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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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1년 반 앞으로 다가왔지만 야당에서는 두각을 나타내는 대선주자가 나오지 않고 있다. 1년 반이란 시간이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뚜렷한 대선주자가 없이는 ‘세(勢)’를 일으키는 데 한계가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국면에서도, 부동산 문제로 인한 국정 난맥상에서도 야당이 반사이익을 누리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대선주자의 부재 때문이란 분석이 많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의 지지율이 오르다가도 급락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국민의힘 내에서는 유승민 전 새로운보수당 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 원희룡 제주지사 정도가 현재 대선주자군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5%를 넘기는 후보가 없다. 지지율 측면에서 대동소이한 후보들이 경쟁을 하지만 당내에서 대권주자가 될 만한 새로운 인물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고 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권교체’를 확신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대선주자급 인물이 나와야 하는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후보로 초선인 윤희숙 의원이 거론되는 것이 당의 현실이다. 지리멸렬한 당내 상황은 지지자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당 외부로 시선을 돌리게 만들고 있다.

김종인 위원장은 자신의 역할이 정권교체를 위한 대선주자를 찾는 것이란 점을 명확히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김 위원장은 대권주자들이 경쟁할 ‘링’을 확장시키고 있다. 지난 9월 3일 김 위원장은 취임 100일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우리가 당을 국민에게 사랑받을 수 있도록 만들면 자연발생적으로 당 내부에서 대통령 후보가 나올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며 “밖에 계신 분들이 관심이 있으면 우리 당에 흡수돼서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이 말을 유력 주자들에게 “일단 우리 당내로 들어와서 경쟁해 보라”는 메시지로 보고 있다. 외부인사들의 국민의힘 진입과 대권후보들 간 경쟁이 일종의 ‘컨벤션 효과’를 일으키면서 유권자들의 이목 집중, 당과 후보들의 동반 지지율 상승을 꾀하자는 것이다.

“유리구슬처럼 다루는 형국”

김종인 위원장은 현재 대권후보로 거론되는 주자들 중 윤석열 총장을 특히 의중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윤 총장은 현직 검찰총장임에도 불구하고 대선주자 지지도에서 야권후보 중 유일하게 10%를 넘나드는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국민의힘 한 PK지역 의원은 “정치권에 입문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지지율이 10%인데 이 바닥에 들어와서 쓸고 다니기 시작하면 20%대로는 금방 올라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내에서 윤 총장은 현재 거론되는 많은 주자에 비해 출발선상에서 이미 50m는 앞서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얼마 남지 않은 대선을 위해 필요한 레이스에서 반드시 가져야 할 인지도라는 측면에서 다른 후보들에 비해 우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당내에서는 김 위원장이 공식석상에서 대권후보에 대해 알듯 말듯한 말들로 혼란을 주지만 후보들에 대한 발언의 행간을 잘 보면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 김 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서울시장과 대권후보로 오르내리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에 대해 기자들이 자꾸 질문을 하자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안 대표에 대해 “앞으로 어떤 생각으로 정치활동을 하는지 저는 알지 못하고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반면 윤 총장을 대하는 화법은 상대적으로 따뜻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검찰총장이 무슨 대통령 후보냐, 할 수가 없지 않나. 검찰총장을 그만둔 다음에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를 봐야 한다”고 했지만 “이 정권이 저러다가 진짜 윤 총장을 대권주자로 만들어줄 수도 있다”고도 했다.

김 위원장은 윤 총장의 아버지인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와도 잘 아는 사이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과거에는 김 위원장이 윤 총장을 종종 만난 적도 있다고 한다. 다만 윤 총장이 정치적 중립을 필요로 하는 검찰조직의 수장이라는 점에서 최근에는 만나거나 통화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내에서는 김 위원장이 윤 총장을 “조심조심 깨질 수 있는 유리구슬처럼 다루는 형국”이라고 보고 있다. 정치적 중립성이 중요한 현직 검찰총장이라는 측면에서 유리를 다루듯 너무 꽉 쥐지 않고 관망하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봤을 때 ‘온기가 있는 관망’이라는 것이 사정을 잘 아는 이들의 표현이다. 윤 총장 본인도 출마 가능성에 대해 ‘노’보다는 ‘예스’ 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점쳐진다.

한 의원은 “윤석열이란 카드를 향해 거칠게 구애를 했다간 검찰총장 중립성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은 다소 거리를 유지하는 형국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초대 경제부총리 출신인 김동연 전 부총리 역시 잠재적 야권 후보로 거론된다. 이력과 스토리 측면에서 국민의힘의 다른 후보들에게는 없는 많은 정치적 자산을 가진 후보로 평가된다. 김 전 부총리는 실제로 대권을 위한 조직도 꾸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좌우명이자 부총리 퇴임 후 근거지로 삼고 있는 사단법인 ‘유쾌한 반란’이 메인 조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부총리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시장 등 민생 현장을 자주 다닌다고 한다. 현재 김 전 부총리는 기자들과의 접촉은 꺼리고 있다. 김종인 위원장이 김 전 부총리를 만났던 것도 이미 수년 전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위원장이 만약 김 전 부총리가 지닌 매력을 간파했다면 충분히 더 만났을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지난 9월 10일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9월 10일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공감능력? 검찰 출신이 갖는 한계

윤 총장과 김 전 부총리 등 야권에서 대권주자로 언급되는 외부 인사들은 검찰총장과 경제부총리 등 현 정부 고위 관료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관료 출신은 과거에도 민주당과 언론의 의혹 제기를 버티지 못하고 낙마한 기억이 있다. 대표적 인물이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이다. 반 전 총장은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보수 주자로 나섰지만 계속되는 의혹 제기에 얼마 버티지 못하고 꿈을 접었다. 자유한국당 당대표를 지낸 황교안 전 대표도 마찬가지였다. 황 전 대표는 대표로 선출되자마자 총리 때 보고서 받던 식의 보고 행태를 보좌진에게 요구하는 등 정무 감각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다 총선에서 대패했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 의원들은 관료 출신이 대권후보가 됐을 때 상대 측의 파상공세에 버틸 수 있을지를 우려하고 있다. 한 초선 의원은 “이 바닥에 와서 10년은 굴러 봐야 하는데 정치권 경험이 없는 사람은 리스크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국민의힘은 검찰 등 법조인 출신 후보의 경우 대선후보로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는 일종의 트라우마도 갖고 있다. 대법관 출신인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법무부 장관 출신인 황교안 전 대표 등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특히 검찰 출신이 정치인으로 성공하려면 정무감각과 친화력, 약자와 서민 편에 설 수 있는 공감능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검찰은 기득권에 속하는 집단이기 때문에 검찰 출신 정치인으로 국민 전체를 포용하기 위해서는 약자와 서민 편에 설 수 있는 공감능력이 절실하다는 것이 정치권의 분석이다. 윤 총장의 경우 이런 측면에서의 능력이 검증된 바가 없기 때문에 일종의 장벽을 넘어 정치인으로 안착할 수 있을지는 아직까지 베일에 싸여 있다.

링을 넓혀 자유 경쟁 유도가 김종인 생각

당내에서는 현재 유승민 전 새로운보수당 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 원희룡 제주도지사 정도가 대권주자로 언급된다. 이 중 유승민 전 대표의 경우 현재 당내 세력을 어느 정도 구축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3선의 유의동 의원, 초선의 강대식·김희국 의원이 유승민계로 분류된다. 원외에 포진한 오신환·이종훈·민현주 전 의원 등도 유승민계로 분류된다. 당초 9월부터는 현안 관련 메시지를 내고 활동을 재개할 것이라는 게 측근들의 전언이었지만,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수도권을 중심으로 모든 행사 개최가 불투명해지면서 활동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정치인이 메시지를 내려면 각종 행사 개최나 참석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지금 추미애 법무부 장관 관련 이슈 때문에 원희룡 지사, 홍준표 전 대표 등이 메시지를 내도 다 묻힌다”며 “코로나19로 각종 행사가 다 취소된 상황이라 유 전 대표가 복귀 타이밍을 잡기도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유 전 대표는 현재 정책설명서 형식의 책을 쓰고 있다고 한다.

차기 부산시장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지지도 1위를 달려온 김세연 전 의원도 정치적 존재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김 전 의원은 최근 돌연 내년 보궐선거 불출마를 선언해 화제가 됐다. 지난해 11월 “자유한국당은 죽었다. 자기가 죽은지도 모르는 좀비 정당”이라는 말을 남기고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김 전 의원은 과거 김종인 위원장이 대권주자의 자질로 언급한 “40대, 경제통, 경영감각이 있는 이”에 얼추 들어맞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차기 유력 후보군에 새로 편입되기 시작했다. 현재 김 전 의원은 서울 여의도에 사무실을 두고 정치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진 사람은 김종인 위원장이지만 자신의 손으로만 단 한 명의 대권후보를 고를 수는 없다. 대권후보를 선출하기 위해서는 당원들과 국민들의 의사가 주가 되는 경선을 거쳐야 한다. 이 때문에 김 위원장 역시 현재는 주자들이 뛸 수 있는 ‘링’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윤석열 총장, 김동연 전 부총리 등 외부 인사들이 실제 대권주자 후보로 합류해 무대를 넓힌 후 자유 경쟁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김 위원장의 생각이라고 한다.

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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