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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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2시간30분을 달려 부산역에 도착해 광장으로 나가면 처음 눈앞에 펼쳐지는 건 길 건너편 산등성이를 타고 다닥다닥 들어서 있는 오래된 건물들이다. 부산 사람들은 이 일대를 ‘원도심’이라고 부른다. 관광객들에게는 눈길을 끈다. 산을 타고 들어선, 아날로그 냄새가 물씬 나는 건축물들을 보면 부산에 온 것 같다고 느낀다. 산중턱을 따라 도로가 가로지르는 부산 특유의 산복도로 중심으로 형성된 이런 주거 형태를 부산의 매력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부산 사람들에게 이 지역은 애증의 공간이다. 한국전쟁과 피란이 압축적으로 자리 잡은 곳, 한때 부산의 시작과 부흥을 이끌었던 곳, 그러나 이제는 손댈 수가 없을 정도로 낡은 곳, 사람들이 줄어들고 쇠퇴하고 소멸해가는 곳이다. 부산역에 도착해 처음 바라보는 이 낡은 풍경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부산의 현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부산진구에서 건자재 장사를 하고 있는 김광호(55)씨는 큰아들이 서울에서 대학을 다닌다. 부산과 서울 양쪽 대학에 합격해 고를 수 있었던 아들은 미련 없이 서울로 갔다. 이제 졸업반이 됐는데 가끔 통화를 할 때마다 아들 걱정이 꽤 많이 된다. 뉴스에서는 가뜩이나 어려운 취업문이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더 좁아졌다고 한다. 아들도 말은 안 하지만 목소리가 그리 활기차 보이진 않는다. “아들에게 내가 하는 장사 물려받는 건 어떠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내려와서 일 배우고 열심히 하면 10년 뒤에는 안정적으로 살 수 있고 대기업 다니는 것보다 더 많이 벌 수 있을 거라고 말해줘도 꿈쩍도 안 하더라. 서울에 있겠다는데 걱정된다고 억지로 끌고 올 수는 없으니까 나도 고민이 많다.”

서울에 처음 올라갔을 때는 바다가 가까이 없다는 게 싫다고 말했던 아들이었다. 자식이 서울에 남겠다니 한편으로 서운했지만 한편으론 이해가 간다고 김씨는 말했다.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해야 하고, 본가에 있는 자기 방보다 작은 주거공간에서 지내는 게 쉽지 않겠지만 그마저도 감당하겠다는 아들의 결심에는 나름 이유가 있다고 본다. 그만큼 부산이 매력이 없다는 얘기다.

330만으로 떨어진 부산 인구의 유출

수도권에서 바라보는 부산의 대표적인 모습은 바다 옆 고층 빌딩이 즐비한 해운대의 야경이다. 반대로 부산에서 바라보는 부산의 모습은 화려한 해운대를 제외한 다른 곳들의 모습이다. 부산을 가리키는 부정적인 지표는 정체된 원도심만큼 부산이 멈춰 있다는 걸 보여준다. 최근 10년간을 추려볼 때 부산의 고용률은 항상 전국 평균을 크게 밑돌았다. 부산의 올해 9월 고용률은 55.8%를 기록했는데 전국 평균(60.3%)이나 7대 도시 평균(58.9%)과 비교해도 한참 떨어졌다. 실업률은 반대로 증가했다. 올해 3분기 부산지역 15~29세 인구 실업률은 지난해 3분기(7.9%)와 비교해 2.7%포인트나 급등해 10.6%를 기록했다. 전국 17개 시도 중 울산(11.1%)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일자리가 없으니 부산을 떠나는 사람은 늘었다. 지난 10월 13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낸 부산시 국감 자료를 보면 지난 5년간 부산 인구 중 11만명이 순유출됐는데 이 중 25~39세 청년 인구가 5만3806명(47.4%)을 차지했다. 2018년 1만3378명(50%), 2019년 1만2667명(54.2%)으로 최근 2년 동안 청년 인구 유출 비율이 50%를 넘었다. 지역 경제에서 젊은 피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부산을 먼저 떠나고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이 연령대는 결혼을 고려하거나, 막 했거나, 아이를 키우는 나이대다. 이들이 부산을 등지면 출산율은 낮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부산 출산율은 0.75명으로 역대 최저 수준이다. 서울(0.64명)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낮다. 부산의 원도심인 중구의 경우 0.50명으로 전국 시군구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원도심에서 빠져나간 청년들은 평지의 아파트로 가거나 타 지역으로 나갔고, 고지대의 낡은 집에 사는 사람들의 평균 나이는 높아졌다.

고령화의 영향도 있지만 인구 유출까지 심하니 부산의 인구는 계속 감소했다. 25년 전 388만명을 기록하며 400만명을 바라보던 때가 있었던 부산 인구는 이제 330만명대로 떨어졌다. 지역 언론에서는 339만명을 찍은 날인 2020년 10월 5일 부산의 위기를 언급하고 나섰다. 그 사이 수도권 인구는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었다. 부산의 인구는 줄었지만 세종시나 경기도, 인천시 등은 1년 전과 비교해 인구가 늘었다. 부산의 소멸까지도 언급됐다.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하는 소멸위험지수에서 부산은 0.76을 기록했다. 1.0 이상은 소멸위험이 보통, 0.5 이상~1.0 미만은 주의, 그 아래는 소멸위험지역에 해당한다. 7대 주요 도시 중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한 게 부산이었다.

압도적인 경제 혁신 수요

오거돈 전 시장의 중도사퇴로 벌어지는 내년 4월 부산시장 보궐선거는 이런 부정적인 데이터가 잔뜩 쌓인 부산의 악조건을 이해하고 봐야 한다. ‘반(反)오거돈’ ‘반(反)민주당’ 정서가 존재하지만 그걸로는 모든 걸 설명하기 어렵다. 현지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아직 공식적인 후보 출마 여부가 나오지 않아서 우리 당은 장이 안 섰다. 하지만 부산이 겪고 있는 지역적 어려움이 너무 큰 상황이라 이걸 잘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는 후보라면 싸움이 가능하다”라고 말한다. 부산의 위기감은 실제로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지난 8월 30일 발표한 국제신문 여론조사(폴리컴 8월 28~29일 1000명 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에서 부산 시민은 ‘차기 부산시장의 과제 중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현안’을 묻는 질문에 ‘일자리 창출 등 부산 경제 혁신’을 가장 많이 꼽았다. 60.8%였는데 2위인 ‘가덕신공항 문제 해결’(16.9%)이 얻은 수치와 비교하면 그 열망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시민 안전 및 복지 확충’은 11.7%, ‘시민참여 확충 등 민주시정’이 4.2%, ‘지방분권’이 3.4%를 얻어 3~5위를 차지했다. 일자리에 대한 요구는 전 연령대, 전 지역에서 50%를 넘었다. 특히 청년들의 요구가 강했는데 만 18세 이상 20대에서는 65.8%가 첫손에 꼽았다. 30대 55.4%, 40대 51.9%, 50대 62.4%, 60대 이상 64.3%였다.

“난 그전에 이명박 찍고 박근혜 찍고 그러다가 지난번에는 문재인 찍었다. 오거돈도 맨날 나와서 떨어지는 게 불쌍해서 찍어줬다. 그런데 사고를 그리 쳐뿌니까 할 말이 없대. 잘해도 다음번에 또 찍어줄까 생각할 건데 그리 해뿌니 다음번엔 무조건 야당 갈라고 한다.” 부산진구 부산시민공원에서 만난 박모(69)씨는 왜 이번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를 찍어야 하는지를 말해줬다. “다 그 사람이 그 사람들 아닌교. 지금 보면 엄청 고민되지. 나와도 찍을 사람이 없다니까.” 50대 택시기사는 풍요 속의 빈곤을 말했다.

여당에서는 김영춘 국회 사무총장과 김해영 오륙도연구소장 등이 거론되는 반면 부산시장을 노리며 줄을 선 국민의힘 후보군은 많다. 박민식 전 의원, 서병수 의원, 유재중 전 의원, 이언주 전 의원, 이진복 전 의원, 박형준 동아대 교수 등이 주로 거론된다. 전체적인 흐름에서는 부산시장을 지냈던 서병수 의원이 약간 앞서고 있고 박형준 교수와 이언주 전 의원이 그 뒤를 쫓는 그림이다. 지난 10월 21일 프라임경제가 공개한 여론조사(싸이리서치 10월 16~17일 1015명 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에서는 차례대로 17.3%, 16.6%, 15.7%를 얻었다. 지난 총선 결과에서 부산이 다시 보수의 안방이 된 듯한 결과가 나왔다는 점, 보궐선거의 책임이 전 더불어민주당 출신 시장의 비위에서 비롯됐다는 점 등은 야당 후보들의 출마 러시를 불러왔다. 반면 후보 선정에 큰 힘을 발휘할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과 이들의 관계는 평탄하지 못하다.

“김 위원장의 자질론은 정확한 말”

국민의힘 부산시당 관계자는 “진짜 난리가 났었다”고 말했다. 10월 16일 김종인 위원장의 말 때문이었다. 이날 오후 부산을 찾은 김 위원장은 “3선, 4선 했으니 부산시장 하려는 사람 말고 부산의 지역적 특색을 잘 알고 장기적으로 발전시킬 비전을 갖춘 사람이 이끌어야 한다. 현재는 그런 사람이 안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부정적인 기류는 있었지만 부산에 와서 직접 자질론을 거론하니 다들 뒤통수 맞은 기분이었을 거다. 그래도 김 위원장 입이 워낙 중요하다 보니 그 요구에 맞춰서 비전이나 정책을 좀 더 구체화하거나 토론회 등을 일찍부터 준비하는 후보들도 있다”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표현은 거칠었지만 핵심을 짚었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지역언론의 중견 기자는 “맥락만 보면 김 위원장이 정확하게 한 말”이라고 평가했다. “지금 나온 후보들이 부산에서는 한가락 해도 중앙에서는 인지도가 높지 않다. 과거 부산시장은 ‘중앙부처 과장급 시장’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경기도나 경남은 대선후보급이 수장이다. 지금의 부산을 바꾸려면 도전적인 시도가 필요하고 시정 결과를 바탕으로 중앙에서 큰 꿈을 꾸는 시장이 필요하다. 그동안 정치 경력 황혼기에 부산시장으로 정치인 생활을 마감하려는 사람들이 당선되니까 부산이 바뀌지 않았다는 문제의식이 퍼져 있다.”

부산의 문제는 곪은 지 오래됐고 그래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정도다. 부산상공회의소가 펴낸 2019년 기준 ‘매출액 전국 1000대 기업 중 부산기업 현황’을 보면 부산에 적을 둔 매출 1위 기업은 르노삼성자동차(4조6777억원)였다. 전국 100대 기업에 유일하게 포함됐다. 지역별 매출 총액을 보면 추락하는 부산 경제의 현실이 더욱 가혹하게 증명된다. 부산 기업의 전체 매출은 31조7845억원으로 서울(1467조5987억원)의 매출과 비교했을 때 2.2%였다. ‘제2의 도시’라는 부산의 애칭은 경제로 따져 보면 허울뿐이다. 부경대에 다니는 김건우(24)씨는 “구직자들을 대거 채용하는 기업이 부산에는 없다. 다른 곳이라고 안 그러겠냐만은 부산에서 살려면 공무원 아니면 대안이 없다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가덕신공항만 바라보는 까닭

부산이 가덕신공항에 거는 기대는 이런 현실과 맞물려 있다. 이 정도의 대형 프로젝트가 아니면 부산의 구조에 변화를 가져오기 힘들다는 분위기가 있다. 수도권에 비해 사사건건 제동이 걸렸던 SOC사업도 신공항을 통해 완성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다. 수도권에 3기 신도시가 계획되고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가 더욱 촘촘히 그물망 교통망을 형성하기로 했던 그 시기에 부산에서는 하단-녹산선 도시철도 사업이 예비타당성조사에서 탈락하는 일이 있었다. 이 노선은 신도시 건설로 인구가 늘어난 서부산권을 가로지르는 교통망이었고 이 지역 개발의 핵심 사업이었는데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제동이 걸렸다. 뉴스에서는 경기도와 서울을 30분 안에 연결한다는 GTX 소식이 흘러나오지만 막상 도시철도 하나 놓기 어려운 부산의 현실 탓에 시민들이 느끼는 박탈감은 꽤 컸다. 이런 수도권 일극화를 해소하는 방법 중 가덕신공항은 그 효과가 가장 큰 사업이고 부산이 여기에 매달리는 이유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직접 가덕신공항 문제를 챙기는 것도 이런 부산의 민심을 고려해서다. 가까이는 시장 보궐선거, 멀리는 차기 대선까지 신공항 이슈는 부산의 민심을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는 파급력이 있다. 다만 지역 내에서는 이 대표의 이런 행보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 부산지역 정가 관계자는 “이낙연 대표가 총리였을 때는 신공항 이슈를 해결하지 않고 끌다가 이제 와서 나서는 걸 두고 얄밉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조차 지금 이 대표를 붙잡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안다. 부산 출신 정치인 중에는 지금 이 정도 이슈를 주도적으로 끌고 갈 중량감 있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부산은 바람에 따라 빨간색으로 고착화되기도 하고 파란색으로 뒤집어지기도 했다. 때로는 냉정한, 때로는 역동적인 표심을 보여주는 곳이다. 보궐선거의 시작은 이전 시장의 잘못 때문이지만 그 끝도 이전 시장의 잘못을 따지는 걸로 끝날까. 그러기에는 부산의 현실이 너무 위태로워 보인다.

김회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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