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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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미래통합당 정진석 의원(5선, 충남 공주·부여·청양)은 인터뷰 도중 김종인 비대위원장과 가까운 인사가 자신에게 보냈다는 문자를 보여줬다. 이 문자는 김종인 위원장이 요리연구가로 유명한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를 잠재적 야권 차기주자로 언급해 화제가 됐을 무렵 보낸 것이다. 해당 인사는 문자에서 “김 위원장이 백 대표를 그냥 언급한 것이 아니다”라며 이런 질문을 정 의원에게 던진다.

“대선에 이기려면 충청주자가 나서야만 한다는 뜻도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질문에 정 의원이 보낸 답을 보면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백종원, 윤석열, 정진석의 공통점은 충청대망론이지.”

정 의원은 최근 정치권에서 꾸준히 제기되는 이른바 ‘충청대망론’과 관련해 가장 주목받는 인물이다. 충청 출신(공주 출생)으로서 충청대망론에 대한 기대를 꾸준히 내보였을 뿐 아니라 지난 대선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충북 음성 출신)을 지원하는 등 실제 충청대망론의 구현을 위해서도 발벗고 나선 경력이 있기 때문이다. 정 의원은 충청 맹주였던 고 김종필(JP) 전 총리의 정치적 후계자를 자처하기도 한다.

정진석발(發) 충청대망론이 여전히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2022년 치러지는 대선에 뛰어들 야권 잠룡들 가운데 유독 충청 연고 인사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얼마 전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이런 분이 야권의 차기주자가 돼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화제가 된 백종원 대표는 충남 예산이 고향으로 백승탁 전 충남교육감의 아들이다. 2012년부터는 지역 명문 사학 중 하나인 충남 예산고 제11대 이사장도 맡고 있다.

야권에서 “때릴수록 더 클 것”이라며 주목하고 있는 윤석열 검찰총장도 충청권 인사로 분류된다. 그는 서울 태생이지만 부친인 윤기중 전 연세대 통계학과 교수가 충남 논산 출신이다. 그가 검찰총장에 올랐을 때 충청 법조계에서 기대가 컸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는 대전고검에서 근무했고 대전지검 논산지청장을 지낸 연고도 있다.

김종인 위원장이 예상한 “11월에 나타날 대선후보” 중 하나로 물망에 오르는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경우도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동향인 충북 음성 출신이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과는 결이 다른 혁신성장을 강조해 주목받았다.

“호남대망론을 막는 길은 충청대망론”

정진석 의원은 여권 1위 대선주자로 주목받고 있는 이낙연 의원과도 인연이 남다르다. 2000년 5월 함께 16대 국회에 들어왔고 언론사 출신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서로 비슷한 시기에 정치부에서 취재한 경험도 있다. 정 의원은 자신이 강조하는 충청대망론을 일단 호남 출신인 이낙연 의원과 연결시켜 설명했다.

- 충청대망론을 신(新)DJP연합이라 불러도 될까. “신DJP연합을 가장 갈망하는 것은 아마도 이낙연 의원일 것이다. 즉 호남대망론의 다른 표현이 신DJP연합이다. 호남대망론은 독자적으로(호남만의 힘으로) 성공할 수 없고 (충청의 도움을 받는 형식의) 신DJP연합으로만 성공할 수 있다. 이러한 호남대망론과 싸울 수 있는 것이 충청대망론이다.”

- 최근 차기주자 지지율 조사를 보면 윤석열 검찰총장이 10%를 넘고 있는데. “윤 총장 부친은 공주농고 14회 졸업생으로 내 고향인 공주와 연고가 있다. 그래서 4·15총선에서 내가 이런 슬로건을 내세웠다. ‘조국 장관이 공정하고 정의롭다면 1번을 찍어라. 반면 윤석열 총장이 정의롭고 공정하다고 생각하면 2번을 찍어 달라.’ 어려운 선거에서 이겼는데, 이런 슬로건이 유권자들에게 공감을 받았다고 본다.”

평소 정 의원은 “충(忠)을 세로로 쓰면 중심(中心)”이라며 충청 민심에 대해 “늘 중심 추, 균형 추 역할을 하려 한다. 그래서 충청도 민심이 잘 반영되어야 나라가 편해진다”는 식으로 말한다.

- 충청권에서 야당을 확실하게 밀어주지 않아 서운하지는 않나. “정치 현장에 있으니 응집력을 발휘해 우리의 권익을 확대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것이 잘 발현되지는 않는다. 충청도는 명분 없이 움직이지 않는다. 정진석도 명분 없이 국회부의장에 앉을 수는 없는 것이다.”

미래통합당 최다선인 정 의원은 21대 국회에서 야당 몫인 국회부의장으로 내정됐지만 스스로 이를 거부했다. 관례상 야당이 맡았던 법사위원장 자리를 여당이 차지하자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며 국회부의장 자리를 내놓은 것이다.

“퇴임 후 안전판 때문에 법사위원장 집착”

- 여당이 왜 법사위원장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고 보나. “문재인 정부는 4년 차에 접어들었는데 손에 쥐는 성과물이 하나도 없다. 유일하게 버텨온 것이 남북문제, 평화 세일즈였는데 그것도 산산조각 나지 않았나. 이 사람들이 조급하고 당황하기 시작했다. 청와대와 여당이 무리수를 써가면서 조급하게 서두르는 것이 안 보이나? 그 본질에는 두려움이 있다. 퇴임 후 안전판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당장은 소추의 대상이 되지 않지만 울산 선거 개입 사건이 문 대통령 퇴임 후 엄청난 멍에가 될 수 있어서 두려운 것이다. 법사위를 끝까지 집착에 가깝게 고집하는 중심에는 두려움이 있다고 본다. 공수처를 꼭 출범시켜 퇴임 후 안전판을 확보하겠다는 노림수와 계산이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윤석열부터 손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윤석열이 눈에 가시 가운데 가시라고 생각했을 법하다. 이런 복합적인 것이 법사위 집착의 배경이라고 본다.”

- 국회부의장직을 맡지 않은 이유는. “정진석이 하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국회부의장은 다분히 의전적인 자리이다. 7명의 상임위원장 자리를 당에서 내려놓은 상황에서 나 혼자 국회부의장석에 앉아 있을 수는 없다. 나는 그럴 정도로 뻔뻔하지 못하다. 가는 길이 아무리 험해도 입법, 사법, 행정 등 사회 모든 분야를 좌파가 장악하고 잠식한 형국에서 제1야당인 통합당만이 그들의 무한질주를 차단하고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스스로의 명분에 입각한 결정이었지만 국회부의장 자리는 정 의원과 통합당에 여전히 숙제를 던지고 있다. 야당 몫으로 배정된 국회부의장을 추대하지 못하면 국회의장이 국회부의장, 여야 교섭단체 대표와 협의해서 결정하는 국회 정보위원장 선출에 야당의 의사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어려움이 생기기 때문이다. 나아가 새로 지명된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위해서라도 국회부의장 추대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정 의원은 인터뷰 당일 소셜미디어에 “호랑이는 굶주려도 풀을 먹지 않는다”라면서 국회부의장 거부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인터뷰 이후 전화로 다시 확인했지만 정 의원의 입장은 여전히 확고했다.

- 박지원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위해 부의장직을 맡아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나온다. “아무리 추워도 곁불은 쬐지 않을 것이다. 법제실을 통해 확인한 결과, 이미 원내대표가 정보위원 명단을 제출한 상태여서 정보위 구성에는 문제가 없다는 유권해석을 받았다. 야당 부의장이 공석이라고 해서 국정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대선 패하면 22대 총선도 희망 없다”

그는 충청대망론을 이야기하면서도 “내가 넘버원이 되면 ‘연결의 정치’를 못한다”며 직접 차기주자로 나서는 것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워했다. 그는 2013년 국회 사무총장 시절에 쓴 ‘사다리 정치, 나의 정치는 연결이다’라는 저서에서 자신의 정치를 “서로 단절된 곳을 잇고, 연결하는 사다리 역할이 바로 ‘정진석표 정치’”라고 규정한 바 있다.

- 통합당 대선 경선에 출마하지 않나. “내가 제일 가능성이 높으면 당연히 몸을 던져야 할 것이다. 다음 대선에서 정권을 탈환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멸절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아버지(고 정석모 의원)가 6선, 아들이 5선 합쳐서 11선을 하는 동안 국록을 먹었는데 공적 사명감이 없을 수는 없다. 정권을 탈환하는 데 나의 모든 정치 경험과 역량을 쏟아부을 것이다. 내가 주인이 되거나, 내가 후보가 되는 것은 우선순위가 아니다.”

- 다음 대선에서 야당이 패하면 왜 멸절의 길로 가나. “대통령 선거에 진 당은 지방선거에도 또 패하게 되어 있다. 지방선거에서 지면 총선 역시 또 패배하는 것이다. 22대 국회에서도 회복할 가능성이 없어진다. 다음 총선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대통령 선거에서 이겨야 한다.”

“여권에 박근혜 8·15 사면 부탁 중”

중도층의 지지를 얻어 당의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것이 급선무라는 지적이 나오지만 그는 중도의 길에 대한 어려움도 털어놓았다. ‘중도의 길을 가는 것은 고속도로 중간에 서 있는 것처럼 위험하다’는 영국 정치 속담을 소개하기도 했는데, 과거 친이와 친박 사이에 끼어 있다는 의미에서 ‘낀박’이라고 불렸던 자신의 정치 경험이 녹아 있는 얘기로도 들렸다. 그는 최근에도 홍준표 의원으로부터 “자민련에서 들어와서 MB와 박근혜에게 붙었다가 이제 김종인에게 붙는 걸 보니 안타깝다”고 공격당하기도 했다. 그는 홍준표 의원의 이런 비판에 대해 “지난 대선에서 충남 15개 시군 가운데 3개 군에서만 문재인 후보를 이겼는데, 그중 2개 군이 나의 지역구였다”라며 서운함을 토로했다.

그는 ‘낀박’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2010년 8월 21일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의 만남을 성사시킨 것을 가장 보람 있는 일로 꼽기도 했다. 당시 이명박 정부 정무수석으로 친이·친박을 화해시키는 이벤트를 만들어낸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얘기였다.

-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가교 역할을 했는데, 박 전 대통령을 만나면 대화가 통했나. “주제에 따라 다르다. 그도 기성 정치인이다.”

- 이명박·박근혜 만남을 성사시킬 때 어떤 상황이었나. “3선 의원으로 정보위원장을 하다가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가게 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박근혜 전 대표를 한번 만나 달라’고 임명장 받기 전부터 부탁했다. 이 전 대통령은 박 전 대표를 폐쇄적이라며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결국 둘의 만남을 성사시켰는데, MB가 박 전 대표에게 ‘집에서만 칩거하지 말고, 광폭 행보를 하라. 국민 속으로 직접 들어가라. 내가 팔을 걷어붙이고 도와줄 수 있다’고 말했다. 회동은 성공적이었다.”

- 당시 MB가 이른바 후임 권력을 통 크게 밀어준 것인가. “결과적으로 밀어주었다. 개헌 이야기가 나올 때 그것도 눌러버렸다. MB는 박 전 대통령보다는 훨씬 오픈 마인드다. 박 전 대통령은 다분히 폐쇄적이다.”

- 박 전 대통령이 아직 감옥에 있는 것을 정치보복이라 보나. “다분히 그렇다. 국정농단이라는 박 대통령의 오점과 과오도 있지만 30년 넘는 형량을 받을 만큼은 아니다. 70대에 3년 이상 감옥 생활을 했으면 충분히 죗값을 치렀다고 생각한다.”

- 박 전 대통령이 사면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지난 총선이 끝나고 박 전 대통령 사면 문제가 무관심의 영역이 되어버렸다. 이 정권의 힘 있는 사람들을 가끔 만날 때마다 오는 8·15 때 박 전 대통령을 풀어 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사면복권이 법적으로 힘들면 이명박 전 대통령처럼 형 집행정지로 밖에 나올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 JP의 숙원이었던 내각제 개헌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지금의 제왕적 대통령제는 진작 개선했어야 옳다. 어느 대통령도 말로가 행복한 적이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예외일 것 같나? 단 한 명의 대통령도 예외 없이 불행한 뒤안길을 피해 가지 못했는데 그도 예외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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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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