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4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여객터미널에 제주항공 비행기와 이스타항공 비행기가 멈춰 서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7월 14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여객터미널에 제주항공 비행기와 이스타항공 비행기가 멈춰 서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7월 26일 각각 전북 전주을과 전주병을 지역구로 둔 더불어민주당 이상직 의원과 김성주 의원이 만났다. 이 둘은 이날 전북도당위원장 선거를 두고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이 의원과 김 의원 모두 전북도당위원장직 출마를 준비하고 있던 때였다. 그런데 이 만남이 있고 이틀 뒤인 7월 28일, 이 의원은 민주당 전북도당위원장직에 단독으로 입후보했다. 김 의원이 출마의 뜻을 접은 것이다.

이 의원은 현재 이스타항공 직원들에 대한 임금체불과 편법 증여 논란 등에 휩싸여 있다. 이 의원이 지역 도당위원장직을 맡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말들이 전북 지역 정가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이 전북도당위원장직에 단독으로 입후보하고 오히려 강한 입후보 의지를 보였던 김 의원이 출마하지 않기로 한 ‘내막’을 두고도 말들이 무성했다. 일각에선 이 의원이 이스타항공 논란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더욱 공고하게 구축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도당위원장은 앞으로 다가올 대선과 지방선거 때 지역 내에서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다. 기초의회 선거 공천의 경우 도당위원장이 사실상 공천권을 쥐고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전북의 한 전직 민주당 지역위원장은 “김성주 의원이 누군가 부탁한다고 자기 뜻을 쉽게 접을 사람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불출마를 밝혀 놀랐다”면서 “이 의원의 직접적인 설득보다 중앙당 차원의 ‘조정’이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전북 지역 시민단체들도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 등 도내 30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전북민중행동은 지난 7월 28일 성명서를 통해 “경제사범 더불어민주당 이상직 의원(전주을)을 도당위원장으로 추대하려는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비판했다.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 인수 철회를 밝히면서, 이스타항공은 사실상 파산 직전 상태에 이르렀다. 이스타항공은 현재 다른 투자회사를 물색하는 한편 회생절차를 밟기 위한 법적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스타항공의 자본잠식이 심각한 데다가 항공업계의 불황이 장기화하고 있어 회생절차 역시 여러 난관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이스타항공 관계자는 “새로운 투자사를 접촉하고 있지만 전망은 불투명하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타항공은 전북도와 군산시 등에 자금 지원을 요청했지만, 자금 여력 부족과 정치적 논란 등의 이유로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는 지난해 12월 계획이 발표된 직후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올해 초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터지면서 항공업황이 급속도로 악화된 탓도 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국내 감염세가 최고조에 달했던 2~3월에도 제주항공은 “이스타항공 인수 계획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었다. 이스타항공 역시 코로나19로 인해 악화된 업황 등을 고려해 인수대금을 기존 696억원에서 545억원, 최근에는 400억원대까지 낮추기로 했다. 그럼에도 딜이 깨진 것이다.

항공업계에서는 코로나19라는 외부적 요인보다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 수뇌부 간의 신뢰에 금이 간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두 회사 간의 인수합병 계획이 발표된 이후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 실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여러 언론이 이스타항공의 악화된 재정 상태를 보도했는데, 이를 두고 이스타항공 임원진 사이에서는 “제주항공이 인수대금을 깎기 위해 의도적으로 언론에 흘린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외부에선 알기 어려운 수치까지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상직 의원은 지난 7월 28일 전북도의회에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미 실사를 마치고 가격조정까지 다 했다. 이 과정에서 영업기밀도 다 노출됐을 것”이라면서 “제주항공으로부터 인수합병 제의가 먼저 들어왔고 노선 조정도 한 것으로 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먹튀를 한 건 제주항공이다”라고 했다. M&A 파트너였던 제주항공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두 회사 사이의 신뢰가 인수 과정에서부터 금이 가기 시작하면서, 이스타항공 수뇌부는 제주항공과의 딜이 무산될 가능성을 염두에 뒀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스타항공 관계자는 “인수를 철회할 거면 아예 빨리 결정을 내려줬어야 한다”며 “제주항공이 외부에는 (인수를) 할 것처럼 이야기하며 시간을 끌어 회사를 더 곤경에 빠지게 했다”고 전했다.

한편 제주항공 내부에선 인수계획 발표 직후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 항공업계가 불황을 맞기 전까지만 해도 제주항공은 애경그룹 내에서 가장 큰 수익을 올리는 ‘효자’였다. 여기에 고무된 애경그룹은 항공업의 확장을 위해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에도 뛰어들었다. 비록 아시아나항공 인수는 현대산업개발(HDC)에 밀렸지만, 이스타항공 인수를 통해 ‘체급’을 키우려 했다. 이스타항공을 흡수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 이은 항공업계 ‘빅3’로 올라서겠다는 포부였다. 항공업계 전망이 어둡지 않았던 때만 해도 제주항공 수뇌부에선 “아예 계열사 한 곳을 매각해 항공업에 더 집중 투자하자”는 제안까지 나왔다고 한다.

지난 7월 28일  전북 전주시 전북도의회 기자실에서 전북도당위원장 출마 관련 기자간담회를 연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물을 마시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7월 28일 전북 전주시 전북도의회 기자실에서 전북도당위원장 출마 관련 기자간담회를 연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물을 마시고 있다. ⓒphoto 뉴시스

제주항공의 이스타 불신이 결정적 문제

하지만 이스타항공 인수가 무산되면서 제주항공의 이런 계획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당장 제주항공도 앞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많다. 제주항공 일각에선 이스타항공과 결별하게 되면서 앞으로 닥칠 후폭풍에 대한 걱정도 나오고 있다. 제주항공의 한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서 이스타항공을 인수하는 것도 무리수였지만, 인수를 포기하면서 돌아올 ‘외풍’에 긴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상직 의원과 여권 일각에선 이스타항공 사태의 책임이 제주항공에 있다고 보고 있다. 때문에 국토부 등 정부와의 협력 관계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고 보는 우려가 제주항공 내부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스타항공 조종사노조와 사측의 갈등까지 격화되고 있다. 이스타항공 조종사노조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와 함께 지난 7월 29일 조세포탈과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등의 혐의로 이상직 의원에 대한 고발장을 서울남부지검에 제출했다. 박이삼 조종사노조 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무책임으로 일관하는 이 의원에 대해 사법적 책임을 묻는 한편 불법적으로 사익을 편취한 부분이 있다면 내려놓게 해 이스타항공을 살리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사실상 파산 상태의 회사에서 노사 간의 대립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스타항공 사측은 “조종사노조는 사원 전체를 대변하는 노조도 아닐뿐더러 무리한 투쟁 일변도로 직원들을 더 곤경에 빠뜨리고 있다”고 했다.

키워드

#뉴스 인 뉴스
곽승한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