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9일 서울 국회 의원회관에서 ‘요즘것들연구소’ 발대식이 열렸다. ⓒphoto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6월 29일 서울 국회 의원회관에서 ‘요즘것들연구소’ 발대식이 열렸다. ⓒphoto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6월 2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의 한 소회의실에 미래통합당 전·현직 의원 10명이 모였다. 이날 이곳에서는 통합당 청년 문제 연구소인 ‘요즘것들연구소’ 발대식이 열렸다. 발기취지문에 적혀 있는 전·현직 의원들의 이름은 가나다 역순으로 되어 있었다.

‘황보승희·허은아·하태경·임이자·이준석·이양수·이성권·박민식·김웅·김병욱’. 발언 순서 역시 가나다 역순으로 이뤄졌다. 사회를 맡은 황보승희 의원은 “저희 연구소는 초선·재선·3선 같은 선수나 원내·원외 구분을 두지 않고 평등하게 운영하기로 했다”며 “다만 순서를 정해야 할 경우에는 그동안 ‘가나다순’의 관행 때문에 늘 꼴찌만 했던 사람에게 우선권을 주기로 했다”고 했다.

이날 깃발을 올린 ‘요즘것들연구소(이하 요연)’라는 이름은 “요즘 것들아 나 때는 안 그랬다”라는 기원전 1700년 수메르인이 남긴 점토판 기록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날 자리에 참석한 연구원들 중 현역 의원은 대부분 40대로 당내에서는 젊은 편에 속한다. 3선의 하태경 의원, 재선의 임이자 의원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초선 의원이었다. 박민식 전 의원, 이성권 전 의원 등 원외 인사들도 있었다.

자리에 참석한 김웅 의원은 인사말에서 “태경이형(하태경 의원) 방에서 도대체 ‘요즘 것들은 왜 그래’ 하면서 얘기를 하다가 한번 ‘제가 청년들의 질타에 얼마나 견디나 해보자’라는 생각에 자리에 나왔습니다.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들으려고 한다”며 참여 취지를 밝혔다.

김병욱 의원도 “선거 때 당에서 만 44세까지 청년으로 묶어서 간신히 청년에 포함이 됐다”며 “많이 듣겠다”고 말했다. 21대 국회의원들의 평균연령은 55.4세다.

지난 4·15 총선에 대패한 미래통합당이 ‘요연’ 출범을 계기로 싱크탱크의 전열을 재정비하고 있다. 통합당의 기존 주축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을 빅데이터와 통계 위주의 연구소로 재편하고, 청년 문제 연구소인 ‘요연’을 통해 청년 유권자들과의 접촉면을 넓히고 있다.

‘요연’ 출범에 관여한 이들에 따르면 출범을 주도한 이는 하태경 의원이다. 지난 국회에서부터 청년 정책으로 이슈를 주도한 경험이 여러 번 있었고, 지난 선거를 치르면서 청년층 지지가 대폭 높아진 것을 체험한 것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하태경 의원 청년층 지지 높아진 경험 계기”

허은아 의원실 관계자는 “다른 의원들과 합심해 청년 정책을 같이하면 통합당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에 청년 정책에 뜻 있는 의원들을 모아서 하 의원이 주도적으로 진행한 것”이라고 했다.

이날 자리에 참석한 허은아 의원의 한 보좌진은 “각 의원실에서 청년실무진을 1명씩 배치해 좀 더 원활하게 ‘요연’이 돌아가도록 하고 있고 의원들 보조로 ‘요연’ 보좌진 모임이 따로 있다”며 “청년과의 좀 더 빠른 소통을 위해 보좌진 단톡방이 따로 있고 거기서 수시로 소통 중”이라고 했다. 40대 이상이 주를 이루는 보좌관이나 비서관들보다는 청년 이슈에 관심 많은 젊은 보좌진이 배치됐다고 보면 된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요연’이 출범식을 앞두고 취재진과 참석자들에게 돌린 발기취지문은 일종의 반성문이었다. “총선 패배 직후 우리 당은 청년들이 모두 떠나간 꼰대 정당이라는 오명을 벗어던지지 못했다” “저희들 스스로가 꼰대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출발” 등등 반성의 표현이 가득했다. ‘요연’ 측은 발기취지문에서 “한 번에 청년들의 문제를 다 해결하겠다는 야심 찬 꿈 같은 건 꾸지 않기로 했다”며 “대신 청년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그들의 마음을 연구하는 것부터 차근차근 시작해 나가고자 한다”고 했다.

황보 의원에 따르면 ‘요연’은 연구원들이 갹출한 회비로 운영되는 자발적인 모임으로, 한 사람이 대표를 맡지 않고 공동운영체제로 이끌어가는 연구소라고 한다. 황보 의원은 “다만 소통과 집행의 편의를 위해 초대 연구원들이 돌아가면서 대표간사를 맡기로 했다”고 말했다. 첫 대표간사는 하 의원이 맡았다.

‘요연’의 첫 행사는 ‘인국공(인천국제공항공사) 로또취업 성토대회’였다. 이 자리에는 3명의 청년이 나와 발언을 했다. 첫 번째로 나선 청년은 검은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나왔는데, 익명을 요청했다. 공기업 취업을 준비 중인 그는 최근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부러진펜운동’을 기획한 이들 중 한 명이라고도 했다. ‘부러진펜운동’은 얼마 전 불거진 이른바 ‘인국공 사태’에 항의하는 뜻을 담아 온라인상에서 ‘부러진펜운동’이라는 해시태그를 다는 운동이다. 역차별에 항의하는 뜻으로 과거 뜻을 이루지 못한 선비가 붓을 꺾듯 취업을 위해 공부하던 필기구를 부러뜨린다는 의미가 있다.

이어서는 실명을 밝힌 연세대 재학생 박인규씨와 홍익대 재학생 한정현씨가 정부가 최근 실행한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을 비판했다.

통합당은 ‘요연’을 정기적 모임으로 상설화하고 앞으로 회원 수를 더 늘려 영향력을 키운다는 계획이다. 이날 발대식이 끝나고 차후 계획에 관해 의원들의 텔레그램방에 나온 공지사항에 따르면 앞으로 정기 행사는 2주에 한 번 하고 이슈가 있을 때는 그때그때 대응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고 한다. 다음 모임은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 주도한다.

이처럼 당내 청년 문제 전문 해결모임인 ‘요연’을 발족한 것과 함께 통합당은 기존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도 새로 정비하고 있다. 여의도연구원은 여의도연구소라는 이름으로 1995년 2월 만들어진 국내 최초의 정당정책연구원이다. 현재는 지난 총선에서 낙선한 지상욱 전 의원이 여의도연구원장으로 새로 임명돼 조직을 정비하고 있다.

지 원장은 지난 6월 30일 임명 소회를 밝히면서 “대한민국이 최초로 낳은 정당·정책연구원의 위상과 가치를 되찾겠다”며 “새 정치의 물결을 일으킬 정책들을 국민들로부터 얻은 실질적 데이터로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여연’ 재편에서 눈에 띄는 것은 “정책들을 실질적인 통계와 데이터로 뒷받침하겠다”는 지 원장의 설명이다. 지 원장은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토목공학과 석사학위를 받았고 일본 도쿄대에서 건축공학으로 박사를 받았는데, 이 같은 경력을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눈여겨봤다고 한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은 지난 4·15 총선 당시 국내 정당 사상 처음으로 빅데이터를 선거 전략에 활용해 총선 승리를 뒷받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양정철 당시 민주연구원장과 함께 선거 전략을 짰던 이근형 당시 전략기획위원장은 지역구 163석의 판세를 정확히 예측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실 ‘여연’은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될 때까지만 해도 민주연구원을 압도한다는 분석이 우세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여연이 데이터 전문가들을 대거 동원해 과학적으로 선거 전략을 짠다는 평을 받았고, 민주연구원은 과거 경험에 의존한 낡은 정당정치를 하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2020년 총선에서는 양당 싱크탱크의 상황이 정반대로 뒤바뀌었다. 민주연구원은 빅데이터를 통해 후보자들의 유세 일정과 동선을 조정하는 등 과학적으로 선거 전략을 짠 반면 ‘여연’은 총선 1~2주 전쯤부터는 상황이 매우 불리하다는 점을 예측하고도 당내에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지 원장은 기자회견에서 “(나는) 실리콘밸리 출신 공학도인 만큼 과학적 데이터가 뒷받침되는 정책으로 국민에게 소구하겠다”고 말했다.

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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