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배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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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속 윤상현 의원이 나와 아들에게 안상수 전 미래통합당 의원, 박우섭 전 인천 남구청장(민주당)을 상대로 선거공작을 시켰다”는 ‘함바왕’ 유상봉씨의 그간 주장에 배치되는 물증이 나왔다. 유상봉씨가 수감돼 있던 지난 2월 23일부터 3월 19일까지 윤 의원실의 조모 보좌관에게 총 5차례 보내온 자필 편지다. A4용지 12장 분량인 이 편지에는 ‘윤 의원의 선거를 돕기 위해 안 전 의원 비리가 담긴 진정서를 쓰겠다’는 유씨의 제안이 담겨 있다. 이 같은 내용은 그간 유씨가 제기해온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유씨는 KBS와의 수차례 인터뷰를 통해 지난해 7~8월 윤 의원과 보좌관을 수차례 만났고, 경쟁 후보를 겨냥하는 내용의 진정서와 고소장을 써주는 대가로 건설현장 식당(함바) 운영권과 롯데백화점 매장 계약을 제안받았다고 폭로했다. 금전적 특혜를 제공하는 대가로 윤 의원 측이 먼저 자신에게 선거 공작을 시켰다는 주장이다. KBS는 유씨를 직접 방송에 출연시켜가면서까지 유씨의 이런 주장을 여과 없이 시청자들에게 전달했다.

KBS “윤 의원 측이 먼저 요구” 유상봉 주장 보도

하지만 주간조선이 입수한 유씨의 자필 편지에 따르면 안 전 의원에 대한 공격을 먼저 제안한 쪽은 윤 의원 측이 아니라 유씨였다. 유씨는 지난 2월 23일 조 보좌관에게 보낸 편지에서 “오늘 아침 신문을 보고 너무 많이 놀라서 글을 드린다”며 시작한다. 그는 “의원님께서 설혹 무소속으로 출마하셔도 꼭 재선하시는 데 확실한 도움이 되도록 확실하게 하겠다”고 한다. 이날은 윤 의원의 통합당 공천 컷오프 소식이 발표된 날이다. 닷새 뒤 통합당은 이 지역구 후보로 안상수 전 통합당 의원을 공천했다. 결국 무소속으로 출마한 윤 의원은 지난 4월 15일 치러진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남영희 후보와 안 전 의원을 꺾고 당선됐다.

이날 보낸 편지에서 유씨는 “정신없으시겠지만 둔촌주공아파트 롯데 현장소장과 자양동 롯데와 반포3단지 등의 현장소장들을 제 아들이 만나뵐 수 있게 급히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롯데건설은 롯데캐슬이라는 아파트 브랜드로 서울시내 재개발·재건축 현장에 대거 참여하고 있는데, 유씨가 편지에서 언급한 둔촌주공이나 반포3단지 등은 서울 시내 재건축 현장 중에서도 대규모 현장으로 꼽히는 지역이다.

조 보좌관은 이 편지들에 대해 “갑자기 이런 편지를 보내왔는데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특별히 답장하거나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3월 8일 편지에서 유씨는 “제가 이곳에서 편지한다고 해서 조금도 부담 갖지 마시길 바란다. 여기서 편지 해도 아무 상관없다”라는 추신을 덧붙인다. 이 내용으로 미루어보면 조 보좌관은 유씨에게 별다른 답을 하지 않았거나, 최소한 수감된 상태에서 자신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에 대한 껄끄러움을 내비쳤을 가능성이 높다. 이 시기 유씨는 여러 가지 혐의로 수감돼 있었고 편지들은 모두 구치소에서 보냈다.

유씨는 3월 1일 보낸 편지에서는 “제 아들에게 안상수에 대한 1차 진정서를 보냈다. 급히 인천검찰에 제출하라고 했다”고 썼다. “박우섭의 경우와는 완전히 다르다. 틀림없이 구속되게 할 수 있다”는 말도 덧붙인다. 박우섭 전 인천 남구청장은 당초 유씨가 “윤 의원의 첫 번째 선거공작 타깃”이라고 주장한 인물이다. 지난 총선에 출마했지만 민주당 경선에서 남영희 후보에게 밀려 떨어졌다.

유씨는 이 편지에서 “안상수에게 20억원 이상을 제공한 확실한 금융거래내역을 찾아서 정리하고 있으니 2차로 진정서를 접수하고 20억원 이상을 제공한 내역을 곧바로 보내겠다”는 말도 한다. 편지에는 “제가 보내드린 안상수의 1차진정서를 보시면 안상수가 구속될 것이란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는 추신도 덧붙였다. 이 점으로 미루어보면 조 보좌관은 유씨가 안 전 의원에 대해 쓴 1차 진정서를 이때서야 봤다는 얘기가 된다. 윤 의원 측에서 먼저 안 전 의원에 대한 공격을 사주했다는 유씨의 폭로와는 배치되는 정황이다.

유상봉씨는 왜 선거를 앞두고 윤 의원에게 경쟁 후보를 공격하겠다는 제안을 했을까. 윤 의원의 부인은 신경아씨로,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조카다. 유씨는 이 때문에 윤 의원이 롯데건설과 관련한 대형 건설 프로젝트 건설현장 식당과 자신을 연결해줄 수 있다고 본 것으로 추측된다. 실제로 유씨는 조 보좌관에게 총 5차례 보낸 편지 모두에서 롯데와 관련된 건설 현장을 언급하고 있다. 선거가 임박한 지난 3월 19일 편지에서도 “제 아들이 둔촌주공 롯데 현장과 자양동 롯데 현장 관계자를 급히 만나게 해달라”는 말을 지속적으로 한다.

유씨는 실제로 신경아씨와도 따로 만난 적이 있다. 지난해 9월 무렵 서울 영등포구의 한 사무실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는 것이 윤 의원실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조 보좌관에 따르면 유씨는 당시 “사업 관련해서 사모님과 진지하게 논의할 프로젝트가 있다”고 해서 윤 의원의 부인과 한 차례 만난 적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신씨를 만난 유씨가 “돈 좀 빌려달라”는 요구를 했고, 바로 논의가 중단된 뒤 더 이상의 만남은 없었다는 게 조 보좌관의 설명이다.

편지에는 유상봉씨의 아들과 관련한 대목이 여럿 있다. “아들을 통해 안상수에 대한 진정서를 보냈다” “아들을 통해 안상수 관련 내용들을 인천 언론사들에 뿌리도록 하겠다”는 내용 등이다. 유씨 아들은 편지에 언급된 본인 관련 내용이 모두 사실이냐는 질문에 “맞는다”고 답했다. 그는 “사실 인천 지역의 여러 언론사와 접촉했었는데 그중에서 기사를 내준 곳이 지역지 ○○일보이고 원래 내려고 한 곳은 더 많았다”고도 했다. 다른 언론사들은 “선거가 임박했다”는 이유로 기사를 내보내는 데 난색을 표했다는 것이 아들 유씨의 설명이다. 유씨 아들은 현재 경찰에 공직선거법 위반과 관련해 유상봉씨, 조 보좌관과 함께 피의자로 입건돼 있다.

유상봉씨의 폭로가 확산되면서 안상수 전 의원 측 역시 지난 7월 초 윤 의원을 고발한 상황이다. 안 전 의원 비서관 출신인 조모 사무국장이 윤 의원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인천지검에 고발했다. 당시 선거를 앞두고 유씨 아들이 제보해 지역 매체들이 써낸 안 전 의원 관련 기사들로 인해 안 전 의원이 큰 타격을 입었다는 것이 안 전 의원 측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윤 의원 측도 조만간 조 사무국장을 무고로 검찰에 고소할 예정이다. 주간조선은 입수한 편지 내용과 관련해 유상봉씨에게 전화로 질의했지만 7월 30일 오전까지 답을 받지 못했다.

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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