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3일 더불어민주당 정책공약집을 들고 있는 이낙연 공동 상임선거대책위원장(왼쪽 세 번째), 이인영 원내대표(두 번째). ⓒphoto 뉴시스
지난 3월 23일 더불어민주당 정책공약집을 들고 있는 이낙연 공동 상임선거대책위원장(왼쪽 세 번째), 이인영 원내대표(두 번째). ⓒphoto 뉴시스

4·15 총선에서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단독 과반을 확보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기존 정책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됐다. 지난 4월 15일 치러진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은 과반이 넘는 163석(지역구)을 확보해 미래통합당(84석)을 물리치고 원내 1당 지위를 유지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17석)까지 합하면 양당 의석수가 180석에 달한다. 여기에 정의당(6석), 열린민주당(3석), 향후 민주당 입당을 예고한 무소속 이용호 의원(전북 남원임실순창)까지 합치면 범여 진영의 의석수는 야당을 무력화하기에 충분하다.

반면 야당인 미래통합당과 그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19석)은 통틀어 개헌저지선인 103석을 간신히 확보하는 데 그쳤다. 지난 20대 총선 때 새누리당이 획득했던 122석에도 훨씬 못 미친다. 대구 수성을(乙)에서 당선된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경남 산청함양거창합천의 김태호 전 경남지사, 인천 동구·미추홀구을(乙)과 강원도 강릉시에서 각각 4선에 성공한 윤상현 의원, 권성동 의원 등 보수 성향 무소속 의원 4명을 모두 합쳐도 여당의 폭주를 막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문재인 정부의 중간평가 성격인 ‘총선’이란 가장 큰 불확실성이 제거되면서 기존 경제정책에 브레이크를 거는 일도 사실상 어려워졌다. 총선 전만 해도 민주당은 소득주도성장(소주성),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탈(脫)원전, 부동산값 폭등 등으로 인한 민심이반으로 경제 관련 이슈에 관한 언급은 회피해왔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 전만 해도 낙승을 예상하던 미래통합당이 참패하면서 야당의 강한 반발을 샀던 문재인 정부의 기존 정책들은 오히려 더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재벌·대기업 규제 강화 공약들

이는 21대 국회에 입성할 여당 의원들의 면면에서도 읽힌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인 윤건영 전 국정상황실장(서울 구로구을)을 비롯, 한병도 전 정무수석(전북 익산시을), 정태호 전 일자리수석(서울 관악구을), 이용선 전 시민사회수석(서울 양천구을), 윤영찬 전 국민소통수석(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고민정 전 청와대 대변인(서울 광진구을) 등은 모두 원내 입성에 성공했다.

민주당의 기존 원내 지도부 역시 이번 총선에서 모두 살아 남았다. 일찌감치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이해찬 민주당 대표를 제외하고, 이인영 원내대표와 윤호중 사무총장이 각각 서울 구로구갑과 경기도 구리시에서 승리하면서 4선 고지에 올랐고, 조정식 정책위의장 역시 서울 시흥시을에서 승리해 5선을 달성했다.

민주당이 1당 지위를 공고히 하면서 소위 ‘재벌’ 등 대기업에 대한 규제는 총선 전보다 오히려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총선을 앞두고 펴낸 ‘정책공약집’에서 ‘일감 몰아주기 규제 적용대상 확대’ ‘재벌의 부당한 지배력 남용과 특혜 근절’ 등을 제시한 바 있다. 이를 위해 지주회사의 자(子)회사·손자회사에 대한 최소 주식보유 기준상향, 재벌 대주주 일가의 횡령·배임 등 경제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 공익법인·자사주·우회출자 등을 통한 대주주 일가의 지배력 강화 차단 등도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다.

총선이란 불확실성이 제거됐지만,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주52시간 근로제 강행 등으로 코너에 몰렸던 기업의 경영리스크는 오히려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이번 총선 공약으로 소비자 집단소송제 도입과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 고발권제 폐지 등도 내건 바 있다.

정리해고, 희망퇴직 요건 강화

고용시장 유연성도 오히려 더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상시·지속적 업무의 정규직 고용원칙 확립과 생명·안전과 직접 관련되는 업무에 종사하는 정규직 고용원칙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또한 ‘경영상 이유에 의한 정리해고’ 시에도 요건을 강화하고, ‘희망(명예)퇴직’ 시에도 근로자대표 동의 요건을 제도화하는 등 사업자의 해고 요건을 강화하는 공약이 들어갔다.

반면 극도로 경직된 국내 고용시장을 우회돌파하는 수단으로 이용된 기간제, 파견근로자 사용은 더욱 까다로워지는 것이 불가피해졌다. 화물차 기사, 학습지 교사 등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확대를 위해 노조법상 근로자 개념을 확대하고, 산재보험 적용대상 확대와 적용 제외 사유 최소화를 약속하면서 기업이 짊어져야 하는 노무 부담 역시 가중되게 됐다. ‘ILO(국제노동기구) 기본협약 단계적 추진’ 등 기업들이 우려하는 친(親)노조 공약도 민주당의 공약집에 대거 들어갔다.

은퇴자들의 몇 안 되는 출구인 프랜차이즈 등 가맹사업에도 추가로 규제가 강화될 조짐이다. 민주당은 총선 공약으로 가맹본부가 광고 판촉 행사 시 가맹점으로부터의 사전동의를 의무화하고 가맹본부의 가맹사업 개시 전 직영점 운영 경험을 의무화하는 조항을 내걸었다. 소규모 가맹본부에 대해서도 정보공개서 등록 의무 및 가맹금 예치 의무를 부여하는 공약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프랜차이즈 등 가맹사업은 진입장벽이 높아지면서, 큰 규모의 프랜차이즈만 살아남고 영세 프랜차이즈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양극화가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민주당은 공약 이행에 따른 재원확보 이행방안의 하나로, 과세형평에 맞지 않는 비과세 정비, 대주주의 주식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 강화, 고소득자의 재산은닉에 대한 과세 정상화 등 세입확충도 더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자연히 공약 이행과 코로나19 피해 재원 마련을 위한 재정 여력이 일시적으로 부족해지면, 대기업과 고소득자에 대한 세무조사 등 실질적인 과세 강화 조치도 쏟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간이과세자의 적용 기준은 현행 연매출 4800만원에서 6000만원으로 상향 조정될 전망이다. 간이과세자 적용 기준은 야당인 미래통합당 측도 1999년 정해진 기준인 4800만원에서 1억원으로 대폭 상향 조정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이에 상향폭만 합의되면 기준 상향 조정 자체에는 큰 이견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전공대 탄력, 전기료 인상 불가피

전기료 인상도 총선 직후 곧바로 표면화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총선을 앞두고 핵심 지지기반인 전남 지역을 위한 지역별 핵심공약의 하나로 오는 2022년까지 전남 나주에 한전공대를 개교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한전공대 특별법’ 제정도 추진하겠다고 총선 정책공약집에서 밝혔다. 한전공대 설립에는 초기 설립비 약 6300억원에 연간 운영비만 640억원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된다.

한전은 지난해 1조3566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2018년(-1조1508억원) 적자에 이어 2년 연속 적자로, 적자 규모로만 보면 2008년(-2조7981억원) 다음으로 많다. 반면 한전의 경영상황 개선을 위해 필수적인 탈원전 정책 재고는 사실상 물 건너 갔다. 오히려 탈원전 운동에 앞장섰던 양원영(양이원영) 전 에너지전환포럼 사무처장이 더불어시민당(비례 9번) 비례대표로 원내에 입성하면서 기존의 탈원전 정책은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시민당은 ‘탈원전’이란 직접적인 언급은 피하는 대신 “그린 뉴딜 정책 강화로 기후변화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내용을 공약집에 밝힌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에너지 전환과 재생에너지 3020(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20%)을 위한 재생에너지 투자 및 보급 확대’를 대표 에너지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를 위해 대규모 태양광과 해상풍력 프로젝트 추진을 위한 계획입지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지역농협이 참여하는 마을 단위 태양광 협동조합 설립 및 농업인 투자형 수상 태양광발전소 사업 등도 추진하겠다고 정책공약집에서 밝혔다. 자연히 탈원전 정책 지속과 재생에너지 확대로 인한 전기료 인상은 시간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일 관계, 경색국면 지속 예상

지난해 제조업은 물론 항공, 여행 등 서비스업에 치명타를 날렸던 경색된 한·일(韓日) 관계 역시 총선 이후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지난 박근혜 정부 때 한·일 위안부 합의의 산물로 태어난 ‘화해치유재단’의 완벽한 해산을 추진한다는 것을 이번 총선 공약으로 못 박았다.

화해치유재단은 지난해 해산 절차를 완료했으나, 아직 일본 측의 ‘수용불가’ 방침으로 매듭을 짓지 못한 상태다. 여당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여성인권평화재단’을 설립해 ‘위안부 기록물’ 등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국제적 연대를 강화하겠다는 공약도 밝혔다.

서울 주한(駐韓) 일본대사관과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을 공공기념물로 확대 지정해 보호, 관리를 강화한다는 공약 역시 밝힌 바 있다.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비례 7번)로 원내 입성에 성공한 윤미향 전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을 비롯 ‘친일(親日) 척결’을 총선 출마 이유로 밝히고 열린민주당 비례대표(비례 2번)로 원내 입성에 성공한 최강욱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은 관련 현안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낼 것으로 보인다. 화해치유재단 해산과 평화의 소녀상 등은 일본 정부가 외교 채널을 통해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해 온 터라, 한·일 관계는 총선 전에 비해 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됐다는 전망이 나온다.

수도권 3기 신도시 개발 탄력

부동산은 전망이 조금 엇갈리는 부분이다. 창릉신도시 등 수도권 3기 신도시 조성에는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미래통합당은 3기 신도시의 하나인 창릉신도시 건설로 집값 하락이 예상되는 1기 신도시인 일산 지역의 표심을 잡기 위해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출신의 김현아 의원(비례대표)을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옛 지역구인 경기도 고양시정(일산서구)에 공천하고, 창릉신도시 등 3기 신도시 개발계획 철회를 대표 부동산 주택공약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3기 신도시 전면 백지화’ 등을 공약으로 내건 김현아 의원이, 민주당이 이 지역에 전략공천한 이용우 전 카카오뱅크 대표에게 패하면서, 자연히 창릉신도시 개발에 브레이크를 걸려던 계획 역시 수포로 돌아가게 됐다. 민주당은 청년 공약의 하나로, 수도권 3기 신도시에 ‘청년·신혼 맞춤형 도시’를 조성해 청년·신혼주택 5만호를 공급한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세입자 보호 강화, 전·월세 요동 예상

세입자 보호 정책이 강화되면서 전·월세 가격은 단기적으로 요동칠 전망이다. 민주당은 소상공인·자영업자를 겨냥해 ‘주택임대차 계약갱신 요구권’ ‘임대료 상한제 도입’을 총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현행 2년간의 임대차 기간에 더하여 임차인에게 추가로 2년의 계약갱신 요구권을 부여함으로써, 최소 4년 이상의 임대차 기간을 보장하겠다는 공약이다. 또한 계약갱신 시 보증금 및 차임(임대차) 인상률을 5% 범위 내에서 정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임대료 상한제’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에 따라 집주인들이 임대차 계약갱신 요구권 도입 전 임대료를 일괄 인상할 경우, 단기적인 전·월세 가격 상승은 사실상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민주당은 교육공약의 하나로 오는 2025년까지 자사고·외고·국제고를 일반고등학교로 일괄 전환하는 것을 총선 교육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반대로 선거에 참패한 미래통합당은 ‘자사고, 외고, 국제고 폐지정책 원상회복’을 공약으로 내놓는 등 첨예하게 맞섰다.

하지만 민주당이 승리함에 따라,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일반고 전환은 더욱 속도를 낼 전망이다. 이에 따라 그나마 교육 여건이 양호하다는 소위 ‘강남 8학군’ 일대의 전·월세 가격은 오히려 총선 전에 비해 더 자극을 받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1주택 종부세는 완화 가능성

종합부동산세는 전망이 특히 엇갈리는 부분이다. 종부세를 포함한 부동산 보유세는 이번 총선전에서 문재인 정부 들어 집값이 폭등한 서울 강남3구(서초·강남·송파) 지역의 가장 큰 이슈였다. 특히 1가구1주택 종부세 감면 또는 폐지는 선거에 패배한 미래통합당은 물론 서울 강남3구를 비롯해 목동, 용산, 분당 등지에 출마한 민주당 후보들이 일제히 내건 공약이기도 하다. 1가구1주택 종부세 감면을 공약한 민주당 소속의 황희(서울 양천구갑)·김병욱(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을) 의원 등은 재선에 성공했다.

서울 종로에서 낙승한 이낙연 전 총리도 지난 4월 2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와 강남 지역 유세 과정에서 1가구1주택 종부세 완화를 시사한 바 있다. 이낙연 전 총리는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 공동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서울 종로에서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를 물리치고 차기 대선 고지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섰다.

지난 1월 기준 서울 지역 아파트 중위가격은 9억1216만원으로, 이미 12·16 대책의 고가주택 기준선인 9억원을 돌파한 상태다. 미래통합당 역시 1가구1주택 종부세 부담 완화를 공약한 터라 합의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종부세는 1가구1주택 종부세를 완화함과 동시에 1주택 초과 다(多)주택자에 대해서는 되레 세부담을 늘리는 방식의 조정이 이뤄질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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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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