄 성과를 내고 목표를 달성한 후 팀을 해체하는 일에 익숙한 청년들이 롤을 즐기는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대리게임 문제에 대한 실마리가 다소 풀린다. 롤이 현실을 은유하는 게임이라고 했을 때 대리게임, 즉 다른 사람이 롤의 랭킹을 대신 올려주는 행위는 엄연한 ‘비리’에 가깝다. 롤을 즐기는 청년 세대는 치열한 경쟁률의 채용 시장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다. 힘들게 자신의 스펙을 쌓아가고 있을 동안 누군가는 손쉽게 인턴 경력을 만들고 스펙을 쌓아 채용에 성공하던 ‘편법’을 지켜봐야 한다. 청년 세대에 대리게임은 그와 다름없는 일처럼 느껴진다. 롤 대리게임이 ‘그깟 게임’에서 비롯된 소소한 일로 취급될 만한 문제가 아닌 이유다.

채용비리와 순위조작과 대리게임

류호정 후보는 논란이 일고 나서 몇몇 언론 인터뷰를 통해 대리게임 논란에 대해 사과하면서도 몇 가지 해명을 내놓았다. 주간조선은 류호정 후보에게서 직접 얘기를 듣기 위해 류 후보와 정의당 대변인실에 여러 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는 등 제대로 된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류 후보는 자신의 대리게임 논란을 줄곧 ‘계정 공유’라고 표현한다.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에게 계정을 빌려줬는데 그 사이 등급이 골드1에서 다이아5까지 상승했다고 한다. 갑자기 상승한 등급 때문에 류 후보는 새롭게 계정을 만들어 자신만의 게임을 했는데, 그 사이 남자친구가 올려두었던 계정의 등급이 플래티넘2까지 떨어졌다. 류 후보는 다시 원래의 계정으로 돌아가 게임을 했고 혼자서 등급을 다이아4까지 올렸다고 한다. 즉 류 후보는 남자친구가 대신 올려둔 등급만큼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인터뷰를 통해 증명하고 싶어 했다. “당에서도 답답했는지 지금 게임 등급을 다시 달성해볼 수 없겠냐고 묻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보면 류 후보는 자신의 대리게임 논란이 ‘실력’에 대한 의문 때문에 제기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 대리게임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에게 ‘실력’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바로 얼마 전에 있었던 케이블 음악채널 엠넷(M.net)의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101’ 시리즈 순위 조작에 분노했던 시청자들을 살펴보자. 맨 먼저 방송사의 순위 조작을 의심하며 문제를 제기했던 네티즌들이 지적했던 것은 ‘실력 없는 연습생이 데뷔했다’는 것이 아니었다. 온전히 시청자의 선택에만 맡긴 것으로 보이던 오디션 프로그램의 순위가, 알고 보면 몇몇 제작진의 임의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과정’에 분노한 것이다. 실제로 재판 과정에서 조작 혐의를 받는 제작진들은 “순위 조작은 더 실력이 나은 연습생을 데뷔시키기 위한 순수한 동기였다”고 강변했지만 여론은 여전히 차갑다. 문제는 제작진 임의로 ‘실력’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공개된 시스템, 시청자의 투표를 통해 데뷔 인원을 뽑는다는 규칙을 지키지 못한 데 있다.

마찬가지다. 입시비리, 채용비리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조작 혐의를 받는 사람들은 “그만한 실력이 있었다”고 주장하곤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합의된 과정을 공정하게 거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국 전 장관의 딸 조민의 입시비리 문제가 불거졌을 때 조 전 장관 측에서 여러 차례 조민의 ‘실력’을 입증하려 했지만 별반 동의를 구하지 못했던 것과 같다.

이렇게 보면 정의당은 왜 청년 세대가 류호정 후보의 대리게임에 분노하는지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심상정 대표는 지난 4월 1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 인터뷰에서 “류호정 후보가 거듭 사과한 청년 시절의 실수이기 때문에 감싸안고 가야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의외로 청년들과 시민들은 이 문제를 쉽게 보지 않으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의외’라는 심 대표의 발언이 ‘의외’라는 반응을 얻는 이유는 최근 몇 년 사이 청년 세대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가 ‘공정성’이라는 점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문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이 2016년과 2019년의 ‘사회통합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분석한 바를 살펴보자. 국민들은 한국 사회의 통합을 이뤄내기 위한 조건, 통합을 방해하는 조건으로 일제히 ‘공정성’과 관련한 것을 꼽았다. 특히 사회통합을 위해서는 ‘법 규칙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응답이 3년 사이 급격히 늘었다. 그 3년 사이 사회 곳곳에서 채용비리 사건이 일어나 공공기관에서 ‘블라인드 채용’이 의무화되고 입시비리로 인해 사회적 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해소되지 않는 불평등, 점점 요원해지는 계층 이동에 대한 희망이 공정성에 대한 불신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4·15 총선을 앞두고 각 당이 내세운 정책들을 살펴보자. 불공정한 입시제도 개선, 계층 이동 사다리 확대 같은 정책들은 공정성이 이번 선거에서 얼마나 중요한 키워드인지를 새삼 깨닫게 만든다. 심지어 정의당 역시 채용 공정성 강화 같은 공약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공정성에 대한 내부적 성찰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지적들이 나온다. 그러지 않는다면 공정성에 대한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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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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