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8일 회동한 박병석 국회의장(가운데)과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 ⓒphoto 뉴시스
지난 6월 28일 회동한 박병석 국회의장(가운데)과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 ⓒphoto 뉴시스

21대 국회가 지난 6월 29일 파행 끝에 17개 전반기 상임위원장 선출을 완료했다. 사실상 ‘상원’ 역할을 하는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자리를 둘러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 간 원구성 합의가 불발되면서다. 법사위원장을 빼앗긴 미래통합당이 의석수에 비례해 관례적으로 맡아오던 상임위원장 자리를 모두 거부하면서 민주당이 17개 국회 상임위원장 자리를 독식하는 일도 벌어졌다. 현재 유일하게 공석인 상임위원장은 국회법상 통합당 몫 국회부의장과 협의가 필요한 정보위원장 한 자리다.

국회 본청에 있는 상임위원장실을 민주당이 모조리 차지하면서, 상임위에 강제배정된 미래통합당 의원들은 일제히 사임계를 제출한 상태다. 이에 21대 국회 상임위는 민주당과 군소정당(무소속 포함) 의원들로만 일단 반쪽 출범했다. 1987년 12대 국회 후반기 때 집권 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민정당)이 상임위를 독식한 이후 33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하지만 21대 국회 전반기 상임위의 면면을 살펴보면 지난 20대 국회와 마찬가지로 의원 개개인의 경력과 전공이 무시된 상임위가 구성됐다는 평가다. 이는 여야 간 자리쟁탈전이 치열했던 법사위를 비롯해 여야 공히 인기 상임위로 꼽히는 국토교통위원회나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교육위원회 등 몇 개만 들여다봐도 금방 드러난다.

법사위-윤호중, 신동근, 김진애

우선 21대 국회 개원 전부터 뜨거운 감자가 됐던 법사위(총 18명)는 법안의 체계와 자구 심사 등을 다뤄야 하는 까닭에 대부분 법조인 출신 의원들이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왜 법사위에 이름을 올렸는지 의아한 경우도 많다. 법사위원장으로 선임된 윤호중 의원(4선)부터 법조 경력이 없고, 언론인 출신으로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김종민 의원(재선)과 치과의사 출신 신동근 의원(재선), 건축가 출신의 김진애 의원(재선·열린민주당 원내대표) 등도 법사위에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전문적으로 법조문을 들여다봐야 하는 법사위보다는 다른 상임위에 어울릴 법한 경력의 소지자들이다. 이 같은 까닭에 “구속된 적이 있다고 법조계는 아니다”(윤호중)라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올 정도다.

가장 인기 상임위로 꼽히는 국토교통위(총 30명) 역시 마찬가지다. 주거와 교통 등 국민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국토교통부를 감독하는 상임위지만 국토위에 배정된 의원들 가운데 국토교통 분야 경력을 가진 의원들은 손에 꼽을 정도다. 민주당 국토위원 가운데 관련 경력이나 전공을 가진 위원은 그나마 충남대 건축학과를 졸업한 강준현 의원(초선) 1명 정도다.

반면 민주당 소속 의원들 가운데 국토교통 분야에서 잔뼈가 굵었다는 정일영 의원(초선·전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은 기획재정위, 맹성규 의원(재선·전 국토부 2차관)은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 윤준병 의원(초선·전 서울시 행정1부시장)은 환경노동위 등으로 배정됐다.

국토위-진선미, 조응천, 최강욱

국토위에는 다른 상임위 배정이 더 어울릴 것 같은 법조인 출신이나 총학생회장 등 소위 운동권 출신들이 대거 이름을 올렸다. 우선 전반기 국토위원장에 선임된 진선미 의원(3선)은 법조인(변호사) 출신으로 문재인 정부 여성가족부 장관을 지낸 바 있다. 조응천(검사), 김회재(검사), 최강욱(군법무관·열린민주당 대표) 의원 등도 모두 법조인 출신으로 국토교통과는 좀 거리가 있다.

총학생회장 출신의 김교흥(인천대), 박상혁(한양대), 박영순(충남대), 장경태(서울시립대), 천준호(경희대), 허영(고려대) 의원 등도 국토교통과는 별반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모두 국토위에 이름을 올렸다. 비교섭 군소정당 대표인 정의당 심상정 의원(4선), 열린민주당 최강욱 의원(초선)도 그간에 쌓아온 경력·전공과 상관없이 국토위에 명단을 올렸다. 특히 열린민주당 소속 최강욱 의원(국토위)과 김진애 의원(법사위)은 전공 분야가 뒤바뀐 모양새다.

신임 국토교통위원장인 진선미 의원도 경력만 놓고 보면 여성가족위가 더 어울린다는 평가다. 문재인 정부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지낸 이개호 의원(3선)이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 ‘접시꽃 당신’을 쓴 시인 출신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지낸 도종환 의원(3선)이 문화체육관광위로 각각 배정된 것과도 좀 차이가 있다. 국토위 피감기관의 한 관계자는 “진선미 의원은 지역구(서울 강동구갑)에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건이 걸려 있어 국토위로 가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장관 출신들 사례에 비추어 여성가족위가 어울려 보였던 3선의 진선미 의원이 국토교통위원장으로 가는 바람에 여가위원장은 재선의 정춘숙 의원이 맡게 됐다. 재선 상임위원장의 등장은 상임위의 원만한 운영을 위해 3선 이상 중진 의원이 상임위원장을 맡아오던 관례에 비추어봤을 때 상당한 파격이다.

산자위-고민정, 이수진, 황운하

국회 상임위 가운데 가장 긴 이름을 달고 있는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총 30명) 역시 경력이나 전공에 관계없이 주먹구구식으로 배정된 경우다. 우선 아나운서 출신으로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고민정(초선), 판사 출신의 이수진(초선), 경찰 출신의 황운하(초선), 시민운동가 출신의 이용선(초선), 지역신문사 출신의 이규민(초선) 의원 등이 모두 산자위로 배정받았다. 청와대 농어업비서관 출신으로 경선에서 김병원 전 농협중앙회장을 꺾고 21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신정훈 의원(재선)도 정작 농해수위가 아닌 산자위에 이름을 올렸다.

국토위, 산자위와 함께 인기 상임위로 꼽히는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총 19명) 역시 경력 및 전공과 무관한 배정이 이루어지기는 마찬가지다. 농해수위는 주로 농어촌 출신 국회의원들이 선호하는 상임위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농해수위에 속한 민주당 의원 중에 전공과 경력이 그나마 일치하는 위원은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지낸 관계로 21대 국회 전반기 농해수위원장으로 선출된 이개호 의원(3선)과 제주대 농대 원예학과 출신의 위성곤 의원(재선) 정도다.

한국노총 연구위원 출신의 어기구 의원(재선)과 검사 출신의 주철현 의원(초선)도 농해수위에 배정됐다. 국토부 2차관(교통차관) 출신의 맹성규 의원(재선)과 해군 제독(소장) 출신의 윤재갑 의원(초선)도 각각 국토위나 국방위가 아닌 농해수위에 이름을 올렸다. 농해수위 피감기관의 한 관계자는 “해군 출신이면 농어민들 상대하는 농해수위보다 국방위가 더 어울리지 않느냐”고 했다.

정작 국방위에는 “6개월 방위 출신”이라고 스스로 고백한 jtbc 아나운서 출신의 박성준 의원(초선)을 비롯해 ‘일병 소집해제’ 출신 의원들이 수두룩하게 배정됐다.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장관과 교육인적자원부(현 교육부) 장관을 지낸 김진표 의원(5선)도 민주당 내 몇 안 되는 ‘경제통’으로 꼽히지만 경력·전공과 무관하게 국방위(총 17명)에 배정됐다.

기재위-김경협, 김주영, 용혜인

반면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등을 피감기관으로 하는 기획재정위원회(총 26명)에는 민주당 소속 상임위원들 가운데는 행정고시를 통과한 경제관료 출신이나 상경계 출신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민주당 소속 기재위원 가운데 관련 경력이 있는 의원은 입법고시 출신으로 국회 예결특위 수석전문위원을 지낸 김수흥 의원(초선), 한국재정정책연구원장을 지낸 양경숙 의원(초선·비례) 정도에 불과했다. 오히려 노동계 출신으로 한국노총 부천지부장을 지낸 김경협 의원(3선)과 한국노총 위원장 출신의 김주영 의원(초선)도 전공 분야인 환노위 대신 기재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 밖에 알바 노조 출신 기본소득당 대표 용혜인 의원(초선·비례)도 환노위가 아닌 기재위에 자리를 잡았다.

노동계 출신들이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노위로 간 것도 아니다. 한국노총 대외협력본부장 출신의 한정애 의원(3선)은 환노위가 아닌 보건복지위로 방향을 틀었다. 대신 복잡한 이해관계를 풀어야 하는 환노위원장은 민주당 당료 출신의 송옥주 의원(재선)이 맡게 됐다. 송옥주 의원은 당초 보건복지위로 배정됐다가, 임종성 의원(재선)과 자리를 바꾸며 재선으로 졸지에 환노위원장까지 꿰차게 된 경우다.

전국금융노련 상임부위원장 출신으로 문재인 정부 고용노동부 장관을 지낸 김영주 의원(4선)도 환노위 대신 외통위로 배치됐다. 그나마 이는 4선 이상 중진들을 외통위에 배치하는 관례를 지킨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 출신 민주당 의원 6명 가운데 환노위에 자리 잡은 의원은 이수진(초선·비례) 1명뿐이다. 판사 출신으로 산자위에 자리 잡은 이수진 의원(초선)과 동명이인인 이수진 의원은 환노위와 여가위를 겸임한다. 비(非)인기 상임위인 여가위는 운영위, 정보위, 예결특위와 함께 겸임이 허용된다.

교육위-유기홍, 정청래, 이탄희

학부모 표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의원들에게 인기 상임위로 꼽히는 교육위원회(총 16명) 역시 경력 및 전공과 그다지 관계없이 배정이 이뤄졌다. 교육위원회는 과거 교육과학기술위원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등으로 운영되었으나, 21대 국회부터는 교육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위원회로 나뉘었다. 유치원을 비롯해 초·중·고등학교 설립과 운영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교육위원회 위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경력 및 전공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교육위원 가운데 그나마 경력과 전공이 일치하는 의원으로는 운동권 출신으로 학원(마포 길잡이학원)을 운영한 바 있는 정청래 의원(3선)과 21대 의원 중 유일한 평교사 출신으로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북부지회장을 지낸 강민정 의원(초선·비례·열린민주당) 정도에 불과하다. 그나마 교육위원장으로 선임된 유기홍 의원(3선)은 교육자 출신은 아니지만 줄곧 교육위원회에만 있었던 관계로 전문성을 인정받는다.

다른 상임위가 더 어울릴 법한 공인회계사 출신으로 금융감독원 근무 경력이 있는 박찬대 의원(재선), 건축사 출신(안산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의 김철민 의원(재선), 판사 출신의 이탄희 의원(초선) 등도 교육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탄희 의원은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영입한 판사 출신 3인방으로 ‘사법개혁’을 주장해 유명해졌는데, 정작 교육위에 안착했다. 이탄희 의원은 당초 환노위로 배정됐다가 ‘정의연 회계부정 사태’의 핵심인물인 윤미향 의원(초선·비례)과 자리바꿈을 한 경우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총 20명) 역시 주먹구구식으로 배정되기는 마찬가지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보다는 보건복지위 등이 더 어울릴 법한 경북약사회 회장을 지낸 전혜숙 의원(3선)과 의사 출신 이용빈 의원(초선)은 각각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에 배정됐다. 이러한 주먹구구식 상임위 배정에 대해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관련 용어도 잘 모를 텐데 제대로 된 행정부 감시감독이 이뤄지겠느냐”라며 “공무원들에게 오히려 휘둘리며 통법부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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