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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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의 180석 획득만 기억에 남는 선거였다. 그 와중에도 21대 총선을 다시 뜯어보면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일단 다섯 살 단위로 잘랐을 때 50대가 차지하던 최다 유권자 블록은 이제 40대의 것이다. 올해 4월, 가장 많은 유권자가 포진한 그룹은 45~49세였다. 더불어민주당을 더 많이 지지한 20대(19~29세) 청년층의 표심은 보기보다 복잡했다. 그리고 선거인 수에서 수도권이 50%를 넘어 이번 총선이 비수도권보다 수도권이 더 많은 첫 번째 선거가 된 것도 흥미로운 점이다.

그동안 선거는 특정 지역을 둘러싼 각축장이었다. 영남과 호남이라는 두 지역은 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오래된 라이벌이었다. 그간 열린 선거를 설명해온 대표적 변수였고 영남을 정치적 고향으로 삼은 보수 정당, 호남을 기반으로 한 진보 정당의 대결은 투표 때마다 되풀이됐다. 후보가 출마했을 때 살아온 이력만큼 중요한 건 그의 출신지였다. 그래서 민주 진영에서는 후보자의 출신지가 영남이어야 승리 확률이 높다며 ‘영남 후보 필승론’이 힘을 얻곤 했다. 부산을 연고로 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대권을 거머쥔 경험은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구도가 유효한 전략이라는 걸 보여줬다.

지방 공략 대체할 세대 공략

대선 같은 전국 선거일수록 영남이나 호남에서 일어나는 바람은 필수적인 요소였다. 지방에서 불기 시작한 바람이 수도권에 도달하면 해당 지역 출신 거주자들이 호응한다는 믿음이 있었고 영남이나 호남은 그 시발점 역할을 했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오는 유력 후보 중에는 영남 후보나 호남 후보, 충청 후보도 있었지만 수도권 후보는 잘 보이지 않았다. 수도권이 출신지란 건 오히려 대통령이 되려면 약점으로 취급됐다.

출신지 중심의 정서적이고 맹목적인 투표는 자식 세대에도 영향을 줬다. 이재묵 한국외대 교수는 ‘부모의 출신지와 자녀의 정치적 지역 연고’라는 논문에서 “청소년기의 차별화된 정치사회화 과정이 그들의 지역주의 정치 성향 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봤다. 이 교수는 자료의 한계가 있다는 걸 전제로 “영호남 지역 연고가 없는 지역에서 출생했더라도 부모가 모두 특정 지역 연고를 갖고 있을 때, 기준집단(부모와 자식 모두 영호남에 연고가 없는 가족)과 비교해서 이들이 부모를 따라 정치적으로 특정 지역 성향과 가까운 양상을 드러낼 가능성이 발견됐다”고 분석했다.

그런데 이토록 중요하게 다뤄지던 지역 변수를 바라보는 정당들의 태도가 예전 같지 않다. 여전히 지역은 정치인들에게 하나의 발판이지만 과거처럼 대체 불가한 키워드가 아니다. 부모 세대와 달리 수도권 유권자가 증가하고 세대별 투표에서 주류 나이대가 바뀌면서 출신 지역을 따지는 게 점점 무의미해지고 있다. 그들의 부모와 달리 자식들은 자신들의 거주지와 개인 선호도를 중심으로 투표한다. 더 이상 지역 표심의 영향을 받아 투영하지 않는다. 수도권 그 자체가 과거 영호남처럼 지역화됐다는 건 21대 총선이 보여줬다.

지역 구도와 견줄 만한 새로운 요소들에 정당들은 점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총선에서 실패한 미래통합당은 ‘국민의힘’으로 이름을 바꿨고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체제가 들어섰다. 새로운 지도부가 개혁의 포인트로 삼은 것 중 하나가 ‘청년’이다. ‘세대’ 공략을 도약의 지렛대로 삼기로 한 셈이다. ‘청년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던 올드한 보수 야당은 험지 출마에 내몰려서 배지 도전에 실패했던 청년 보수들을 대거 비대위원으로 귀환시켰다. 이후 김 위원장의 입에서는 ‘청년’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했다. 청년기본소득, 당 속의 당인 ‘청년의힘’ 설치 등 청년을 소재로 한 정치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비대위원은 “청년 문제를 두고 그동안 보수 정당들이 제시한 해법은 이슈가 있으면 임시방편으로 대응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청년들이 필요하다면서 막상 주변인 취급하며 너무 많은 신뢰를 잃었다. 청년을 강조하는 건 잃은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이다”라고 말했다. 다른 세대에 비해 무당층이 많은 청년들의 표는 탄력성이 크다. 기성세대보다 표의 움직임이 크고 노력하기에 따라 끌어올 수 있는 여지가 많다.

하지만 세대 구도를 노린 전략은 쉽지 않다. 국민의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 관계자는 “세대를 노리는 건 정교하게 접근해야 한다. 청년층을 쪼개 보면 복잡하고 그래서 정책을 내놓아도 소구하기 힘들다. 게다가 젠더 문제가 개입하면 남녀가 서로 다른 성향을 보이고 북한 문제, 일본 문제 같은 안보나 외교에도 이들은 민감하게 움직인다”고 말했다. 지난 총선에서 실시한 지상파 방송 3사의 출구조사를 보면 18〜29세 남성의 47.7%가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찍었고 40.5%는 미래통합당 후보에게 표를 줬다. 반면 18〜29세 여성은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한 비율이 무려 63.6%에 달했다. 다른 연령과 비교해 볼 때 남성과 여성의 표심이 가장 극명하게 갈리는 세대였다.

때로는 세대 내 성별 충돌뿐만 아니라 세대 간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도 어렵게 만든다. 김종인 위원장이 꺼낸 노동법 개정이 대표적이다. 여기에도 옹호 논리에 청년이 등장한다. 고용 유연성을 강화해 청년 취업에 숨통을 틔워 주자는 건데 당내에서는 “세대갈등 프레임을 불러올 수 있는 얘기를 왜 꺼냈냐”는 볼멘소리도 있다. 쉬운 해고로 청년 고용을 해결하자는 건 국민의힘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40~50대 유권자와 등을 돌리겠다는 것과 뭐가 다르냐는 얘기가 의원들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수도권, 하나의 지역 됐다”

탈(脫)지방의 또 다른 징후는 수도권 중심 전략에서 찾을 수 있다. 수도권 선거인이 절반을 넘었다는 것, 앞으로 이런 현상이 계속될 거라는 것, 그리고 지역 표심의 영향을 과거보다 덜 받는다는 건 ‘수도권 대 지방’이라는 또 다른 전선을 만든다.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을 거쳤던 당 관계자는 “과거에는 여야를 오가며 지방 표심의 흐름에 따라 스윙보터(swing voter) 역할을 했던 수도권이 이제는 하나의 지역처럼 변신했다. 지역 이익에 예민해질 가능성이 크고 수도권의 유권자 비중이 커질수록 대선에서는 수도권 맞춤 전략이 나올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총선 기준 수도권 선거인 수는 2204만여명으로 전체 선거인 수 4399만여명 중 50.1%를 차지했다.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찾는 지방 인구의 수도권 유입 증가세는 최근 들어 가팔라졌다. 2022년 20대 대선 때는 수도권 표심의 비중이 지금보다 더 클 것이라는 게 지배적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수도권 표심을 얻는 데 유리했던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서는 점점 유리한 구도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반면 수도권을 중요하게 여길수록 지방의 박탈감을 보완할 필요성 역시 시급하게 다가온다. 이전보다 지방은 스스로 더욱 변방처럼 느끼고 있다. 수도권 집중화로 사라지는 지방 일자리와 인구에 대한 위기감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부동산 가격 상승이 수도권에서 집중적으로 이뤄지면서 자산의 양극화가 신분처럼 고착된 것도,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해 신도시와 광역 교통망을 수도권에 집중하는 정부의 정책도 지방 주민들에게 박탈감을 안겨줬다. 앞선 전직 민주연구원 관계자는 “아무리 수도권이 중요하다고 해도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균형발전 공약이 빠질 수는 없다. 하지만 지방의 이익과 수도권의 이익이 충돌할 때 대응 전략을 정교하게 세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부산·경남 지역을 들썩거리게 하는 신공항 문제, 충청권의 최대 관심사인 행정수도 이전 문제 등 지금 굴러가고 있는 현안들이 이전보다 더욱 첨예하게 떠오를 수 있다는 얘기다.

김회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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