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즈창 화위안그룹 회장 ⓒphoto 구글
런즈창 화위안그룹 회장 ⓒphoto 구글

“중국에 민주화 세력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종종 받았다. 이에 대해 나는 “없다”고 대답했다. 물론 중국에 민주화 운동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국 사회 내에서 하나의 세력으로서 민주화 운동을 이끌어 갈 만한 집단은 없다고 본다. 1989년 천안문사건 전후로 민주화 운동을 벌였던 세대는 그후 10~20년 사이 당국의 철저한 탄압으로 사실상 형해화되었다. 현재는 천안문사건 희생자 어머니들이 만든 ‘천안문 모친회’만이 남아 ‘역사의 망각’을 비판하고 자식들의 복권(‘平反’이라고 표현)을 요구하고 있다. 1979년 민주의 벽 운동 때 인민독재를 비판한 웨이징성(魏京生)이나 천안문사건을 주도했던 왕단(王丹), 우얼카이시(吾爾開希·위구르족) 같은 인물은 1990년대 초중반 해외로 망명하여 겨우 자신의 존재만 알릴 뿐이다.

그 후 중국 내에서 개별적으로 목소리를 내던 변호사, 교수, 문학가 등 반체제 지식인은 차례차례 당국의 무자비한 힘 앞에 목숨을 잃거나 무력화되었다. 천안문사건 주동자 중 한 명으로 훗날 노벨 평화상(2010)을 수상한 류샤오보(劉曉波)가 대표적이다. 베이징사범대학에서 강의하던 그는 미국에 교환교수로 가 있던 1989년 천안문사건 소식을 듣고 귀국하여 시위에 참가한 뒤 투옥과 석방을 반복하였고, 2008년 302명의 지식인과 함께 자유·인권·민주를 주장한 ‘08헌장’을 발표하였으나, 8년의 감옥 생활 동안 건강이 악화돼 2017년 7월 간암으로 사망했다. 그의 아내 류샤(劉霞)는 2018년 독일로 망명했다.

2000년대 들어 중국의 눈부신 경제발전과 소득수준의 향상으로 중국의 민주화 세력은 더욱 설 자리를 잃었다. 장쩌민~후진타오 시대 때 “중국의 미래는 서구식 민주주의”라고 말하던 대학교수들은 시진핑 체제 출범 이후 입을 다물었다. 그 대신 “중국 같은 거대 인구의 다민족 국가에는 공산당 일당독재가 적합하다. 서구식 민주주의는 맞지 않는다”는 ‘중국특색 사회주의’ 논리가 지식인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시진핑 시대에도 공산당 노(老)간부와 대학교수층에 비판적인 지식인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폭압적 체제하에서 숨을 죽인 상태이다. 그러나 만약 지금 누군가 “중국에 민주화 세력이 있는가”라고 다시 묻는다면, 나는 “형성 중”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코로나19라는 예기치 못한 인류의 재앙이 뜻밖에도 중국인의 정치적 각성을 몰고 왔기 때문이다.

코로나19를 계기로 깨어나는 중국인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3월 28일 “코로나19 사태가 정부에 대한 젊은층의 저항의식을 키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텔레그램에 중국 정부 비판방을 개설한 한나 양(34)씨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정부를 비판하는 것이 국가를 사랑하지 않는 것을 뜻하지는 않음을 사람들이 깨닫게 됐다”면서 “최근 중국에서 벌어진 (비인권적인) 일들이 언젠가는 외부에 알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텔레그램 방에는 1만400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NYT는 “이제 중국공산당이 시험에 들게 됐다”면서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젊은 세대의 우려를 누그러뜨릴 수 있을지, 반대로 저항감을 더 키우게 할지는 향후 몇 달에 달렸다”고 지적했다.

지난 3월 30일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산둥(山東)의 대학생 장원빈(張文斌)이 “시진핑 내려와라(習近平下課). 공산당 물러나라”고 주장하는 동영상을 소개했다. 자신의 얼굴을 그대로 드러낸 이 영상에서 장원빈은 “나도 예전에는 공산당의 열성 지지자였다. 그러나 정부의 인터넷 방화벽을 넘어 공산당의 사악한 얼굴을 알게 된 뒤로 생각이 달라졌다. 공산당은 토지개혁에서부터 문화대혁명, 3년 대기근, 산아제한, 6·4 천안문 학살, 법륜공(파룬궁)에 대한 박해, 티베트와 홍콩. 신장위구르 인민에 대한 박해를 가했으며, 현재는 전 세계를 향해 마수를 뻗치고 있다. 심지어 (코로나19 확산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음에도) 공산당의 공덕을 찬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홍콩과 대만 인민들이 용감하게 공산당에 대항하는 것을 보고 나도 나의 목소리를 내겠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당의 진면목을 분명히 알고 눈앞의 담을 무너뜨리자”고 호소했다.

지난 4월 초에는 시진핑 비판 문구를 적은 티셔츠를 입은 청년의 사진이 트위터에 올라와 주목을 끌었다. RFA 보도에 따르면, 이 사진의 주인공은 장쑤성 출신의 29세 청년 치이위안(祈怡元)이다. 그가 입은 검은색 티셔츠 앞쪽에는 ‘언론자유를 지키고, 인권변호사를 석방하고, 변호사 자격을 회복하라’는 글귀가, 뒤편에는 ‘시진핑 역사퇴행 반대, 공산당 일당독재 반대’라는 글귀가 흰색 페인트로 적혀 있다. ‘주링허우(90後)’로 불리는 신세대 청년인 그는 2018년 말 공산당 중앙위와 국무원이 있는 중난하이(中南海)의 출입문인 신화문(新華門) 앞에서 이 티셔츠를 입고 항의 시위를 벌이다 체포됐다. 사진을 찍은 동료 장판청(張盼成)도 체포됐다. 1년 전의 사건이 다시 주목받은 것은, 두 사람에 대한 재판이 지난 2월 시작된 데다, 티셔츠에 적은 ‘습금평(習禁評)’이란 이름이 ‘시진핑이 언론자유를 탄압한다’는 풍자 의미까지 담고 있어 최근 상황과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런대포’의 관영 매체 비판

코로나19 사태 이후 더욱 주목해야 할 정치적 사건은 부동산 재벌 런즈창(任志强·69) 체포사건이다. 중국 5대 부동산 기업인 화위안(華遠)그룹의 회장과 베이징시 인민정치협상회의 위원을 지낸 그는 지난 3월 초 시진핑(67)에게 묵직한 비판의 주먹을 날렸다가 실종됐다. 그의 아버지 런취안성(任泉生·1918~2007)은 상업부 부부장(차관급)을 지낸 공산당 원로 간부였다. 말하자면 런즈창은 공산당 간부의 자녀인 ‘훙얼다이(紅二代)’로 시진핑과 출신성분이 같다. 게다가 런즈창이 1969년 문화대혁명 시기 하방되어 노동한 산시성(陝西省) 옌안현(延安縣)은 시진핑이 활동하던 옌촨현(延川縣)과 불과 40㎞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두 사람은 여러모로 닮았다. 이런 배경을 가진 ‘훙얼다이’ 출신의 재벌 기업인이 국가 최고지도자를 비판한 것은 중국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시진핑 정부와 갈등설이 돌았던 중국의 대표적 기업인인 알리바바의 마윈(馬云)의 경우 지난해 퇴직하면서 공산당에 대한 비판은 일절 없이 “교육자로 돌아간다”는 말만 했을 뿐이다. 기업인이 지도자를 비판하면 자신은 물론 기업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공산당 당원이기도 한 런즈창은 4년 전인 2016년 2월 19일에도 시진핑을 간접 비판했다가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 그는 2016년 2월 19일 시진핑이 국가의 주요 언론매체를 방문하는 과정에서 했던 발언과 행태를 꼬집었다. 시진핑은 이날 ‘뉴스보도와 여론업무 좌담회’를 개최하기 전 인민일보, 신화사, 중국중앙방송(CCTV) 등 3대 관영매체를 차례로 시찰했다. 시진핑이 각 매체에 도착할 때마다 중국 언론사 관계자들은 통로로 몰려나와 큰소리로 “총서기님, 안녕하십니까(總書記好)” “총서기님께 새해 안부인사 드립니다(給總書記拜年)”라고 외치고 시 주석과 먼저 악수하려고 몸싸움을 벌이는 등 과잉충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영 통신사인 신화사는 ‘우리는 당의 지휘를 받습니다(我們聽黨指揮)’라는 글귀가 새겨진 큰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시 주석이 CCTV를 시찰할 때, 방송사 측은 건물 내 큰 TV모니터에 ‘CCTV는 공산당의 영도를 받으며(央視姓黨), 절대 충성할 것이며(絶對忠誠). 당신(시진핑)의 검열을 청합니다(請您檢閱)’라는 12글자를 띄웠다. 이 장면이 보도되자, 런즈창은 중국판 페이스북인 웨이보 계정에서 “모든 매체가 당의 영도를 받고, 게다가 인민의 이익을 대표하지 않는다면, 인민은 곧 버려져서 구석진 곳에서 잊히고 말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의 비판이 사람들에 의해 퍼날라지고 사회적 파문을 일으키자, ‘신랑’ ‘텅쉰’ 등 대형 인터넷 매체들은 그의 웨이보 계정을 폐쇄했다. 이어 베이징 서성구(西城區) 당위원회는 그에게 ‘당 잔류, 관찰 1년’의 징계 처분을 내렸다. 징계의 이유는 ‘여러 차례 웨이보와 블로그 등 인터넷 플랫폼과 기타 공개장소에서 당의 노선과 방침을 위배하고 잘못된 주장을 편 혐의’였다. 이 사건 이후에도 그는 종종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발표해 ‘런대포’란 별명이 얻었다.

“시진핑은 벌거벗은 광대”

지난 3월 7일 런즈창은 ‘벌거벗은 광대(剝光了衣服的小丑)’란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8500자가 넘는 이 장문의 글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 중화권으로 퍼져나갔고, 순식간에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 제목이 암시하듯이, 이 글은 공산당 지도부의 코로나19 대응 실패와 체제의 폐단을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시진핑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진 않았지만, 글을 읽는 순간 시진핑을 겨냥하고 있음을 누구나 알 수 있게 썼다. 글이 공개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은 지난 3월 12일경 런즈창은 갑자기 실종됐다. 그가 무슨 까닭으로 실종되었는지, 또 중국 기업가의 권력 비판 수위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기 위해, 글 내용을 비교적 자세히 소개하고자 한다.

런즈창은 먼저 4년 전 일부터 상기시켰다. 그는 “4년 전 ‘매체가 모두 당의 영도를 받을 때 인민은 버려진다’고 했던 나의 지적은 이번 우한 폐렴의 폭발 과정에서 현실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인민의 이익을 대표하여 진상을 밝히는 매체는 사라졌고, 남은 것은 인민의 생명이 바이러스와 체제 중병(重病)에 의해 동시에 상처를 입는 결과였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2월 23일 베이징에서 17만명이 참가한 ‘코로나폐렴방역과 경제발전공작회의’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 회의는 7000명이 참석한 루산(廬山)회의(1959년 7~8월 장시성 루산에서 열린 중국공산당 제8기 중앙회의로, 여기서 펑더화이의 실각과 반(反)우파투쟁이 결정되었다)보다도 규모가 크고, 중국 역사상 참가자가 가장 많은 중앙회의인 동시에 ‘위대한 회의’라는 칭송을 받았다. 인터넷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 회의의 위대한 의의에 대해 부풀리고, 주석(시진핑)의 긴 연설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주석의) 영명하고 정확한 전략적 지휘는 세계에 코로나19 방역의 방향을 밝게 제시하였으며, 거국적인 체제의 역량을 불러 모아 코로나19 바이러스와의 투쟁에서 승리했다. 이로써 중국 특색 사회주의 제도의 위대한 승리를 얻었다’는 칭송이 자자하다”고 비꼬았다.

런즈창은 “한순간에 전국적으로 위아래 모든 사람이 위대한 영도자의 연설에 대해 환호하고 기뻐 날뛰는 모습이 마치 중국이 저 위대한 ‘대약진시대’로 진입한 듯하며, 또한 사방에 오성홍기가 나부끼고 마오쩌둥의 어록을 높이 들고 ‘만세, 만세, 만만세’를 외치던 문화혁명 시대로 되돌아간 듯하다”고 비판했다. 대약진운동(1958~1960)은 10~15년 내에 영국과 미국을 따라잡겠다는 중국의 야심 찬 집단생산운동이었지만, 비효율과 비과학의 무모한 추진으로 3500만명이 굶어죽었다. 문화대혁명(1966~1976)은 10대 청소년 ‘홍위병’을 동원해 당정 간부와 지식인, 기업책임자 등을 공격한 극좌 계급투쟁으로, 이 기간에도 수십만~수백만 명이 사망했다. 런즈창은 현재 벌어지는 시진핑 찬양 분위기를, 마오쩌둥 시대 1인 우상화가 불러온 참혹한 실패의 역사에 비유함으로써 그 위험성을 경고한 것이다.

런즈창은 이어 “많은 사람이 시진핑의 연설에 대해 ‘중국이 새로운 시대로 들어섰다’고 찬양하기에 나도 그 연설을 진지하게 공부했다. 그러나 내가 거기서 발견한 것은, 수많은 매체가 보도하듯이 ‘위대’한 것과는 정반대였다. 거기에 서 있는 사람은 자신의 ‘새 옷’을 보여주려는 황제가 아니라, 옷을 홀딱 벗고 황제 자리를 유지하려는 광대였다. 치부를 감추는 가리개를 높이 들고 자신이 옷을 입지 않았다는 현실을 감추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스스로 황제가 되려는 야심, 그리고 자신이 황제가 되는 걸 방해하는 사람이면 누구든 없애버리겠다는 독한 마음은 조금도 감출 수 없었다”고 질타했다.

시진핑 진퇴 논의할 정치국회의 소집 요구설(說)

런즈창은 이 글의 구성을, 시진핑 연설의 구조와 똑같이 1장, 2장, 3장, 4장, 그리고 최후로 5등분 함으로써 조금도 위축됨이 없이 대등한 입장에서 국가주석을 비판한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이 회의에서 우한 코로나의 책임을 검토한 사람도, 책임을 진 사람도 없이, 각종 위대한 성과물을 만들어 내어 진상을 덮어버리는 시도만 있었다. 바이러스가 출현한 이후 즉시 국민에게 알리지 않았고, 당의 영도를 받는 매체들은 언론자유가 없었다. 현재 코로나 방역이 얼마의 성과를 거두었든, 생명을 잃고 가족을 잃어 산산이 부서진 가정은 만회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코로나 유행병으로 입은 중대한 경제적 손실과 잃어버린 가정의 행복 역시 만회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분노했다.

런즈창이 실종된 직후 그의 친구인 기업가 왕잉(王瑛)은 BBC,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3월 12일 저녁부터 그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 많은 친구들이 그를 찾고 있다. 당국은 가능한 한 빨리 그의 신변에 대해 설명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던 베이징시는 4월 7일, 서성구 기율검사위원회 명의로 “런즈창이 당의 기율과 법을 엄중히 위반하여 현재 서성구 기율검사위의 심사와 감찰조사를 받고 있다”고 공식 발표했다. 실종된 지 거의 한 달 만이었다. 이 기간 동안 가족도, 변호사도 그의 행방과 생사를 알 수 없었다. 게다가 당국은 그가 무슨 법을 위반했는지도 발표하지 않았으며, 런즈창이 쓴 글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주변 소식통들에 따르면, 런즈창의 아들과 비서도 체포되어 조사를 받고 있고, 화위안그룹에도 기율위 조사원들이 들이닥쳐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BBC는 전했다.

런즈창 실종사건이 발생한 이후, 최고 권력층 내부에서 시진핑의 진퇴 문제를 토론할 정치국 확대회의의 소집을 요구하는 건의서가 제출되었다는 소문이 3월 하순부터 돌았다. RFA의 3월 22일 자 보도에 따르면, 양광(陽光)위성그룹의 천핑(陳平) 주석이 웨이신으로 퍼나른 공개 건의서는, 코로나19가 중국 경제와 국제관계에 준엄한 형세를 초래하였다며 시진핑이 국가 주석과 당 총서기, 군사위 주석직을 계속 맡을지를 토론할 정치국 긴급 확대회의 소집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개 건의서는 리커창(李克强) 총리와 왕양(汪洋) 정협 주석, 왕치산(王岐山) 부주석이 확대회의의 영도소조를 구성해 회의 개최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건의서는 또한 외교 노선으로 덩샤오핑의 ‘도광양회’로 돌아갈지, 경제정책에서 ‘국진민퇴’와 ‘민진국퇴’ 중 어느 방향으로 갈지, 언론자유를 실현할지 등도 토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이 건의서의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또 공산당 체제의 특성상 확인할 수도 없다. 그러나 지난 2월 초 반체제 변호사 쉬즈융(許志永)의 ‘시진핑 사퇴 권고서’와 3월 초 런즈창의 ‘벌거벗은 광대’ 글에 이어 이러한 ‘건의서’가 중국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는 점에서 베이징의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RFA는 “중국 공산당 내에서 ‘시진핑을 몰아내자’는 흐름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칭화대학 정치학과 강사인 우창(吳强)은 “점점 더 많은 훙얼다이들이 시진핑에게 실망하고 점점 멀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베이징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사실과 주장과 소문이 뒤섞여 있다. 소문이 사실로 드러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현재 추정할 수 있는 것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중국 최고 권력집단 내부에 예전에 없던 균열이 발생하고 있고, 그 균열이 점점 커져 시진핑 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해범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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