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6일 서울 종로구 구기동에서 김종인 미래통합당 총괄선대위원장(가운데)이 황교안 대표(왼쪽)의 지원 유세에 나서고 있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4월 6일 서울 종로구 구기동에서 김종인 미래통합당 총괄선대위원장(가운데)이 황교안 대표(왼쪽)의 지원 유세에 나서고 있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말씀대로 제가 4년 전엔 민주당 후보 지원유세하러 여기 온 사람입니다. 웬만했으면 내가 다시는 선거판에 안 나온다고 했는데, 또 제 전문 분야인 경제가 너무 어려워지는데 나라 꼴을 이대로 볼 수가 없어서 나왔습니다.”

지난 4월 6일 오후 1시50분 서울 양천구 서울지하철 5호선 오목교역 사거리. 비상등을 켠 흰색 카니발 승합차가 사거리를 우회전해 멈췄다. 차 오른쪽 뒷문을 통해 내린 사람은 김종인 미래통합당 총괄선대위원장. 이 지역(양천갑) 통합당 후보인 송한섭 후보가 바로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차에서 내리는 김 위원장에게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관계자들이 내미는 손을 잡고 유세차에 오른 김 위원장은 가장 먼저 이렇게 외쳤다. “조국을 살려야겠습니까, 경제를 살려야겠습니까.”

김 위원장이 양천갑 유세차에 오른 시각, 앞 인도에는 선거사무소 관계자, 선거운동원들, 취재진들, 구경꾼이 뒤섞여 100여명이 운집해 있었다. 이 지역 후보인 “송한섭, 송한섭”을 외치는 목소리보다 “김종인, 김종인”을 외치는 목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분홍색 점퍼에 분홍 마스크를 착용한 송 후보 및 선거운동원 등과 달리 김 위원장은 짙은 회색 양복에 분홍색 머플러를 둘러 구분돼 보였다. 김 위원장은 15분 정도 지원유세 후 바로 강북으로 출발했다. 다음 행선지는 서대문갑 통합당 이성헌 후보. 독립문역 사거리에 멈춰 선 승합차에서 내린 김 위원장은 양천갑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성헌 후보의 유세차에 올랐다. 이번에도 경제, 소상공인, 여권의 검찰 공격 등을 주제로 15~20분가량의 발언을 했다.

선거판에 뛰어든 김 위원장은 80세가 넘은 고령이지만 젊은 사람들도 소화하기 어려울 정도의 강행군을 하고 있다. 하루에 평균 6~7곳의 후보를 지원유세했고, 여기에 시도당 선대위 회의를 주재하고 중간중간에는 기자들과 오찬도 함께했다. 장소도 서울, 강원, 충청 등 전국을 돌았다. 일요일인 4월 5일에는 대전과 충북을 돌았고, 6일에는 서울 영등포구에서 양천구 목동, 서대문구, 종로구, 노원구를 거쳐 광진구까지 지원 유세를 했다. 7일에는 서울 성북을 시작으로 강원 춘천, 원주, 경기 여주 등 강원도와 경기 남부를 돌았다. 사실상 쉬는 시간은 흰색 카니발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밖에 없다. 조력자들의 손을 잡고 유세차에 오르는 모습이 힘겨워 보일 때도 있었다.

하루 7곳 지원유세 강행군

유세차에 오른 김 위원장은 지역 밀착형 공약 등을 얘기하기보다는 어려운 경제 사정과 문재인 정부를 정권 차원에서 비판하는 데 주력했다. 김 위원장이 지원유세 때 내놓는 메시지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코로나19와 경제였고, 둘째는 검찰과 조국 관련 메시지다. 김 위원장은 영등포 통합당 당사에서 열린 선대위 전체회의에서 “여러분께서 잘 아시다시피 문재인 정권의 지난 3년을 보면 여러 분야에 있어서 실적이 없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나쁜 실적이 우리 경제, 그릇된 경제정책으로 인해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이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등 우리 서민들”이라고 말했다. 한 유세장에서는 “조국을 살려야겠습니까. 소상공인을 살려야겠습니까”라며 “이 정부는 무엇이 두려운지 청와대 출신이 대거 출마한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이런 지원유세의 하이라이트는 지난 4월 6일 오후 4시쯤 서울 종로구 구기동 인근에서 행한 황교안 대표 지원유세였다. 황 대표와 김 위원장은 당초 예정시각보다 10분 정도 늦게 도착했는데, 취재진과 유세차가 몰린 마트 앞이 아니라 길 건너편에 흰색 카니발이 멈췄다. 초록불로 바뀌자 두 사람이 함께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건너오면서 공동으로 선거를 이끄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유세차에는 두 사람과 함께 신세돈 공동선대위원장, 황교안 대표의 배우자 최지영씨까지 4명이 올랐다. 이곳에는 정치 유튜버들에 통합당 지지자들까지 몰리면서 다른 지원유세 지역보다 3배 정도 되는 인원이 운집했다. 김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황교안 대표를 반드시 당선시켜서 미래통합당이 국회를 지배할 수 있도록 해주시길 부탁드린다”며 황 대표를 지원했다. 황 대표도 “경제를 살려야 하겠습니까, 조국을 살려야 하겠습니까” 등 김 위원장과 비슷한 메시지를 냈다.

김 위원장은 이번 총선을 보름 남짓 남긴 지난 3월 말에서야 황교안 대표의 ‘삼고초려’로 통합당에 합류했다. 상황은 좋지 않았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통합당은 더불어민주당에 최소 10%포인트 이상 지지율이 낮은 것으로 나왔다. 선거까지 남은 시간이 얼마 없는 데다 통합당 공천은 이미 끝나 김 위원장이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 4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공천 전권을 휘두르던 때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하지만 2012년에는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으로, 2016년에는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2차례의 총선을 승리로 이끈 김 위원장은 이번 선거 국면에서도 유감없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선거판에 뛰어들자마자 코로나19 관련 대책을 “소기업과 자영업자, 거기서 일하는 근로자 임금을 즉시, 지속적으로, 재난 상황이 끝날 때까지 보전해주는 데 맞춰야 한다”고 못 박아 제시한 것이다. 구체성과 정확성에서 그간 통합당 지도부가 낸 메시지와는 차별화된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노태우 정부 때 청와대 경제수석을 역임한 김 위원장은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로 박정희 정권 때는 의료보험을 도입하는 데도 기여했다. 경제민주화와 관련한 헌법 119조 2항은 ‘김종인 조항’으로 불리기도 한다.

최근 30·40대 비하 발언에 이어 노인 비하 발언으로 구설에 오른 서울 관악갑의 김대호 후보를 신속하게 제명한 것이나, 세월호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차명진 부천병 후보의 제명도 김 위원장의 작품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지난 4월 8일 기자들과 만나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한 게 말이다. 첫날 말실수를 해 한번 참고 보자 생각했는데 다음날 거의 똑같은 말실수를 했다”며 “그것이 다른 후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친다는 걸 본인은 아는지 모르겠지만 불가피하게 단호히 처벌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사실 김 위원장과 함께 이번 선거에서 총괄선대위원장을 맡고 있지만 정치 경력 면에서는 경험이 일천한 황 대표도 최근 선거 전략 측면에서 실점을 여러 차례 했다. ‘n번방 사태’ ‘키 작은 사람’ 관련 발언으로 말실수를 거듭한 데다, 재난기본소득 지급에 대해서도 오락가락하는 메시지를 낸 것이다. 그러자 김 위원장은 급히 황 대표를 만나 발언과 관련한 주의를 요청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을 수행하는 한 관계자는 주간조선에 “고령인데도 지친 기색 없이 다니시는 모습이 에너지가 넘친다”며 “개인적으로 분위기가 점점 좋아지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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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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