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3일 유튜브 채널 ‘펜앤드마이크’에서 이준석 미래통합당 최고위원(맨 오른쪽)이 토론하고 있다.
지난 4월 23일 유튜브 채널 ‘펜앤드마이크’에서 이준석 미래통합당 최고위원(맨 오른쪽)이 토론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난 이번 4·15 총선을 두고 “선거 결과를 믿지 못하겠다”는 보수 성향 유권자들이 많다. 특히 “내 주변 사람들은 전부 민주당 심판하자고 했는데 통합당이 참패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이에 일부 유권자들은 “사전투표가 조작됐다”는 의견을 펴기도 한다. 최근에는 총선에서 패배한 민경욱 미래통합당 의원이 “함께 조사해 보자”며 ‘사전투표 조작설’에 힘을 싣기도 했다. 하지만 통계·미디어 전문가들은 총선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이러한 목소리들이 “비슷한 성향의 유권자들끼리 주로 소통하는 에코체임버 효과(echo chamber effect·반향실 효과)가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한다. ‘에코체임버 효과’는 소셜미디어에서 비슷한 성향의 시청자들만 모여 소통한 결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는 안 들리고, 자신들의 이야기만 증폭돼 진실인 것처럼 느껴지는 현상을 말한다.

‘에코체임버 효과’는 한국에서는 흔히 쓰이지 않는 용어지만 미국 등 서구에서는 이미 보편화된 용어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일종의 ‘확증편향’과 비슷하다. 특히 소셜미디어 알고리즘 자체가 자기가 검색하거나 주로 보는 콘텐츠를 추천하기 때문에 이런 확증편향을 부추길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 ‘에코체임버 효과’가 작용한 대표적인 공간이 유튜브다. 유튜브, 페이스북 등 글로벌 기업들의 소셜미디어에는 인공지능(AI)을 이용한 알고리즘이 적용돼 있다. 이 알고리즘은 시청자가 본 콘텐츠와 비슷한 내용의 콘텐츠를 다시 추천한다. 콘텐츠 시청 기록이 쌓일수록 소셜미디어는 시청자에게 더 유사한 성향의, 일종의 ‘맞춤 콘텐츠’를 제공한다. 한국은 정치·시사 유튜브 채널의 인기가 이례적으로 많은 나라로 평가된다. 4·15 총선에서 당선된 통합당 한 당선인은 “유튜브를 운영하는 구글 본사에서도 한국에서 유독 정치·시사 콘텐츠의 인기가 많다는 점을 흥미롭게 보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특히 보수 성향 유튜브 채널이 상대적으로 구독자, 조회수가 많고 채널도 많다. 지난 4월 22일 기준 유튜브 분석 사이트 ‘소셜러스’ 집계 결과에 따르면, 뉴스·이슈·정치 분야로 분류된 한국의 유튜브 채널(기성 언론사가 운영하는 뉴스 채널 제외) 중 구독자 수 상위 15개 채널 중 11개가 보수 성향으로 분류된다. 나머지 4개 채널 정도만이 진보 성향으로 분류된다.

이준석 미래통합당 최고위원도 “이번 선거에서 확증편향을 부추긴 대표적인 인물들이 유튜버”라고 주장한다. 이 위원은 요즘 페이스북 팔로어들과 설전을 치르고 있다. 이 위원은 게시물을 한 번 올리면 ‘좋아요’ 1000~2000개 정도는 쉽게 받는, 온라인상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다. 이따금 1만개 이상의 ‘좋아요’가 쌓이는 게시물도 있다. 이 위원은 4·15 총선 때 서울 노원병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이 위원은 전화통화에서 “이번 선거에서 유튜버들 말이 맞은 게 있느냐”며 “출마자 데리고 와서 ‘대세는 뒤집혔다’는 식의 제목 장사만 한 이들이 스스로 콘텐츠를 만들 능력이 없으니 이제는 사전조작설을 퍼뜨리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진영 내 가장 짠맛’을 대상으로 장사하는 유튜버들이 검증되지 않은 의혹을 양산하면서 아예 (보수)진영을 말아먹으려 들고 있다”며 “이 패턴을 이번에는 끊어야 한다”고 했다.

한국의 정치·시사 유튜브 채널 중 구독자 수가 약 123만명으로 가장 많은 ‘신의한수’의 경우 통합당 내에서는 기성 언론과 동등한 주요 인터뷰 대상 매체로 취급을 받는다. 서울 광진을에 출마했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 서울 강서갑에 출마했던 김태우 전 검찰수사관 등은 총선을 앞두고 이 채널에 출연해 유권자들에게 자신을 알리기도 했다. 실제로 통합당의 주요 행사 현장에는 ‘신의한수’ 외에도 수많은 정치·시사 유튜버들이 참가해 행사를 촬영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신의한수’를 포함한 정치·시사 유튜브 채널들은 대부분 채널 내에서 시청자들이 서로 채팅을 통해 소통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한다. 이 시청자들은 해당 유튜브 채널의 콘텐츠나 성향을 선호해 스스로 찾아온 이들이다. 정치·시사에 대한 시각이 비슷한 이들끼리 모여 소통하게 된다. 자신들은 ‘광장’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울림방’ 내에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같은 성향의 콘텐츠를 보는 이들끼리만 모이면 일반 여론과는 유리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구독자 상위 15개 중 11개가 보수 성향

구독자 11만명이 넘는 유튜브 채널 ‘호밀밭의 우원재’를 운영하는 우원재씨도 통합당의 총선 참패 요인 중 하나로 ‘에코체임버’를 거론했다. 우씨는 주간조선과의 전화통화에서 “특히 정치는 휘발성이 강한 주제라 에코체임버 효과가 강하게 작용한다”며 “여론이 극단화되고 국론이 더 분열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씨는 자유한국당 시절 뉴미디어 TF 단장, 당 부대변인을 지냈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는 통합당에서 비례 8번을 받았다가 후순위로 조정되면서 당선권에서 멀어지기도 했다.

우씨는 “보수 성향 뉴미디어 정치 콘텐츠들의 성향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전후로 달라졌다”고도 했다. 이전에는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하는 것처럼 학술적이고 점잖은 콘텐츠가 많았다면, 이후로는 자극적이고 과격한 콘텐츠가 많아졌다는 설명이다.

“박 전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보수진영 내 패배감과 절망감이 강해졌어요. 이런 상황에서 ‘정규재 TV’ 등이 주목받으면서 유튜브가 강력한 대안매체로 떠오르기 시작했죠. 점점 진영 내에서 소위 ‘사이다 발언’이라고 하는 자극적이고 휘발성 있는 콘텐츠들이 인기를 얻으면서 이른바 ‘쌍욕 유튜브’의 시대가 시작됐습니다. 그러면서 음모론이 횡행하고 ‘여론조사는 믿을 수 없다’ ‘재검표 하자’는 얘기가 나오죠.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몰려서 비슷한 얘기만 하니 우리가 보는 세상이 전부라고 믿게 되고 여론이 파편화되는 겁니다.”

정치·시사 유튜브를 즐겨 시청하는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경우 “기존 언론들이 편향되어 있어 보고 싶은 뉴스는 유튜브에서만 볼 수 있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현행법상 유튜버들은 언론과 같은 규제를 받지 않는다. 가짜뉴스나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유통되기 쉬운 구조다. 우원재씨는 “저도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유튜브는 엔터테인먼트다. 이미 나온 얘기에 양념을 치는 수준이지 이들이 주인은 아니다”라고 했다. ‘에코체임버’인 유튜브를 ‘공론장’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설명이다. 최진봉 성공회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유튜브를 통해 기존 지지층의 인기를 끌 수는 있겠지만 그 이상은 쉽지 않다”며 “오히려 분위기에 휩싸여 가짜뉴스나 막말이라도 내뱉는 순간, 중도층을 떠나보내는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고 말했다.

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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