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총선 직후 야당은 김종인발(發) ‘40대 기수론’으로 시끄러웠다. 김종인 전 미래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1970년대에 출생하고 비전과 능력을 갖춘 사람이 국가적 지도자로 부상했으면 한다”며 “40대 경제통 대선후보를 발굴하겠다”는 발언 때문이었다. 야당이 시대 변화를 읽지 못해 유권자에게 외면을 받은 게 참패 원인이고, 세대교체를 통해 당 이미지를 바꾸지 않으면 앞으로도 가망이 없다는 게 ‘40대 기수론’의 배경이다. 실제로 지상파 방송3사의 총선 출구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 득표율 차가 40대(64% 대 27%)에서 37%포인트에 달했다. 20대(56% 대 32%), 30대(61% 대 30%), 50대(49% 대 42%), 60대 이상(33% 대 60%) 등에 비해 민주당 지지가 가장 높았다.

특히 497세대(40대·1990년대 학번·1970년대생)의 투표 성향은 나이가 들면서 진보 쪽으로 더 쏠리고 있다. 40대는 18년 전 20대였던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 지지율이 62%로 이회창 후보(32%)에 비해 크게 높았다. 그런데 올해 총선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64%로 2002년 대선 때 노 후보 지지율보다 더 높아졌다. 20대 약관(弱冠)의 나이에서 40대 불혹(不惑)으로 접어든 뒤에도 정치 성향이 진보 쪽으로 더 기울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최근 한국갤럽 조사에서도 40대는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가장 높았다. 지난 5월 6~7일 전국 성인 1000명 대상 갤럽조사에서 문 대통령 지지율은 40대(85%), 30대(77%), 50대(68%), 20대(66%), 60대 이상(64%) 순이었다. 이에 비해 지지 정당을 묻는 항목에서 40대의 통합당 지지율은 7%에 불과했다.

이른바 ‘진보 세대’인 40대가 정치 지형을 뒤흔들 것이란 전망은 이들이 30대였던 10여년 전부터 여권에서 나온 적이 있다. 2011년에 출간된 ‘진보 세대가 지배한다’의 저자 유창오 민주당 대표실 부실장은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1987년 이후 지속돼온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영호남의 지역 구도가 세대 구도로 바뀌고 있다”며 “세대 구도 형성에 따라 진보 진영의 주도권이 30대 연령층으로 이전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 이른바 진보 진영의 대주주는 호남이었고 실질적으로 흐름을 결정하고 주도했지만, 이제 그 역할을 30대가 하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20대였던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에 이어 30대였던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전폭적으로 밀었고, 올해 총선에서도 민주당의 압승에 크게 기여했다.

40대는 각종 정치 이슈에서 여야(與野)가 맞붙을 때에도 여권 쪽의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지난해 8월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의 적절성 여부를 묻는 갤럽조사에서 부정 평가가 더 높았던 다른 연령층과는 달리 40대에서만 ‘적절하다’(45%)가 ‘부적절하다’(42%)보다 높았다. 당시 한·일 분쟁과 관련해 정부가 ‘잘하고 있다’는 응답도 40대에서 69%로 가장 높았다. ‘한·일전’ 프레임으로 총선을 치르려던 여권의 전략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2018년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이후엔 한반도 비핵화·종전선언·평화협정 등 합의 사항을 ‘북한이 잘 지킬 것’이란 견해도 전체 응답자 평균은 38%에 그쳤지만 40대에선 51%로 과반수였다. 지난 4월 리서치앤리서치 조사에선 전체 응답자의 다수(55%)가 향후 경제 정책에서 ‘분배보다 성장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했지만, 40대는 다수(52%)가 ‘성장보다 분배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했다. 여권의 가장 견고한 지지층인 40대가 정부 정책의 방향타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40대가 분배와 평화 등 진보의 가치에 끌리는 이유는 이들의 성장 배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전교조 교육을 받은 40대는 반공교육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며 “출생률이 높은 시기에 태어나 치열한 경쟁을 뚫고 대학에 입학했고, 사회 진출 시기엔 IMF 외환위기로 고통을 겪었으며 그 이후에도 계층 상승의 사다리에 올라타지 못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고 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해 9월 한 칼럼에서 “40대는 386세대와 2030세대 사이에 놓인, 앞과 뒤가 다 막혀 있는 ‘낀낀세대’”라고 했다. ‘낀낀세대’는 끼여 있는 강도가 그만큼 강하다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다. 일찌감치 정치·경제적 기득권층에 편입된 베이비부머 세대와 할 말을 다 하는 밀레니얼 세대 사이에 끼여 있어 그 압박감이 강하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40대는 1997년 외환위기로 큰 충격을 받았다”며 “외환위기를 계기로 성립된 97년 체제는 개인주의와 연관성이 높은 신자유주의를 경제 원리로 삼았지만, 시장에서 개인의 경쟁력을 특권화하는 ‘시장적 개인주의’는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압박을 강제했다”고 했다.

40대에서 ‘나이가 들면 보수화한다’는 연령효과(age effect)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선 “지금의 40대는 베이비붐 세대 등이 40대 때 누렸던 사회·경제적 지위에 오르지 못한 것의 영향이 크다”는 견해가 있다.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40대는 중년의 나이로 접어들었어도 고도성장의 과실을 누렸던 과거의 위 세대와 달리 다수가 기득권층으로 편입되지 못했기 때문에 정치 성향도 보수로 바뀌지 않고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40대가 20대 때인 2002년 대선에서 전폭적으로 밀어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아직도 강하다”며 “이들은 50대가 돼도 지금의 정서를 그대로 지니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4·15 총선에서 궤멸 수준으로 참패한 보수 야당이 진보 세대인 40대를 연구하지 않고 이들의 마음을 사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각종 선거에서 승리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40대는 다른 연령층보다 정치 관심도가 높고 투표율도 높아지고 있다”며 “중년에 접어든 40대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정치 지형이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냉전 이후 청년기를 보낸 40대는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 않은 중도층도 많다”며 “올해 총선에서 40대 중도층의 대다수가 진보 여당에 쏠린 이유는 지난 정부에서 국정농단 논란으로 촉발된 보수 야당의 ‘무능’과 관련해 불신과 비호감이 크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40대 중도층은 합리적이고 미래지향적이기 때문에 보수 야당도 유능하고 호감 가는 정당으로 바뀐다면 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며 “40대의 생애 주기에 맞는 생활밀착형 정책을 개발하고 이들의 불안과 불만을 해소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홍영림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