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7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왼쪽)과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민주당 중앙당사에서 제21대 국회 노동존중실천단 국회의원 후보 위촉장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3월 27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왼쪽)과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민주당 중앙당사에서 제21대 국회 노동존중실천단 국회의원 후보 위촉장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5월 28일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장은 같은 당 소속의 국회의원 당선인 40여명과 함께 서울 영등포구 한국노총회관을 찾았다. 한국노총이 주최한 ‘노동존중실천 국회의원단’ 당선자 초청 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이 위원장과 함께 참석한 당선인들은 모두 지난 총선을 앞두고 한국노총이 ‘노동존중실천 국회의원 후보’로 위촉한 이들이었다. 여기에는 한국노총 산하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공공노련)이 지지 선언한 후보 20여명도 포함됐다. 공공노련은 전국전력노동조합과 전국공기업연맹이 통합한 한국노총 산하의 노동조합이다. 공기업 및 공공부문의 62개 노조, 8만 조합원이 가입해 있다.

공공노련의 박해철 위원장은 민주당 전국노동위원장이기도 하다. 박 위원장은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지명직 최고위원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일련의 모습들은 한국노총이 여당에 가지고 있는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잘 보여준다. 여당 내에서는 “친문이라고 불리는 세력을 빼면 한국노총 입김이 가장 세다”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올 정도다.

한국노총이 민주당 내에서 영향력을 키워가기 시작한 것은 2011년 민주당과 시민통합당, 한국노총 일부가 통합한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민주당과 시민통합당이 당 대 당으로 통합할 때 한국노총 주류 인사들이 여기에 함께 참여했다. 시민통합당의 경우 소멸시효를 정한 정당이기 때문에 통합 뒤 사라졌지만 한국노총은 당이 아니기 때문에 통합된 뒤에도 조직이 남았다. 이에 대해 민주당 한 당직자는 “당시 한국노총의 주류가 민주당에 들어왔지만 한국노총 조직은 존속했다”고 말했다. 민주당과 한국노총의 관계를 잘 아는 한 인사는 “정당과 노동단체가 물리적으로는 통합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는 통합이 되지 않았지만 내용적으로는 통합이 된 것”이라며 “노총이라는 별도의 조직이 있기 때문에 선거 때는 확장된 그림을 그리기에 유리하도록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즉 한국노총 주류가 당에 흡수되면서도 여전히 당 밖에 조직이 남아 있기 때문에 양측이 공생하면서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진 셈이다.

2011년 한국노총 주류 민주당에 흡수

실제로 이후부터 민주당과 한국노총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일례로 이번 총선에 민주당 후보로 당선된 이수진 의원(비례대표)은 박해철 위원장보다 앞서 민주당 전국노동위원장을 맡았었다. 이후 민주당의 지명직 최고위원이 됐는데, 이 시기 한국노총 산하의 의료노련 위원장을 겸하고 있었다. 20대 총선에서 당선된 이용득 전 의원(비례대표)도 마찬가지다. 이 전 의원 역시 민주당에서 지명직 최고위원을 지냈고, 비례대표로 당선돼 20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결과적으로 보면 민주당이 공천하는 비례대표 의원 중 1명은 반드시 한국노총이 가져가는 셈이다.

한국노총이 민주당 의사결정 구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더 크다. 민주당은 2011년 만들어진 민주통합당 시절부터 노동부문 정책대의원을 두고 있다. 노동부문 정책대의원은 당의 전국대의원과 지위가 같다. 대의원은 당 대표를 포함한 최고위원을 선출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노동부문 정책대의원은 당 전체 대의원 중 20% 정도를 차지하는데 대부분 한국노총 출신이다. 주식회사로 비유하면 한국노총에서 당 전국노동위원장을 맡으면서 20%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셈이다.

민주당의 한국노총 몫 최고위원은 지명직이다. 일반 최고위원은 선출직이라 선거를 통해 대의원들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반면 한국노총 몫 최고위원은 지명직이라 지지가 필요 없다. 쉽게 말해 한국노총은 지명직 최고위원 한 명을 매 지도부 때마다 보장받는 것이다. 한국노총 출신 최고위원이나 전국노동위원장은 총선이 치러지면 비례대표를 통해 원내에 입성하기도 하고, 지역구에 공천을 받기도 한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한국노총으로부터 어떤 대가를 받을까. 결과적으로 민주당 입장에서는 당원을 늘리는 데 한국노총이 큰 기여를 한다는 것이 사정을 잘 아는 이들의 설명이다. 민주당 한 당직자는 “민주당 입장에서 당원을 늘리기 가장 좋은 곳이 한국노총”이라며 “당은 당원이 필요하고 노총은 자리가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떤 계약서도 쓰지 않았지만 서로 윈윈이 이뤄지는 카르텔이 유지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노총을 통해 입당한 당원들 중 일부는 전국노동위원장을 통해 노동부문 정책대의원이 되고, 이들이 민주당 내 한국노총의 지분을 유지하는 것이다.

“한국노총이 민주당의 최대주주”

자연히 민주당에서 노동부문 최고위원과 전국노동위원장 등의 요인들은 산별노조를 순회방문하는 것이 주 업무가 된다. 노동부문 최고위원과 전국노동위원장은 산별노조 위원장들이 가입시킨 당원 입당원서를 받아오는 게 가장 큰 임무라고 한다. 한 당직자는 “물론 ‘죽지 않고 퇴근할 권리’ 등 노동부문 성명을 내는 것도 노동부문 주요 인물들에게 중요한 업무지만, 한국노총에 가입한 사업장을 순회하면서 산별노조 위원장이 가입시킨 입당원서를 모아오지 않으면 민주당 내에서 세력 유지가 안 되는 것”이라고 했다.

산별노조 위원장이 정당 당직을 겸하는 것이 불법은 아니다. 다만 정당 정책과 노조 정책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이해충돌 현상이 발생한다. 지난해 7월 총파업 직전까지 갔던 한국노총 산하 우정노조 파업계획이 대표적이다. 당시 우정본부는 올해 예상 적자가 2000억원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정규직 증원은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우정노조는 집배원 인력 2000명 증원과 주5일제 시행 등을 요구했다.

당시 조정식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우정노조 등 국민 생활에 밀접한 서비스 분야 비정규직 노조 파업이 예고돼 있어 국민들의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고 우정노조를 비판하기도 했다. 당시 노조와 사업본부가 팽팽히 대립하면서 총파업 직전까지 치달았지만, 파업 전날 우정노조가 900여명 증원과 농어촌 단계적 주5일제 시행이라는 정부안을 받아들이면서 총파업은 철회됐다. 민주당 한 당직자는 “일반적으로 정당, 노동단체, NGO에서 위원장급 직함을 겸직하는 것은 자신의 이익에는 부합할지 모르겠으나 우리 사회 전반의 균형 및 견제에는 부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상대적으로 입지 약해

양대 노총 중 다른 한 축인 민주노총의 민주당 내 지위는 한국노총에 비해 훨씬 못 미친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민주노총은 지난해 12월 기준 조합원수 96만8000명으로 93만3000명인 한국노총을 사상 처음 역전한 바 있다. 하지만 조직 규모나 역사 면에서 민주노총은 한국노총에 비해 열세다. 특히 민주당 내에서 양대 노총의 입지는 다르다.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인 이석행 위원장은 2012년 민주당에서 전국노동위원장을 했지만 1년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지난 총선에서도 민주노총은 정의당을 지지했고 한국노총은 민주당을 지지했다. 민주당과 한국노총은 지난 총선을 앞두고 공동선대본부를 결성하기도 했다.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 추진, 정리해고 요건 강화 등 재계가 반대해온 친노동 정책이 대거 포함된 총선 공약도 발표한 바 있다.

사실 이런 움직임은 집권여당인 민주당만의 얘기라고 볼 수는 없다. 한국노총은 일반적으로 산하 산별노조별로 성향이 다른 경우가 많다. 지난 총선에서도 경남 창원 성산구에서는 한국노총이 미래통합당 소속인 최응식 후보를 지지했다. 2000년 이후 한국노총 위원장들 중 미래통합당(자유한국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이 된 사람도 많다. 20대 장석춘(구미을)·문진국(비례대표) 의원이 한국노총 위원장 출신이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당선된 임이자 의원도 한국노총 부위원장 출신이고, 20대 때 원내대표를 지냈던 김성태 전 의원도 한국노총 사무총장 출신이다.

하지만 이들은 전·현직이 개별적으로 나가서 입당한 ‘개별 결합’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반면 민주당과 한국노총은 개별 결합이 아니라 ‘조직적 결합’이라고 볼 수 있다. 한 관계자는 “쉽게 말하면 한국노총은 조합원에게 입당원서를 제시하는 식으로 민주당이 당원을 쉽게 모집하도록 해 주고, 대신 자리를 보장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역학관계를 잘 아는 인사는 “물론 한국노총과 민주당이 전혀 이견이 없지는 않다”면서도 “하지만 중요한 건 한국노총이 민주당의 최대주주라는 것이고, 서로 계약서를 쓴 건 아니지만 카르텔을 깨서 이익이 될 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다”라고 했다.

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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