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 ⓒphoto 뉴시스
지난 4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 ⓒphoto 뉴시스

총선에서 압승한 여당 일각에서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범여권이 국회선진화법을 무력화할 수 있는 의석인 180석 이상을 확보하면서 일부 의원들의 소신이 조금씩 고개를 드는 분위기다. 페이스북을 통해 국보법 폐지 의제를 가장 먼저 꺼내든 우희종 더불어시민당 공동대표는 “진보 시민단체들의 생각이자 내 개인적인 희망사항”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21대 국회 개원 직후부터 국보법을 둘러싼 여야 간 첨예한 대립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아직까지 당 차원에서의 국보법 폐지나 개정 움직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당 일각에서 군불을 지피는 분위기가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충청 지역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국보법은 너무나 야만적이고 법치주의에 어긋나기 때문에 폐지 의견을 여전히 갖고 있다. 일의 선후 완급을 따져서 처리해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또 다른 중진 의원 역시 “180석을 가져갔으니 처리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다음 국회 때 언급되지 않겠나”라고 설명했다.

“17대와 달리 21대, 여건 갖췄다”

다만 17대 국회 때 국보법 폐지를 시도했다가 역풍을 맞은 열린우리당 사례를 감안해 속도조절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당시 열린우리당은 152석으로 국회 과반의석을 차지했던 만큼 국보법 처리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야당인 한나라당의 극렬한 반대와 국보법 폐지에 대한 여당 내 의견이 갈리면서 법안 처리는 끝내 무산되고 말았다. 당시 여당은 국보법을 “완전폐지하자”는 의견과 “7조와 10조 등 일부 조항만을 부분개정하자”는 의견으로 분열되면서 힘을 모으지 못했다. 17대 국회에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를 맡았던 천정배 민생당 의원은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그때를 이렇게 기억했다.

“국회 자체가 동물 국회였다. 야당 의원들은 해당 법안 처리를 막기 위해 의회 문을 걸어 잠그고 몸으로 의장 단상 등을 점거했다. 당시 국회의장을 맡았던 김원기 의원은 우리와 생각이 조금 달랐다. 공식적인 의견 표명은 없었으나 내용적으로 폐지안을 그대로 처리하기 힘들다더라. 경호권을 발동해 야당 의원을 끌어내고 충분히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청와대 백 등을 동원해 그를 설득하려 했지만 이에 실패했던 것이 당시 상황이었다.”

하지만 21대 국회에선 이런 물리적 충돌이 되풀이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 천 의원의 설명이다. 2012년 국회선진화법 입법으로 야당 의원들의 반대가 예전만큼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게다가 현재 국회의장 후보로 거론되는 박병석 민주당 의원, 김진표 민주당 의원 모두 과거 열린우리당 출신 의원들로 국보법 폐지 필요성에 대해 함께 목소리를 내왔던 인사들이다. 천 의원은 “17대 국회 당시 정부 지지율이 낮았다면 지금은 완전 반대다. 높은 지지율이 여당의 정책 입법 활동 부담을 덜어주고도 있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걸림돌은 당 내부의 의견조율이란 지적이 있다. 실제로 과거 열린우리당은 국보법 폐지를 주장하다 부분개정으로 선회한 후 다시 폐지를 주장하면서 야당과의 합의에 차질을 빚었다. 당시 당 의장을 맡았던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은 지난 1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여야 협상은 순항했다. 근데 여당이 국가보안법 완전폐지를 주장하는 바람에 협상은 깨졌다”고 회고한 바 있다. 이를 두고 민주당 한 의원은 “전략이 필요하다. 17대 때는 폐지해야 한다는 소신으로만 밀어붙이다 보니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그대로 좌천된 것이다. 경험적으로 체득한 게 있기 때문에 이번엔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17대 국회 당시 열린우리당 국보법 폐지모임에 참여한 의원은 총 46명이다. 이 중 21대 국회에 입성한 의원만 13명에 이른다. 4·15 총선을 앞두고 국가보안법 폐지 필요성을 당 기조 등으로 앞세운 지역 정당, 후보도 적지 않다. 지난 3월 말 국가보안법철폐부산공동행동이 부산 지역 11개 정당에 국보법 관련 질의서를 보내 답을 회신받은 결과만 봐도, 미래통합당을 제외한 7개 야당과 민주당이 “국가보안법에 문제가 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철폐 혹은 존속강화, 부분개정 여부’ 등을 묻는 질문에 대해 “철폐돼야 한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21대 국회에서 국보법 폐지를 추진할 동력은 충분하다는 관측이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현재의 국가보안법을 개정하는 데에 긍정적 입장을 가지고 있다. 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이 국보법 개정을 시도했던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다. 국보법 폐지는 그가 있던 참여정부의 주요 국정과제로 다뤄졌다. 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인 2017년 대선후보 2차 TV토론회에서 국보법과 관련한 자신의 소신을 다음과 같이 밝히기도 했다.

“찬양, 고무 그런 조항은 개선해야 한다고 본다.” “폐지에 반대한 적 없다. 남북관계가 엄중하기 때문에 의견을 모을 수 있는 범위에서 개정하자는 거다.” “그 시기(17대 국회)에 국가보안법 7조만을 폐지하는 쪽으로 여야 의견이 모이기도 했는데 처리되지 못해 굉장히 아쉽게 생각한다.”

결국 국가보안법에 대해 비판적 시선을 내비친 것인데 그의 이런 견해는 변호사 시절 집필한 논문에 더 잘 나타난다. 1997년 문 대통령은 ‘부림사건과 국가보안법 제7조의 위헌성’이란 논문을 통해 “민주화를 염원했을 뿐인 수많은 시민들이 국보법의 칼날 아래 희생됐다. 국보법이 상시적으로 적용되면서 집시법과 긴급조치에 의한 처벌이 국보법에 의한 처벌로 대체됐다. 국보법 남용 현상을 두고 법률가들은 통탄을 금치 못했다”고 평가했다.

여론 역풍 우려도

정치권 안팎에선 이런 이유 등으로 현 정부와 여권이 결국 다음 국회에서 국보법 폐지·개정에 다시 손대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오는데, 여론을 고려했을 때 여권이 이를 추진하기까진 고심이 클 것이란 시선도 적지 않다. 코로나19의 여파 등으로 여론의 관심이 국보법에 있지 않은 데다 이 의제 자체가 이념 정쟁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도 이런 실수로 당시 정권 지지율을 떨어뜨린 바 있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시기 적절성 등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포스트 코로나19 시국에서 여타 경제 현안 등을 제쳐두고 국보법부터 꺼냈다간 공감도 못 얻고 무산될 수 있다. 지금의 국보법 논의는 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이슈도 아니다. 북한의 미사일 문제도 엄밀히 따지면 국보법과는 직접적인 연관을 짓기 힘들다”고 말했다. 김민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19대 국회 때처럼 광우병 쇠고기 수입 조치로 대규모 촛불시위 등 국민 반발이 일어난 꼴이 될 수 있다. ‘정부와 야당’이 아닌 ‘정부와 국민’의 대결 양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이다. 국민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민주당은 19대 국회 상황을 우려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향후 남북 대화, 경협 방안 마련 등 대북 안보 이슈가 거론될 때에야 국보법 논의 부담도 덜어낼 수 있다는 것이 이들 설명이다.

그래서인지 현재 민주당 내부에선 국보법 폐지 등과 관련해 먼저 의견 수렴에 나서는 의원은 없는 상황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국보법 폐지는 나중 일”이라고 공식적으로 선을 그었다. 이와 관련해 미래통합당의 한 당선인은 “민주당이 아직 당론을 정하지 않았고 우리도 마찬가지”라며 “다음 국회가 개원하고 장기적으로 지켜봐야 할 의제”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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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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