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15총선 당시 서울 마장동 제1투표소에서 여론조사기관 관계자들이 출구조사를 위해 대기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4·15총선 당시 서울 마장동 제1투표소에서 여론조사기관 관계자들이 출구조사를 위해 대기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문화자본’ 개념을 제안해 국내 식자층 사이에서도 팬을 가진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여론조사(opinion poll)’를 싫어했다. “여론조사는 ‘모든 사람이 질문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다’라는 전제에서 출발하는데, 이 전제가 틀렸다”는 게 부르디외의 주장이다.

여론조사는 어떤 질문에 대해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다, 그렇다, 매우 그렇다, 잘 모르겠다’ 같은 응답 중에서 하나를 고르게 한다. 부르디외의 말대로, 응답자들 가운데엔 ‘그 질문에 관심도 없고 의견도 없지만 물어보니까 답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사람은 선의(善意)를 지니고 있어서 어떤 가벼운 부탁을 받으면 특별히 거절할 이유가 없는 한 들어주는 경향성이 있다. ‘존재하지 않는 여론을 만들어내어 조사하기도 한다’라는 점은 여론조사의 맹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부르디외의 주장은 소수의견에 머물렀다. ‘갤럽’은 1936년 미국 대선에서 5000명 표본조사로 프랭클린 루스벨트 후보의 당선을 정확히 예측했다. 이 결과는 반향을 불렀다. 이후 소수 표본을 분석해 국민 전체의 여론을 알아보는 방식은 정치와 함께 나아가는 핵심 장치가 됐다. 오늘날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관한 지지 정도, 여야 정당에 대한 선호 정도, 차기 대선주자에 관한 선호 정도를 파악하는 여론조사는 널리 일반화되고 있다.

민주주의에서 대통령 권력의 정당성은 대선 승리로만 보장되지는 않는다. 대통령은 재임 중 자신이 올바르게 국정을 수행하는지를 여론에 계속해 검증을 받음으로써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해 나간다. 이 여론의 검증을 가장 객관화한 형태가 여론조사다.

30%대 위기서 벗어난 대통령 지지율

이런 점에서 여론조사 결과는 학점과 유사하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잘한 학생이 A+ 학점을 받듯이, 국정을 잘 수행한 대통령은 60%가 넘는 높은 여론조사 지지도를 얻는다. 반대로 국정을 태만하게 하거나 무능하거나 부정행위 의혹이 들끓거나 결과물이 신통치 않은 것으로 평가되는 대통령은 30%대 이하의 저조한 지지율을 받아들게 된다. 즉 여론조사 결과는 ‘대통령의 성적표’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여론의 단기적인 급등락보다는 장기적인 흐름이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서 더 중요하기는 하다.

계속해서 여론 지지도가 낮게 나오는 것은 대통령에게 큰 문제가 된다. 지지도와 대통령의 소위 ‘말발’은 정비례한다. 지지도가 30%, 20%로 떨어지면,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 일각도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한다. 여당의 차기 대선주자도 대통령과 각을 세운다. 가장 뼈아픈 것은 행정부마저 대통령의 통제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검찰과 같은 권력기관은 ‘임기 후반을 맞는 낮은 지지도의 대통령’에게서 먼저 멀어진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대통령들은 여론조사 지지도를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측은 재임 당시 지지율이 32%로 떨어지자 “여론조사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백악관은 이라크전쟁에 대한 국민 지지를 높이기 위해 각별히 노력했다. 대부분의 미국 대통령들은 백악관 안에 여론조사 전담팀을 꾸려 자체 조사 결과를 국정에 반영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등 한국 대통령들도 여론조사를 꽤 의식했고 관련 조직을 운영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진다.

여론조사 결과는 여권의 새로운 움직임을 창출하기도 한다. 2019년 10월 초 조국 사퇴 찬반으로 사회가 양분됐다.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은 41.4%로 나왔다. 30%대 진입을 눈앞에 둔 위험한 수치였다.

그해 10월 14일 조국 법무부 장관이 전격적으로 사퇴했다. 그 직후 지지율은 4.1%포인트가 뛰어 45.5%로 올랐다. 문 대통령으로선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지지율도 반등했다. 사실관계만 놓고 보면, 문 대통령은 여론조사 지지율 30%대 하락 위기를 맞았으나 조국 사퇴라는 새로운 움직임 뒤 어느 정도 위기에서 벗어난 것이 된다.

여론조사는 많은 사회적 이슈를 만들지만, 때때로 여론조사 자체가 이슈화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여론조사의 ‘신뢰성’ 문제다. 즉 ‘여론조사가 여론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라는 논란이 나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권위가 어느 정도 인정된 여론조사기관의 발표는 일반적으로 어떠한 개별 뉴스 보도보다 중요하다. 이런 발표는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에 대한 국민적 심판의 결과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성적 평가가 공정하지 않으면 학사행정이 엉망이 되듯이, 여론조사가 여론을 반영하지 않으면 민주주의 시스템이 망가진다.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대통령의 공과(功過)가 평가되고 사회적 토론과 담론, 대책이 나온다. 그런데 로데이터(row data·기초자료)인 여론조사 결과가 신빙성이 떨어지면, 이 모든 것이 무의미해진다. 사회 전반에 관한 신뢰는 추락하고 갈등은 커진다. 무엇보다 여론으로 대통령 권력을 통제하는 주권자인 국민의 권리가 훼손된다.

여론조사가 여론을 잘못 전하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가 여론을 잘못 전하고 있다’라는 논란은 국내외에서 자주 발생했다. 평상시엔 여론조사의 신빙성을 검증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다만 큰 선거에선 어느 정도 가능하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19개 여론조사기관의 결과 중 17개는 여당인 민주당 측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승리를 예상했다. 국내에도 “힐러리 당선 90% 이상”이라는 미국 측 여론조사 결과들이 보도됐다. 그러나 11월 8일 투표 결과,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마이크 머피 선거전문가는 “오늘 밤 데이터는 죽었다”라고 했다.

2016년 4월 20대 총선을 앞두고 국내 여론조사기관들은 여당인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의 승리를 사실상 예상했다. 한 유명 여론조사기관의 결과에 따르면, 새누리당 지지율은 38%,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21%로 여야 간 큰 격차를 보였다. 그러나 선거 결과는 야당의 1석 우위였다. 출구조사 결과가 실제 투표 결과와 많이 다른 사례들도 있었다.

‘올해 4·15총선 전 여론조사기관들의 조사 결과는 실제 여론을 정확히 반영했고 4·15총선 결과와도 어느 정도 일치하는가?’라는 물음에 “그렇다고 하기 힘들다”라고 답할 여지가 있다. ‘여론조사에서의 정당 지지율은 총선에서의 비례정당 득표율과 성격이 유사하다’라는 척도로 보면 그렇다.

4·15총선 비례정당 득표율에서, 자유한국당 지지자들이 주로 투표한 미래한국당은 33.8%였고,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이 투표한 더불어시민당과 열린민주당은 합계 38.7%였다. 양측 간 득표율 격차는 4.9%포인트였다.

반면 정기적으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한 유명 여론조사기관의 3월 30일 조사 결과에서 미래한국당 대 더불어시민당+열린민주당 간 격차는 14.1%포인트로 나왔다. 실제 선거 득표율보다 여당 측 지지율이 9.2%포인트 더 높게 나왔다. 모 중앙일간지와 공동실시한 다른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비슷한 추세의 결과가 나왔다. 대체로 ‘여론조사 결과에 여당 지지도가 다소 높게 나온다’고 해석될 수 있다.

여론조사 결과는 ‘지지도가 높게 나오는 쪽으로 부동층을 쏠리게 하는 효과’를 낼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른바 악대마차(Band Wagon) 효과다. 2017년 대선 때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대선후보 지지도 여론조사의 신뢰성을 부인하면서 “집권 시 조작이 의심되는 여론조사기관을 폐지하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갤럽과 리얼미터는 정기적으로 정치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대표적인 기관이다. 사회적 쟁점이 되고 있진 않지만, 야당 지지도에 관한 두 기관의 조사 결과가 대체로 너무 다르게 나오는 것이 이상하다.

2020년 9월 2주 차에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야당인 국민의힘 지지도는 32.8%였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지지도 33.7%와 불과 0.9%포인트 적었다. 그러나 거의 같은 시기에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도는 19%였다. 민주당 지지도 39%보다 무려 20%포인트 정도 낮았다.

이러한 큰 차이가 발생하는 것에 대해 두 기관의 조사방법 차이, 응답률 차이 등 여러 원인이 거론된다. 내가 보기에 이런 원인은 해당 기관의 내부 문제일 뿐이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 결과 수치로 말해야 한다. 최종 결과물인 그 수치가 여론을 제대로 반영하느냐가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다.

‘제1야당에 관한 국민 여론’이라는 같은 현상을 이렇게 크게 다르게 측정한 두 결과가 정기적으로 계속 발표되는 것은 문제일 수 있다. 조사의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는 사안이다. 두 기관의 조사 결과는 국내 많은 언론과 포털이 인용 보도해 커다란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런 공공적인 문제에 대해선 비평의 자유가 폭넓게 보장되어야 한다.

‘여론조사 결과가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도를 제대로 반영하는가?’에 관해서도 일부 중앙언론사는 의문을 제기했다. 2017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에 투표한 사람들이 여론조사 표본에 과대 표집됐다는 것이다.

대통령 지지층 과대 표집 논란

이 보도에 따르면, 2019년 5월 2일 발표된 한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긍정평가는 51.6%로 높게 나왔다. 그런데 전체 응답자 중 53.7%(1000명 중 537명)는 2017년 대선에서 문 대통령을 뽑았다고 답한 사람들이었다. 2017년 대선에서 문 대통령의 득표율은 41%였다.

이런 비판을 잠재우기 위해 1000명 안팎의 표본 수를 2000~3000명으로 늘려 과대 표집 문제를 해소할 수도 있다. 비판론자의 요구도 조사에 반영해 대통령 지지도 조사의 객관성을 높여야 한다.

여론조사 결과는 정치적 토론의 출발점이다. 이 결과의 신뢰성이 흔들리면 대통령·정당·대선주자에 대한 모든 평가는 근거를 잃는다. ‘국가적 차원의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넌 대답만 하면 돼) 쇼’만 남을 뿐이다.

다른 한편으로 시민들도 여론조사에 적극적으로 응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여론조사가 민심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논란이 나오는 주된 원인으로 ‘숨은 표심’이 꼽힌다. 전문가들은 “특정 이념성향 시민들이 대통령이나 특정 정당에 관한 지지 여부를 조사원에게 밝히지 않는 경향성이 있다”라고 설명한다.

투표해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마찬가지로 여론조사에 당당하게 응해야 심판해야 할 정파를 즉각적으로 심판할 수 있다. 여론조사에 응하지 않으면 잘못을 해서 심판받아야 할 정파가 높은 지지를 얻는 조사 결과가 나온다. 이 조사 결과로 큰 힘을 얻게 되는 정파는 잘못을 고치지 않는다. 여론조사를 탓하는 시민들은 그에 앞서 여론조사에 응하지 않는 자신의 태도부터 바꿔야 한다.

허만섭 국민대 교양대학 부교수·전 신동아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