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30일 경기 수원시 경기도청에서 만난 이낙연 대표(오른쪽)와 이재명 지사. ⓒphoto 뉴시스
지난 7월 30일 경기 수원시 경기도청에서 만난 이낙연 대표(오른쪽)와 이재명 지사. ⓒphoto 뉴시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선두 독주가 이어지던 차기 대선 구도가 이재명 경기지사와의 양강 체제로 바뀌며 요동치고 있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등 4개 회사가 지난 9월 3~5일 전국 유권자 100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차기 대선주자 적합도 조사에 따르면 이재명 지사가 23%, 이낙연 대표가 22%로 초박빙이었다. 다음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6%, 홍준표 무소속 의원 4% 등이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 지사는 3~4%에 그쳤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 이후 긴급행정명령을 발동해 경기도 내 신천지 시설을 강제 폐쇄하는 등 존재감을 보이면서 지난 3월 한국갤럽 조사에서 11%로 이 대표(24%)에 이어 2위로 올라섰다. 이 대표와 이 지사의 경쟁이 본격적으로 치열해진 것은 7월 중순부터다. 이 지사는 공직선거법 위반(허위사실 유포) 등 혐의로 작년 9월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았지만, 지난 7월 16일 대법원의 ‘무죄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을 받으면서 급부상했다.

이때부터 이 지사는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의 민주당 무공천 주장, 2차 재난지원금 선별지급 반대 등 여권과 대치되는 발언으로 여론의 반응을 이끌어냈다. 최대 현안인 부동산 이슈와 관련해서도 공직자의 다주택 보유를 제한하는 ‘이재명표 대책’을 내놨다. 그 직후 한국갤럽의 8월 11~13일 차기 지도자 선호도 조사에서 이 지사는 19%, 이 대표는 17%를 기록해 갤럽 조사에서 처음으로 선두가 바뀌었다. 알앤써치의 8월 23~25일 조사에서도 이 대표(23.3%)와 이 지사(23.1%)가 초접전이었다.

차기 대선 구도가 양강 체제로 바뀐 것은 여러 핵심 현안에 대해 명확히 의견을 밝히는 이 지사의 이른바 ‘사이다’ 행보가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 많다. ‘엄중히’란 수식어가 반복되는 이 대표의 신중한 어법은 국무총리와 여당 대표로서 안정감 구축에는 도움을 줬지만, 이 지사의 ‘사이다’ 화법과 대비되는 답답한 ‘고구마’란 평가가 있었다.

정치적 색깔이 뚜렷이 다른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지사는 지지층 구성도 차이가 큰 편이다. 엠브레인퍼블릭 등 4개 회사의 전국지표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층에선 이 대표가 45%였고 이 지사는 33%에 그쳤다. 하지만 지지 정당이 없는 무당(無黨)층에선 이 지사(24%)가 이 대표(15%)를 9%포인트 차이로 앞섰다. 야당인 국민의힘 지지층에선 이 지사가 10%, 이 대표는 5%였다. 유권자 이념성향별로는 진보층에선 이 대표(35%)와 이 지사(34%) 지지가 비슷했지만, 중도층은 이 지사(25%)가 이 대표(19%)를 앞섰다. 보수층에선 둘 다 12%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 여부에 따라서도 두 사람의 지지율은 차이가 있다. 문 대통령 지지층에선 이 대표(38%)가 이 지사(32%)를 앞섰지만, 반대층에선 이 지사(14%)가 이 대표(3%)보다 우세했다.

지역별로는 이 대표가 고향이자 정치적 기반인 광주·전라에서 48%로 27%인 이 지사를 압도했다. 경기도지사인 이 지사는 수도권에서 20% 대 15%, 고향인 영남권에서 19% 대 11%로 이 대표를 앞섰다. 중도 성향인 대전·충청에서도 이 지사가 23% 대 17%로 더 높았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 대표는 ‘호남·친문(親文)’, 이 지사는 ‘수도권·중도(中道)’에서 강점이 있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상일 케이스탯컨설팅 소장은 “이 대표는 국무총리를 거친 여당 대표로서 ‘문 대통령 후광(後光) 효과’가 크다”고 했다. 하지만 이 대표가 민감한 현안에 침묵하고 정부 정책 기조에 동조하며 ‘적자(嫡子) 포지션’에 안주했던 것과 달리 이제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이상일 소장은 이 지사에 대해선 “생활밀착형 주요 현안에 대해 선제적으로 소신을 밝히며 수도권과 중도층의 관심을 끌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 지사는 최근 재난지원금 선별지급 방침과 관련해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나아가 국가와 공동체에 대한 원망과 배신감이 퍼질 것”이란 언급에서 드러난 것처럼 친문 유권자와 거리감이 있는 것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친문 사이에선 “이 지사가 문 대통령에게 언젠가는 발톱을 드러낼 것”이란 의구심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영남권과 보수 야당 지지층이 이 대표보다 ‘급진 성향’으로 분류되는 이 지사에 대해 더 높은 지지를 보내는 것에 대해선 “보수층에서 지지할 만한 마땅한 인물이 없기 때문”이란 해석이 많다. 조일상 메트릭스 대표는 “보수층에서도 이 지사는 기존의 여권 정치인과는 달리 뭔가 바꿀 수 있을 것이란 기대 심리가 있는 것 같다”면서도 “대선이 다가오고 야당 후보가 정해지면 보수층도 야당 후보 쪽으로 쏠릴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외연확장은 둘 다 쉽지 않아

역대 대선후보들의 가장 큰 숙제였던 ‘외연(外延)확장’과 관련해서는 “현재로선 두 사람 모두 한계가 보인다”는 평가가 있다. 이상일 케이스탯컨설팅 소장은 “이 대표는 영남과 중도로의 외연확장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이 대표가 외연확장을 위해선 자신만의 차별화된 ‘목소리’를 내야 하지만, 그 목소리가 문 대통령과의 차별화로 비칠 경우 친문이 장악하고 있는 ‘당심(黨心)’에서 멀어지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한편 이 지사도 본선 진출을 위해선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돼야 하기 때문에 우선 당심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친문을 향한 구애(求愛)가 그의 강점이던 ‘당파를 초월한 선명성’을 흐리게 하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당내 경선과 본선 경쟁력 중 어느 쪽에 치중해야 할지 선택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이 지사가 정부·여당과 각을 세우는 발언을 했다가 금방 철회하는 등 오락가락하며 ‘전략적 간 보기’ 행태를 보이는 것은 당심과 일반 국민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향후 전망에 대해선 “문 대통령 지지율 추이가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라고 내다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문 대통령 지지율이 유지된다면 친문의 지지가 높은 이 대표도 지지율이 안정적이겠지만, 반대의 경우엔 이 지사에 대한 기대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 야당에서 유력한 후보가 떠오를 경우엔 현재 여당 후보끼리의 양강 체제는 쉽게 허물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 8월 갤럽 조사에서 다음 대선에 대한 기대를 묻는 질문에 ‘현 정권 유지 위해 여당 후보 당선’(41%)보다 ‘정권 교체 위해 야당 후보 당선’(45%)이 더 높았기 때문이다. 허진재 한국갤럽 이사는 “대선까지 1년 반가량 남은 현 시점에서 대선 후보 지지율은 큰 의미가 없다”며 “야당 후보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선 누구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홍영림 조선일보 여론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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