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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치
[2606호] 2020.05.04

비상(非常)이 평상(平常)된 미래통합당… 4년 동안 비대위원장만 3명

▲ 지난 4월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컨벤션센터에서 미래통합당 제1차 전국위원회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출입구 앞에서 일부 당원들이 김종인 비대위를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photo 남강호 조선일보 기자
미래통합당이 당 수습을 위한 실마리를 좀처럼 찾지 못하고 있다. 총선 패배 후 빠르게 전열을 정비해도 모자랄 판에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을 둘러싼 논란으로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미래통합당은 지난 4월 28일 오전 상임전국위원회를 통해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임기를 무기한으로 하는 안을 의결하고, 이를 바탕으로 오후에 열리는 전국위원회에서 ‘김종인 비대위 체제’를 의결하려고 했다. 하지만 오전 상임전국위원회가 정족수 미달로 열리지 못하면서, 반쪽짜리 비대위 체제만 전국위원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김종인 전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사실상 이를 거부하면서 장기간 표류가 불가피해졌다.
   
   이런 일련의 상황은 2016년 총선 이후의 데자뷔와 같다는 말이 나온다. 통합당 전신인 새누리당은 2016년 4월 총선에서 패배한 후 극심한 혼란에 빠져들었다. 당시 대표였던 김무성 의원이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으나 당은 책임공방에 휘말렸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급한 대로 원유철 당시 원내대표를 비대위원장으로 하는 비상대책위원회를 출범시키려 했으나, 친박계의 지원을 받으며 원유철 원내대표가 그대로 비대위원장에 취임하는 것에 대해 비박계의 반대가 거셌다. 결국 원유철 비대위원장 안은 없던 일이 되었고, 당 대표 대행만 맡는 것으로 합의했다.
   
   총선 후 약 20일이 지난 5월 3일에서야 정진석 의원이 원내대표가 됐고, 5월 10일 정 원내대표는 비상대책위원장을 겸임했다. 당시 당은 김황식 전 국무총리, 오세훈 전 서울특별시장 등에게 혁신위원장직을 제안하였으나 당사자들이 모두 고사했고, 결국 5월 15일 김용태 의원이 혁신위원장을 맡았다.
   
   
   2016년 총선 이후의 데자뷔
   
   5월 17일 당은 상임전국위원회와 전국위원회를 통해 비상대책위원회와 혁신위원회를 구성하고 의결하기로 했으나 의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무산됐다. 당시 새누리당의 상임전국위원회는 전체 인원 52명 중 27명 이상의 참석이 있어야 열릴 수 있었다. 하지만 상임전국위에 참석하기로 한 29명 중 13명이 연락두절이 되거나 갑자기 사정이 생겼다며 불참했다. 당시 사정을 잘 알고 있던 통합당의 한 3선 의원은 “친이계에 당 개혁을 맡기는 것에 반대한 친박계 의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전화를 돌려 회의에 참석하지 말라는 말을 전했다”고 했다.
   
   오후 전국위원회 역시 전체 인원 865명 중 363명만 참석하는 바람에 과반 정족수인 433명을 채우지 못해 결국 1시간 만에 무산됐다. 결국 김용태 의원은 스스로 혁신위원장직을 내려놨다. 이에 정진석 원내대표는 “친박계의 자폭 테러로 당이 공중분해됐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결국 총선 후 한 달이 지난 5월 26일 차기 전당대회가 끝날 때까지 새누리당을 이끌 혁신비대위의 수장으로 김희옥 전 동국대학교 총장이 내정됐다. 그리고 8월 9일 열린 전당대회에서 친박계인 이정현 의원이 당 대표에 선출됐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총선 패배의 원인이었던 계파갈등 문제를 수습과정에서도 해결하지 못하며 불씨를 남겨뒀고, 이것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이어졌다. 앞서 언급한 통합당 의원은 “결국 총선 때 수습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2017년 대선과 이번 총선까지 이어진 것”이라며 “당시 전철을 그대로 밟는다면 다음 대선에서도 승리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종인 비대위 불씨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심재철 당 대표 권한대행 등이 여전히 물밑 조율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판 극적으로 ‘김종인 비대위’가 출범한다고 해도 문제다. 리더십 타격을 입은 김 전 위원장이 ‘당을 근본적으로 갈아엎는’ 혁신을 추진하긴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다. 특히 김종인 비대위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를 반대하는 당 안팎의 목소리가 예상보다 거셌다는 점을 보면, 김 전 위원장이 요구하는 전권 등도 사실상 받아들여지기 어려워 보인다. 이 역시 2016년 가까스로 당 대표가 됐던 이정현 의원이 친박과 비박 모두의 공격을 받다가 3개월 만에 물러난 상황을 연상시킨다.
   
   
   당 중진과 초·재선 간 갈등
   
   다만 2016년과 2020년이 다른 점이 있다면 2016년에는 친박과 비박 간 계파갈등이 이어진 것이 수습이 어려워진 원인이었고, 이번에는 갈등 양상이 당 중진과 초·재선 간에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미래통합당 3선 이상 중진은 대부분 당 대표나 원내대표 후보군이다. 이들은 세대교체론을 들고나오는 김종인 전 위원장의 비대위원장 취임을 강하게 거부하고 있다. 중진 중에서는 심재철 권한대행이나 정진석 의원 정도가 ‘김종인 비대위’ 체제를 밀고 있다. 재선급이나 이번 초선을 통해 국회에 입성하는 초선 의원들은 대체로 김종인 체제를 반기는 모양새다.
   
   이렇게 중진과 초·재선 간 의견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이유는 김 전 위원장이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전권을 갖게 될 경우 추진하려는 개혁 방향 때문이다. 김 전 위원장은 비대위원장으로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면서부터 ‘젊은 비대위’를 꾸리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 전 위원장은 여러 차례 기자들에게 “원외에서 3040 세대를 2~3명 영입하고, 현역 의원도 초·재선 위주로 구성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 전 위원장은 차기 대선후보 역시 1970년대생 경제전문가를 내세워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김 전 위원장의 이런 바람 역시 기존 중진들의 반발에 막혀 그 날개조차 펴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새누리당은 2016년 총선 후 3번의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거쳤다. 2016년 4월 총선 후에는 김희옥 전 동국대 총장이 비대위원장을 맡았고, 2016년 12월 박 전 대통령 탄핵 직후에는 인명진 목사가 맡았다. 2018년 지방선거 후에는 다시 김병준 전 국민대 교수가 자리를 꿰찼다. 4년간 3번에 걸친 비대위원장을 임명했고, 48개월간 16개월이 비대위 체제로 운영됐다. 매번 비상을 외치며 혁신을 주장하던 제1보수정당은 매번 혁신에 실패하며 선거에 참패했다. 당 일각에서 비대위 무용론과 자강론이 나오는 이유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2016년 비상대책위원회을 꾸린 후 3번의 전국 단위 선거에서 모두 승리했다.
   
   현재의 지도부는 관성적으로 다시 4번째 비상등을 켜려 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까지 내몰렸다. 과연 일각의 주장처럼 비대위 체제가 망상에 불과한 것인지, 그렇다면 당은 내부적으로 수습할 능력이 있는지 미래통합당은 사실상 마지막 시험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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