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노영민 비서실장. ⓒphoto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노영민 비서실장. ⓒphoto 뉴시스

‘다리를 저는 오리’라는 뜻의 레임덕(lame duck)은 권위가 떨어지고 말이 먹혀들지 않는 현직 대통령을 시각적으로 상징한다. 대통령 연임제의 미국에서 현직 대통령은 10월 대선에서 지면 새 대통령이 취임하는 이듬해 1월까지 3개월간 레임덕이 된다. 한국에서 대통령은 5년 임기 중 4년 차 즈음에서부터 레임덕에 빠져들기 시작한다는 분석도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레임덕은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말한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4월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다. 2017년 5월 취임해 집권 4년 차를 보내는 문 대통령만은 레임덕 공식에서 예외가 되는 듯했다. 그러나 선거 4개월 만에 대통령 레임덕 문제는 마치 예약이라도 된 것처럼 스멀스멀 나오고 있다.

기사 데이터베이스와 빅데이터 분석기술을 접목한 ‘빅카인즈’에서 ‘레임덕’을 검색어로 최근 뉴스 트렌드를 알아봤다. <그림 1>이 보여주듯이, 레임덕 관련 뉴스는 총선 직후인 5월에 미미한 수준이었으나 8월로 가면서 분량이 급격하게 많이 쌓이고 있다.

선거에서 대승을 거둔 대통령에게 레임덕 논란이 나오는 원인이 궁금해진다. 시선을 끄는 것은 ‘빅카인즈’가 분석한 핵심어 연결망(<그림 2>)이다. 이 핵심어들은 뉴스 안에서 레임덕과 가장 자주, 긴밀하게 연결된 단어들을 지칭한다.

‘검색어’(레임덕)에 ‘대통령’ ‘문재인’ ‘청와대’가 연결되는 것은 당연하다.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문 대통령의 레임덕 문제를 각각 처음 제기하거나 방어한 주축이므로 핵심어가 되었을 것이다. ‘페이스북’은 정치인들이 주로 자신의 페이스북 글을 통해 레임덕 문제에 갑론을박한 것이 반영된 결과다. 뜻밖의 단어는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칭하는 ‘노영민’ ‘비서실장’ 그리고 ‘검찰’이다.

집단 사의는 내부 분란과 권력 누수로 비쳐

노영민 실장이 레임덕이라는 단어 자체를 언급한 적은 거의 없다. 대신 그는 산하 수석 6명을 이끌고 갑작스레 사의를 표명했다. 반포의 아파트를 보유하는 대신 의원 시절 지역구인 청주의 아파트를 팔겠다고 한 것으로 알려진 적도 있다.

안타깝게도 여러 뉴스에서 노 실장 주도의 집단 사의는 자기희생이 아닌 내부 분란과 권력 누수로 비쳤다. 그는 나중에 아파트 두 채를 모두 매각한 것으로 알려진다. 빅3(비서실장·총리·국정원장) 중 한 명으로서 ‘부동산 노블레스오블리주’를 실천한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대통령 최측근이 지방 아파트를 던지고 강남 아파트를 품었다’라는 초기 이미지가 주는 강렬함과 충격파가 너무도 컸다. 본인으로선 억울하겠지만, 여론의 장에서 ‘노영민’은 ‘문재인 정권의 부동산 어벤저스’로 풍자되고 ‘실패하는 부동산정책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부동산 문제는 문 대통령의 위기의 진원지가 됐다. 이로 인해 ‘문재인’ ‘레임덕’ 옆에 연관어로 ‘노영민’이 위치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레임덕’과 연결된 것은, 검찰이 문 대통령의 레임덕을 가져올 잠재적 위협요인으로 평가되기 때문일 것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부정부패와 권력형 비리를 외면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야 한다”라면서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있는 독재와 전체주의를 배격하는 진짜 민주주의”를 언급했다. 야당은 ‘여권이 검찰 인사권을 행사하면서 수사를 통제하려 하자 총장이 목소리를 높인 것’으로 본다. 더불어민주당 측은 윤 총장을 일제히 비판했다. “임명받은 권력이 선출 권력을 이기려고 한다. 개가 주인을 무는 꼴”이라는 말도 나왔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윤 총장의 수사지휘권 행사에 제동을 걸었다.

역대 대통령들은 검찰 수사로 드러난 권력형 비리로 임기 말 극심한 레임덕을 겪었다. 이 정부에선 “권력형 비리를 외면하지 않겠다”라는 검찰총장과 “주인을 무는 검찰을 개혁하겠다”라는 여권이 대치 중이다. 이런 형국이라 ‘검찰’이 ‘레임덕’과 연결되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레임덕 논란이 나온 직접적이고 실증적인 이유는 여론조사 지지율에 있을 것이다. 지난 8월 14일 발표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도는 39%로 나왔다(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지난해 10월 39%가 나온 이후 처음으로 30%대로 내려갔다. 응답자들은 부정적 평가의 원인으로 부동산정책(35%)을 가장 많이 꼽았다. YTN의 의뢰로 리얼미터가 8월 10~14일 수행한 여론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34.8%)과 미래통합당(36.3%) 간 정당지지율도 역전됐다(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2.0%포인트).

여론 반전시킬 새로운 이슈가 있을까

몇몇 연구에 따르면,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의 권력은 법과 제도에 의해 일률적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여론의 지지를 얻는 대통령은 그렇지 못한 대통령보다 행정부를 더 강하게 장악하고, 입법부의 견제로부터 더 자유로워지며, 궁극적으로 더 쉽게 자신의 방향대로 국정을 끌고 간다. 여론의 지지야말로 국정의 참된 동력이자 레임덕을 막는 특효약이라 할 수 있다.

일부 평론가도 “‘민심(民心) 이반’에서부터 대통령의 통치권 누수가 시작된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민심’은 정약용의 ‘목민심서’에도 나오는 유교적 개념인데, 현대사회에서는 대체로 여론조사 지지율로 측정된다. 이에 따르면 ‘지지율 추락에서부터 레임덕이 시작된다’라고 할 수 있다. 대체로 지지율 30%대는 레임덕 경고 상황, 20%대는 위기 상황, 10%대 이하는 심각 상황으로 여겨진다.

이론적으로 대통령제에서 가장 바람직한 일은 ‘대통령이 임기 내내 지지율을 일정하게 유지하거나 높여 나가면서 경제 치적 등을 쌓는 것’이다. 대통령들에게 ‘지지율 관리’ 능력이 있느냐에 대해선 긍정론과 비관론이 교차한다.

긍정론은 대통령이 새로운 이슈를 내세워 불리한 여론을 반전시킬 수 있다고 본다. 대통령은 자기 나라 안에서 ‘가장 강력한 이슈메이커’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말은 그 주제에 대한 공중의 지지를 쉽게 끌어올릴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초까지 ‘조국 사태’와 ‘경제 실정론’에 직면해 지지율 정체 및 하락을 경험했다. 올해 초 외신은 그의 레임덕 문제를 거론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K-방역(성공적 코로나바이러스 방역)’이라는 새로운 이슈를 내세워 여론 반전에 성공했다. 최근엔 ‘전광훈’ 이슈를 제기한다.

반면 ‘레임덕의 필연성’을 주장하는 비관론은 현대 대통령의 여론 설득력이 미디어에 의해 훼손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대통령이 공중을 향해 어떤 주장을 펴더라도, 미디어가 대통령의 말에 반하는 야당이나 전문가들의 견해를 자주 보여줌으로써 대통령의 설득력을 반감시킨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말에 ‘딴죽’을 거는 보도와 논평은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지지율이 한풀 꺾일수록 더 확산한다고 한다. 이에 따라 임기 후반 대통령은 지지율 회복을 다시는 경험하지 못한 채 권력쇠퇴기로 접어든다는 이야기다.

미디어뿐만 아니라 온순한 국민도 대통령의 반대편에 설 수 있다. ‘제한된 수용자’ 이론에 따르면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을 제외한 국민은 대체로 인기가 떨어진 대통령의 말에 좀처럼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며 그 말을 기억조차 하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대통령이 자신의 핵심적인 경제 이익을 침해하고 있다고 느낄 때 해당 국민은 대통령에 대한 자신의 지지를 조용히 거둬들인다. 이 지지철회는 거의 ‘원상복구’되지 않는다. 이념이나 가공된 이미지보다 우선시되는 것이 실리(實利)기 때문이다.

경제적 이유 지지철회는 원상복구 안 된다

그렇다면 앞으로 문 대통령의 레임덕은 가속화할까, 아니면 신기루처럼 사라질까? 많은 사람의 관심사일 것이다. ‘노영민’ ‘검찰’ ‘지지율’이라는 레임덕의 키워드 중에서 노영민 문제는 문 대통령이 그를 비서실장에 유임함으로써 여전히 진행형이다. 노영민과 지지율 문제는 중첩적으로 부동산정책과 연결돼 있다.

이 정책은 보유세와 거래세 모두를 올려 투기를 막는 한편, 주택임대기한을 늘리고 임대료 인상을 제한해 임차인을 보호하고자 한다. 그러나 집을 계속 보유하려는 사람, 집을 팔려는 사람, 집을 사려고 대기 중인 사람 중 상당수는 늘어나는 세금과 줄어든 기회에 불만을 나타낸다고 한다. 내년에 대폭 오른 세금 고지서를 실제로 받아들면 실망은 더 커질지 모른다.

다수를 차지하는 주택 임차인의 여론이 중요한데, 서울 시내 상당수 세입자는 법 시행 후 ‘전세 품귀, 전세가 상승, 전세의 월세 전환’ 조짐이 나타나자 불안해한다. “하, 5억 올랐습니다.” 헬리오시티에서 퍼지는 세입자 곡소리. 한 기사의 제목은 새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 후 극도로 불안정해진 아파트 전세 세대의 상황을 잘 설명한다.

부동산정책은 국민의 중대한 경제 이익과 연결된다. 소유주, 매도자, 구매희망자, 세입자의 대부분이 불만을 나타낸다면, 이것은 국민 대부분이 화가 나 있다는 뜻이 된다. 중장기적으로 대통령의 지지율은 반등하기 어렵고 레임덕 논란은 커질 가능성이 있다.

여권은 정책 효과가 곧 나타날 것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단순한 기대가 아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정권이 바뀔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근저엔 깔려 있다고 봐야 한다. 효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여권은 ‘더 센 정책’이나 ‘플랜B’를 고려할지 모른다.

레임덕의 다른 키워드인 검찰은 ‘추미애-이성윤(서울중앙지검장)의 검찰’과 ‘윤석열의 검찰’로 나뉜 듯하다. 전자는 공세적이고, 후자는 폭행을 당하면서(한동훈 검사장) 수세에 몰리고 있다. 그러나 더 불안한 쪽은 여권인지 모른다. 수사기관인 후자엔 늘 반전의 카드가 있다. 명분과 여론도 중요하다. MBC 여론조사 결과, 법무부 장관의 검찰개혁 방향에 대해 국민 51.5%는 “잘못하고 있다”라고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윤석열에 대한 여권의 말 폭탄은 불안감의 방증인지 모른다.

내년 4월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는 문 대통령의 레임덕 문제의 최대 분수령이 될 것이다. 열리지 말았어야 할 이 선거에서 야당이 승리하면, 여당의 179석이나 대통령의 권좌는 작아져 보일 것이다. 2022년 3월 대선에서 정권이 야당으로 넘어갈 가능성도 이전보다 커진다. 서울·부산에서 야당 지지율이 여당을 앞서나가는 것은 야당에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여권에 이 야당은 늘 쉬웠다. 2016년 총선부터 내리 네 번을 모두 이겼다. 이 때문에 ‘이번에도 야당이 실수할 것이고 여권이 반전의 기회를 잡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대통령은 될 수 있는 대로 지지율 추락과 레임덕을 피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처럼 60%의 지지율로 퇴임할 수도 있다. 그것은 “한국 대통령제가 ‘버뮤다 삼각지’ 같은 ‘마(麻)의 레임덕 존’에서 벗어나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비행하는 순간”으로 기록될 것이다. 퇴임 지지율 60%는 부동산 실패, 경제 실정, 편 가르기 논란을 결국 극복해 5년 임기의 해피엔딩을 만든다는 의미이므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대통령은 실패할 수도 있다. 이럴 때 레임덕은 나쁜 일이 아니며, 외려 국가의 안전판이 된다. 미국 정치 코미디언 스티븐 콜베어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지지율이 25%인 것에 대해 “국민의 75%는 이 대통령이 하지 않은 활동을 지지하는 것”이라고 농담했다. 레임덕은 국정을 오도하는 대통령의 활동과 영향력을 최소화함으로써 새 대통령이 올 때까지 국익을 보호하는 효과를 낸다.

허만섭 국민대 교양대학 부교수·전 신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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