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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7호] 2020.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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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호의 正眼世論]문재인 시대의 뉴노멀 ‘몰상식의 상식화’

신지호  평론가·전 국회의원 jayho63@gmail.com

▲ 조국수호 검찰개혁을 위한 서초달빛집회 참가자들이 지난 1월 4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검경수사권 조정, 표적수사 중단 등을 촉구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아무리 정치투쟁이 격화하고 진영논리가 판을 치는 상황이라도 지켜지는 것이 있었다. 최소한의 상식과 염치였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내로남불의 이중잣대로 상대편을 비난하고 우리 편을 옹호하다가도 도를 넘었다 싶으면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곤 퇴각했다. 그리고 격렬했던 논란은 침묵하는 다수가 동의하는 방향으로 결론이 났다.
   
   문재인 정권이 출범하기 전 한국 정치는 김대중-노무현과 이명박-박근혜라는 좌우변동을 겪었지만, 대체로 이 같은 메커니즘이 작동해왔다. 상식과 염치가 공론 형성의 균형추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에 60명이 넘는 새누리당 의원들이 동참한 것은 같은 편이라 하더라도 아닌 건 아니라는 상식적 판단 때문이었다.
   
   이러한 정치문화는 문재인 정권 들어와 종적을 감추었다. 집권당 내부의 다양성은 사라진 지 오래다. 야당 시절인 2015년 말, 안철수 분당에 맞선 ‘문재인 구하기 10만 당원 운동’은 친문 일색의 일사불란한 동원체계를 확립하였다. 문재인 대표 시절 이후 입당한 당원 비율이 80%를 넘는다. 이들은 권리당원 게시판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문파’의 입장을 신속하게 전파하며 당론 형성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 8월 민주당 전당대회는 이들의 표심을 잡기 위한 경쟁이었다.
   
   이들 문파의 특징은 맹목적·절대적 지지에 있다. 노무현을 열렬히 응원하기도, 때로는 따끔히 비판하기도 했던 노사모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들은 보수 야당, 보수 언론, ‘정치검찰’로부터 문재인을 보호하는 것을 자신들의 사명으로 여긴다. ‘달빛기사단’ ‘문꿀오소리’ 등의 팬클럽 작명도 그 같은 소명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문꿀오소리는 ‘우리 이니 건들면 눈알 빠진다’는 섬뜩한 문구가 들어간 스카프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최근 ‘#우리가추미애다’ 해시태그 달기 운동을 벌이는 것도 이들이다. 지난해 말 ‘조국수호대’ 활동을 했던 사람들이다. “추미애가 무너지면 검찰개혁이 물 건너가고 문재인 정권은 위기에 빠진다”는 것이 이들의 정세 인식이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교육과 병역은 국민의 역린이다. 추 장관 아들 의혹에 대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발언한 후 항의전화와 문자폭탄에 시달려야 했다. 반면 추미애 아들을 안중근 의사에 비유한 논평을 낸 박성준 원내대변인은 문파들과의 싱크로율을 높이려다 여론의 된서리를 맞았다.
   
   이처럼 문파는 일반적인 추종자 집단이 아니다. 공세를 취할 때에는 최전선에서 표적을 무자비하게 공격하는 전위대 역할을 자처한다. 역으로 조국, 추미애 등 아무리 불리한 이슈가 불거지더라도 일방적으로 밀리지 않고 대치 전선을 형성하여 진영대결로 끌고 가는 버팀목 역할도 한다. 이들은 이 과정에서 진흙탕 개싸움,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마다하지 않는다. ‘조국 수호대’는 스스로를 ‘개싸움 국민운동본부’라 칭하였다.
   
   문재인 정권의 정국 운영은 이들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라크 파병, 제주 해군기지 건설 등으로 인한 핵심 지지층의 분열과 이탈을 노무현 정권 실패의 핵심 원인으로 인식하기에 어떠한 경우라도 문파들과의 유대를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문재인 정권과 문파들의 관계는 1960년대 중국 문화대혁명 당시 마오쩌둥 정권과 홍위병의 관계와 흡사하다. 대통령은 일찍이 이들을 “경쟁을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양념과 같은 존재”라고 미화하였다.
   
   문파 극단주의와의 강고한 연대는 자칫 중도무당층의 반감을 불러일으켜 다수파 만들기라는 선거공학에서 실패할 위험성을 초래한다. 그러나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으로 인한 조기 선거를 통해 집권한 문 정권은 정권 초반기 ‘박근혜 기저효과’를 톡톡히 누리며 2018년 지방선거에서 낙승하였다.
   
   문 정권의 극단주의가 시험대에 오른 것은 조국 사태 때였다. 희대의 파렴치였음이 만천하에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문파들은 조국을 검찰개혁의 순교자로 치켜세웠다. 대통령 또한 정권 출범 이후 최악의 여론조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명예 퇴진의 길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조국 사태 당시 드러난 정권의 편협함은 심판의 예봉을 피해갔다. 코로나19의 창궐로 사회적 분위기와 대중적 관심사가 급변하면서 집권당은 4월 총선에서 예상 밖의 대승을 거두었다. 이 승리는 조국 수호를 통한 지지층 결집 전략과 무관한 것이었지만, 집권세력에 자신들이 선택한 길에 대한 정치적 효능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제 집권세력은 아무런 주저함 없이 추미애 경우에도 동일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후안(厚顔)과 무치(無恥)를 바탕으로 상식적 문제제기를 깔아뭉개고 검찰개혁을 강조하는 추미애의 모습은 조국과 판박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기소된 조국과 달리, 수차례의 막가파식 인사로 추미애는 제대로 된 조사조차 받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오히려 추미애 구하기는 조국 수호보다 더 강도 높게, 더 노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 9월 21일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주재하는 제2차 권력기관 개혁 전략회의가 열렸는데, 최대 수혜자는 추미애였다. 그는 대통령과 동시에 입장하였고, 대통령에게서 “마무리를 잘해주기 바란다”는 재신임 메시지를 받아들었다. 아들 병역비리 의혹 검찰수사 결과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검찰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막강한 힘을 실어준 것이다. 이틀 전 청년의 날 기념식에서 공정이란 단어를 무려 37번이나 강조했건만, 추미애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이처럼 우기고 갈라치고 밀어붙이는 것은 문 정권의 전매특허가 되었다. 절제와 포용이라는 고차원적 가치는 고사하고 최소한의 상식과 염치조차 통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들의 몰상식을 ‘빠 정치’를 동원해 새로운 상식이라고 우긴다. ‘몰상식의 상식화’야말로 문재인 시대가 만들어낸 뉴노멀이다.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수상한 상식의 세계가 지금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다. 뉴노멀이라고 다 수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19가 몰고 온 불가피한 뉴노멀도 있지만, 야만의 정치, 재앙의 정치가 몰고 온 ‘몰상식의 상식화’라는 뉴노멀은 회피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선거는 정권의 일탈을 바로잡는 견제와 균형의 역할을 담당한다. 문 정권의 독선과 오만은 선거에서의 쓰라린 패배 없이는 멈춰질 수 없다. 그들은 ‘박근혜 기저효과’ ‘야당 복’ ‘코로나 행운’ 등으로 인한 연전연승을 자신들이 잘했기 때문이라 착각하고 있다. 선거로 심판하고 응징해야 몰상식한 뉴노멀은 고개를 숙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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