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28일 서울대학교 아크로광장 인근에서 열린 ‘조국 교수 STOP! 제2차 서울대인 촛불집회’에서 서울대학교 대학생들을 비롯한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해 8월 28일 서울대학교 아크로광장 인근에서 열린 ‘조국 교수 STOP! 제2차 서울대인 촛불집회’에서 서울대학교 대학생들을 비롯한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photo 뉴시스

“전통적으로 50대와 60대 유권자는 보수 색채가 짙고, 20대와 30대는 진보 색채가 짙다고 이야기한다. 그 중간인 40대의 표심이 선거의 승패를 가른다는 ‘40대 캐스팅보트’론은 오랜 기간 한국 정치를 설명하는 공식이었다. 4년 전인 2016년 3월 31일, JTBC는 “중앙일보 여론조사 결과, 수도권 10곳 중 8곳에서 40대가 후보 간 우열을 좌우했다”며 ‘20대 총선 60대 유권자 최다… 캐스팅보트는 40대’라는 리포트를 내보냈다.

이번 총선은 어떨까? 시사저널이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3월 15~17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30대와 40대가 진보성향이 짙고, 오히려 20대가 중간지대 성격을 띠는 것으로 나타났다. 3040 중에서도 이른바 ‘497세대(40대, 90년대 학번, 1970년대생)’의 진보 쏠림 현상이 두드러졌다. 40대가 캐스팅보트가 아니라 진보정치의 콘크리트 지지층으로 급변한 것이다.

국민일보가 한국갤럽의 지난 26개월간(2018년 1월〜2020년 2월) 월별 정당지지율을 세대와 성별로 나눠 분석한 결과 역시 비슷하다. 지난 26개월간 30·40대의 민주당 지지율은 단 한 번도 40%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다. 이 세대의 통합당 지지율 역시 20%대 이상 올라가지 못한 채 맴돌고 있다.

무당층 비율은 20대에서 가장 높았다. 한국갤럽이 2019년 한 해 동안 여론조사에 응한 전국 19세 이상 4만7000명 대상의 조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연령대별 무당층 비율은 19세 54%, 20〜24세 44%, 25〜29세 33%, 30〜34세 26%, 35〜39세 22%, 40〜44세 18%, 45〜49세 18%, 50〜54세 19%, 55〜59세 19%, 60〜69세 20%로 나타났다. 20대 후반보다 20대 초반이, 20대 초반보다 19세의 무당층 비율이 높았다. 최근 20대 남성의 현 정권 비토는 60대 이상과 비슷한 수치를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전통적인 연령별 지지층 구도가 바뀌고 있다. 급격한 고령화와 세대별 집단경험의 차이가 빚어낸 현상이라 하겠다.

4년 전 총선 당시 19세와 20대의 유권자 비중은 17.5%였다. 이번 총선에서는 18세 유권자도 합류한다. 다가오는 21대 총선은 20대가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는 최초의 선거가 될 확률이 높다. 20대 캐스팅보트론은 기존의 40대 캐스팅보트론과 확연히 구별된다. “나이 들수록 보수적이 된다”는 연령과 정치성향 사이의 함수관계를 뛰어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20대가 탈(脫)이념적이고 이해관계에 민감하다고 분석한다. 청년들이 낭만적인 정치이념으로 결집하기보다 실용적으로 변했다는 점은 미국과 유럽 등에서도 나타난 현상이다. 20대의 탈이념 실용주의는 산업화와 민주화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달성된 사회에서 경제가 성숙기에 접어들며 사회적 활력이 저하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국의 20대는 대한민국 건국 이래 부모세대보다 빈곤해질 가능성이 있는 최초의 세대다. 역대 그 어느 세대보다 고학력임에도 불구하고 일자리 구하기가 제일 힘든 세대이기도 하다. 20대 초반에는 학비와 생계비 마련을 위한 알바로, 20대 중후반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취업준비 활동으로 심신의 피로를 경험한다. 지금의 20대는 바로 윗세대인 30대보다 더 치열한 입시 경쟁을 겪었다. 교실에서의 일거수일투족이 점수화되어 입시에 반영되는 학종(학생부종합전형) 세대의 입시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한다.

20대가 ‘공정’에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환경 때문이다. 교육이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아니라 세습자본주의의 하위도구로 기능하고, 경제조차 수축하며 기회의 문이 좁아진 현실은 20대를 자그마한 불공정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도록 만든다. 금수저네 흙수저네 하는 수저론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요컨대 20대의 문제의식은 사회경제적 변화의 자연스러운 산물이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노오력’을 강조하는 ‘꼰대’는 그저 ‘노답’일 뿐이다. 돈도 실력이라는 정유라에게 질린 20대는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슬로건에 혹해 대거 문재인에게 달려갔지만, 조국 가족의 위선에 뒤통수를 맞고 “이것이 정의냐 문재인은 응답하라”고 또다시 분개했다. 이들에게 586은 자신들의 철밥통을 놓지 않으면서 온갖 폼은 다 잡는 또 다른 꼰대일 뿐이다.

이들이 집착하는 공정은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이다. 실현가능성이 불투명한 뜬구름 잡는 듯한 거대담론보다 눈앞의 작은 현실부터 바로잡자는 20대의 실용주의적 발상이다. 이상사회도 좋지만, 적어도 공정한 출발선이라도 보장해 달라는 것이 이들의 외침이다. 필자는 20대의 이러한 모습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한다. 떠드는 이야기가 거창하지 않기 때문에 혹여 내로남불을 하더라도, 그 위선의 폭이 586에 비해 훨씬 줄어들 것이 분명하다. 20대가 언행일치와 일관성을 매우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으리라.

20대 여론의 특징은 다른 세대에서 보이지 않는 성별 차가 유난히 크다는 점이다. 한국갤럽이 집계한 올해 1월 20대 남성의 민주당 지지율은 24%인 반면, 여성은 38%로 큰 차이를 나타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20대 남성의 민주당 지지율이 떨어진 이유를 여성 친화적인 문재인 정권의 정책 기조에 대한 반감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표면적 사안일 뿐, 본질은 공정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양성평등 문화에 익숙한 20대 남성은 문재인 정권의 페미니즘을 불공정으로 인식한다. 코로나19 사태 등을 겪으면서 한국갤럽 조사에서 20대 여성의 무당층이 남성보다 높아진 데서 알 수 있듯이, 향후 이슈 변화에 따라 성별 차이는 수렴될 것으로 보인다.

박정희 시대의 향수에 사로잡혀 있는 ‘올드 보수’로는 더 이상 국가를 이끌 수 없다는 것이 박근혜 탄핵 사태를 통해 입증되었다. 최근 3년은 그 역(逆)으로도 안 된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586세대는 인류 역사에서 실현가능성이 의문시되었던 화두를 붙잡고 씨름한 거대담론의 세대였다. 그러나 1990년대 사회주의 몰락 이후 성찰을 통해 거듭날 기회를 스스로 차 버리고 지적 게으름과 허세의 관성에 빠진 채 개혁정치의 미명 아래 권력을 탐하였다. 조국 사태는 그 같은 모순과 위선의 끝판왕이었다. 올드 보수가 조국 사태를 비판하는 것은 별로 아프지 않을 수 있지만, 20대가 외치는 ‘그건 아니잖아요’는 아플 수밖에 없다. 유일한 탈출구는 ‘올드 보수의 사주를 받아 그렇다’는 유시민식의 정치공작이다.

필자는 20대가 기존의 이념과 진영논리에 구애받지 말고 자유롭게 그들의 정신세계를 만들어 나가기를 기대한다. 그런 점에서 20대 캐스팅보트는 역설적이게도 한국 사회의 경제적 쇠락이 안겨준 선물이라 할 수 있다.

신지호 평론가·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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