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원식 더불어민주당 행정수도완성추진단장이 지난 7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수도완성추진단-국정과제협의회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행정수도완성추진단장이 지난 7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수도완성추진단-국정과제협의회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7월 2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불거진 느닷없는 행정수도 이전론은 집권세력의 가벼움을 여실히 드러내었다. 1392년 조선왕조 개국 이래 6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 땅의 수도는 서울이었다. 국가 백년지대계를 넘어 천년지대계에 가까운 천도 문제를 자신들의 지지율 하락을 타개하기 위한 국면전환 전술로 들고나왔으니, 그 부박(浮薄)함을 탓해 무엇하랴.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집권세력은 수도권 과밀 해소와 국토 균형발전을 명분으로 들고나왔다. 한국은 수도권 집중 및 과밀화가 매우 심한 나라다. 반면 지방은 젊은 인구 유출과 고령화로 활기를 잃고 있다. 한국인들은 좁은 국토를 더욱 좁게 이용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수도권 과밀 해소는 전 국민적 합의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문제는 철학과 방법론이다. 서울에서 세종으로 공간 이동을 한다고 해서 수도권 과밀이 온전히 해소될 수 있을까. “말은 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오랜 속담은 수도의 중요성을 상징한다. 시대의 선각자였던 다산 정약용도 유배지에서 아들들에게 쓴 편지에서 “절대 한양 사대문 안을 떠나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서울이 일반 도시였다면 이런 얘기가 나왔겠는가. 정치, 경제의 자원이 고도로 집중해 있는 수도였기 때문에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미국의 한국 전문가 그레고리 헨더슨이 지적했듯이 중앙권력을 향해 모든 활동적 요소를 휘몰아가는 ‘소용돌이의 한국 정치’를 근본적으로 개조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수도의 공간 이동만으론 부족하다. 중앙권력의 획기적 지방 이양이 필수적이다. 수도권 과밀이 중앙집권의 공간적 표현이라면, 제왕적 대통령제는 그 정치적 외양(外樣)이다. 이 둘은 함께 수술대에 올라야 한다.

진정한 공화국은 권력집중을 용인하지 않는다. 국가의 최고 통치권은 제한되어야 한다. 이탈리아 공화주의자였던 카를로 카타네오는 “공화국은 다원성이며 복수성(複數性)이다. 즉 공화국은 연방성(聯邦性)이다”라고 하였다. “단원적(單元的) 국가는 그 본질상 권위주의적으로 되지 않을 수 없으며, 따라서 결국 고압적이며 전제적이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단원성은 어쩔 수 없이 자율성과 자유로운 창의를, 즉 한마디로 자유를 질식시키기 때문이다. 자유를 진정으로 보장하는 것은 오직 정치적 구심이 다수라는 점, 즉 다원적이며 획일화되지 않는 단합, 무차별적 단합이 아닌 다양성을 함유한 단합이다”라는 의미였다. 권력의 분립과 분산에 대한 지지는 자유주의와 공화주의의 공통분모이기도 하다.

이처럼 다원적 권력구조야말로 진정한 공화국의 필수조건인데, 중앙무대에서의 삼권분립에 의한 견제와 균형은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다원적 권력구조는 지방분권과 자치라는 연방성을 획득하여야 비로소 완성된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갈 길이 멀다.

대한민국은 밑으로부터 조직된, 그러니까 시민사회로부터 나온 국가가 아니다. 내생적 요인보다는 외래적 요인에 의해 위로부터 조직된 국가다. 민주주의의 발전경로도 특이하다. 각 지방의 자치정부가 먼저 존재했고 그들의 연합체로 상향식으로 구성된 서구의 연방국가와 달리, 한국의 지방자치는 위로부터 주어진, 즉 중앙으로부터 내려온 것이었다. 이승만 정부 시절 지방자치는 정권 유지의 유불리 차원에서 확대 또는 축소 운영되었고, 박정희 정부 들어서는 사실상 폐지되었다. 국민의 손으로 직접 대통령을 뽑는 직선제는 1987년에 부활하여 실시되었지만, 지방자치는 1995년이 되어서야 걸음마를 시작할 수 있었다. 미국, 독일, 스위스와 같은 연방국가에서는 지방자치 없는 민주주의를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한국은 사정이 다르다. 중앙정치권의 의중에 따라 빠르게 확대될 수도 제자리걸음을 할 수도 있는, 주체가 아닌 객체일 뿐이다. 지방자치에 대한 국민적 문제의식도 그다지 강렬하지 않다.

지방자치에 대한 이 같은 한국적 특징의 배경에는 역사적 전통과 그에 따른 국민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중세의 국가 조직원리에는 봉건제(封建制)와 군현제(郡縣制)라는 두 가지 방식이 있었다. 봉건제는 수도 등 직할지만 국왕이 다스리고 이외의 영토는 국왕의 가신과 혈족들에게 나누어줌으로써 그들이 다스리도록 하는 제도다. 반면 군현제는 전국을 군으로 구분하고 이를 다시 현으로 갈라, 중앙정부에서 지방관을 보내 직접 다스린 절대왕정의 제도다. 전자가 지방분권적이었다면, 후자는 중앙집권적이었다.

우리 역사의 중세에 해당하는 고려나 조선은 후자였다. 백성에 대한 향리(鄕吏)나 토호(土豪)의 사적 지배를 막고 중앙집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모든 군현에 수령을 파견한 일원적 지배체제를 갖추었다. 고려 때 지방 호족 세력이 발흥하였지만, 봉건제라 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일본의 중세인 에도(江戶)시대는 막부(幕府)의 쇼군(將軍)과 지방의 번주(藩主)인 다이묘(大名)가 주종관계를 맺어 토지와 인민을 지배하는 막번(幕藩)체제라 불리는 봉건제였지만, 한국의 중세는 철저한 군현제였다. 지금의 도지사는 조선시대에는 조정에서 파견한 관찰사(觀察使)로 임기가 고작 1〜2년이었다.

군현제라는 중앙집권의 오랜 전통은 이후 일제 식민통치로 대체되었고, 분단과 전쟁은 중앙정부 중심의 일사불란한 동원 체제를 강화시켰다. 1987년 헌법에서 지방자치가 부활하였는데도 관련 규정은 2개 조항(제117조, 제118조)에 불과하였고 그 내용 또한 제헌 헌법의 2개 조항(제96조, 제97조)과 거의 유사하였다. 한국의 지방자치는 40년 동안 제자리걸음을 해 온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방정부까지 구성한 1995년 이후의 지방자치 20여년은 전인미답(前人未踏)의 새로운 실험이었다. 이제 지방자치의 심화는 완급의 문제일 뿐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 잡았다. 한국인의 의식 속에 이제까지 없었던 새로운 DNA가 만들어진 것이다. 개성과 특색이 넘치는 지역문화, 끼를 중시하는 사회풍조 그리고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다는 평등의식은 획기적 지방분권과 자치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우리는 이것을 소중히, 또한 가급적 신속하게 발전시켜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중앙집중성은 더욱 강화되었고, 지역 발전 프로젝트는 대부분 중앙정부가 주도하고 있다. 현재의 지방자치는 국토균형발전이라는 명분 아래 수도권 규제의 반사이득을 지방이 챙겨 가는 방식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자치의 본령은 자유와 책임이다. 자유롭게 선택하고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것이 진정한 자치다.

미래통합당은 여권의 수도 이전에 대해 수동적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자치분권공화국을 향한 자신들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의 2007년 대선 공약이었던 ‘강소국 연방제’를 다시 꺼내 읽어보고 이철우 경북지사가 추진하는 대구·경북 통합 작업을 지원하길 권한다.

신지호 평론가·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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