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장혜영 정의당 혁신위원장이 혁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8월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장혜영 정의당 혁신위원장이 혁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총선에서 정의당은 의석수 6석에 그치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인한 제도적 불리함도 있었지만, 정의당 스스로도 지지자들에게 만족할 만한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는 지적이 내부에서 나왔다. 총선 참패는 정의당 내부의 해묵은 논쟁에 다시 한번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됐다. 바로 심상정 대표를 대신할 만한 대중 정치인이 배출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노회찬 전 의원이 세상을 떠나면서 정의당 내의 이런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오히려 이제는 ‘정의당이 심상정 대표에 의해 사당화 됐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이른바 ‘심상정 사당화’ 논란이 일어난 것인데 이는 지난 총선 공천과정에서 본격화되기도 했다.

이에 정의당은 총선 직후 당 쇄신을 위해 혁신위원회를 발족, 2개월간의 내부 논의를 거쳐 지난 8월 13일 ‘정의당 혁신안’을 내놓았다. 혁신위가 내놓은 혁신안은 강령개정 권고, 대의기구 개편, 당원 직접민주주의 확대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문제는 이 혁신안이 혁신을 위한 의제를 담았다기보다는 오히려 당의 고질적인 문제, 즉 지도부의 사당화 현상과 당내 계파 문제 등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이런 지적은 공개석상에서도 터져나왔다. 혁신안 최종안을 발표했던 8월 13일 성현 혁신위 위원은 장혜영 혁신위원장의 발언을 끊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혁신위는 사실상 실패했다. 여기에 이견을 갖는 위원은 없을 거다.”

지도부 비판보단 계파 이권 챙기기

성 위원을 포함한 정의당 전·현직 당원, 관계자들이 지적하는 혁신위의 실패는 수년 전부터 이어져 온 당내 계파 경쟁에서 비롯된다. 누구나 알고 있듯 정의당은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때부터 NL(민족해방)계, PD(민중민주)계 등의 노선경쟁이 있어 왔다. 지금에 와서는 이런 노선경쟁이 분화되어 지역 시도당을 중심으로 한 점조직 간 힘겨루기 양상으로까지 옮겨가고 있다.

힘겨루기는 혁신위 위원 선출 과정에서부터 드러났다. 지난 5월 18명의 혁신위 위원 선출은 전국위원들이 후보를 2명씩 추천하고 이를 시도당위원장 연석회의에서 의견조율을 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정의당 한 당원은 “때문에 각 시도당 이해관계가 개입될 수밖에 없었고 혁신위는 계파 간 위원 분배 형식으로 구성됐다. 혁신위원 면면을 보면 5~6명을 제외하곤 계파 사람들이 다수 포진됐다. 애초부터 혁신 의식이 있는 위원들로 선출됐다고 보기 어려운 거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다 보니 혁신안 일부 내용엔 계파들의 이권 강화를 위한 수단적 조치도 포함됐다는 주장이 나온다. 당대표·원내대표·부대표·청년정의당대표로 구성된 대표단 회의 신설 항목이 그 같은 예다. 이 항목 내용에 따르면 기존 3인이었던 부대표는 5인으로 늘어 나게 된다. 성현 혁신위원은 “계파를 위한 밥그릇 늘리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총선 비례대표 후보 경선 때 계파 간 갈등, 계파 내 갈등이 고조됐던 것처럼 부대표 자리를 두고 똑같은 일이 일어날 거다”라고 비판했다. 지난 총선 때 각 계파에서 자신들이 밀고 있는 비례대표 후보를 앞번호에 배치하기 위한 경쟁이 일었던 것처럼, 부대표 선거에서도 자기 사람을 꽂기 위한 경쟁이 벌어질 거란 이야기다.

이에 대해 이정미 전 의원도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실상 집단지도체제를 꾸리겠다는 건데, 정의당은 창당 초기에 집단지도체제를 실험해 보고 그 한계점을 경험한 바 있다. 지금의 당대표 책임제를 유지해 온 건, 이런 이유에서다. 총선 평가 본질과는 무관한 조치다. 지도부의 책임만 분산될 것이다.”

혁신위 자체가 이런 식으로 구성, 운영되다 보니 지난 총선을 이끈 지도부의 과오를 진단, 비판하는 목소리는 제대로 나올 수 없었다. 혁신위가 내놓은 혁신안은 대의기구, 지도체제 개편을 제외하면 사실상 현행 체제 유지를 골자로 하고 있다. 지도부의 정무판단 등에 대한 지적이나 총선 실패에 대한 언급은 전무한 것인데, 지난 5월 총선 평가 토론회 내용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이와 관련해 성현 위원은 “정의당이 총선 실패를 겪었다면 비대위를 만들어 실패를 인정하고 새 출발을 해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혁신위를 만들다 보니 이렇게 된 측면도 있다”고도 지적했다.

실제 정의당 내에선 총선 직후 심상정 대표가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원성도 있었지만 지도부는 당 혼란 등을 이유로 비대위보단 혁신위를 설립, 지금의 지도부 체제를 유지하는 안을 택했다. 최근 정의당의 당원 게시판에 ‘심상정 사당화’를 비판하는 글이 적지 않게 올라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와 관련해 정의당의 한 전직 관계자는 “총선을 앞두고서도 마찬가지였다. 심 대표는 교섭단체에 대한 꿈이 컸다. 그때 50억원을 은행권에서 차용한 걸로 안다. 당시 당에 빚이 많아 운영진 내부에선 ‘무리하게 했다가 안 되면 큰일난다’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했지만 심 대표와 사무총장은 ‘교섭단체가 되면 빚을 다 청산할 수 있다’며 밀어붙이더라”라고 귀띔했다. 그만큼 심 대표의 입김이 당에서 크게 작용한다는 이야기다.

혁신 빠진 ‘혁신위’ 후폭풍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의당 내부는 혁신위 활동으로 인해 분열이 심화되는 양상도 보이고 있다. 혁신위 구성을 주도했던 일부 전국위원은 ‘혁신위 구성 철회’ 안건까지 발의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당원들 사이에선 ‘새로운 정의당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형성, 비대위 출범을 통해 당의 정체성부터 다시 고민하자는 주장도 고개를 들고 있다.

당내 곳곳에서 이렇게 반대의 목소리가 제기되는 이유는 결국 혁신위의 본래 역할, 즉 정의당이 앞으로 집중해야 할 정책 과제와 정치적 비전 등을 제시하지 못한 측면도 있다. 정의당은 총선 전후로 ‘민주당 이중대’ 벗어나기에 급급해하며 기본재난소득 등 다수의 진보 의제를 선제적으로 점유하는 데 실패했고 존재감도 잃었다. 이 때문에 당내에선 민주노동당 시절 무상급식·무상교육·무상의료 등을 과감하게 제시하던 때를 회상하며 정책적 선명성에 대한 바람이 컸다.

지난 5월 총선 평가 토론회에 참석했던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혁신위라는 건 정당의 역사와 메커니즘을 잘 아는 사람들로 구성돼야 한다. 근데 지금의 혁신위 위원들은 경력도, 비전도 없는 인물들로 구성돼 있고 총선 경험도 없다. 만약 외부인사들로 구성됐다면 조금은 달랐을 수도 있지만 그러지 못했고 청사진은 그려질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제21대 총선 정의당 투표자 심층 여론조사’ 등에 따르면 지난 총선에서 정의당에 투표한 전체 유권자 중 절반 이상은 당이 ‘노동자’를 대변하길 바라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총선 전후 정의당과 혁신위는 지속해서 ‘젠더’ 정책 등에만 총력을 기울였고 이는 당원들의 대거 탈당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당 안팎의 시선이다. 앞서의 정의당 전직 관계자는 “이걸 두고 당내에선 물갈이라고 본다. 나갈 사람은 나간다며 긍정적으로 보는 거다. 하지만 이는 현실 의식 없는 관료주의, 엘리트주의로 나아가는 당 운영이다. 혁신위는 이 또한 바로잡지 못했다”고 말했다.

정의당은 8월 30일 당대회에서 혁신위의 혁신안을 최종 추인할 계획이다. 당내에선 그간의 경험을 비춰봤을 때 일부 내용만 수정하는 형태로 통과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새 지도부는 이를 토대로 9월에 선출될 예정이지만 ‘포스트 심상정’이 가능할지에 대해선 의문을 제기하는 시선이 많다.

이정미 전 의원은 “혁신위 활동이 쇼킹한 결과를 만들지 못하면서 새 지도부에 대한 물음은 커졌다. 하지만 나 또한 지난 국회에서 당대표로 나서던 당시, 비슷한 물음에 섰었다. 2년 후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당을 잘 이끌었다는 소리가 들리더라. 마찬가지다. 충분히 역량 있고 준비된 정치인이 잘 이끌어 갈 거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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