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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4호] 2020.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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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순천에 간 대구 청년의 첫 정치 도전기 “3%의 희망을 얻었다”

박혁진  기자 spaingogo@chosun.com / 사진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 천하람  변호사·미래통합당 전남 순천광양곡성구례갑 후보  

21대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지금 방식의 보수정치가 더 이상 설 곳이 없음을 확인해줬다. 코로나19, 막말파동 등의 악재가 있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민심을 설명하긴 어렵다. 민심은 현 정권의 실정을 심판하고자 하는 세력의 ‘자격’을 물었다. 보수개혁을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이 나오겠지만 정치 전문가들은 최우선 조건으로 ‘세대교체’를 꼽는다. 보수의 세대교체는 어제오늘의 주문이 아니다. 문제는 세대교체를 위해 뛰어든 젊은 정치인들이 기성정치의 벽에 막혀 넘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번 총선에서도 몇몇 젊은이들이 한국 정치와 보수세력을 개혁하겠다며 혈혈단신 기성정치와 맞섰다. 전남 순천광양곡성구례갑 지역구에 출마했던 천하람 후보도 그중 하나였다.
   
   그는 35살 대구 출신이다. 한 아이의 아빠이자 법조계 물을 제법 먹은 변호사다. 그가 이번 선거에서 정치인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그것도 미래통합당 후보로 보수의 불모지인 호남에 도전장을 냈다. 주간조선이 처음 천 후보와 만난 것은 지난 2월 초였다. 순수해 보였지만, 순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화를 나눠 보니 정치성향으로 보면 중도에 가깝다고 판단됐다. 당시 그는 몇몇 지역구를 고심하고 있었으나 한 달 뒤 순천에 공천 신청을 한 것은 의외였다. 그가 부딪힐 장애물들이 빤히 보였다. 높고 높은 기성정치의 벽, 지역주의 구도, 돈으로 대표되는 정치현실. 그래도 완주하겠다는 마음이 있다면 두 달간의 총선 도전기를 담고 싶다고 했다. 천 후보는 완주했다. 3%. 표로 환산하면 4058표. 이게 그가 이번에 받아든 성적표다. 천 후보는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순천에 변호사 사무실을 새로 내고 이 지역에 뼈를 묻겠다고 했다. 그가 처음 정치에 입문해 한 번의 선거를 완주하기까지의 경험과 생각은 우리 정치권, 특히 보수정당에 여러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의 정치 도전기를 싣는다.
   
   
01 02 03 천하람 미래통합당 전남 순천광양곡성구례갑 후보와 그의 아내 서민정씨가 지난 4월 7일 오후 전남 순천 장평로에 위치한 아랫장에서 유권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04 지난 4월 7일 밤 10시. 천하람 후보를 비롯한 캠프 관계자들이 다음 날 있을 TV토론을 위한 대책회의를 하고 있다.

   내가 처음 정치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2019년 여름 즈음이었다. 당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논란으로 나라가 두 갈래로 나뉘어 있을 때였다. 문재인 정부를 지지했던 20~30대 젊은층에서도 ‘현 정권의 위선’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생겨났다. 젊은 변호사로서 안락한 삶을 살 수 있었던 나는 조 전 장관 사태를 보면서 ‘기득권이 되어버린 진보진영, 특히 586운동권 세력을 대신할 정치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세대교체의 필요성이 컸던 것은 보수도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대구에서 자란 나는 청년들이 지지할 만한 ‘품격 있고 멋있는 보수정당’에 대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2019년 9월경 ‘정치 세대교체’ ‘청년정치’를 공통분모로 모인 그룹인 ‘프로젝트2040’에 합류하게 됐다.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 않은 청년 정치그룹을 표방한 이 조직 안에서 보수성향을 가진 멤버 및 지인들과 함께 본격적으로 ‘젊은 보수’를 표방하는 그룹을 만들자고 의기투합했다.
   
   이때 뜻을 모은 핵심 멤버들이 15명 정도였는데 30대 중반부터 40대 초반의 전문직, 자영업자, 스타트업 사업가, 대학원생 등 다양한 직업군으로 구성됐다. 우리는 몇 개월간의 스터디와 정책연구를 거쳐 지난 2월 초 ‘젊은보수’라는 이름을 그대로 살리기로 하고 창당 작업을 시작했다. 보수의 가치를 담대하게 말하고, 호남에서도 인정받는 멀쩡한 보수정치를 목표로 내세웠고, 이를 위해 10가지 대표공약(정부 재정지출 25% 감축, 근로소득세 및 법인세 40% 감세, 세금형 일자리 창출 전면중단 등)을 내세웠다.
   
   지난 2월 12일 ‘젊은보수’ 1차 온라인 쇼케이스를 통해 창당발기인을 모집했다. 불과 이틀 만에 500명 이상이 지지 의사를 표했다. 적극적으로 활동 의사를 밝힌 사람들도 많아 50명에 달하는 핵심그룹이 꾸려졌다. 새로운 보수정치를 꿈꾸는 젊은 세대가 이렇게 많다는 것에 나부터가 적지 않게 당황했다.
   
   비슷한 시기 총선을 준비하던 기성 보수정치권에서도 젊은 보수층을 대변하는 정치 꿈나무를 찾고 있었다. 이런 필요가 맞아떨어져 자연스럽게 ‘젊은보수’는 기성 정치권과 선이 닿게 됐다. ‘젊은보수’ 온라인 쇼케이스 공개 직후 당시 새로운보수당 인재영입위원장을 맡고 있던 정병국 의원이 만나자는 연락을 해왔다. 정 의원은 “중도보수 대통합을 준비하고 있는데, 별도 청년 보수정당을 창당하기보다는 통합정당에 합류하라”는 제안을 했다. 이에 2월 14일 젊은보수 온라인 그룹(카카오톡 채널)에 가입한 구성원 전체를 대상으로 당대당 통합 형태로 보수 통합에 참여해야 하는지 의견수렴을 했다. 일반회원과 핵심그룹 사이에 의견이 엇갈렸다. 일반 회원들은 80% 이상 찬성하였으나, 독자 창당을 주도해온 핵심그룹에서는 찬성보다 반대가 많았다. 격론이 있었으나, 전체 구성원의 의사를 존중하여 젊은보수가 당내 벤처 형태로 미래통합당에 합류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핵심그룹 구성원 약 40%가 이탈했다. 지금 돌아보면 젊은 보수층조차도 미래통합당으로 대표되는 기성 보수정당에서 희망을 찾기 어려웠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보수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젊은이들이 우리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역시 젊은 보수정치를 표방한 청년그룹 ‘브랜드뉴파티’ ‘같이오름’ 등이 비슷한 시기 미래통합당 합류를 준비했다. 2월 16일 나는 ‘브랜드뉴파티’ 조성은 대표, ‘같이오름’ 김재섭 대표 그리고 정병국 의원, 박형준 통합준비위원장과 함께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래통합당 합류를 선언했다. 현실정치에 처음 발을 디딘 순간이었다.
   
   현실정치는 ‘자리싸움’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바로 다음 날부터였다. 그날(2월 17일) 미래통합당 출범식이 열렸다. 출범식 직전에 황교안 대표 등 최고위원, 통합준비위원 등과 간단한 티타임을 가진 후 출범식장으로 이동하려는 순간 정병국 의원이 나와 김재섭 대표, 조성은 대표를 붙잡고 귀엣말을 속삭였다. “꼭 황교안 대표 옆에 붙어 있어야 한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도 못한 순간에 나와 황 대표 사이에 수많은 사람들이 끼어들기 시작했다. 티타임 자리에 없던 사람들이 어느새 황 대표 옆을 차지하고 언론사 카메라 앞에 섰다. 나는 출범식 자리에서 발언이 예정되어 있어 자리가 지정됐음에도 내 자리에는 다른 사람이 앉아 있었다. 비켜달라고 요청해도 요지부동이었다. 부득이 뒷줄에 서서 출범식을 시작했고, 당직자의 거듭된 요청이 있고 난 뒤에야 내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거대정당에 발을 들여놓으니 언론사 인터뷰 요청이 오기 시작했다. 2월 18일에는 나와 김 대표, 조 대표의 기사가 조선일보에 크게 실렸다.
   
   출범식을 마친 직후부터 공천 지역을 선택해야 했다. ‘젊은보수’ 핵심그룹과 상의 끝에 인천 연수을 지역구에 공천을 신청하기로 했다. 연수을은 민경욱 의원의 지역구이자 민현주 전 의원까지 공천을 신청한 지역이었다. 보수의 품격을 강조하고, 싱가포르 스타일의 적극적인 감세 정책을 강조하기 위해 송도가 있는 인천 연수을 지역이 적격이라고 생각했다. 보수정치인과 보수정당은 누구보다 말과 행동에 품격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민경욱 의원 대신 공천을 받는다면 그 자체가 미래통합당의 건전한 시작을 알리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2월 22일 공천 면접이 있었다. 청년이라 그런지 공관위원들이 매우 우호적이었다.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당연히 공천이 될 줄 알았다. ‘젊은보수’ 멤버들에게도 “면접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고 송도 맞춤공략 연구를 시작하자고 설레발을 쳤다. 민경욱 의원이 아니면 당연히 나라고 생각했던 것은 순진한 생각이었다. 미래통합당은 2월 28일 민경욱 의원을 컷오프하는 대신 민현주 전 의원을 공천했다.
   
   잠시 동안 ‘멘붕’이 왔지만 막말 정치에 대해 경종을 울린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공천 결과가 반가웠다. ‘젊은보수’ 멤버들 역시 결과에 아랑곳하지 않고 컷오프 결과에 기뻐했다. 면접 과정에서 짧게 만났지만 민 전 의원은 후배이자 경쟁자인 나를 누구보다 정중하고 친근하게 대했다. 평소 미국 정치드라마 ‘웨스트윙’을 보면서 패자가 승자에게 축하전화를 하는 미국 정치의 관행을 부러워했었다. 정치에 뛰어든 지 얼마나 됐다고 나는 이를 흉내 내어 민 전 의원에게 축하전화를 했다. 민 전 의원은 “좋은 후배를 도와줘야 하는데 오히려 미안하다. 천 후배는 이번 총선에서 좋은 곳으로 꼭 공천받을 것이고 큰 정치인이 될 것”이라고 덕담을 해주었다. 하지만 연수을의 공천이 번복되어 결국 민경욱 의원이 본선에 나섰다.
   
   다행히도 공관위에서 내가 청년 인재영입 케이스라 다른 지역에 지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2월 29일 아침 공관위에서 연락이 와 공관위에서 선정한 13곳의 잠정 청년벨트 지역(주로 경기권의 격전지)을 소개하면서 3월 1일 오후 2시에 설명회를 하니 국회 본관으로 오라고 했다. 공관위에서 선정한 청년벨트는 주로 수도권 험지가 많았다. 긴급히 ‘젊은보수’ 핵심멤버들이 온라인 회의를 했다. 우리는 그나마 ‘젊은보수’와 잘 맞고, 당선 가능성이 높은 지역구를 추리는 작업을 했다. 광교신도시가 있는 수원정, 동탄신도시가 있는 화성을 지역구 등을 집중 검토했다. 그러다 친하게 지내는 지인의 제안으로 호남을 후보군에 넣었다. 호남에 공천 신청을 하는 것에 대해 주변 그룹에서 찬반 격론이 오갔다. 설명회에 참석하기도 전에 머리가 혼란스러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휴대폰을 잠시 내려두고 “당장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생각만 내려놓으면 무엇이 나와 ‘젊은보수’ 그리고 보수정치의 미래를 위해 가장 가치 있는 일일까”를 생각했다.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 선택이 최선의 선택인지 당장 알 수 없을 때에는 가장 힘들고 어려운 길을 걸어라. 그것이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란 노회찬 전 의원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호남에 가기로 했다.
   
   고심 끝에 순천을 지역구로 선택했다. 대구에서 자란 나에게 순천은 어떠한 연고도 없었다. 그럼에도 순천을 택한 이유는 기성정치에 휘둘리지 않고 내 방식대로의 정치를 해보기 위해서였다. 만약 호남이 아닌 수도권이나 영남 지역에 출마했다면 중앙당의 눈치를 많이 봐야 했을 것이다. 또한 보수정당에 속한 내가 호남에 나가서 정치인이 되어야 ‘장식’으로 한 번 사용되고 마는 처지가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순천을 지역구로 택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이 지역 현역 국회의원인 이정현 의원 때문이었다. 호남에 출마하기로 결정하고 지역구를 고르던 중 순천 현역인 이정현 의원에게 조언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의원은 “순천은 통진당도 당선되고 새누리당도 당선될 정도로 당보다 인물을 우선한다”며 나를 설득했고 결국 순천에 공천을 신청했다.
   
   의외였던 것은 당내 반응이었다. 순천에 출마한다고 하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많은 분들이 탐탁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어렵게 합류시킨 청년인재가 수도권 격전지에서 한 석을 빼앗아 와야지 무슨 순천 출마냐”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과연 미래통합당이 진정한 전국정당으로 거듭날 의지가 있는지 심각한 의문이 들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나라도 꼭 호남에 가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3월 2일 ‘젊은보수’ 멤버 2명과 함께 순천에 내려와 원룸과 선거사무소, 법률사무소 자리를 알아보고 3월 3일 원룸 전입신고를 마쳤다. 이정현 의원실에 있던 김성준 보좌관이 나를 돕기 시작했다. 이 의원이 20대 총선에서 지역구 의원으로 배지를 달며 한국 정치사의 한 면을 새로 장식했지만, 이 의원은 호남에서 나고 자라 어느 정도 지역 연고가 있었다. 반면 나는 순천과 어떠한 인연도 맺은 적이 없었다. 게다가 이 지역에서 중앙당의 지원을 받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지역 연고도 없는 정치 신인, 게다가 중앙당의 도움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는 선거운동은 그야말로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그런 나에게 김 보좌관은 그야말로 ‘귀인’이었다.
   
   3월 4일 순천에 공천 신청을 한 지 3일이 지났을 때 평소 알고 지내던 이 지역 출신 민주당 소속 정치인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지역 선거는 돈 안 쓰면 사람이 안 움직인다. 못해도 10억원 이상 써야 한다.” 순천에서 선거를 치러 보고, 스스로 선거판에서 잔뼈가 굵었다는 또 다른 지역 인사도 “없는 조직을 급히 만들려면 돈이 들고, ‘언론 작업’을 위해서도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내가 “청년이라 돈도 없고 그런 돈은 안 쓰는 깨끗한 선거를 하겠다”고 하면 “젊은 친구라 뭘 모르네” 하고 한심한 표정을 지으며 돌아가기도 했다.
   
   순천법원 앞에 법률사무소를 차릴 사무실을 계약하고, 캠프에서 일할 선거운동원을 모집하는 등 본격적인 선거 준비에 들어갔다. 3월 12일 예비후보 등록을 위해 선거관리위원회 사무실로 갔는데 시작부터 벽에 부딪혔다. 선관위 직원이 “기탁금은 내고 왔냐”고 물었다. 처음 듣는 얘기였다. 예비후보자 때 내야 하는 돈이 있는 줄도 몰랐다. 당에서든 어디든 이런 걸 알려주는 사람조차 없었다. 서러웠다. 나를 취재하는 언론사 사진기자는 1명이었다. 제1야당 후보가 예비후보 등록을 하는데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었다.
   
   선거사무실은 순천에서 가장 큰 5일장이 열리는 아랫장 인근에 구할 수 있었다. 3월 19일로 예정된 선거사무소 개소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온라인 유튜브 중계로 진행)을 앞두고, 전날 저녁 급히 선거사무소에 현수막을 내걸었다. 내 얼굴이 큼지막하게 박힌 현수막이 걸리자 비로소 출마를 했구나 하는 실감이 들었고 가슴이 뭉클했다.
   
   기쁨도 잠시, 다음 날 선거사무소 개소식 1시간 전 누군가 성난 목소리로 문을 두들겼다. 건물 위층 임차인이었다. 현수막이 사무실 창문을 가렸다는 항의였다. 현수막 담당 업체가 임차인, 건물주에게 허락을 받아 현수막 사이즈를 결정, 진행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당황했다. 알아 보니 해당 층에 외부간판이 없어 현수막 업체에서 해당 층이 비어 있다고 착각했다는 것이었다. 거듭 죄송하다고 말하면서 곧 해결책을 찾겠다고 한 후 어수선한 마음으로 개소식을 치렀다.
   
   개소식 후 임대인, 공인중개사와 상의를 하였으나 해당 층의 임차인이 워낙 완강하여 방법이 없다고 했다. 임대인이 “미래통합당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라고 거듭 말하였지만, 그 말을 들으니 왠지 더 씁쓸했다. 나의 첫 번째 현수막은 하루 만에 내려졌다. 처음에는 현수막 업체가 원망스러웠으나 해당 건물에 직접 인사를 돌지 않은 내 잘못이었다.
   
   캠프 인원을 꾸리는 것도 쉽지 않았다. 온라인에 모집공고를 냈으나 연락이 오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우리 캠프는 나를 포함 8명으로 꾸려졌다. 그중 한 명은 아내였다. 아내는 다섯 살짜리 아들을 처가에 맡기고 선거를 도왔다. 다른 한 명은 김 보좌관, 다른 한 명은 동료 변호사였다. 나머지 두 명은 ‘젊은보수’를 만들면서 알게 된 20대 및 30대 동료, 다른 한 명은 순천 출신 대학생이었다.
   
   초미니캠프로 꾸려진 덕분에 선거 비용은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선거운동의 주요 지출항목은 선거홍보물 및 현수막 제작, 유세차량 대여, 선거운동원 고용, 문자메시지 발송 등이다. 우리 캠프의 경우 선거홍보물(약 10만부)에 1400만원을 썼고, 현수막 제작에 1300만원을 지출했다. 유세차량 대여에 1100만원, 로고송에 600만원을 썼다. 그 외에 네이버 선거광고 550만원, 라디오 방송연설 220만원, TV 방송연설 330만원이 소요되었다. 이렇게 총 1억원가량 소요됐다. 통상적으로 2억원가량이 든다는 것과 비교하면 매우 절약한 것이다. 물론 득표율 15%를 넘기면 선거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보전받을 수 있다. 우리가 절약한 주요항목은 선거운동원 비용(최대 인원을 쓰는 경우 약 7000만원), 문자메시지 발송비용(최대횟수인 8번 발송 시 약 3000만원)이었다. 선거운동원 비용은 아끼고 싶어서 아꼈다기보다 모집공고를 냈지만 모집이 되지 않은 결과였다.
   
   문자메시지 발송 여부가 고민스러웠다. 순천의 경우 현역인 이정현 의원이 통합당 소속이 아닌 데다 당 차원에서도 문자를 보낼 연락처가 확보되어 있지 않았다. 비공식적 루트로 연락처를 확보할 방안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순천에 연고가 없는 내가 연락처를 외부에서 확보하여 문자를 보내는 것은 유권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문자메시지 발송과 관련해서 제도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연락처를 확보할 방안이 없는 정치 신인에게 매우 불리하고, 연락처 수집의 불법 내지 편법을 구조적으로 야기한다. 비용은 각 후보자가 부담하더라도 선거홍보물처럼 선관위에서 유권자들에게 발송하는 형태 등으로 개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여곡절 끝에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워낙 인지도도 낮고, 세도 약했던 탓에 지지율이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4명은 각종 선거 지원 업무를 해야 했기 때문에 유세 기간 순천을 다닌 것은 나와 아내뿐이었다. 그런 모습이 짠하다고 좋게 봐주시는 분들도 많았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선거가 다가왔지만, 지지율은 미래통합당 지지율에도 미치지 못했다. 5%가 넘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면 환호했다가, 며칠 뒤 여론조사에서는 그 절반으로 떨어지는 일도 있었다. 선거 전 마지막 여론조사였던 지난 4월 6일 MBC 여론조사에서는 2.6%가 나왔다. 모두 괜찮다고 했지만 마음이 힘든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중앙당에서 김세연 의원, 정병국 의원 등이 지원 유세를 위해 순천까지 와주었다. 하지만 그것이 지지율에 반영되긴 어려웠다. 공식 유세 기간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아내와 함께 두 발로 곳곳을 돌아다니는 일이었다.
   
   그나마 방송사에서 주최하는 토론회가 있으면 오히려 신이 났다. TV토론을 통해 젊고 건전한 보수정치에 대한 신념, 상대 당과 상대 후보를 존중하는 태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시민들의 반응이 극적으로 달라졌다. 연설하고 유세하면 “미래통합당에도 이런 멀쩡한 사람이 있었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전통시장의 어머님들도 “아들 같고 손자 같다”며 맛난 음식을 많이 나눠주셨다. 장을 한 바퀴 돌면 배가 부를 지경이었다. 막판에는 “천하람이는 마음에 드는데 당이 참 그렇다”며 하루에도 3~4번씩 더불어민주당 입당 권유를 받기도 했다. 마지막 여론조사 후 일주일은 그런 일상이 반복됐다.
   
▲ 천하람 후보가 미래통합당의 상징색인 핑크색 정장을 입고 자전거 유세를 준비하고 있다. photo 천하람

   선거가 끝나고 받아든 성적표는 득표율 3%다. 4058명의 유권자가 나를 선택해줬다. 대구 출신인 내가 아무 연고도 없는 이곳에 왔는데 4000명이 넘는 유권자가 표를 줬다. 일주일 새 득표율은 마지막 여론조사 지지율보다 무려 0.5%포인트나 상승했다. 나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항상 주류로 살아왔다. 대구에서 태어나 공부도 곧잘 해서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에 가고 변호사가 됐다. 김앤장법률사무소에 들어가고, 대한변협 역대 최연소 법제이사로 활동하는 등 줄곧 주류에 가까웠다. 아내인 서민정 변호사 역시 대통령 직속 특별감찰관 감찰담당관까지 역임하는 등 주류의 길을 걸어왔다. 나의 배경이나 소속 때문에 배척당하거나 무시당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나는 생전 처음 어느 집단에 속했다는 이유만으로 배척당하고 외면당하는 서러움을 경험했다. 핑크색 선거복을 입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대구로 가버려라”라는 험한 소리를 들었다. “대구에서 순천에 코로나19 퍼트리러 왔냐”는 소리를 듣고 명함을 던지고 명함을 찢어버리는 일을 당하면서 서러웠다. 모두가 원망스러웠고 다 때려치우고 서울로 가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그렇지만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좋은 학교를 못 나오거나, 비정규직이거나, 다문화가정 출신이거나, 장애가 있거나, (지역감정이 심했던 과거의) 호남 출신이거나, 혹은 돈이 없거나 하는 이유로 대한민국 사회에서 서러움을 겪는 분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아마 대구를 비롯한 영남에 출마한 여당 정치인들도 이런 과정을 겪었을 것이다. 이번 선거로 내가 얻은 가장 큰 배움이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정말 다음에도 순천에 출마하면 찍어주겠다”는 분들도 많았다. 어쨌든 나는 완주했다. 순천 시민들의 따뜻한 마음을 느끼면서 ‘앞으로 순천에서 살면서 보수정치 해도 되겠다’ ‘젊고 건전한 보수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는 희망과 사명감으로 이번 선거를 마칠 수 있었다.
   
   이제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변호사 일을 계속해나갈 것이다. 바뀐 것은 일하는 사무실이 서울이 아닌 순천이라는 점이다. 이번 선거에서 사용했던 캠프 사무실이 앞으로 나의 변호사 사무실이 될 것이다.


   

   1박2일 동행 취재기
   “포스가 쩌네요!” 청년 정치인의 언어는 달랐다
   

박혁진 기자 spaingogo@chosun.com

지난 4월 7일 전남 순천역 인근에 위치한 ‘청년창고’란 복합문화공간에 핑크색 점퍼를 입은 두 사람을 포함 총 네 사람이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 네 사람은 김밥, 피자, 초밥, 식혜 등을 테이블 위에 늘어놓고 나눠 먹고 있었다. 핑크색 점퍼를 입은 두 사람은 전남 순천광양곡성구례갑에 출마한 천하람 후보와 그의 아내 서민정 변호사였다. 나머지 두 사람은 그의 선거캠프에서 일하던 운동원이었다.
   
   격식 없이 농담을 주고받으며 밥 먹는 모습은 흔한 20~30대 청년들의 식사 자리와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정치의 세계에서는 매우 낯설어 보이는 장면이다. 별실이 마련된 고급 식당은 아니어도 최소한의 정찬(正餐)에 익숙한 것이 정치 세계의 밥 먹는 방식이다. 이들은 달랐다. ‘포틀럭(potluck)’ 방식의 음식나눔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젊다는 것은 의도하지 않아도 이런 ‘낯선 모습’을 만들어냈다.
   
   천 후보는 식사 후 청년창고 내 식당을 돌며 주인들에게 자신의 명함을 돌렸다. 천 후보의 화법 역시 여느 정치인들의 화법과는 달랐다. 아마 본인은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마카롱가게 사장이 입은 옷을 보고서는 인사를 건넸다. “옷이 포스가 쩌네요.” 젊은 사람들의 언어로 다가가는 천 후보의 모습은 40대 정치인들이 흉내 내기 어려운 자연스러움 그대로였다. 이런 자연스러움에 익숙한 유권자는 점점 늘어가는데 보수정당에서 천 후보 같은 정치인들은 험지로 내몰리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미래통합당이 이번 총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가다 보면 이런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날 오후 5시 천 후보는 순천시 연향동에 위치한 국민은행 사거리에서 길거리 유세를 했다. 천 후보 혼자 유세차량에 올라 조곤조곤 자신의 이야기를 행인들에게 했다. 노래를 크게 틀고, 고함을 치고, 운동원들이 유세차량 앞에서 춤추는 모습은 없었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목소리 톤은 듣기에 거북하지 않았다. 어느새 천 후보 주변을 민중당 선거운동원들이 둘러쌌다. 5시30분부터 같은 자리에서 민중당 김선동 후보의 연설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30명에 달하는 선거운동원들이 가만히 천 후보의 연설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적어도 이 지역에서만큼은 누가 제1야당 후보인지, 원외정당 후보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였다.
   
   천 후보는 연설을 마치고 김 후보가 연설할 수 있도록 유세차량을 옮기고는, 30명에 달하는 민중당 운동원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하며 자리를 떴다. 그가 연설하고 있는 사이 곁을 지키고 있는 이는 아내 서민정씨뿐이었다. 서씨는 “말하는 걸 좋아해서 가만 놔두면 한 시간이고 저러고 있는다”며 “그래도 저렇게 즐거워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웃었다. 힘들어하는 서씨에게 천 후보가 다가와 등을 두드리며 한마디 했다. “아내, 힘들지? 내가 맨날 이러고 다녀.”
   
   이런 그의 도전은 그야말로 무모해 보였다. 그래도 천 후보는 씩씩했다. 밤 10시가 되어서야 캠프 사무실로 돌아온 그는 곧바로 캠프 직원 5명과 함께 다음 날 있을 방송 토론회 준비를 했다. 살인적인 일정 가운데서도 그가 씩씩할 수 있었던 것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기만의 정치를 할 수 있다는 즐거움 때문이었다”고 한다. 또한 “자신과 함께하는 청년 정치인들이 있다는 생각에 더욱 힘이 난다”고 했다. 그리고 순천이 자신이 계속 몸을 담을 ‘나의 지역구’란 사실이 좋다고 했다. 천 후보가 수도권 출마를 포기하고 아예 전남 순천으로 내려간 것은 기성정치권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정치를 하기 위해서였다. 만약 그가 수도권이나 텃밭에서 출마를 결심했다면, 본선 무대조차 오르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청년들에게 거대 정당의 벽은 높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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