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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만섭의 정치 프리즘]  ‘추미애 무혐의’도 ‘공무원 월북설’도 안 먹히네! 文 정부의 ‘정의로움’ 의문에 직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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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8호] 2020.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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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섭의 정치 프리즘]‘추미애 무혐의’도 ‘공무원 월북설’도 안 먹히네! 文 정부의 ‘정의로움’ 의문에 직면하다

허만섭  국민대 교양대학 부교수·전 신동아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21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2차 국정원·검찰·경찰 개혁 전략회의에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함께 참석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개인은 여러 종류의 본능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살아간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정의(正義) 같은 초월적 가치도 추구한다. 인간은 제2의 본성으로 초월 지향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정치가는 여기에 호소할 수 있다. 이 점은 로마시대 사상가인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의 말에서도 잘 나타난다.
   
   ‘인간은 눈에 보이는 단기적 이익뿐만 아니라 더 광범위한 장기적 목적을 함께 추구한다. 인간은 무한한 자유와 자신을 초월하려는 의지를 가진 특수한 존재다. 이러한 경향 속에서 정치가는 국가의 개별 단위들이 자신의 이익을 초월하여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전재성의 책에서 재인용)
   
   모든 개인은 덕(德)을 지니고 있다는 믿음에 근거해, 대통령은 개인에게 국가공동체를 위한 희생과 같은 초월적 가치의 실천을 요구한다. ‘국방·납세·근로·교육의 의무’라는 우리 국민의 4대 의무에서 이 ‘의무(commitment)’는 법적 통제 이전에 자발적 헌신을 전제로 둔다. 또 대통령은 개인에게 ‘현재는 불가능하지만 언젠가는 성취해야 할 이상적 가치’를 제시하면서 동참을 제안한다. 예를 들어 남북통일과 같은 것이 이러한 이상에 해당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2017년 5월 10일 취임사 중 한 대목은 역대 어느 한국 대통령 취임사보다 대중의 집단기억 속에 더 깊이 각인됐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이 문장들엔 귀에 꽂히는 특별한 어휘가 없다. 그러나 ‘기회-평등, 과정-공정, 결과-정의’라는 문맥과 어휘 간 적합성이 높다. 또 평등, 공정, 정의라는 어휘들은 ‘불평등하고 불공정하고 정의롭지 못한 한국 사회의 상황’을 적절히 반영한 것으로 인식됐다. 국민에게 어떤 숭고한 도덕적 이상을 제시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이 이 문장에 감동했다.
   
   
   거짓말을 일삼는 공무원을 그냥 놔두면…
   
   그런데 대통령이 국민에게 희생을 요구하고 도덕적 이상을 실천하기 위해선 먼저 대통령 본인과 그 측근들의 언행이 도덕적 규범에 어느 정도 부합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대통령과 그 측근들은, 성인군자(聖人君子)가 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법을 어겨선 안 되고,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며, 자신의 직무에 반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먼저, 고위공직자는 법을 지켜야 하고 불법 특혜에 연루되어서도 안 된다. 고위공직자의 말이 상식과 괴리된다면 공중은 이런 말을 잘 믿지 않으며 거짓말이라고 느낀다.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일삼는 공무원을 그 자리에 계속 두는 것은 양식이 있는 사회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은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직무 중 하나다. 고의로 이런 직무를 방임하는 행위를 하는 것은 큰 도덕적 비난을 초래한다.
   
   적지 않은 사람은 정치인의 레토릭을 ‘과장되게 꾸민 미사여구’나 ‘어떤 노림수나 비틀기가 들어 있는 화법’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레토릭의 발명가인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가 생각한 레토릭은 이런 것이 아니며 ‘고귀한 성품에서 우러나오는 설득’을 지향한다. 정치수사학 연구자들에 따르면, 정치적 발언은 ‘진리에 맞는 올바름’으로서의 ‘의로움’에 토대를 두어야 한다. 대통령과 그 참모들의 말은 바르고 곧아야 한다.
   
   지난 9월 30일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44.2%)보다 부정 평가(51.9%)가 더 높았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간 지지율 격차도 오차범위 안인 2.3%포인트로 좁혀졌다.
   
   리얼미터는 ‘검찰의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군 휴가 무혐의’ ‘북한 총격으로 숨진 공무원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대응’이 지지율에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9월 28일 공무원 피살과 관련해 “대단히 송구한 마음”이라면서도 “북한의 분명한 의지 표명으로 평가한다. 특별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우리 국민들께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뜻을 전해온 것에 대해 각별한 의미로 받아들인다”라며 북한을 두둔했다.
   
   비슷한 시기, KBS의 의뢰로 시행된 케이스탯리서치 여론조사에서 61.7%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이 군 복무 중 특혜를 받았다고 생각한다”라고 답했고, 68.6%는 “공무원 피살에 대한 정부 대응이 잘못됐다”라고 했다. 또 60.7%는 “문재인 정부 들어 사회가 불공정해졌다”라거나 “이전 정부와 차이가 없다”라고 했다.
   
   서울동부지검은 추미애 아들 사건 관계자들을 무혐의 처리했다. 해경은 피살된 공무원의 월북 가능성을 공표했다. “이씨가 북측 해역에서 발견될 당시 탈진한 상태로 부유물에 의지한 채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던 사실, 실종자만이 알 수 있는 본인의 이름, 나이, 고향, 키 등 신상정보를 북측에서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던 사실, 실종자가 월북 의사를 표현한 정황 등을 확인했다.”
   
   
▲ 윤성현 해양경찰청 수사정보국장이 지난 9월 29일 오전 인천시 연수구 해양경찰청 2층 대회의실에서 기관별 표류예측 결과를 설명하며 연평도 해상 실종 공무원 수사 중간발표를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공무원 아들의 자필편지가 묻는 것
   
   무혐의와 월북설은 사건의 파문을 잠재울 재료였다. 그런데도 여론조사는 대통령과 여당에 부정적으로 나왔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공중은 정부의 처분이나 발표 같은 파편적 사실을 넘어 정치 이슈를 종합적으로 그리고 주체적으로 해석한다. 이 여론조사는 이러한 공중의 속성을 잘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보좌관에게 전화 걸라고 시킨 사실이 없다를 명확하게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라는 국회 답변과 달리 추 장관은 보좌관에게 지원 장교의 전화번호를 알려줬고 결과를 보고받았다. 추 장관은 전화번호를 준 것이 지시가 아니었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공무원 피살사건의 사실관계는 이렇다. 9월 21일 오전 소연평도 남방에서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선에 탑승한 공무원이 실종된 사실이 발견됐다. 22일 오후 6시36분 문 대통령에게 서면 보고됐다. 오후 9시40분~10시30분 북한군은 북한 해역에 표류 중인 이 공무원을 사살해 시신을 불태웠다.(북한은 시신 소각을 부인) 23일 오전 1시 청와대 관계장관회의에서 대책을 논의했다. 오전 1시26분 문재인 대통령의 유엔 총회 녹화 연설이 시작됐다. 청와대는 “23일 오전 8시30분 대통령에게 공무원 피살을 대면 보고했다”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유엔 총회 영상 기조연설에서 종전선언 추진을 언급했다. 이에 대해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국민 불태우고 수장했는데도 북에 구애한 문 대통령, 대통령 자격 없다”라고 썼다.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은 “23일 안보관계장관회의 참석자 중 한 사람이 ‘이 와중에 종전선언 연설을 유엔에서 강행해도 되느냐’는 문제를 제기했던 것으로 들었다”라고 주장했다.
   
   야당은 문 대통령에게 공무원 피살이 보고된 시점에도 의혹을 제기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문 대통령은 이 사태 진실에 대해 티끌만큼의 숨김없이 소상히 국민께 밝혀야 할 것이다. 20일부터 사흘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분초 단위로 설명하셔야 한다”라고 했다.
   
   이에 대해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종전선언 연설에 영향을 안 주려고 대통령에게 일부러 보고를 안 한 것’이라는 야당 의원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근거 없는 무책임한 주장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라고 했다.
   
   반면 숨진 공무원의 고교생 아들은 문 대통령에게 보낸 자필편지에서 “대통령의 자녀였다면 지금처럼 할 수 있겠느냐?”라고 울분을 토했다. 이어 “아빠가 38㎞의 거리를 그것도 조류를 거슬러갔다는 것이 진정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나라에서 하는 말일 뿐 우리 가족은 그 어떤 증거도 본 적이 없어서 이런 (월북) 발표를 믿을 수가 없다”라고 했다.
   
   
   나훈아의 위정자는 ‘위선적인 정치인’?
   
   추석 연휴 동안 나훈아와 김부선의 발언은 집단지성에 어필했다. 나훈아는 지난 9월 30일 KBS 공연에서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람을 한 사람도 본 적이 없다”라면서 “국민이 힘이 있으면 ‘위정자’들이 생길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문맥상 위정자는 ‘정치를 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위정자(爲政者)’가 아니라 ‘위선적인 정치인’을 뜻하는 ‘위정자(僞政者)’로 해석된다.
   
   해경의 ‘월북설’ 발표에 김부선은 “북한군에 억울하게 피살당한 공무원이 생전에 월북 의사를 밝혔다는 녹취를 당장 공개하라.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라고 했다.
   
   두 사건에 관한 정황 정보는 어느 정도 제공된 상태였다. 이런 경우 공중은 누가 정직하게 말하고 국민의 이익 편에 서 있는지를 감지한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의 순수이성·실천이성 개념과 커뮤니케이션학의 상황 모형은 이러한 감지가 가능한 이유를 설명한다.
   
   예를 들어 뉴스가 제시하는 사실관계, 현 정부의 성향·관행, 여야 주장의 모순점, 예전 고위공무원들이 어떻게 특혜와 은폐를 저지르고 발뺌했는지에 관한 기억, 그리고 공중의 집단적 추론이 조응할 때 상황 모형이 풍부해진다. 이렇게 풍부해진 상황 모형은 해당 사안에 관한 오판 가능성을 줄여준다.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논문조작도 이런 군중의 상황 모형에 의해 처음 감지됐다.
   
   물론 정의는 다수결로 결정되진 않는다. 그러나 공중은 집단적 의식체계 안에서 누구의 말이 정직하고 무엇이 정의인지를 스스로 통찰한다. 여론조사 결과는 이러한 점을 어느 정도 반영한다.
   
   
   문 정부 정당성이 위협받는 심각한 징조들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나온 정치수사학 안내서는 정치적 소통들이 ‘도덕적 염려’를 바탕으로 구성돼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 사회에 관한 정치적 발언들은 ‘독창성’과 ‘유희’를 지녀야 하는 동시에 윤리적 문제에 관한 ‘극도의 진지함(deadly seriousness)’을 내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말로 유명한 고대 그리스의 프로타고라스(Protagoras)도 “정치적 탁월함은 학습될 수 있고 정의는 정치의 필수불가결한 중대사안”이라고 봤다.
   
   정치 권력의 정당성은 ‘의로움’에서 나온다. 국민의 60% 이상이 ‘추 장관 아들 특혜’ ‘공무원 피살에 잘못 대응’이라고 믿는 여론조사 결과는 이 정당성이 위협받는 심각한 징조다.
   
   평등·공정·정의라는 도덕적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지금 ‘법을 어겼는가? 거짓말을 했는가? 직무를 방임했는가?’라는 정의로움에 관한 의문에 직면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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