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가운데)이 지난 6월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1차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가운데)이 지난 6월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1차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난파선이나 다름없는 미래통합당이 구원투수로 영입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통합당과 이념 스펙트럼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정의당이 김 위원장이 언급한 기본소득을 놓고 환영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장면이 이를 잘 보여준다. 당내에선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는 기본소득을 놓고 당내 의견이 갈리는 분위기지만 과거 김 위원장의 행보를 볼 때 보수정당의 정책지향과 맞지 않는 파격 정책은 계속 나올 가능성이 크다. 그럴 경우 당의 노선투쟁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당내 노선투쟁은 곧바로 대선을 둘러싼 대권주자들의 역학관계와 맞물리게 된다. 김 위원장이 판 자체를 흔들고 있는 만큼 현재 거론되는 통합당 대선주자들은 그 흐름에 몸을 맡길 것인지, 아니면 전통적 보수의 가치를 주장하며 각을 세울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김 위원장의 정책이 과연 중도층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그리고 이를 위해 당내 반발을 무마할 수 있을 것이냐가 일단 중요하다. 김 위원장의 과거 행보를 보면 앞으로 벌어진 상황을 어렴풋이나마 예측해볼 수 있다.

미래통합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은 2010년 지방선거 패배 이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무상급식 논란과 이른바 ‘디도스 파문’ 등의 악재를 줄지어 맞닥뜨렸다. 2012년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을 동시에 앞두고 국면 전환이 시급했던 새누리당은 결국 박근혜 의원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했다. 비대위를 맡은 박 의원은 야인(野人)으로 지내던 김종인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석좌교수를 비대위 위원으로 영입했다. 당시 김 전 교수를 비대위원으로 영입한 박 의원의 한 수는 파격이자 묘수란 평가가 많았다.

김 위원은 당시 비대위 산하 정책쇄신분과 위원장을 도맡았고 ‘경제민주화’란 의제를 꺼내들며 야당인 민주당과의 어젠다 싸움을 주도했다. 그런 김 위원은 2011년 12월 28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지금은 진보냐 보수냐 하는 이념적 잣대는 무의미하다.”

그러면서 김 위원은 보수당에선 좀처럼 보기 어려운 진보 정책을 거론하며 정치적 실험을 강행했다. 재벌개혁과 세제개편, 유연한 대북정책 등을 거론하는 것은 물론 당 정강·정책에서 ‘보수’를 삭제하자고까지 했다.

당초 그를 경제민주화의 주역이라 치켜세웠던 당내 분위기는 급변했다. 당의 정체성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중진들을 중심으로 불거졌다. 당시 새누리당 비대위 위원으로 함께 활동했던 이상돈 전 민생당 의원은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당시 김 위원의 행보를 두고 상당한 논란이 있었다. 정당 정책에 없는 걸 새로 넣기도 쉽지 않은데 기존에 있던 것, 특히 보수의 개념을 없앤다 하니 당내 반발이 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김 위원은 논란 끝에 2012년 3월 비대위원직을 사퇴했다. 이후 박근혜 위원장의 요청으로 2012년 7월 대선 경선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에 올라 대선 공약을 전담했지만 박 위원장은 그를 경제민주화 어젠다 선점용으로만 활용하고 실제 공약엔 그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결국 대선 직전 박근혜 당시 대선후보와 갈라섰다.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그의 퇴장을 ‘토사종팽’(김 위원장의 처지를 사자성어 ‘토사구팽’에 빗댄 말)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총선과 대선에서 당은 모두 승리했다. 총선에서는 과반수(152석)를 획득했고, 대선에서는 간발의 차이로 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이겼다. 정책적인 측면에서 김 위원장을 내세워 ‘중도층’의 표심을 잡은 영향도 있지만, 정치인 박근혜의 강력한 리더십이 승리의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 당시 정치 전문가들의 하나 같은 분석이었다.

인재 없이 처음 홀로 선 김종인

그로부터 8년이 흐른 지금, 출발은 8년 전과 비슷하다. 제1 보수정당은 파산 직전까지 갔고, 김종인은 다시 그들이 내민 손을 잡았다. 이제는 비대위원이 아닌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당의 수장이 된 그는 취임 직후부터 좌클릭 정책을 내놓으며 어젠다를 선점해 가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6월 9일 당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통해 “창조적 파괴와 과감한 혁신을 통해 우리 당을 진취적인 정당으로 만들어 미래로 나아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의 방향은 2012년 새누리당 때처럼 탈보수·혁신이다. 최근 그가 제시한 ‘약자와의 동행’이란 슬로건과 기본소득, 전일보육제 등의 경제·복지 정책 등은 과거보다 더 진보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2012년 새누리당 정책위원회 의장 겸 비대위 위원으로 활동했던 이주영 전 미래통합당 의원은 주간조선에 “당시 새누리당 비대위는 무상보육, 반값등록금, 공공기관 비정규직 문제, 기초노령연금 등을 거론하곤 했다. 김종인 위원은 비대위에서 이를 더 브랜드화하는 데 힘썼다. 근데 지금 그가 내놓은 어젠다는 복지 관점에선 진보적으로 한발 더 나아간 정책이다”라고 평했다.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6월 15일 30~40대 의원들로 구성된 정강정책개정 특별위원회까지 구성했다. 이를 두고 김 위원장이 2012년 당 정강·정책에서 ‘보수’ 삭제를 시도했던 것처럼 또다시 파격적인 조치를 단행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그의 이런 시도에 대한 반작용은 2012년보다 더 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책적 측면뿐만 아니라 그가 사실상 ‘전권(全權)’을 휘두르는 것에 대한 반감도 만만치 않아서다. 중진 의원들 사이에선 그의 행보에 반기를 드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미래통합당의 한 의원은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아무래도 내용 자체가 그렇다 보니 지도부에 반감을 갖거나 이견을 표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지난 6월 10일 비대위원장·중진의원 연석 회의에선 “어떤 구상이 있는지, (당이) 어떤 방향으로 가려는지 우리가 모르고 있다” “보수의 근본적 가치와 철학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보수의 가치와 철학은 없어지지 않는다” 등의 반대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나오기도 했다.

여기까지는 8년 전의 데자뷔지만 김 위원장이 반발을 이겨내고 판을 계속 흔들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8년 전의 결말처럼 ‘토사종팽’으로 끝날 것인가는 이제부터 시작될 헤게모니 싸움에서 결론이 난다. 일단 중립적 시각에서 보면 현재 김 위원장의 상황이 8년 전보다 나을 게 없다는 시선이 많다. 그가 비대위를 이끌 때마다 당내엔 항상 그를 지원하는 인물이 존재했다. 2012년 새누리당 비대위 시절엔 박근혜 전 대통령이 그의 의제를 공론화하며 정책 실현 가능성을 높였고, 2016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때는 문재인 대통령이 당 대표로서 그에게 전권을 위임하며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지금의 미래통합당 내엔 그의 정치 실험을 지원할 대선주자급 후보도 없고, 당내 지지기반도 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2년 김 위원장과 함께 새누리당 비대위를 이끌었던 김세연 전 미래통합당 의원은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실상 지금의 김종인 위원장은 인재풀이 없는 진공 상태에서 홀로 올라선 거나 다름없다. 새누리당 때만 해도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자신의 영향력으로 당내 반발을 누그러뜨리고 어느 정도 균형과 절충안을 만들어 냈다. 더군다나 그때는 총선까지 불과 1년도 남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공천권을 통해 당내 의원들 관리가 비교적 수월한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총선 이후다. 공천권 등의 제도적 장치도 부재하다. 상황은 과거보다 더 좋지 않다.”

한마디로 과거와 비교해 불확실성이 더 커진 상황이라는 건데, 그만큼 김종인 위원장의 강력한 정책 드라이브가 큰 성공을 거두거나 반대로 대패를 겪을 수 있다는 것이 김 전 의원의 설명이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2012년 새누리당 박근혜 비대위 체제에서 진보 어젠다를 내놓았다가 당내 반발 등으로 물러난 바 있다. ⓒphoto 뉴시스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2012년 새누리당 박근혜 비대위 체제에서 진보 어젠다를 내놓았다가 당내 반발 등으로 물러난 바 있다. ⓒphoto 뉴시스

보수층의 증세 반대 돌파할 수 있을까

예컨대 김 위원장이 1호 법안으로 내세운 기본소득 정책은 그가 이끄는 비대위 체제를 주목시켰지만 동시에 정치적 위험성도 가중시키는 의제로 작용하고 있다. 기본소득은 그가 2016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직을 맡을 때 이미 한 차례 거론했던 의제다. 당시 김 위원장은 기본소득과 관련한 각종 학술대회에 축사를 보낼 정도로 기본소득에 관심을 보였다. 그가 다시 꺼내든 기본소득 의제에 대해 민간 싱크탱크 ‘랩2050’ 출신인 윤형중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운영위원은 “학계에선 사회적 흐름을 바라보는 김 위원장의 식견이 한국 정치인 중 가장 높다는 평이 많다”며 “중요 사안을 빠르게 인지하고 이를 놓치지 않고 꺼내든다”고 평했다. 김 위원장이 단순히 표심을 얻기 위해 기본소득 의제를 꺼내든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필요성을 느끼고 이를 거론했다는 이야기다. 그가 기본소득 정책 추진을 공식화하며 언급한 ‘실질적 자유’는 전 세계 기본소득 이론 체계를 구축한 벨기에 경제학자 필리프 판 파레이스(Philippe van Parijs)가 사용한 개념으로, 그만큼 김 위원장의 통찰이 상당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 정책을 2016년 민주당에서 끝내지 않고, 지금의 미래통합당으로까지 끌고 오는 것이 현명했는가는 따로 떼서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본소득 정책을 추진할 경우 증세 이슈와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데, 과연 보수진영에서 이를 제대로 처리할 수 있겠냐는 이유 등에서다. 앞서 윤형중 위원은 “신자유주의의 핵심 정책은 감세였고 보수는 세금을 줄여 시장의 자유를 증진하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 이게 도식적인 관점이었다. 때문에 과거 정부만 보더라도 늘 보수는 진보보다 더 증세에 반대했다. 보수 지지층이 진보 지지층보다 증세에 더 민감하게 반응해서이기도 했다”라고 설명했다. 유승민 전 의원이 새누리당 원내대표 시절 증세를 통한 복지 확대는 불가피하다며 중부담·중복지 원칙을 내세울 때 ‘따뜻한 보수’라는 슬로건을 끌어왔던 것도 결국 이런 위험 부담 때문이었다.

정치권 안팎에선 이런 이유 등으로 보수진영의 보편적 복지, 특히 기본소득 정책 추진에 대해 적지 않은 의구심을 제기한 바 있다. 지난 2월 ‘기본소득의 정치적 실현 가능성’ 국회토론회에서 서정희 군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를 다음과 같이 꼬집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 때 겪어본 문제이긴 하다. 정치권이 보편적 기초연금 도입 등 보편적 사회서비스 확대를 내걸었을 때 수많은 사회정책 전문가와 세력들이 결합했다. 그러나 보편적 복지라는 기치는 시장중심주의를 표방하는 세력(보수)과 결합했을 때 가장 먼저 포기하는 전략이 됐다.” 보수진영이 갖는 정체성 등으로 기본소득 추진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말이었다.

결국 이를 넘어서기 위해선 보수진영만의 기본소득 모델을 구체화해야 하는데 김종인 위원장을 비롯한 비대위에선 아직까지 그런 이야기가 없는 상황이다. 기본소득 모델은 극우파, 우파, 좌파, 극좌파 등 진영 논리에 따라 재원 마련 방식이 다양하다. 김세연 전 의원 등 일부 보수 인사들이 말하는 전형적인 우파 모델은 증세를 거론하지 않는다. 기존 사회복지 정책에 투입되는 재정을 구조조정해 여기서 나오는 잉여재원으로 기본소득 정책을 추진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앞서의 서정희 교수는 “단순히 말만 하는 게 아니라 어떤 모델을 제시할지 정하고, 이 모델에 대한 찬반 논의를 거치면서 다듬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게 없으면 막연히 조세 저항 여론에 부딪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대표적 진보학자인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 역시 주간조선과 만난 자리에서 “김종인 체제가 내놓은 정책은 자신이 보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평균적인 의식의 흐름과는 동떨어져 있다. 추진하는 과정에서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에 대한 내부적 논의가 굉장히 중요한데, 김 위원장은 엘리트주의적인 정치만을 고집하고 있다. 열린 공간에서 다 같이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통찰에만 의지하며 자신이 바라보는 것에 답이 있다는 식”이라며 “이런 방식으로 성공한 사례는 드물다”고 잘라 말했다.

엘리트주의 벗어나 여론 제대로 읽어야

2012년 새누리당 비대위 시절 김종인 위원장은 경제민주화라는 기치 아래 재벌개혁 등을 강조한 바 있다. 당시 대중이 경제민주화에 호응했던 데는 사실 재벌개혁에 대한 지지보다는 이명박 정부가 강조해온 경제적 낙수효과에 염증을 느꼈던 측면이 크게 작용해서였다. 경제민주화를 통해 사회적 격차를 해소할 수 있을 거란 여론이 있던 것이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이를 제대로 짚지 못한 채 재벌개혁에만 방점을 뒀는데, 정치권 안팎에선 그의 정치 실험이 제대로 된 성공을 거두지 못한 이유를 여기서 찾기도 한다. 결국 김 위원장이 이번에도 대중이 기본소득에 왜 호응하는지를 잘 살피지 않으면 과거의 과오를 되풀이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물론 미래통합당이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는 노력도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과거 진보적이라 생각했던 정책 중 일부는 지금에 와서 보수정책으로 평가받기도 한다”라며 다음과 같은 분석을 했다. “가령 과거 특정 사업장에만 의료보험이 적용되던 시절 의료보험제도는 진보 정책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전 국민 고용보험이 주창되는 지금에 와서 이와 관련한 정책은 보수 정책으로 치부되고 있다. 진영 논리로는 정책을 평가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진영이나 복지의 관점이 아니라 미래의 관점으로, 경제 논리보단 포스트 코로나라는 시대적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김종인 위원장의 실험을 단순히 ‘좌클릭’이라고만 평가할 순 없다. 통합당이 계속해서 보수 논리로만 정치에 임한다면 김 위원장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발전할 수 없다.”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미래통합당의 한 재선 의원은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진보나 보수는 서로 닮아가는 측면이 있다. 우리 보수도 진보진영에서 배우고 닮을 게 있다면 착안해야 하지 않나 싶다. 어차피 세월이 가면 도입될 수밖에 없는 정책들이다. 무조건 반대하기 전에 국민을 위한 것이 무엇일지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진보학자 한상진 교수가 본 김종인

“좌클릭 실험 한계에 부딪힐 것… 엘리트주의 정치는 위험”

대표적인 진보사회학자인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 겸 중민사회이론연구재단(중민재단) 이사장은 최근 자신의 연구를 통해 한국의 정치 지형이 급격히 뒤바뀌고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 6월 8일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진보, 보수의 지형 변화를 강조하면서 정부 대변 세력으로 전락한 진보진영에 대해 비판을 가한 바 있다.

당시 인터뷰에서 한 교수는 보수진영에 대해서도 비판의 날을 세웠다. 특히 한 교수는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에 대해 불안한 시선을 내비쳤다. 김종인 위원장이 1호 법안으로 언급한 기본소득 등은 진보 색채를 띠고 있는데 이는 보수의 정체성과 다를뿐더러 무엇보다 이를 내부 논의 없이 독단적으로 거론했다는 이유 등에서다. “진보보다 더 진보적인 의제를 꺼내 기존의 보수 통념을 깨려는 시도로 읽힌다. 하지만 그가 내놓은 정책은 자신이 보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평균적인 의식의 흐름과는 동떨어져 있다. 추진하는 과정에서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이에 대한 내부적 논의가 굉장히 중요한데, 김 위원장은 엘리트주의적인 정치만을 고집하고 있다. 열린 공간에서 다 같이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통찰에만 의지하며 자신이 바라보는 것에 답이 있다는 식이다. 이런 방식으로 성공한 사례는 드물다.”

그는 미래통합당이 이런 식으로 불붙인 정치권의 복지 정책 논의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도 말했다. “복지의 기초는 국민에게 재화와 서비스를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일할 수 있는 여건부터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여야 모두 점점 이 기초를 간과하고 분배에만 몰두하고 있다. 최근 논의하고 있는 기본소득과 전 국민 고용보험제도 등을 추진하기에 앞서 이 점을 돌이켜봐야 한다.”

한 교수는 보수진영이 여전히 보수의 가치관을 학습하지 않은 채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보수는 본래 시민사회에서 통용되는 기본적인 상식,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다. 가령 진보가 적폐를 들춰내 응징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보수는 단순히 ‘그건 잘못됐다’라고 할 게 아니라 ‘그런 응징은 또 다른 보복을 낳고 시민사회의 필수 요소인 상호, 공존을 해칠 수 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보수는 이런 기존 보수 개념에 대한 고민 없이 무조건 진보진영의 대척점에만 서려고 한다. 그러니 설득력은 없고 보수답지 못하다는 질타만 받는다. 일부 통합당 의원이 기본소득을 무조건 반대하고 나서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한 교수는 지금의 진보와 보수가 자기 진영에 대한 고민을 더 거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혹자는 진보와 보수가 이제 쓸모없어졌다고 말한다. 두 진영의 가치관이나 이상이 기존 통념과는 달라졌고 정책에 있어서도 중복되는 부분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진보, 보수의 구분을 없앨 건 아니다. 두 진영의 역할은 분명 있다. 다만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 본래 추구했던 가치가 무엇이고 한국의 미래를 내다봤을 때 무엇을 견지하고 빼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좀 더 실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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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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