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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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절박하냐의 문제다. 만약 미래통합당이 40대 중반의 여성을 대선에 낼 수 있다면 민주당과의 경쟁이 박 터질 것 같다. 많은 사람은 ‘눈’으로 생각한다. 눈이 직관적으로 주는 정보를 머리에 넣는다. ‘태극기부대’가 보통 사람들의 마음을 결코 얻을 수 없는 것도 같은 이유다.”

진보 경제학자이자 한국 사회 ‘세대담론’ 전문가인 우석훈(52) 박사에게 ‘보수의 세대교체’에 대해 인터뷰해 달라고 요청하자 그는 한숨부터 푹 쉬었다. “네….” 그는 지친 목소리로 인터뷰를 승낙했다. 최근 들어 그에게 “보수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지난 5월 5일 서울 평창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낸들 알겠느냐’면서도 지금 보수정당이 처한 위기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진보든 보수든 못하는 쪽(야당)이 그 사회의 기준이 된다. 보수가 어느 정도 잘하면, 진보도 그거보단 잘해야 한다며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근데 야당이 너무 못하면 그게 안 되니까 불안하다. 팔순 할아버지 데리고 혁신하겠다고 하는 게 혁신처럼 보이겠나. 서로 논리적으로 부딪치면서 해야 제3의 방안도 나올 수 있는 건데, 그런 맛이 없다. 한쪽이 너무 상대가 안 되니까 한쪽만 독주한다.”

마음 줄 곳 없이 고립되는 20대

우 박사가 그나마 보수에 희망(?)이 있다고 보는 건 20대 남성들이 보수화하고 있다는 이른바 ‘이남자’ 현상이다. 그는 이 현상을 ‘보수화’라고 단정 짓기는 아직 이르다면서도, 이런 트렌드가 금방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10대 남성으로 내려갈수록 그런 경향성이 더 강해지는데, 지금 10대가 20대가 되면 더 강화될 거다. 프랑스에서 경험한 바로는, 프랑스의 여성 사회진출 비율은 한국보다 훨씬 높다. 다만 한국처럼 빠르게 이뤄지지는 않았고, 일정한 시간을 가지고 합의했다. 반면에 한국은 그 속도가 너무 빨랐고, 문화적으로 조응할 수 있는 속도에 맞추지 못했다. 특히 고급 직종이라고 꼽히는 직업군에서 여성 강세가 더 두드러지니까 남성의 반발심도 커지는 것이다.”

그는 파리10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아 프랑스 사회에 대한 이해가 깊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 정부와 여당의 성평등 정책에 반발하는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는 ‘남성 기득권 사회는 586세대가 다 누려놓고, 왜 성평등의 책임을 우리에게 돌리나’라는 여론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 박사는 이에 대해 “무슨 무슨 ‘쿼터제’는 생겼는데, 아직 정책적으로 조정이 안 됐으니 당연히 불만을 가질 만하다”면서 “근데 젊은 남자들이 그러면 ‘한남충’이라고 욕먹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50대는 마초 경향이 강한 세대다. 20대가 보기엔 ‘너희보단 훨씬 나은 거 같은데 왜 우리한테만 난리야’ 하는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면서 “이것은 자연스러운 불만”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20대 남성들의 보수화가 보수정당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느냐는 다른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거기(미래통합당)는 더 이상해 보이거든. 지금 젊은 세대가 민주당이 싫다고 하는 건 이성적인 관점에서 판단한 거다. 반면 미래통합당은 문화적·미학적 관점에서 봤을 때 ‘저긴 무섭다’고 느낀다. 20대도 마음 줄 곳이 없어 고립되어 있는 거다.”

미래통합당 일각에서는 ‘830(1980년대 출생의 30대, 2000년대 학번) 세대교체론’을 주장하고 있다. 총선 참패 후 따로 꾸려진 미래통합당 청년비상대책위원회에서도 “보수의 얼굴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종인 전 선거대책위원장은 “1970년대생 경제통 대선 후보”를 들고나왔다. 하지만 이러한 세대교체론과 관련해 보수 정치권 내에서는 ‘인위적인 세대교체는 안 된다’ ‘젊다는 이유로 무조건 바꾸는 게 답은 아니다’라는 반발도 만만치 않다.

보이는 것부터 바뀌어야 변했다고 느낀다

“어렵겠지만, 지금 한국의 보수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 어딘가에 참하게 있던 재야의 고수가 어느 날 갑자기 나올 일이 있나. 그런 사람은 없다. 영국의 캐머런 전 총리도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 올라간 게 아니다. 보수당의 원로그룹들이 합심해서 캐머런을 밀어줬기에 가능했던 거다. 프랑스도 사르코지 전 대통령 때 30대 장관을 임명하고 흑인 여성을 문화부 장관에 앉혔다. 진보 쪽에서 해오던 걸 보수가 주도한 것인데, 일부러 선택한 게 아니라 그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중의 눈에는 일단 보이는 것이 바뀌어야 달라졌다고 느낀다. 조금이라도 잘생긴 사람, 믿음이 가는 사람, 젊은 사람이 나오면 좋겠다는 마음은 똑같다. 한편으로 이 문제는 한국 정치의 영원한 숙제다. 일부는 굉장히 늙은 사람도, 또 일부는 젊은 사람도 있는 등 스펙트럼이 넓을수록 좋은 건데 지금 국회에는 ‘50대 잘난 남성’이 너무 많다. 국회가 국민을 대표하는 공간이지, 잘난 사람 순위 매기는 곳이 아니지 않나.”

미래통합당의 세대교체는 선거에 참패한 뒤 갑자기 나온 구호가 아니다. 이미 자유한국당 시절 공천룰을 정할 때부터 청년을 우대해 세대교체를 하겠다고 공공연히 밝혔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공천을 받은 미래통합당 후보들의 면면은 세대교체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래서 최근 통합당에서 나오는 세대교체론 역시 위기가 닥치니 주술처럼 외우는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인 셈이다. ‘그래, 세대교체 당연히 해야지. 근데 나는 교체하지 말고’ 이런 거다. 모든 공직이나 선출직이 그렇지 않나. ‘다 알겠으니까 나까지는 하고 그 다음에 바꾸자’는 식이다. 민주당도 그런 딜레마에 오래 빠져 있었다. 지금 통합당의 지지율을 보면 답이 없어 보이지만, 민주당도 과거 문희상 비대위(2013년)나 박영선 비대위 시절(2014년)에 지지율이 15%까지 떨어졌던 적이 있었다. 지지율 낮은 거에 연연하지 말고 얼마나 합리적으로 바뀔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이번 총선에서 3040 유권자들의 표심은 압도적으로 민주당을 향했다. 현 정권에 대한 지지율도 여전히 높다. 한국갤럽이 전국 18세 이상 1000명을 상대로 4월 28~29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민주당과 통합당에 대한 연령별 지지율은 30대에서 52% 대 12%, 40대에서 52% 대 12%로 동일하게 나타났다. 40%포인트로 벌어진 지지율 격차는 모든 연령대 중 3040세대에서 가장 크게 나타난 수치였다.

“3040세대의 표심은 문화적인 코드가 강하게 작용했다. 미래통합당이 총선에서 3040의 지지를 받지 못한 이유는 ‘태극기부대’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봐야 한다. 지금의 3040은 다른 말로 ‘서태지 세대’다. 서태지라는 대중문화로 상징되던 신세대가 이제 사회의 기득권이 되어 가는데, 그 서태지 정서의 정반대에 있는 게 태극기부대다. 이 간극은 정책만으로 메우기가 어렵다. 문화적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여성들에게는 특히 더하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길거리에서 소리치는 모습을 피하고 싶어 할 수밖에 없다. 조금 더 나아 보이고 멋있어 보이고 워너비로 삼을 만한 사람이 나와야 하는데, 3040세대에게 지금의 보수는 ‘혐오’라는 프레임 안에 들어가 있다. 무조건 싫다는 것이다. 내가 보수 정치인이라고 해도 이 태극기부대와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갈 거냐 하는 문제는 쉽지 않을 것 같다.”

3040의 등산복 거부감

우 박사는 이 대목에서 흥미로운 설명을 덧붙였다. 이른바 ‘등산복 거부감’이다.

“과거 프랑스의 장 마리 르펭이 ‘국민전선’이라는 극우파를 만들었을 때는 나이별로 선호가 갈리지 않았다. 젊은 사람들 중 10~15%, 나이 많은 사람들 중 10~15% 정도로 일정하게 지지층이 나타났다.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 한때 한국에 아웃도어 의류 열풍이 불었던 적이 있다. 그 유행이 너무 좋았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등산복 입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지하철에서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게 바로 3040이다. 그래서 아웃도어 유행이 금방 죽어버린 거다. 돈을 쥐고 있는 3040이 싫어하니까. 그들은 단순히 태극기부대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세련된 것’과 대척점에 있는 것을 문화나 감성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청년 시절 민주화를 겪으며 진보화한 지금의 50대, 문화적으로 보수정당을 좋아하기 어렵다는 3040. 우 박사의 말대로라면 보수정당이 정책만으로 이들의 마음을 돌리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렇지만은 않다. 민주당도 대선에서 두 번 지고 다시 올라올 때 정책적인 고민을 많이 했다. 일본의 진보는 다시 올라오지 못하고, 한국 진보는 올라올 수 있던 이유가 정당 싱크탱크에 국고보조금을 주기 때문이다. 정권을 뺏겨도 국가에서 정책 연구는 할 수 있게 해주니까. 일본은 그런 제도가 없으니 한 번 정권을 뺏기면 정책 연구를 할 방법이 없어져 바닥으로 처박히기 쉽다. 반면 우리는 약자(야당)에게 불리하지 않게 되어 있다.”

이번 총선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긴급재난지원금이었다. 정부가 먼저 소득하위 70%에 100만원(4인가구 기준)을 지원하는 방안을 내놓자, 황교안 전 대표는 “전 국민에게 1인당 50만원씩 주자”고 주장했다. 황 전 대표의 ‘전 국민 지원’ 방안을 두고는 보수 정치권 내에서도 반발이 나왔다. ‘아무리 선거가 급해도 좌파 따라 포퓰리즘을 해선 안 된다’ ‘보수정당이 좌클릭한다고 뽑아주지 않는다’ 등의 비판이었다.

정책으로 승부하면 보수에도 기회가 온다

우 박사는 이에 대해 이런 견해를 밝혔다. “영국 보수당도 ‘사회적 경제’를 모멘텀으로 삼아서 정권을 잡자마자 이것을 하겠다고 공약했다. 진보의 고유물로 여겨졌던 정책들을 가져가서 ‘우리가 해볼게’ 했다. 그런 식으로 정책을 섞는다고 안 될 이유가 없다. 다만 한국의 보수가 그걸 하겠다는 방식이 녹슬었을 뿐이다. 홍준표 전 대표도 ‘반값 아파트 정책으로 호응을 많이 샀다’고 밝혀오지 않았나. 원래 정치가 그렇다. 집권을 위해 정책이 있는 거지, 정책을 위해 집권하는 게 아니다. 필요할 땐 남의 창이라도 빌려 쓰는 게 죽는 것보단 낫지 않나.”

우 박사는 최근 ‘당인리: 대정전 후 두 시간’이라는 장편소설을 냈다. 그가 쓴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3년 전부터 당인리 근처를 자주 오가면서 ‘당인리’라는 제목부터 구상했다고 한다. 전국에 대정전이 벌어지자 당인리 발전소의 사람들이 해결에 나선다는 내용이다. 평소 그의 글처럼 쉽게 잘 읽히면서 그 속에 한국 사회에 대한 통찰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원래 인터뷰를 잘 안 하려고 하는데 책 나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작가는 저자세가 될 수밖에 없다”며 웃었다. 이미 한국에서 유명한 작가지만, 직접 쓴 소설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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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승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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