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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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9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 있는 제주도 서울사무소에서 만난 원희룡 제주지사는 “원희룡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라며 인터뷰에 응했다. 원 지사는 이미 2022년 대권 도전 의사를 밝힌 후 보수 후보로 선택받기 위해 뛰고 있다. 그는 자신감도 있어 보였다. “여당 유력 대선후보인 이낙연 의원과 붙으면 이길 수 있겠냐”는 질문을 던지자 “선택은 국민이 하는 것인데, 상대가 누구더라도 보수의 역동성을 극대화해 가장 치열하게 도전자로서 붙을 것이다. 야성을 회복해 가장 치열한 2년이 되도록 하겠다”라며 의지를 다졌다. 미래통합당 대선후보들의 지지율이 낮은 이유를 묻자, “얼마나 단단히 준비해서 일어서느냐에 따라 승부가 결정된다. 우리가 단단히 준비를 하면, 여론은 요동을 칠 것이다. 아니 요동을 만들어 내겠다”고 답했다.

“한국의 케네디 되고 싶다”

그는 강한 권력의지도 드러냈는데, 특히 다음 문답에서 그랬다.

- 한국의 케네디가 되고 싶나, 아니면 제3의 길을 제시한 영국의 토니 블레어가 좋나.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미국 케네디가 좋겠다. 케네디는 쿠바 위기에서 나라를 구했다. 반면 영국 토니 블레어는 노동당을 재건해 집권에 성공했다. 우리 당을 바꿔야 하는 것은 국가의 위기를 구하기 위한 첫 단계이다.”

- 대선후보로 존재감이 없다는 비판이 있는데 어떤 생각인가. “국회와 떨어져 있었다. 시기적으로도 그랬고, 여건이 활동하기 어려웠다. 앞으로는 다를 것이다. 이전의 원희룡은 잊어라. 제주도 출신이라 오히려 특정 지역에 편중되지 않고 지역 문제에서 자유롭다.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경력이 있어서 이념의 포위망을 뚫어낼 수도 있다.”

- 대선후보로 어떤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나. “제주도 가난한 무학 농민의 아들이지만 기회균등과 성취의 사다리를 온몸으로 증명했다. 20대를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내가 36살에 보수정당인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정치활동 20년 동안 보수 혁신을 줄기차게 외쳐왔다. 그래서 국민들은 개혁보수, 소장파라는 이름을 주셨다. 빈곤을 극복하고, 민주화에 헌신했으며, 정의로운 마음을 지켜온 삶 자체가 지역과 세대, 계층과 이념의 포위망을 뚫어낼 수 있음을 인정받는 것이라고 본다. 정치를 알고 선거에서 이겨왔고, 도지사직이라는 행정을 통해 서민과 호흡하고 미래를 준비했다. 무엇보다 담대한 보수의 혁신 DNA를 일깨울 수 있다.”

- 대권주자로서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내 안의 모든 것을 보여주겠다. 없는데 남의 것을 빌려서 흉내 내지는 않을 것이다.”

“보수 유니폼 입고 승리”

이날 오전 10시 원 지사는 국회에서 열린 ‘대한민국 미래혁신포럼’ 행사 특강에서 “보수 유니폼을 입고 승리하겠다”라며 대선 출마 의지를 또 한 번 분명히 했다. 원 지사에게는 이날 행사가 갖는 정치적 의미가 작지 않았다. 그에게 대권으로 가는 길을 열어 주기 위해 판을 깔아준 행사로 보였다. 실제 원 지사를 초청한 미래통합당 장제원 의원은 특강 후 “(원 지사가) 보수 세력의 대선후보감으로 손색이 없다”라며 “총선 참패 이후 기댈 곳이 없어 쓸쓸히 돌아누워 있던 보수 세력을 흔들어 깨웠다”라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적었다.

이날 인터뷰에서는 이 특강 발언에 대한 보충 설명도 많았다. 그는 궁극적으로 자신이 왜 통합당 대선후보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정당성을 설득시키려 했다.

원 지사의 이날 특강 발언 중에서는 “용병에 의한 승리가 아니라 우리에 의한 승리”라는 대목이 유독 보도가 많이 되었다. 사실 통합당 대선주자들의 지지율이 낮아 결국 대선후보도 외부에서 영입하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팽배한 상황에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을 ‘용병’으로 비유하자 원 지사가 김 위원장과 각을 세우려 한 것으로 해석됐다. 이러한 발언에 대해 김 위원장은 “그 사람 얘기한 것에 대해 내가 굳이 신경 쓸 게 뭐가 있겠나”라고 반응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러나 막상 원 지사에게 이 발언의 진의를 물어보니 언론의 해석과는 많이 달랐다. 대체로 김 위원장이 이야기하는 방향에는 동의하지만, 당내에서 과거부터 개혁을 주장했던 자신도 역할을 하고 싶다는 취지였다.

- 김 위원장 영입으로 인해 당을 스스로 자강하지 못하고 외부에 맡겼다는 비판이 있다. “불가피했다고 본다. 김 위원장은 위기를 파악하고 이를 뛰어넘어 주도권을 쥐는 방법을 알고 있다. 현대사를 관통해 오면서 이러한 능력을 검증받았고 시대를 짚어내는 메시지 능력과 감각은 존경받을 수준이다.”

- 김 위원장이 킹메이커로 나서지 않을까. “억지로 되지도 않을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지는 못한다. 될 사람을 떨어지지 않게 만드는 것이 킹메이커다. 국가 위기의 시대에 자질을 갖춘 준비된 리더십이 나타나면 좋은 것이다. 국민으로부터 수권능력에서 낙제점을 받았고, 선거에 인물을 내세우고 메시지를 세우는 정책능력도 잃어버린 것이 우리 당의 모습이다. 하루빨리 선거를 잘 치를 수 있고 국가를 책임질 수 있는 당으로 만드는 것이 김 위원장과 우리의 공통 목표다. 나의 목표도 같다.”

원 지사는 현재 정치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기본소득에 대해서도 큰 틀에서는 김 위원장의 생각에 동의한다는 입장이었다.

- 김 위원장의 기본소득 주장에 동의하나. “1년 전부터 나도 연구를 해왔다. 함께 잘사는 더 따뜻한 대한민국을 만들자는데 좌파와 우파가 왜 나오나. 제한된 자원과 목표하는 효과 사이에 효율성을 극대화시키는 게 관건이다. 현재의 복지체계 재편, 재원도 문제다. 면밀한 검토와 책임 있는 방안은 건너뛰고 금액을 제시하는 경쟁으로 가서는 안 된다. 기존 복지 시스템은 생존의 위기와 삶의 안정을 보장해 줄 수 없다. 그래서 복지국가로의 한 단계 큰 진전이 필요하다. 여러 방안이 있는데 보험을 강화하거나, 기본소득을 주자는 논의가 있는 것이다.”

- 기본소득으로 재정이 고갈되지 않을까.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이나 공무원이나 모두 다 연간 20만원을 준다는 것인데, 이렇게 하면 아무런 알맹이도 없이 정치적 깃발을 세우는 것에 불과하다. ‘황우도강탕(고기가 없는 고깃국)’일 뿐이다. 설령 실현된다고 하더라도 ‘페이고(pay as you go·돈은 벌어들인 만큼만 쓴다)’, ‘메니페스토(manifesto·이행 가능한 공약)’ 원칙이 필요하다. 김 위원장이 미리 어떤 결론을 내리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정책적 문제에 대한 정무적 고민도 할 것이다. 다양한 선택지를 만들어 국민에게 의견도 묻고 국회에서 협의도 할 것이다. 실현 가능한 복지국가로 단계적, 점진적으로 가자는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주장하는 전 국민 고용보험에 대한 생각은. “해법이 틀렸다. 자영업자가 스스로 장사가 안된다고 사업을 접고 보험금 달라고 하는 것이 가능할까. 현실에서 작동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출마는 신정풍운동, 개혁보수로 대선 치러야”

결국 원 지사가 이날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는 ‘보수가 세상을 바꿔왔다는 것을 인정받자’는 것으로 보였다. 특히 지난 기간 당내에서 꾸준히 개혁을 주장해온 개혁보수의 주도하에 대선을 치르자는 것으로, 이를 명분으로 자신이 대선후보가 되겠다는 의도가 읽혔다.

실제 그는 이날 특강에서도 “보수의 정체성을 되찾아 변화의 주도권을 되찾아야 한다”라고 주장하며 전 국민 의료보험(박정희), 남북기본합의서(노태우), 금융실명제(김영삼) 등이 모두 보수정권에서 이뤄졌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또 자신이 정계에 진출할 때 “민주당에서도 영입 제안을 받았지만, 대한민국의 큰 변화는 보수가 만든다는 생각에 한나라당에 입당했다”는 개인사도 털어놨다.

이러한 배경과 이유에서 보수가 과거의 역동성을 되찾아 재집권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문제는 지금 보수의 위기가 외부에 있지 않고 스스로 개혁을 이루지 못한 내부에 있다는 점이다. 원 지사 역시 이 점을 강조했다. 그는 특강에서 “20년 동안 보수 혁신을 주장하다 쓰라린 아픔을 겪었다”고 했다. 2000년 정계 입문 이후 소장파를 주축으로 한 미래연대를 만들어 한나라당의 정풍운동을 일으켰던 과거사를 다시 언급한 것이다. 당시 남경필·원희룡·정병국 의원은 ‘남원정’으로 불리며 소장 개혁파의 상징이었다.

- 과거 정풍운동은 성공했다고 보나. “부분적인 성과가 있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출범하는 데 정풍운동이 보완작용을 했다. 하지만 바꾸고 싶은 것을 바꾸지 못했고 우리가 원하던 수준에는 한참 못 미쳤다.”

- 대선 출마를 ‘신정풍운동’으로 봐도 되나. “크게 보면 그렇다. 지난 정권에서 국가 권력과 공직을 사유화하다가 국민으로부터 외면받고 탄핵까지 되었다. 패배의식에 상처도 크다. 보수 동력을 찾기 위해서는 새롭게 변해야 한다.”

- ‘신정풍운동’의 지향점은 무엇이 될까. “국민의 상식에 열렬히 응답하는 보수가 되는 것이다. 지금 당장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것은 기적일 것이다. 국민의 일상을 지켜내는 것이 이렇게 어렵다. 이렇게 상식과 일상을 지켜내는 것이 ‘신정풍운동’이다.”

지금 대선 경쟁은 복지 이슈가 크게 부각되어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과거 동서냉전에 비견되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 커지고 있는 북한의 도발 가능성 등을 근거로 오히려 외교안보 이슈가 대선의 핵심 변수가 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이와 관련한 질문도 던져봤다.

-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심해져 우리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받는다면. “미국은 동맹이고, 중국은 전략적 동반자다. 우리의 태도가 예측 가능한 것이 중요하다. 과거 사드 문제도 안 한다고 하다가 갑자기 하니까 중국에서 더 반발한 것이다. 미국 역시 우리를 동맹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여기에 의심이 생기니까 문제가 되는 것이다.”

원 지사는 학력고사, 사법시험 수석으로 유명세를 탔고 이것이 그의 성공에 도움이 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이날 특강에서는 “수석 이야기는 별로 듣고 싶지 않다”라고 했다. 자랑스러운 경력인데 왜 그럴까 싶어 “학력고사 수석이라는 타이틀이 부담스럽느냐”고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사람들이 일등을 좋아할까? 자기만 아는 괴팍한 사람으로 보지는 않을까? 그보다는 ‘사람이 되었다’라고 말해 주면 더 좋다. 이제 같이 가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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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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