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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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경영전략연구원 산하 건전재정포럼의 최종찬 대표는 1990년대 재정경제원(현 기획재정부) 초대 경제정책국장,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 차관, 김대중 대통령의 정책기획 수석비서관 등을 역임하며 경제정책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은 정통 관료 출신이다. 2003년 그는 참여정부 초대 건설교통부 장관에 올랐고 서울 집값 안정을 위해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머리를 맞대야 했다. 그가 장관으로 재직하던 2003년 한 해에만 정부는 5·23 주택가격 안정대책, 9·5 부동산시장 안정대책, 10·29 주택시장안정 종합대책 등 굵직한 부동산 정책을 세 차례나 발표했다. 대책의 핵심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종합부동산세 도입, 수도권 투기과열지구 지정, 분양권 전매제한 확대 등으로 현재 문재인 정부가 쏟아내는 부동산 대책의 뼈대를 이루는 내용들이었다.

이 때문에 최 대표는 최근 정부가 내놓는 부동산 대책의 허와 실을 그 누구보다 잘 꿰뚫었다. 최 대표는 “부동산 수요 억제에 초점을 맞춘 것은 참여정부나 현 정부나 크게 다르지 않지만, 현 정부는 시장경제 원리에 대해 더 낮은 이해도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현 정부의 20차례 넘는 부동산 정책,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치솟는 집값, 정부·여당의 지지율 급락 등을 두고 ‘참여정부 데자뷔’란 비판이 적지 않은데, 최 대표는 지금의 부동산 정책은 참여정부 때보다 더 퇴보하고 있다고도 본다. 지난 8월 11일 서울 강남역 인근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현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정책에 아쉬움과 걱정을 표했다.

노무현에게 밀리는 시장경제 이해도

최 대표는 지난 8월 10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나왔던 문재인 대통령의 ‘집값 안정’ 발언부터 언급하고 나섰다. 문 대통령은 그날 “주택시장이 안정화되고 집값 상승세가 진정되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발언한 바 있는데, 최 대표는 이를 두고 “다소 이해되지 않는다. 집값이 안정된다는 지표를 본 적도 없고, 있다 하더라도 최근 심각해지는 전·월세 문제에 대해선 애써 외면하려는 듯하다. 부동산 정책 수립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우고는 그 과오를 인정하지 못한 채 편향된 관점으로만 대응하려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현 정부가 부동산 문제로 참여정부 때보다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도 내다봤다. 참여정부는 집권하는 동안 총 30여차례의 부동산 대책을 내놓으면서도 집값을 제대로 잡지 못해 정권에 큰 타격을 입었는데, 문재인 정부는 더 큰 위기를 맞닥뜨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시장경제에 대한 정부 인사들의 낮은 이해도가 이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참여정부 1기 내각만 보더라도 권오규 청와대 경제수석, 김진표 경제부총리 등을 중심으로 정부 인사 대부분이 정통 관료 출신의 전문가들이었다. 여기엔 기재부 출신도 상당수였다. 그러다 보니 시장경제 원리에 대한 이해도가 다들 높았고 사석에선 경제 논리에 대한 대화도 자유로이 오고 갔다. 지금처럼 정치적, 이념적인 사람들이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경우는 없었다.”

노 전 대통령의 경우 당시 다수의 정책 수립 과정에서 ‘큰 정부’를 표방했지만 필요에 따라선 시장경제 논리를 우선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최 대표는 “대표적인 예가 철도청 공사화 결정이었다. 사실 철도는 공공부문이었던 만큼 진보정권에서 이를 결정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이를 검토하기 위해 청와대 내부에서 난상토론을 실시했고 공사화를 직접 결정했다. 필요하다면 시장의 기능도 인정하는 거였다”고 말했다.

이런 면모는 참여정부 초기 부동산 정책에도 반영됐는데, 현 정부와 참여정부의 차이는 여기에 있다고 한다. 당시 참여정부는 주택 수요 규제에 박차를 가하면서도 시장의 수급 원리를 고려한 부동산 공급 확대에도 주의를 기울이고자 노력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사실 부동산 정책의 큰 줄기는 수요를 억제하면서도 공급은 늘려 집값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세계 각국의 스탠스도 이와 동일한데, 노 전 대통령은 내가 재직할 때 김포와 파주 등을 신도시로 지정하는 것은 물론 부동산 공급 확대를 해칠 만한 규제에 대해선 손을 뗐다.”

당시 최 대표는 16대 국회에서 발의한 분양가상한제, 분양가 원가 공개 등을 골자로 한 법안 개정안이 발의되자 직접 의원들을 설득해 입법을 반대했고, 노 전 대통령 또한 이에 대해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해당 법안은 주택 공급을 위축시키고 원가 개념이 불분명한 상황에서 시장만 혼란스럽게 하는 내용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이에 대해 한 차례 묻고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고 동의 의사를 밝혔다. 시민사회계에선 이를 두고 ‘진보정권이 맞냐’는 비판도 제기됐지만 노 전 대통령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우려가 더해지는 건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 인사들이 대책 수립 과정에서 이런 이해나 고민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부동산 문제는 현 정부에서 더 큰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여지가 크다”고 내다봤다.

2003년 참여정부 당시 최종찬 전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 장관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오른쪽)에게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photo 연합
2003년 참여정부 당시 최종찬 전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 장관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오른쪽)에게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photo 연합

허울뿐인 8·4 부동산 대책

최 대표가 평하는 지금의 부동산 정책은 한마디로 ‘규제 일변도’이다. 주택 공급에 대한 고민은 부재하며 새로 실시하는 규제책은 되레 기존 공급까지 쪼이고 있다고 본다. 특히 지난 7월 통과한 전월세신고제·전월세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제 등을 핵심 내용으로 한 임대차 3법은 무주택자와 임차인 보호를 목표로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선 추가 주택 공급 규모를 제로에 가깝게 만들어 집 구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든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 중 집 소유자는 약 57%이며 나머지 43%는 무주택자다. 이 43% 중 LH 등이 공급하는 공공임대주택에 거주하는 비율은 10%, 그 외 무주택자들은 민간에서 공급하는 임대주택에 산다. 쉽게 말해 지금의 규제는 이런 민간의 임대주택 운용 유인을 없애면서 기존 거주 주택 공급까지 막고 있는 거다. 다주택자는 부동산 투기꾼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임대주택 공급업자라는 사실도 고려해야 한다.”

만약 정부가 이 규제안을 실시해야 했다면 공공에서 주택 공급을 대신할 방안도 마련했어야 하는데, 이 또한 마땅치 않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최 대표는 “정부는 8·4 부동산 대책에서 공공참여형 재건축 등을 통해 13만2000가구의 임대주택을 새로이 공급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 중 절반은 추정치에 불과하다. 재개발·재건축 용적률 완화로 이를 추진하겠다지만, 기대이익의 90%를 환수하겠다고 하면 여기에 동의하고 참여할 조합은 소수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사실 재개발·재건축이 이뤄지려면 적정 인센티브가 주어져야 하는데, 현 정부는 이를 간과하고 있다. 정권 교체 후 낮아질 이익환수율을 노리고 재개발을 미룰 가능성에 대해서는 짚지 못했다. 더군다나 공공이 참여한 재개발이 당장 이뤄지는 것도 아니지 않나. 그때까지 시장에 공급되는 물량은 ‘0’에 수렴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최 대표는 사실 우리나라 같은 경우 재개발·재건축은 신도시 조성 등의 정책보다 더 우선했어야 할 의제라고 말한다. 비용이나 실수요 충족 면을 고려하면 재개발·재건축이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3기 신도시를 지정하기에 앞서 재개발·재건축에 더 집중했어야 했다. 재개발은 이미 실수요가 있는 지역을 개발하는 것으로 가수요의 투입 우려가 신도시 조성보다 적고 그 비용도 상대적으로 덜 든다. 참여정부 때는 상대적으로 노후한 단지가 많지 않아 재개발 자체가 이슈화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그는 인구가 지속해서 감소하는 현 상황에서 외곽에 신도시를 조성하는 것은 되레 도시공동화 현상을 발생시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최 대표는 “신도시를 무리하게 조성하려다 지금에 와서 인구 감소로 도시공동화 현상을 겪고 있는 일본의 사례가 이를 뒷받침한다”며 “노후한 건물을 언제까지고 방치할 순 없다”고 설명했다.

최 대표가 공급을 통한 부동산 수급 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에는 이미 역대 정부에서 그 효과를 체감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가 경제기획원에 몸담고 있던 지난 1988~1989년 노태우 정부 시절 주택 문제는 지금보다 더 심각했지만, 이를 단번에 해결한 것이 대대적인 공급대책과 이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감이었다고 한다.

“당시 국민 1인당 GDP는 1500달러에서 5000달러로 3배 이상 오르면서 시장엔 상당한 돈이 풀렸다. 1980년대 도입된 아파트에 대한 인기는 하늘을 찔렀고 집값은 치솟았다. 이에 정부는 건설사들의 분양가를 직접 규제하고 나섰다. 근데 건설사들이 아파트 건립을 기피하면서 주택보급률은 1~2%에 그치더라. 과도한 규제가 되레 공급을 막은 것이었다. 정부는 결국 5대 신도시(분당·일산·평촌·산본·중동) 개발사업을 발표했고 수십만 가구의 분양권을 국민들에게 일단 뿌리고 봤다. 아파트는 당장 올라가지 않았지만 시장은 곧바로 안정되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1990년대 주택가격 상승률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넘지 않았다.”

행정수도 이전, 표심 결집 위했던 것

최 대표는 지난 7월 정부와 여당이 수도권 과밀, 부동산 문제 해결을 위해 꺼내든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서도 짚었다. 현재 여당은 행정수도완성추진단 운영으로 올 연말까지 이전 방안을 확정, 참여정부 시절부터 추진해온 국정과제를 완성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참여정부에 몸담았던 최 대표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참여정부 당시 행정수도 이전은 국토균형발전을 위해 수립된 정책이지만, 당시 상황을 들여다보면 노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서 충청도 등 지방 표심을 얻기 위한 수단적 측면도 강했다. 그렇다 보니 당시 이 의제는 건교부보단 청와대에서 주도했고, 부동산 대책으로 논의된 적은 전무했다. 근데 지금에 와서 이 의제를 부동산 정책과 엮어 꺼내 드는 게 최선인 건지는 따지고 볼 문제다.”

그는 또 “그때와 지금의 상황도 다르다. 쉽게 말해 참여정부 당시엔 전체 인구 중 절반이 안 되는 인구가 수도권에 거주했지만 지금은 이보다 더 많은,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있다. 행정수도 이전에 따른 비용은 커지고 효용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전 세계가 집적 효과를 노리며 메가시티(Megacity) 운영에 방점을 찍는다는 걸 고려하면 행정수도 이전은 물리적으로 수도권을 틀어막는 것에 불과하다.” 오히려 지방 지역에 GTX 등의 교통망 설치로 수도권과의 접근성을 높이고 지역 경쟁력을 갖추는 등의 ‘부동산 수요 분산책’ 강구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최 대표는 부동산 특성상 시장 안정은 단번에 꾀하기 어렵다고 본다. 때문에 정책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비판과 지적에 정부는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흔히들 말하는 것처럼 국토부 장관이 억울한 점도 있다. 부동산시장은 단순히 수요·공급에 의해서만 널뛰기하는 게 아니라 금융과 금리, 투자심리에 의해서도 복합적으로 움직여서다. 미리 예견하고 조치하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부동산 정책은 독선적으로 가선 안 되며 과거를 답습해서도 안 된다. 매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제기되는 여러 목소리에 경청하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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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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