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후보. 미래통합당 홍윤식 후보. 무소속 권성동 후보. 무소속 최명희 후보. ⓒphoto 연합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후보. 미래통합당 홍윤식 후보. 무소속 권성동 후보. 무소속 최명희 후보. ⓒphoto 연합

지난 4월 8일 강원 강릉시에 있는 미래통합당 홍윤식 후보의 선거사무실에서는 ‘미래통합당 탈당 시도의원 복당·복귀 최종 시한 통보 기자회견’이 열렸다. 홍 후보는 기자회견에서 강릉 지역 시도의원들에게 “4월 10일 오후 6시까지 복당할 것”을 통보했다. 박근혜 정부 마지막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낸 홍 후보는 선거 기간 내내 자당(自黨) 시도의원 한 명 없이 선거를 치르느라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다. 제1야당의 공천을 받은 후보가 같은 당 소속 광역도의원이나 시의원들에게 복당할 것을 통보하는 것 자체가 이번 선거에서 얼마나 고전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홍 후보를 돕지 않고 있던 시도의원들은 대부분 이 지역 터줏대감인 무소속 권성동 후보를 돕고 있다. 강릉에서만 미래통합당 전신 새누리당 소속으로 3선을 한 권 후보는 지난 3월 통합당 공천에서 컷오프(공천 배제)됐다. 권 의원은 즉각 이에 반발하며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이후 강릉 지역 미래통합당 시도의원 10명 역시 권 의원의 선거를 돕기 위해 탈당했다. 비례대표 시도의원들도 탈당은 하지 않았지만 미래통합당 홍 후보가 아닌 권 의원 캠프에 합류했다.

이번 4·15 총선에서 강릉시는 미래통합당에 공천을 신청했던 후보들이 줄지어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면서 주목받고 있는 선거구다. 당의 공천은 홍윤식 후보가 받았지만 권 후보와 최명희 전 강릉시장(3선)까지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두 사람은 공천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무소속 출마를 결정했다. 3선 현역 국회의원과 3선의 전직 시장이 무소속으로 출마하면서 강릉 지역 표심은 네 갈래로 갈라졌다.

지난 4월 8일(4월 6일~4월 7일 실시) 춘천MBC, 춘천KBS, 강원일보, G1강원민방, 강원도민일보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무소속 권성동 후보가 32.4%,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후보가 30.8%를 얻었다. 통합당 홍윤식 후보는 14.9%, 무소속 최명희 후보는 12.1%였다.(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4%포인트, 상세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 중 통합당의 홍 후보와 통합당에서 탈당한 두 무소속 후보의 지지율을 합치면 총 59.4%로, 민주당 김 후보보다 30%포인트 가까이 높은 수치다. 하지만 세 후보의 단일화가 사실상 무산된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지역 기반이 약한 김 후보에게 ‘어부지리’ 격으로 의석을 내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기자회견이 있던 날 방문했던 통합당 홍윤식 후보의 선거사무실은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홍 후보는 3월 말이 다 되어서야 예비후보 등록을 마쳐 지역 내에서 선거운동을 벌인 기간은 2주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홍 후보는 선거사무실도 미처 구하지 못한 채 자택 주소를 선거사무실로 등록해 예비후보 선거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홍 후보 선거캠프 관계자는 “시도의원 등 지역 정치권 인사들이 전부 권성동 후보 쪽으로 붙어서, 선거운동을 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지역 내 권 후보의 세가 워낙 강하다 보니 홍 후보 선거캠프에 합류했다는 것만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원성을 듣기도 했다”고 전했다.

‘명고 vs 강고’의 싸움

여론조사상의 수치로도 드러나듯 강릉 지역에서 권 후보의 지지세는 여전히 탄탄하다. 3선 현역 의원인 덕도 있지만 지역 내에선 권 후보가 졸업한 강릉명륜고 인맥이 큰 역할을 한다고 보는 시선이 많다. 권 후보는 이른바 ‘명고(명륜고)’ 출신. 반면 민주당 김경수 후보와 무소속 최명희 후보는 ‘강고(강릉고)’ 출신이다. 강릉 지역 정치권에서는 ‘명고 대 강고’의 경쟁에서 명고가 대체로 우위에 서왔다고 전해진다. 1980년대 이후 강릉 지역 국회의원은 명고와 ‘제고(강릉제일고·옛 강릉상고)’ 출신들이 석권해온 반면 강고 출신 의원은 한 명도 없었다. 또 강고에 비해 명고는 규모가 작아 똘똘 뭉쳐 세를 모으는 편인데, 이번 총선을 두고 명고 출신들 사이에 “강릉에서도 4선 의원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 모아졌다고 한다. 강릉 지역에서는 아직 4선 의원이 배출된 적이 없다. 이런 배경에서 서울에서 고등학교(용산고)를 다닌 미래통합당 홍 후보는 지역 내 힘을 얻기가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3선 강릉시장 출신의 최명희 후보도 무소속 완주 의사를 천명했다. 최 후보는 기자와 만나 “공관위에서 경선을 했다면 결과를 받아들였을 것”이라면서 “위에서 내리꽂기만 하면 당선될 거라고 보는 공천 방식에 문제제기를 하기 위해서라도 선거를 완주할 것”이라고 했다. 최 후보는 ‘3선 시장까지 했는데 국회의원 선거마저 나오려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나이가 아직 65세밖에 되지 않았고, 선거 한 번 치르고 나면 3~4년은 그 에너지를 원동력으로 살아간다”며 “강릉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고 답했다. 최 후보는 “여론조사상에서는 하위권으로 조사되고 있지만, 국회의원 선거는 대체로 여론조사가 부정확하기 때문에 결과는 끝까지 가봐야 안다”고 했다.

최 후보와 권 후보가 공관위의 공천 방식에 가진 불만은 유사했다. 권 후보 캠프 관계자는 “정말 젊고 유능한 인재가 강릉을 위해 온다면 양보했을 것”이라며 “하지만 갑자기 지역구 활동조차 하지 않은 전직 장관을 내리꽂는 식의 공천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권 후보 선거캠프에서는 최 후보의 무소속 완주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도 나온다. 권 후보 선거캠프 관계자는 “최 후보는 지금 ‘개살부리고(심술부리다의 방언)’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지역 내 지지기반이 탄탄한 권 후보가 공천에서 배제된 것에 비해 최 후보의 무소속 완주는 설득력과 당위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었다.

최 후보와 권 후보, 통합당 홍 후보는 서로 공직생활을 하며 잘 알고 지내온 사이였다고 한다. 특히 홍 후보와 권 후보는 막역한 사이로 알려졌는데, 홍 후보가 이번 총선에 당의 공천을 받기 직전부터 연락이 끊겼다고 한다. 이후 홍 후보는 공천이 확정된 뒤 권 후보 선거사무실로 찾아와 무소속 출마를 접어줄 것을 요구했다고 전해졌다. 지난 4월 8일 홍 후보는 강릉 옥천동 인근 대로변 선거 유세에서 “탄핵 5적이 누구인지 다 아시지 않나. 그중 4명은 다 자숙하고 불출마하는데, 유독 1명만 그러질 않는다”며 권 후보를 비판했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희망’을 보고 있는 쪽은 민주당 김경수 후보다. 전통적으로 보수세가 강한 강릉의 보수 표심이 세 갈래로 갈라지면서, 민주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 후보는 지역 내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김 후보는 지난 20대 총선에 이은 두 번째 도전이다. 20대 총선에서 김 후보는 당시 새누리당 권성동 후보에게 20%포인트 차로 낙선했다. 김 후보 선거캠프는 변화를 바라는 강릉 시민들의 여론을 결집하겠다는 전략이다. 4월 8일 김 후보 선거사무실에는 민주당 우원식 의원이 방문해 “김경수가 이겨서 권성동이를 꼭 날려야 하는데…”라고 격려를 건네기도 했다.

곽승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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