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호 여사 1주기 추도식이 열린 지난 6월 10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묘역에서 권노갑 김대중기념사업회 이사장이 헌화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이희호 여사 1주기 추도식이 열린 지난 6월 10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묘역에서 권노갑 김대중기념사업회 이사장이 헌화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 김홍업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과 김홍걸 더불어민주당 의원 간 유산다툼이 진실게임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양측은 주간조선 첫 보도(2020년 6월 1일 자 커버스토리 ‘DJ 두 아들 40억 재산 싸움’) 후 언론 인터뷰를 통해 각각의 입장을 전한 바 있는데 완전히 상반된 이야기를 했다. 김 이사장은 한국경제와의 인터뷰를 통해 “(김 의원이) 이렇게 뒤통수를 때릴지 몰랐다. 당시에는 합의에 다 동의해놓고 법의 맹점을 이용해 유언을 어기고 유산을 강취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김 의원은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내막에 대해 해명을 속 시원하게 해버리면 제가 잘못한 부분이 없고 법을 위반한 것도 없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겠지만 결국은 집안에 누가 된다”라고 반박했다. 두 사람은 지난 6월 10일 열린 고 이희호 여사 1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말 한마디 주고받지 않을 정도로 감정의 골이 깊어진 상황이다.

결국 두 사람의 유산다툼은 법원에서 판가름이 나게 됐다. 이런 가운데 권노갑 전 의원이 이번 소송의 키를 쥐고 있다는 전망이 법조계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실제로 권 전 의원은 두 사람 소송과 관련해 두 장의 사실확인서를 법원에 제출하면서 분쟁의 중심에 선 것으로 확인됐다. 몇몇 언론에서 이번 다툼이 권 전 의원을 비롯한 동교동계 인사들과 김홍걸 의원 간의 갈등에서 비롯됐다고 해석하는 것도 바로 이 부분 때문이다.

김홍걸 “권 전 의원 확인서 자체가 허위”

취재를 종합하면 김홍업 이사장은 법원에 동교동 사저 가처분과 관련한 서류를 제출할 당시 권노갑 전 의원 명의의 사실확인서를 함께 냈다. 김 이사장이 지난 4월 28일 낸 사실확인서에서 권 전 의원은 “김홍걸 의원이 두 차례나 찾아와 본인 자택에서 면담을 가졌고, 이 자리에서 고 이희호 여사의 유언장과 유족들의 확인서 내용대로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상금은 김대중기념사업회에 증여하고, 동교동 자택을 공유재산으로 하여 김대중·이희호 기념관으로 사용하겠다는 약속을 두 차례에 걸쳐 했다”라고 말했다. 김 이사장 측에 다소 유리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사실확인서에 대해 김 의원 측이 권 전 의원의 건강 문제를 공격하는 식으로 반박하면서 권 전 의원과 김 의원 간의 다툼으로 확전되는 분위기다.

김 의원 측은 지난 5월 13일 “권 전 의원의 사실확인서 자체가 허위”라며 법원에 반박서류를 제출했다. 김 의원은 허위의 근거로 권 전 의원의 건강 상태를 의심하고 있다. 김 의원은 이 문서에서 “채무자(김홍걸)가 채권자(김홍업)와 분쟁 중 제3자인 권노갑을 찾아가 채무자에게 불리한 말을 전하였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권노갑 또한 92세로 현재 이 사건 분쟁에 대한 이해 자체를 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권노갑이 실제 서명을 하였는지 알 수 없고, 서명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서명하였을 것으로 사료된다”라며 “오히려 (나는) 권 전 의원에게 찾아가 허위주장을 통해 집안에 분란이 생기지 않게 해달라며 강력하게 경고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이와는 별도로 권 전 의원 측에 “본인(권노갑 전 의원)은 고 이희호 여사님의 유언(확인서 포함)과 관련하여 상속인 김홍걸 및 그 형제인 김홍일, 김홍업을 포함한 가족분들에게 어떠한 권리가 없을 뿐만 아니라 권리행사를 하지 않을 것을 확인한다”는 내용의 확인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권 전 의원은 여기에 서명하지 않았다.

김홍업 이사장은 이와 관련해 “동교동 사저를 유언대로 김대중기념사업회가 관리하도록 해달라고 가처분소송을 냈더니 김 의원 측에서 (김대중기념사업회) 이사장인 권노갑 고문이 나이가 많아서 제대로 판단을 할 수 없다는 식으로 답변서를 냈더라. 그 답변서를 보고 권노갑 고문이 충격을 받았다”라고 언론에 말한 바 있다.

권 전 의원은 김홍걸 의원이 반박서류를 법원에 제출한 후인 지난 5월 18일 “4월 제출한 사실확인서가 사실임을 다시 분명하게 확인한다”는 내용이 담긴 또 한 장의 사실확인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권 전 의원은 두 번째 사실확인서에서 “김홍걸은 본인의 나이가 92세이기 때문에 사실판단을 잘못했다는 취지의 모욕적 언사로 자신이 약속한 말을 도리어 부정하고, 심지어 본인의 서명까지 의심하는 등 거짓말을 하고 있다”라고 반박했다. 권 전 의원은 또한 “김홍걸의 주장대로 그가 사심 없이 동교동 자택을 김대중·이희호 기념관으로 하려고 한다면 이희호 여사 유언장과 유족 합의서대로 집행하면 되는데, 굳이 유언장을 부정하고 동교동 집을 자기 소유로 해서 자기 주도로 하겠다는 것이 의심스럽다”라며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상금을 김대중기념사업회에 기증한다는 말은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권 전 의원은 또한 김 의원이 인출해간 노벨평화상 상금 8억원의 용처에 대해서도 확인서를 통해 언급하고 있다. 김 의원은 한겨레와의 인터뷰 이후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6월 안에 노벨평화상 8억원의 행방에 대해서도 설명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권노갑 “홍걸이가 나한테 경고할 위치 아냐”

결국 양측의 주장을 따져보면 권 전 의원의 ‘건강 문제’가 예상 밖의 변수로 떠오른 셈이다. 이에 대해 권 전 의원은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일단 유산다툼과 관련한 내용은 당사자나 김성재 전 장관 등에게 듣는 게 가장 정확하다”라며 “다만 김홍걸이 법원에 (내 주장이 허위라는) 주장을 했다는 얘기를 변호사한테 들었는데 그건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말했다. 그는 “이희호 여사의 유언장이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으며 법원에 낸 사실확인서는 변호사가 작성한 것을 내가 읽어보고 직접 사인했다”라고 말했다. 김 의원이 ‘집안 분란이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며 권 전 의원에게 강력하게 경고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홍걸이가 나한테 경고할 위치에 있지 않다”라고 잘라 말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양측의 주장이 워낙 엇갈리는 만큼 권 전 의원이 법원에 제출한 사실확인서에 대해 재판부가 얼마나 그 효력을 인정하느냐에 따라 판결이 다르게 나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 민법 전문 변호사는 “김 의원이 변호사를 통해 법원에 낸 자료들을 보면 김 의원은 김 이사장 측 자료들 중 대부분이 법적효력이 없다거나 허위라고 주장하는 모양새”라며 “이런 상황에서 권 전 의원이 법원에 낸 사실확인서의 효력이 인정받는다면 다른 자료들의 신빙성도 인정받을 가능성이 있다”라며 “하지만 이희호 여사 유언장의 효력 등 다른 본질적인 문제가 남아 있는 만큼 사실확인서가 유산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지는 재판부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박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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