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리공원묘역의 죽산 조봉암 묘소 앞에 내걸린 61주기 추모 현수막. ⓒphoto 이동훈
망우리공원묘역의 죽산 조봉암 묘소 앞에 내걸린 61주기 추모 현수막. ⓒphoto 이동훈

오는 7월 31일 죽산(竹山) 조봉암(1899~1959) 사망 61주기를 앞두고 여권을 중심으로 조봉암을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이 거세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지난 7월 17일 제헌절,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승만에 의해 사법살인을 당한 죽산”이라며 “죽산 조봉암이야말로 진정한 의회주의자, 헌정주의자”라는 글을 남겼다. 앞서 KBS의 역사비평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도 지난 7월 14일 ‘정적(政敵) 조봉암을 제거하라’는 방송을 내보내며 제헌 국회의장이자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을 격하하는 대신 조봉암 띄우기에 나섰다.

조봉암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초대 농림부 장관과 국회부의장을 지낸 인물로, 2ㆍ3대 대통령 선거 때 이승만 대통령과 연거푸 맞붙었던 정적이다. 하지만 진보당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1959년 7월 31일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진다. 이후 국립묘지가 아닌 망우리공원묘역에 묻힌 조봉암에게는 줄곧 ‘간첩’‘공산주의자’란 꼬리표가 따라 붙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송기인)’의 재심 권고 끝에 내려진 2011년 대법원의 무죄 판결 이후 ‘사법살인의 희생양’이란 시각이 강했다.

하지만 주간조선이 지난 5월 18일 발행된 2608호 커버스토리로 “1956년 남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조봉암이 북측에 조언을 구했고, 북측이 자금을 지원했다”는 북한 김일성의 육성증언이 기록된 구(舊)소련 외교문서를 입수해 보도하면서 조봉암을 둘러싼 진실은 다시 미궁에 빠진 양상이다. 당시 김일성이 소련 측에 털어놓은 말 가운데는 조선공산당 출신으로 박헌영을 비판하며 공개전향한 조봉암의 ‘위장전향’을 시사하는 대목도 있다.

북한의 공식 백과사전인 ‘조선대백과사전’ 역시 조봉암을 ‘남조선 혁명가’로 소개하며 아래와 같이 서술하고 있는 것으로 추가로 확인됐다. ‘주체 44년(1955년) 8월 14일밤 평양방송을 통하여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조국광복 10돐(돌) 경축대회에서 하신 보고에 접하고 인생 말년이나마 경애하는 김일성 장군님을 따라 조국통일 위업에 한몸바쳐 싸울 결의를 담은 편지와 정성스럽게 마련한 선물을 수령님께 올렸다.’

반면 죽산조봉암선생기념사업회 측은 “조봉암은 북한과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다. 주대환 죽산조봉암선생기념사업회 부회장은 “북한은 반(反)이승만, 반(反)박정희 세력은 모두 자기 편으로 여겨왔다”며 “부산 피란수도 시절에 각각 신익희와 조봉암을 옹립해 이승만을 제거하려는 시도가 두차례 있었는데 그 배후에 모두 미국이 있었다”고 했다. 주간조선이 구소련 외교문건과 함께 발굴해 보도한 미국 국무부의 조봉암 구명(救命) 지시 기밀전문을 뒷받침하는 설명이다. 해당 문건들을 발견해 주간조선에 제공한 표도르 째르치즈스키 국민대 선임연구원(박사)은 “조봉암은 한국 현대사의 미스터리”라고 했다.

한편 여권의 이승만 격하, 조봉암 재평가 움직임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이 조봉암 묘소를 직접 찾을지도 관심거리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7년 대통령 당선 직후부터 3년 연속 조봉암 묘소에 조화를 보내 추모의 뜻을 표했다. 하지만 정치적인 논란을 의식한듯 문재인 대통령의 묘소 참배는 취임 4년차를 맞은 지금까지 성사되지 못했다.

망우리공원묘역(경기도 구리시 경내)에 있는 조봉암 묘소는 2011년 대법원 무죄 판결후 대대적인 정비가 이뤄져 여느 역대 대통령 묘 못지않다. 조봉암의 고향이자 지역구였던 인천 지역 정치권을 비롯 친여 인사들 역시 매년 조봉암 기일에 맞춰 묘소를 참배했다. 지난해 60주년 추모식 때도 송영길, 박찬대 의원을 비롯 박남춘 인천시장, 김원웅 광복회장(전 의원), 이부영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회장(전 의원) 등이 직접 묘소를 찾았다. 인천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추모식 등 관련 기념사업을 후원하고 있다. 올해 추모제와 어록발간 등에 책정된 인천시 예산은 5100만원이다.

올해도 망우리공원묘역 입구를 비롯해 곳곳에 조봉암의 기일을 알리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다만 죽산조봉암선생기념사업회와 유족회 측은 올해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위한 방역당국 지침에 따라 공식 추모식 대신 묘소참배로 행사를 간소화하기로 한 상태다. 주대환 죽산조봉암선생기념사업회 부회장은 “원래 200명 정도 규모로 추모식을 해왔는데 올해는 40~50명 규모로 약식으로 진행할 예정”이라며 “인천시장과 몇몇 사람들이 오겠다는 뜻을 전해 왔는데 참배하러 오는 사람을 오지말라고 막을 수야 있겠느냐”라고 했다.

※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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