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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치
[2613호] 2020.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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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호의 正眼世論]진영 대결 늪 탈출해야 보수 재집권 길이 열린다

신지호  평론가·전 국회의원 jayho63@gmail.com

▲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지난 6월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21대 국회 첫 상임위원장 선출을 위한 본회의 개최 반대구호를 외치고 있다. photo 뉴시스
보수라는 단어를 쓰지 말자는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의 발언은 당내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장제원 의원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당이 되었다고 한탄하였고, 원희룡 제주지사는 진보 아류로는 결코 승리할 수 없다며 김종인 위원장을 직격하였다.
   
   현실정치에서 진영 간 편 가르기는 좋든 싫든 피하기 힘든 선택이다. 자신의 이념적 정체성이 무엇이고, 자신이 속해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분명히 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말끝마다 보수네 진보네 하며 진영을 강조하다 보면 매사 피아(彼我)를 구분 짓는 진영 의식이 강화될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우리 편은 맞고, 상대편은 틀리다”는 진영논리로 발전해 가기 십상이다.
   
   최근 우리 사회는 해방 공간을 방불케 할 정도로 극심한 진영 대결의 늪에 빠져 있다. 집권세력은 상식과 합리가 작동하는 중간지대의 동향에 개의치 않고 독선과 아집에 사로잡혀 밀어붙이기를 일삼고 있다. 과거의 망국적 지역감정은 현재의 망국적 진영논리로 대체되었다. 다채로워진 미디어 환경은 오히려 ‘정보의 편식’을 부추겨 확증편향과 흑백논리를 강화하고 있다.
   
   이 같은 정치적 양극화의 원인 제공자는 문재인 정권이다. 문재인 정권은 김대중·노무현 두 전임 정권과 달리 지독한 진영논리에 함몰돼 있다. 김대중 정부의 브레인이었던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최근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진보진영은 국가권력에 포섭되거나 순응하지 않고 이들과 거리를 두며 본래 진보의 가치, 즉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날카로운 눈으로 정부를 비판, 저항한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도 진보진영은 그래왔다. 하지만 최근 진보진영의 이런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국가주의에 포섭돼 정부 목소리에 동조하고 있다”고 진단하였다. 그는 ‘조국 사태’ ‘윤미향 사태’ ‘금태섭 전 의원에 대한 징계 논란’ 등은 권력화 혹은 기득권화하는 진보진영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했다. 한 교수는 진보진영의 ‘자기 확신’이 커지면서 이런 논란이 가속화하는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 교수의 이러한 지적은 본연의 자세에서 일탈해 기득권으로 변질된 진보의 타락을 따끔하게 비판했다는 점에서 공감하는 바가 크다. 그런데 그 같은 당위론적 접근이 아니라 현실정치의 정치공학적 관점에서 볼 때, 문재인 정권의 진영논리는 그들에게 득(得)일까 실(失)일까. 만약 실이 컸다면, 최근 선거에서의 잇따른 압승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은 정치지형에서 찾을 수 있다. 노무현은 대통령 재임 시절 “한국의 정치판은 보수에 유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한탄하였다. 지금은 어떠한가. 박근혜 탄핵 이후 한국의 정치지형은 보수에 불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바뀌었다. 21대 총선은 지배세력 교체의 완결판이었다.
   
   여기서 한번 따져보자. 힘 있는 다수파가 진영논리로 나온다 해서 힘 없는 소수파가 역의 진영논리로 대항한다면 결과는 어떻게 될까. 소수파의 백전백패다. 옳고 그름을 떠나 수적 열세를 극복할 수 없다.
   
   1987년 민주화로 시작한 제6공화국에서 제1당 또는 제2당이 전국 선거(대선·총선·지방선거)에서 4연패한 기록은 없었다. 그 기록을 이번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이 깼다. 무엇이 문제였던가. 소수파·비주류라는 자각의 결핍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는데, 자신의 위상과 역량에 대한 객관적 인식이 안 돼 있는 집단이 어떻게 다수파에 승리할 수 있겠는가. 아직도 자신들이 이 사회의 주류라는 착각은 문재인 세력의 진영논리에 맞선 보수의 진영논리라는 전략적 오류를 유발하였다. 현재와 같은 정치지형에서 진영논리로 좌우 대결을 하면, 통합당은 만년 야당 신세를 면할 수 없다.
   
   선거운동의 목적함수는 다수파 만들기에 있다. 소수파의 집권을 위한 노력은 다수파보다 몇 곱절 더 치열하고 처절해야 한다. 79석의 의석으로 최초의 정권교체를 이룬 김대중의 경우, 권력의 절반을 내주겠다는 조건으로 박정희 세력인 김종필과 박태준을 끌어들였다. 정책 노선 또한 진보가 아닌 중도개혁을 내걸었다. 집권 후 내각제 개헌을 하겠다는 약속까지 해주었다. 노무현은 어떠했는가? 당내 반발을 무릅쓰고 출신 성분과 정책 노선에서 상극에 가까운 재벌 2세 정몽준과 단일화를 이루어냈다. 복기해 보면 간단하다. DJP 연합 없는 김대중과, 정몽준과의 단일화 없는 노무현의 집권은 불가능했다.
   
   지금 통합당에 필요한 자세는 김대중과 노무현의 다수파가 되기 위한 간절한 몸부림이다. 설익은 자강론으로 자존심을 세우려는 태도는 아직도 자신의 처지를 파악하지 못한 현실 부적응의 산물이다. 소수파는 소수파답게 행동해야 한다. 다수파보다 한발 빠르게 움직이고 더 낮은 자세로 무당파 대중 속으로 파고들어야 외연을 넓힐 수 있다. 유연함과 포용력은 다수파 만들기에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다. 자기 진영의 전통적 주장과 논리를 고집하는 것은 금물이다. 탈(脫)진영논리를 해야 비로소 다수파 만들기에 성공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모든 이론은 회색이며 오직 영원한 것은 저 푸르른 생명의 나무라는 인식으로 무장하여 내가 옳다고 믿었던 것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줄 알아야 한다. 기존의 관성과 감각으로 ‘옳은 정책’을 연구할 것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에 맞는 새로운 감각으로 ‘이기는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보수는 정체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옛것을 익혀 새것을 깨우치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을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으로 실천해야 참 보수다. 도그마에 빠져 사고가 화석화(化石化)하는 것을 가장 경계하여야 한다.
   
   최근 위선적 진보주의자에 맞서 맹활약하고 있는 논객 진중권의 논법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보수의 철학과 논리로 진보를 비판하는 게 아니라, 진정한 진보의 관점에서 사이비 진보를 맹폭하고 있다. 김대중과 노무현의 이름으로 문재인을 비판한 것은 압권이었다. 청와대 출신 국회의원들이 벌떼처럼 진중권에게 달려든 이유는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러한 논법을 ‘내재적 비판’이라 칭하고 싶다.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설계하고 실천하였던 김대중의 이름으로 문재인표 관제 민족주의와 ‘반일(反日)팔이 정치’를 비판하고, 대연정을 꿈꾸었던 노무현의 문제의식으로 문재인의 적대와 배제의 정치를 저격해야 한다.
   
   현재 통합당 내에는 2022년 대선에 대한 패배주의가 암암리에 팽배해 있다. 탈진영논리는 국민 통합이라는 당위론적 명분을 넘어 보수에 승리의 희망을 불어넣을 수 있는 실천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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