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홍성국 당선자. 더불어민주당 이용우 당선자. 미래통합당 유경준 당선자. 미래한국당 윤창현 비례대표 당선자. ⓒphoto 뉴시스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홍성국 당선자. 더불어민주당 이용우 당선자. 미래통합당 유경준 당선자. 미래한국당 윤창현 비례대표 당선자. ⓒphoto 뉴시스

비례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17석)을 합쳐 180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의 압승과 비례용 위성정당까지 합쳐도 103석에 불과한 미래통합당의 완패로 4·15 총선이 끝났다. 이제 한 달 뒤인 5월 30일 대한민국 21대 국회가 문을 연다.

이런 여대야소 국회에서 유독 ‘경제통’의 존재감이 현저히 축소돼 눈길을 끈다. 20대와 비교해 21대 국회에서는 경제학자와 금융·투자 등 시장전문가, 경제부처 출신 정통 경제관료 등 이른바 경제통으로 부를 만한 의원 수가 급격히 줄었다. 경제전문가의 부족은 향후 4년 한국 경제가 걷게 될 험난한 앞길의 예고편이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합쳐 21대 국회의원 당선자 300명 중 각종 언론을 통해 ‘경제계 관련자’로 분류되고 있는 인물은 20여명가량이다. 하지만 이들 중 절대다수가 경제통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로, 대부분이 벤처창업자나 경영자로 얼굴을 알려온 사업가나 기업 관계자 출신 또는 노동계 인사들이다. 특히 비례대표 당선자의 경우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관련 협회, 중소기업 유관기관 관련자, 또 유명 경제단체 등 각종 이익집단에서 목소리를 높여왔던 이들이 절대다수다.

언론을 통해 전문성을 갖춘 인물인 것처럼 포장되고 있지만 정부의 예산 기획과 재정 관리 등 국가경제 운영을 견제할 만한 이론적 배경이나 실무능력을 찾아보기 힘든 게 사실이다. 특히 거시경제와 금융, 투자 관련 사안들에 대해 수준 높은 정책 제안이나 입법에 기여할 수 있을 만큼 경제 지식이나 전문성을 갖춘 인물을 찾기는 더욱 힘들다.

이런 관점에서 21대 국회의원 당선자 중 소수이기는 하지만 그나마 나름 경제 각 분야별로 이해도를 갖춘 인물들이 있긴 하다. 오랫동안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을 맡아 한국 자본시장 1세대 애널리스트로 유명한 홍성국 전 미래에셋대우 사장부터 보자. 더불어민주당에 경제전문가로 영입돼 미래통합당 현역 김중로 의원을 세종갑에서 제치고 국회에 입성했다.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원과 현대투자신탁 펀드매니저, 한국투자증권 채권운용본부장에 이어 카카오뱅크 공동대표까지 지낸 더불어민주당 이용우 당선자도 몇 안 되는 국회 내 새로운 경제전문가로 꼽히고 있다. 홍 전 사장과 이 전 공동대표 모두 경제 해석과 금융, 자본시장 등에 대한 이해력이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미래통합당에서는 한국노동연구원과 KDI를 거쳐 2017년까지 통계청장을 지냈고 현재 노동경제학회장을 맡고 있는 유경준 당선자가 21대 국회 새로운 경제전문가로 눈에 띈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부작용과 정부의 편향적 통계 활용에 대해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온 대표적인 경제학자다. 서초갑에서 국회에 입성한 KDI 국제정책대학원 윤희숙 교수 역시 미래통합당 내 새로운 경제전문가로 볼 수 있다.

이들 외에 더불어민주당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인 세계은행 출신 조정훈씨, 미래통합당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들어온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 정도가 새롭게 국회에 등장한 경제전문가들이다.

이들과 함께 재무관료 출신으로 경제부총리까지 지내며 5선에 성공한 더불어민주당 김진표 의원, 기재부 1차관과 국무조정실장을 지내고 20대에 이어 재선에 성공한 미래통합당 추경호 의원과 기재부 2차관에 이어 3선에 성공한 류성걸 의원 등 행시를 거쳐 정부에서 예산통과 재무통, 금융감독 관료로 활약했던 기존 경제전문가들도 있다.

결국 21대 국회 내 경제전문가 그룹은 앞서 언급한 채 10명도 안 되는 이들이 전부다. 지역구는 물론 분야별 전문성과 직능 대표 성격이 짙은 비례대표에서조차 경제전문가들이 배제됐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사실 4·15 총선을 통해 여의도 국회 입성을 꿈꿨던 정통 경제학자들과 금융·세계 경제에 밝은 자본시장전문가, 또 오랜 시간 국가 경제정책을 책임졌던 경제관료 등 경제전문가가 꽤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대부분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 등 여·야 각 정당의 후보 경선에서 패하거나 아예 공천 과정에서 배제돼 총선에 나서지도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여야 경제전문가들 험지로 내몰려 낙선

그나마 여·야 각 정당의 경선을 통과했거나 전략공천 등을 통해 총선에 뛰어들었던 소수의 경제전문가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특히 여당의 경우 총선을 앞두고 외부에서 영입한 경제전문가 상당수를 험지와 경합지로 꼽히던 지역에 집중 공천했다. 영국 옥스퍼드대 국제개발학 박사로, 한국인 최초로 아프리카개발은행(AfDB)에 들어가 선임이코노미스트와 세계은행(WB) 중국 담당 선임이코노미스트로 활동했던 최지은씨가 먼저 눈에 띈다. 최씨는 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이 경제전문가로 전략 영입한 인물로, 미래통합당 우세 지역인 이른바 낙동강벨트로 불리는 부산 북·강서을 지역구에 공천됐다. 하지만 검사 출신 현역 의원으로 올 1월 ‘불출마 선언’을 했다가 3월 이를 번복한 미래통합당 김도읍 후보에게 패해 여의도 입성이 좌절됐다.

기획예산처와 기획재정부에서 예산·재정전문가로 잔뼈가 굵은 정통 경제관료 출신 김용진 전 기재부 2차관도 마찬가지다. 김 전 차관은 지난해 11월 더불어민주당의 첫 번째 외부 영입 경제전문가로 당에 들어와 경기도 이천에서 출마했다. 그에 대해서는 기재부 등 경제관료들의 기대가 적지 않았다. 최근까지 여야의 최우선 영입 대상으로 꼽히면서도 좀처럼 공식석상에 등장하지 않았던 김동연 전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까지 김 전 차관의 유세 현장에 등장했을 정도다. 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지난 4월 14일 경기 이천에 나타난 김동연 전 장관은 “코로나19가 지나가면 무역과 투자 등이 막혀 세계 경제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경제전문가가 국회에서 역할을 할 수 있게 힘을 모아 달라”고 김 전 차관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수도권을 휩쓴 상황에서도 김 전 차관은 국토부 관료 출신 현역인 미래통합당 송석준 의원에 밀려 낙선했다. 경남 양산갑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섰던 이재영 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 역시 현역 의원인 미래한국당 윤영석 후보에게 참패했다.

예견됐던 국회 경제전문가 그룹 축소

야당인 미래통합당의 경제통 몰락 역시 다르지 않다. 미래통합당 내 경제전문가로 불리던 인사들도 기존 지역구가 아닌 새 지역에 배치돼 일찌감치 낙마 가능성이 높았다. 또 경제학자 출신 의원들의 불출마에도 이들을 대신할 만한 경제전문가 영입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선거 전부터 야당의 경제전문가 그룹 축소가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컸다.

미래통합당 내 경제전문가로 꼽혀온 이혜훈 의원의 낙선이 대표적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출신 이 의원은 이번 총선에서 2004년 17대 이후 3번 당선됐던 서초갑을 떠나 지역구를 동대문을로 옮겼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장경태 후보에 패했다. 미래통합당의 또 다른 경제통 이종구 의원도 같은 상황이다. 17대 이후 강남갑에서 3선을 한 이 의원은 정통 경제관료 출신으로, 이번 총선에서 경기도 광주을로 지역구를 옮겼지만 21대 국회 입성에 실패했다.

무소속으로 당선돼 20대 국회에 입성, 여의도 정가의 대표적인 경제통으로 불려온 미래통합당 유승민 의원은 이번 총선에 불출마했다. 그의 지역구인 대구 동구을에는 최측근 중 하나로 알려진 동구청장 출신 강대식씨가 당선됐지만 경제 전문성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21대 국회에서 경제통들이 쪼그라든 것과 관련해 오정근 한국ICT금융융합학회 회장은 “힘 있는 정치인들에게 정통 경제학자나 연구자들은 한마디로 (조직 동원이나 표 집결에 필요한) 힘을 갖지 못한 이들로 보일 것”이라며 “몇 년 전부터 이런 성향이 정치권에서 점점 강해지고 있다”고 했다. 오 회장은 “공부와 연구가 업(業)인 경제전문가들은 단체도 조직도 없고, 후원자나 계파도 없다 보니 정치권이 일단 외면하는 성향이 있다”며 “이들의 자리를 경제 지식과 이론적 배경이 없는 기업의 임원과 벤처인 등 사업가, 중소기업과 자영업·소상공인 협회 등의 조직 관계자들, 또 거대 경제단체 같은 이익집단 사람들이 마치 경제전문가인 것처럼 포장돼 다 가져가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조직과 표 동원력, 이미지 활용 등 정치인들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이익집단 사람들이 경제전문가로 포장돼 국회 내 경제인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경제정책들이 사회 전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점점 더 포퓰리즘적인 것들로 채워지고 있다”며 “공천 때부터 정통 경제인들이 배제된 성향이 짙은 21대 국회가 걱정스럽다”고 했다.

익명으로 취재에 응한 한 정당 관계자는 “여야 모두 지역구는 지도부 입김과 계파 간 영향력이, 비례는 이미지 활용이 가능한 인물이거나 조직과 표 동원력이 있는 이들로 채워졌다는 걸 부인하기 힘들다”며 “여·야 모두 경제가 중요하고 경제전문가가 필요하다고 말은 하지만 정작 이코노미스트들의 자리는 극히 적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총선은 20대 때보다도 정도가 더했다”며 “재정, 성장, 금융, 노동, 국제경제 등 정밀한 이슈를 다룰 만한 경제전문가들을 각 정당에서 찾아보기 힘든 게 현실”이라고 했다.

마이너스 추락 공포가 커진 경제성장률, 위험 수준의 재정건전성 악화 추세와 포퓰리즘에 끌려다니고 있는 재정정책, 대규모 자본이탈, 금리정책 실기론, 미·중 무역충돌과 한·중·일 경제마찰, 여기에 코로나19 사태까지 누가 봐도 한국 경제는 위기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국회 내 경제전문가들은 점점 더 위축되고 있다. 한국 경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이해 관계에 얽매임 없이 정책 제안과 입법에 나설 정통 경제전문가들을 찾아보기 힘들어진 게 여의도의 현실이다.

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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